소설리스트

검신재림-157화 (157/468)

제 53장. 누구를 따라야 하는가. -02

사마의성이 남궁호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처음에는 천하의 도왕과 염왕이 찾아왔기에 긴장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둘 다 분명 대단한 무인인 건 맞지만 사마의성에게는 반호진과 상일기가 있었다.

그렇기에 사마의성은 평정심을 되찾고서 자신감을 갖고 말했다.

“하지만 그게 대책은 되지 않는데.”

지금껏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있던 팽추영이 슬쩍 끼어들었다.

반호진에게야 찍소리도 하지 못했지만 사마의성은 달랐다.

멸문한 사마세가의 후인에 나이도 그보다 훨씬 어렸기에 팽추영은 자연스럽게 하대를 하며 입을 열었다.

“팽 공자. 여러 대협들이 계신데 예의는 지켜 주시오. 우리들끼리만 있는 자리가 아니지 않소.”

“크흠!”

남궁광이 나지막하게 타박했다.

그 역시 팽추영과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으나 지금의 말투는 선을 넘었다.

친한 사이라면 모를까 팽추영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사마의성을 만난 건 지금이 처음이었기에 예의를 차릴 필요가 있었다.

그러면서 남궁광은 자연스럽게 반호진과 일행들에게 점수를 따려 했다.

앞으로 있을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전력이 반호진과 상일기라고 생각해서였다.

거기다 남궁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기에 남궁광은 그에 맞게 처신했다.

“감사합니다, 남궁 공자님.”

“별말씀을. 말씀 계속하시죠.”

시기적절하게 정적을 끊어 주고 실속도 챙기는 사마의성의 모습에 남궁광은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느끼며 싱긋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부친을 힐끔거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역시나 남궁호의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맺혀 있었다.

“그럼 계속 이어 가겠습니다. 분위기는 나쁘고, 크게 밀린 것도 사실이나 이길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다들 잊고 계시는 게 한 가지 있는데 이곳은 대막으로 가는 경계이긴 하나 중원에 더 가깝습니다. 즉 우리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철혈성 역시 대막과 가깝다고요. 그러나 중요한 건 대막과 중원은 환경 자체가 다르다는 겁니다. 즉 보급 능력이 크게 차이가 난다는 말이지요.”

“장기전을 말하는 것이로군.”

“그렇습니다. 남궁 가주님. 오늘처럼 정면대결이 아니라 수성전으로 나선다면, 거기에 수적으로 우위에 있는 점을 이용해 철저하게 차륜전으로 나간다면 우리가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습니다. 거기다 소모된 병력을 충원하는 것도 우리 쪽이 월등히 유리하고요. 다만 문제점이 있습니다.”

“결속력이군.”

팽만철과 달리 남궁호는 단번에 이 계책의 문제점을 알아차렸다.

아니, 솔직히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대대로 늘 백도무림의 문제점이자 약점이었으니까.

“맞습니다. 하나로 똘똘 뭉쳐야지만 효과가 극대화되는데, 만약 이게 되었다면 오늘처럼 크게 밀리지는 않았겠지요.”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수성전은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는 건데. 오늘 된통 당해서 말이지. 그러나 차륜전은 다른 문제야.”

“개별 작전권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누구도 지휘권을 넘기려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럴 테지.”

“자존심으로 먹고사는 이들인데.”

조용히 눈치를 살피며 듣고 있던 팽만철도 동조했다.

굳이 멀리서 예를 찾을 필요도 없이 당장 오늘만 하더라도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팽만철 역시 사마의성의 대책에는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이게 전제조건입니다. 이게 우선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방법이 없습니다. 오늘과 같이 싸운다면 이기기 힘들 겁니다.”

“저 녀석이 전면에 나선다면?”

팽만철이 눈짓으로 말없이 가만히 앉아 있는 반호진을 가리켰다.

모든 걸 사마의성에게 맡긴다는 듯이 반호진은 회의에 일절 참여하지 않았다.

초반에 몇 마디 한 걸 제외하면 말이다.

“글쎄요. 저도 형님의 역량을 전부 다 파악한 상태가 아니라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형님의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자네라면 설득할 수 있지 않나?”

팽만철이 넌지시 꼬드겼다.

낮에 화산파와의 대립을 직접 봤기에 팽만철은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북팽가와 중원무림을 위해서는 반호진의 적극적인 참전이 반드시 필요했다.

“제 능력 밖의 일입니다, 팽가주님.”

“허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는 사마의성의 모습에 팽만철이 살짝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예의상 노력이라도 해 보겠다고 말할 수도 있는데 너무 단칼에 거절한 것 같아서였다.

“팽가주.”

“쓰읍! 알겠네.”

그런데 동년배인 남궁호가 눈치를 주자 팽만철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물러났다.

상일기의 시선 역시 신경이 쓰이기도 했고.

그러나 아쉬운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반호진이 전면에 나선다면 지금의 상황을 확실하게 반전시킬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사실 우리는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네. 냉정하게 보면 우리가 부족해서 벌어진 일이니. 그렇다고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고. 결정은 반 공자가 하는 것이지. 그러니 이건 잠시 제쳐 놓고, 본래 했던 얘기로 돌아가서 만약 장기적인 수성전을 한다고 치면 그다음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결속력이 갖춰졌을 때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다네.”

“대전사들의 숫자를 차근차근 줄여야 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철혈성주를 잡아야 하고요. 그런데 여기에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효율적으로 싸우셔야 합니다.”

남궁호의 제지에 잠자코 듣고 있던 팽만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지막의 효율적이라는 말이 귀에 걸려서였다.

그런데 그건 남궁호와 자식들도 마찬가지인지 다들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효율적이라는 표현은 너무 광범위한 것 같은데.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으면 좋겠네만.”

“편히 해. 네 말대로 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생각을 말하는 거니까.”

힐끔 쳐다보는 사마의성을 향해 반호진이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한 의견 제시인데 너무 눈치를 보는 듯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기도 했다.

강호초출이나 마찬가지인 사마의성에게 염왕과 도왕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사실 말이 안 되는 것이기도 했고.

“협공입니다. 비무나 대련과 전쟁은 다릅니다. 단순히 무를 겨루는 자리가 아니라 생사가 오고 가는 자리입니다.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승리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도 말이지?”

“네에.”

자신 있게 말한 것과 달리 사마의성은 남궁호의 눈치를 살폈다.

고수들의 자존심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였다.

더욱이 지금 사마의성의 앞에 앉아 있는 두 명은 중원무림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그렇다 보니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허어.”

거기에 팽만철이 당혹스럽다는 표정을 짓자 사마의성의 어깨가 더욱더 쭈그러들었다.

가뜩이나 거구에 험악한 인상인데 얼굴까지 찡그리니 일부러 노려본 것도 아닌데 간이 콩알만 해지는 느낌이었다.

“어,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기분 나쁘게만 들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네. 냉정하게 현실을 파악해야 해. 대전사 셋을 잡았지만 우리는 투왕이 전투불능일세.”

“그렇긴 하지. 투왕이야 자신은 싸울 수 있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큰 도움은 안 될 것이야.”

투왕의 실력은 남궁호와 팽만철도 인정했다.

무당의 검왕과 남궁호 때문에 투왕이라는 별호를 얻었으나 그 역시 천하에서 손꼽히는 검객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의 왼팔이 잘렸다는 점이었다.

왼팔을 잃었다는 건 단순히 팔이 잘렸다는 뜻이 아니었다.

몸의 균형, 그리고 기맥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소리였다.

절대고수인 만큼 남들보다야 빠르게 적응하겠지만 문제는 당장 전투를 치러야 한다는 점이었다.

“만약 협공을 한다면 이길 가능성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

“계획대로만 된다면 육 할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반 공자를 빼고 계산한 거겠지?”

“그렇습니다. 다만 확신하지는 못합니다. 철혈성주라는 변수가 있어서.”

“으음.”

남궁호가 침음을 흘렸다.

직접 손속을 나누어 보지 않았으나 그 정도쯤 되는 고수가 되면 보는 순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상대방의 수준에 대해서 말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철혈성주는 최소 그와 동수이거나 한 수 이상이었다.

“그자가 강하긴 해. 나도 혼자서는 힘들다고 생각했으니까.”

“우리 둘, 아니 상 문주님까지 셋이라면 해볼 만하지.”

“진짜 협공할 생각인가?”

“못 할 건 없지 않나. 혼자서 안 된다면, 힘을 합칠 수밖에. 개인 간의 대결이라면 당연히 혼자 싸워야 하지만 이건 전쟁이니까.”

팽만철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존심이 강한 남궁호가 먼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라서였다.

“저는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팽가주는 어떤가?

“나야…….”

팽만철이 말끝을 흐렸다.

어째 분위기가 싫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냉정하게 말해 사마의성의 의견은 가장 현실적인 대책이었다.

그게 싫다면 철혈성주를 혼자 상대하면 되었다.

“거절은 아니로군.”

“나도 대세에 따르겠네. 나 혼자 다 쓸어버릴 수 있다면 모를까, 힘들다면 힘을 합쳐야지.”

“그럼 이제 문제는 저쪽이로군.”

“어느 쪽이든 결론이 쉽게 나오지는 않을 걸세.”

“그래도 준비는 해야 하겠지.”

남궁호의 시선이 사마의성에게 향했다.

어서 나머지 계획에 대해서 말해 보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남궁호는 은근슬쩍 반호진을 쳐다봤다.

셋보다는 넷이 나았기에 은근히 눈치를 주는 것이었다.

후르릅.

하지만 남궁호가 보거나 말거나 반호진은 차만 홀짝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서.

쾅쾅쾅!

거칠게 탁자를 내려치며 큰 소리를 치는 각 파와 무가의 수장들의 모습에 일우의 파리한 안색이 더욱 창백해졌다.

대책을 강구해도 모자랄 판에 남 탓만 해 대며 싸우고 있으니 머리가 아팠다.

마음 같아서는 차라리 누워서 회복에 전념하고 싶었으나 그럴 수도 없었다.

쉬더라도 일단 지금의 상황은 수습해야 했기에 일우는 깊게 한숨을 쉬며 좌중을 둘러봤다.

‘응?’

근데 서로 삿대질하는 수장들 사이로 빈자리가 꽤나 많이 보였다.

듬성듬성 비어 있는 게 아니라 거의 반 가까이 비어 있는 자리에 일우의 미간이 잔뜩 좁혀졌다.

“장문인.”

“두 분을 찾는 것이지요?”

옆에 앉아 있던 종남파 장문인 성중경이 무엇을 묻는지 짐작하고 있다는 듯이 반문했다.

그러자 일우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직 안 온 것이오?”

“그런 것 같습니다.”

일우의 미간의 골이 더욱더 깊어졌다.

일찍 참석해도 모자랄 판에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다고 하자 일우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런데 그건 몇몇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조용한 몇몇 수장들은 묘한 표정으로 눈빛을 교환했다.

“회의 시간은 제대로 전달한 것 맞소?”

“모두에게 전달했으니 당연히 전달되지 않았겠습니까.”

“근데 왜…….”

가뜩이나 부상 때문에 앉아 있는 것도 힘든데 전력 중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남궁호와 팽만철이 아직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일우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그때 문득 한 가지 가정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지금 뭐라 했소! 나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오?!”

“맡은 곳을 제대로 방어해 냈으면 전선이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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