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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재림-150화 (150/468)

제 50장. 똥 덩어리들. -02

지금껏 잠자코 있던 서조운이 얼굴 가득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오중건이 마중을 나오기는 했으나 그건 반호진과 개인적인 친분 때문이었다.

거기에 남궁호와 비긴 상일기를 만나고자 찾아온 것이었기에 화산파에서 마중을 나왔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그게 서조운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내가 어디 가서 대우받을 정도는 아직 아니지. 대외적으로는 신룡이니까.”

“괴왕을 죽인 게 슬슬 알려지는 중이잖습니까. 화산파의 장문인이라면 알고 있을 텐데요.”

“듣기는 했겠지. 그런데 들었다고 순순히 믿겠어?”

“으음!”

반호진의 반문에 서조운이 침음을 흘렸다.

들어 보니 일리가 있는 것 같아서였다.

당장 주변만 보더라도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어르신들은 상당히 보수적이었다.

자신이 직접 본 게 아니라면 잘 믿지 않는 경향을 생각하면 반호진의 말대로일 가능성이 높았다.

“나보다는 문주님께서 기분 나빠 해야지. 대접이 이런데.”

“허허허. 저는 괜찮습니다. 대접을 받고자 화산파에 온 게 아니니까요.”

불똥이 상일기에게로 튀었다.

그러자 모두의 얼굴이 굳어졌다.

반호진만 신경 썼지 정작 상일기에 대해서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해서였다.

“이거 더 열 받는데요?”

“전시 상황이라는 것도 감안해야지.”

“그래도 마음에 안 들어요. 어떻게 형님과 문주님을 이렇게 홀대할 수 있죠?”

서조운이 분을 못 이기고 씩씩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아서였다.

나이는 어려도 반호진은 소림사 방장의 제자였고, 상일기는 천하십대고수 중에서도 손꼽히는 강자인 염왕하고도 동수를 이룬 무인이었다.

그런데도 장문인은커녕 대제자도 얼굴 한 번 비치지 않는다는 게 말이 안 되었다.

“바빠서 그런 걸 수도 있지. 이제 첫날이기도 하고. 여독이 있을지 모르니 오늘은 푹 쉬라는 배려일 수도 있어.”

“그렇다면 최소한 일대제자는 왔어야죠.”

정이륭의 말에 서조운이 고개를 저었다.

만약 그랬다면 따로 설명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염왕이나 도왕에 비하면 무게감이 확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니까.”

“그렇다고 해도 너무 무시하는 처사 같아요.”

“뭐, 어쩔 수 없지. 억울하면 성공하라는 말도 있잖아. 꼭 남의 인정을 받아야지만 내가 성공한 게 아니고. 너무 그런 것에 연연하지 말고 우리는 우리 할 일만 생각하자고.”

울분을 토하는 서조운과 달리 반호진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여기 있는 이들과 달리 그는 투왕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직접 여기까지 온 것이기도 하고.

만약 투왕과 염왕, 도왕을 믿었다면 굳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터였다.

‘최악의 상황이 안 벌어지면 그것 나름대로 좋은 일이고.’

누누이 말했지만 반호진은 이번 생을 편안하고 한가롭게 보내고 싶었다.

열심히 사는 건 지난 생으로 충분했고, 과도한 관심도 받고 싶지 않았기에 딱 지금 할 일만 정해 주었다.

“알았어. 바로 사람들을 움직일게.”

“저도요.”

철혈성의 본진이 천천히 진군하고 있다고 하나 시간적으로 여유로운 건 절대 아니었다.

준비라는 건 아무리 해도 부족하기에 선우방과 모용척은 곧바로 움직였다.

***

섬서성과 대막이 맞닿아 있는 곳.

초원과 사막의 경계가 애매하게 뒤섞인 곳에 수만 명의 무인들이 집결했다.

바로 화산파에서 출발한 백도무림의 병력이었다.

그리고 대막 쪽에서도 엄청난 숫자의 병력이 남하해 오고 있었다.

꿀꺽!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어마어마한 숫자가 진격해 옴을 알 수 있는 모래폭풍에 사마의성이 마른침을 삼켰다.

처음으로 겪는 전쟁인 데다가 규모가 엄청나자 바짝 긴장한 것이었다.

“귀로 듣는 것과 직접 보는 건 확연히 다르지?”

“네. 온몸의 털이 쭈뼛 설 정도예요.”

“이래서 경험이 중요해. 직접 봐야지만 느껴지는 게 있거든.”

잔뜩 얼어 있는 사마의성에 모습에 반호진이 피식 웃었다.

그의 기억에 남아 있는 마군사의 모습과는 너무나 달라서였다.

한편 사마의성은 양측의 규모에도 놀랐지만 신기할 정도로 덤덤한 반호진의 태도에도 놀랐다.

이런 전투가 처음이 아닌 것처럼 보여서였다.

“형님은 괜찮으세요? 다른 분들도 긴장하고 있는데.”

사마의성이 의문 가득한 눈빛으로 반호진을 바라봤다.

천하십대고수급인 상일기조차도 철혈성의 위용에 긴장해 있는데 반호진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나도 당연히 긴장되지. 근데 원래 내가 티가 잘 안 나는 사람이라.”

“…….”

사마의성이 두 눈을 끔뻑였다.

아무리 봐도 티가 안 나기보다는 긴장을 안 한 것 같아서였다.

심지어 같이 모여 있는 선우청과 모용궁조차도 얼굴이 잔뜩 경직되어 있는데 반호진은 아니었다.

“무인인지 기마대인지 구분이 안 가네요. 말과 낙타를 저렇게나 많이 타고 올 줄이야.”

“이동 수단이자 식량이기도 하니까. 우리와는 풍습이 많이 다르지. 싸우는 방식도 그렇고.”

“어떻게 될까요?”

서조운의 질문에 조용히 진영을 구축하고 있던 선우청과 모용궁도 반호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가 어떻게 추측할지 다들 궁금해하는 기색이었다.

“대개 상대를 만만하게 보면, 큰코다치기 마련이지.”

“역시 억지로라도 남아 있었어야 했나.”

“저들이 원치 않았잖습니까.”

선우청의 중얼거림에 모용궁이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이 괜히 이곳에 있는 게 아니었다.

싸우기도 전에 승리를 장담한 이들이 전공을 독식하기 위해 은연중에 군소방파와 중소세가들을 차별했다.

그리고 그중에는 선우세가와 모용세가가 있었다.

“뭐,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예상보다 철혈성의 전력이 약할 수도 있고.”

“어째 말투는 아니라는 것 같은데요?”

“가끔은 충격요법이 필요하기도 하니까. 다만 충격요법으로 끝나느냐, 아니면 충격적인 대패를 당하느냐는 지휘관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담담한 말이었는데 묘하게 가슴에 콕콕 박히는 느낌이었다.

왠지 모르게 안 좋은 쪽으로 상황이 흘러갈 것만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특히 사마의성은 지휘관의 결정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이 유독 크게 들렸다.

두두두두!

그때 여유롭게 진군해 오던 철혈성의 병력 중 일부가 앞으로 뛰쳐나왔다.

낙타보다 상대적으로 빠른 속도를 가진 말을 탄 천여 명이 백도무림의 진영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정찰대라기보다는 돌격대로 보이는 기세에 백도무림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파아아앗!

초반에 확실하게 기선제압을 하겠다는 듯이 백도무림 측에서도 기병대와 비슷한 숫자의 무인들이 뛰쳐나갔다.

바로 화산파와 종남파를 중심으로 한 섬서무림의 무인들이었다.

그런데 자신 있게 달려들던 것과 달리 결과는 처참했다.

보무도 당당하게 달려가던 무인들이 몇 줄기 빛과 함께 모조리 양분되었다.

“헉!”

“허업!”

그 광경에 반호진의 곁에서 지켜보던 일행들이 대경했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가 않아서였다.

하지만 충격은 일행들보다 제자들을 내보냈던 화산파와 종남파가 훨씬 더 컸다.

설마하니 얕잡아 보던 철혈성에게 이렇게 속절없이 당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모두가 경악했다.

파파파팟!

그러나 충격은 짧았다.

이내 분노에 휩싸인 섬서무림의 무인들이 일제히 진격했다.

죽은 동료, 제자, 가족들의 복수를 하겠다는 듯이 광기에 휩싸여 철혈성의 본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꽈아앙! 꽈과과광!

한데 그 광경이 지극히 단순했다.

전략, 전술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이 그저 단순히 순수한 힘 대 힘의 싸움만 벌였다.

그냥 무작정 적진을 향해 달려들었던 것이다.

“흐음?”

“어라? 우리 쪽이 밀리는 거 같은데요?”

불 속으로 달려드는 부나방처럼 양측의 병력은 끊임없이 달려들었다.

그로 인해 사상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순수한 힘의 충돌인 만큼 죽어 나가는 이들 역시 속출했던 것이다.

그런데 전황이 이상하게 흘러갔다.

“내가 보기에도.”

“숫자는 우리가 좀 더 많지 않나?”

첫 격돌에서의 기선제압이 효과가 있는 것인지 시간이 갈수록 양쪽 진영의 우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백도무림의 진영이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모습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처음 예상했던 것과는 결과가 너무나 다르게 나와서였다.

“만만하게 본 대가지. 근데 아직 밀린다고 판단하기에는 일러.”

당황한 일행들과 달리 반호진은 담담했다.

여기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철혈성의 전력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게 반호진이었다.

물론 전생에서의 규모와 지금의 규모는 차이가 있겠으나 순수한 철혈성의 전력은 별 차이가 없을 터였다.

핵심 전력은 달라지지 않았을 테니까.

그럼에도 반호진이 강경하게 나가지 않은 건 알고 있는 정보의 출처를 밝힐 수가 없어서였다.

또한 증거가 없기도 하고.

거기다 일개 후기지수가 하는 말을 귀담아들을 이는 별로 없었다.

‘반신반의만 해도 다행이지.’

반호진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괜히 그가 말을 안 한 게 아니었다.

담현이었다면 믿어 주겠지만 문제는 증거였다.

내놓을 증거가 없기에 반호진은 결국 대막의 접경지까지 올 수밖에 없었다.

“슬슬 나서야 하지 않겠나?”

충격으로 인해 입을 다물지 못하는 아이들을 일별하며 선우청이 넌지시 물었다.

밀리기는 하나 그렇다고 전선이 확 무너진 건 아니었다.

그렇기에 지금 참전한다면 균형을 맞추는 게 가능할지도 몰랐다.

스윽.

그 뜻을 모두 다 알아들었기에 하나같이 반호진을 쳐다봤다.

하지만 반호진은 고개를 저었다.

“전투는 이제 막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정예는 나서지도 않았습니다.”

“세 분께서 움직이지 않기는 했지. 그런데 선봉장의 기세가 심상치 않아.”

선우청의 말에 모용궁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역시 선봉장을 주시하고 있었다.

워낙에 대단한 무위를 뽐내고 있었기에 자연스레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죠. 열 명의 대전사 중 한 명이니까요.”

“아!”

“저자가 대전사인가?”

대전사라는 말에 선우청과 모용궁의 눈이 커졌다.

중원무림에 천하십대고수가 있다면 대막에는 대전사가 있었다.

그 정도로 막강한 위상을 가지는 게 대막의 대전사들이었다.

“예. 창을 다루는 것으로 보아 창군(槍君)인 듯합니다. 병력을 지휘하는 능력도 뛰어난 인물이라 하더군요.”

“으음!”

선우청과 모용궁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번에 섬서성으로 오면서 두 사람 다 따로 철혈성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그중 단연 눈에 띄는 건 역시 철혈성주와 대전사였다.

철혈성주를 제외하면 핵심 중의 핵심이 대전사였기에 둘은 무거운 눈빛으로 최전방에서 무인들을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리는 창군을 주시했다.

“천하십대고수와 비견될 만하다더니. 그 말이 아예 틀린 것 같진 않군요.”

“그, 그 정도입니까?”

상일기의 중얼거림에 모용궁이 깜짝 놀랐다.

말들은 많아도 그는 내심 천하십대고수에 비할 바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랑캐라고 무시하는 게 아니라 천하십대고수는 중원의 자부심이자 자랑이었다.

천하라는 두 글자가 괜히 붙는 게 아니었다.

한데 상일기가 창군의 실력이 무림십왕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건 옆에 있던 선우청도 마찬가지였다.

“제가 보기에는요. 반 공자님의 말대로 어쩌면 충격적인 대패를 당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꿀꺽!

다른 이도 아닌 상일기의 말에 선우청과 모용궁은 마른침을 삼켰다.

사태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어서였다.

동시에 두 사람 다 진지하게 창군을 주시했다.

자신이 상대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가늠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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