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149화 (149/468)

제 50장. 똥 덩어리들. -01

화산파의 산문에 도착한 반호진은 무거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폈다.

깎아 놓은 듯이 뾰족한 산세가 인상적인 화산이었으나 반호진의 시선은 주변 풍광에 가 있지 않았다.

집결해 있는 무인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기가 차네.”

“전장의 분위기가 아닌데요?”

반호진의 중얼거림에 서조운이 미간을 좁혔다.

전운이 정말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아서였다.

“소규모 국지전은 계속 있다고 들었는데…….”

서조운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닌지 사마의성도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반면에 상일기나 정이륭은 담담했다.

애초에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는 표정이라고나 할까.

덤덤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기만 했다.

“호진아!”

“형님!”

그때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화산파 산문으로 수많은 인파가 오르내리고 있음에도 단번에 일행을 찾아내고서 달려오는 두 남자의 모습에 반호진이 옅게 웃었다.

“무슨 가족 상봉하듯 달려오냐.”

“우리 사이 정도면 가족이나 마찬가지지.”

“맞습니다!”

선우방과 함께 뛰어온 모용척이 얼굴 가득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 오랜 시간 떨어져 있던 게 아니었음에도 모용척은 한 몇 년 떨어져 있다가 만난 것처럼 일행들을 반겼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반 공자님.”

한데 반호진 일행을 반겨 주는 건 두 사람만이 아니었다.

선우방과 모용척에 이어 오중건이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오 대협.”

“소식을 자주 들어서 그런지 오랜만인데도 낯설지가 않네요. 하하하.”

“여러 가지 일이 있기는 했죠.”

“무림을 위해 정말 큰일을 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정중히 포권해 오는 오중건의 모습에 반호진이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 인사를 받을 정도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서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상 대협. 개방의 오중건이라고 합니다.”

“허허. 반갑습니다. 방천문의 상일기라고 합니다.”

“말씀 편히 하시지요. 저보다 연배가 한참이나 높으신데.”

“차차 놓도록 하겠습니다.”

자연스럽게 상일기와 인사를 나눈 오중건은 정이륭, 사마의성과도 인사를 주고받았다.

특히 그는 사마의성을 유심히 바라봤다.

멸문한 사마세가의 후인이 나타난 것도 놀라운데 반호진의 간택을 받았다고 하자 오중건은 사마의성의 능력이 궁금했다.

하지만 지금은 시기가 아니었다.

“숙소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오중건과 함께 나와 있던 화산파의 이대제자가 정중하게 인사한 후 앞장서서 안내했다.

외원이 아니라 내원 깊숙한 곳으로 말이다.

한눈에 봐도 특별한 신분만 머물 수 있을 것 같은 숙소에 서조운과 정이륭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반대로 사마의성은 당연하다는 표정이었다.

“여기서 머무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말수가 없는지 이대제자는 안내만 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러나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전쟁을 앞두고 워낙에 많은 곳에서 화산파를 찾아왔기에 오히려 이해하는 쪽이었다.

“일단 들어가시죠. 오 대협께서는 응접실에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우선 짐부터 풀고 오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두 분 공자도 같이 가시죠.”

이제 막 도착했기에 오중건은 군말 없이 선우방, 모용척과 함께 자그마한 응접실로 들어갔다.

반호진 일행에게 알려 줄 것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면서 말이다.

잠시 후 진짜 짐만 간단하게 풀고 온 일행들이 빈자리에 한 명씩 앉았다.

“현재 상황에 대해서 설명 부탁해.”

“그건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가장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선우방에게 물었으나 오중건이 가로챘다.

하지만 선우방은 전혀 기분 나빠 하지 않았다.

개방이 최근에 섬서성과 대막의 정세에 대해서 얼마나 열심히 정보를 모으고 있는지 알고 있어서였다.

명문세가나 대문파도 각자의 정보 조직을 동원해서 정부를 수집하고 있지만 개방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현재 소규모 전투가 산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백 명 안팎인데 선발대의 일종이라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은밀히 침투하려는 부대도 있습니다만 현재까지 성공한 적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본진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겠네요.”

“맞습니다. 정면대결을 펼치자는 듯이 대놓고 진군하고 있습니다. 숫자는 현재 화산파에 집결한 병력보다 적지만 그렇다고 크게 차이가 나는 건 아닙니다. 더구나 철혈성의 무인들은 대막의 전사들인 만큼 개개인의 무력도 상당히 훌륭합니다.”

오중건의 설명에 반호진이 살짝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적군에 대해 상당히 상세히 알고 있음에도 현재 화산파의 분위기가 납득되지 않아서였다.

자신에게 말을 해 줄 정도면 이 정보는 화산파 전체에 알려져 있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긴장하기는커녕 살짝 붕 떠 있는 게 반호진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맹신이로군요.”

“정확히 말하면 자만이지요. 객관적인 전력은 분명 우리 쪽이 우세합니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봤을 때 말이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너무 방심하고 있습니다. 철혈성의 전력은 결코 약하지 않습니다. 거기다 팔흉까지 포섭했던 과거의 이력을 생각하면 분명 드러나지 않은 전력도 있을 겁니다. 그걸 본방에서 최대한 파고 있기는 한데, 아직 가시적인 성과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최대한 각 파나 무가에 알리고 있기는 한데…….”

“듣지 않고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방주님께서 직접 나서서 말하고 다니는 중입니다만 다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중입니다. 다들 오직 전공만 생각하더라고요.”

오중건이 침통한 어조로 대답했다.

아무리 말해 주고, 알려 줘도 상대방이 듣지를 않으면 무용지물이었다.

원래부터 모래알 같은 결속력으로 유명한 게 백도무림이라지만 지금은 정도가 심해도 너무 심했다.

이래 가지고는 철혈성과의 전투에서 이기더라도 피해가 막심할 게 분명했다.

“제 사부님께서도 말씀하시더라고요. 평화가 너무 길었다고.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길기는 했지요.”

조용히 경청하고 있던 상일기도 동조했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평화가 지나치게 길었다.

그래서 각 문파와 무가에 축적된 힘이 너무 커진 상태였다.

힘은 계속 축적되는데 쓸 데가 없는 와중에 새외세력이 침공해 왔으니 그들의 입장에서는 불감청 고소원일 터였다.

“문제는 인식이네요. 전쟁이 아니라 다들 기회로 생각하고 있으니.”

“이기면 얻는 게 많으니까. 물론 피해는 아랫사람들이 보고 과실은 윗대가리들이 먹겠지만.”

서조운의 말에 모용척이 냉소적으로 대답했다.

소위 말하는 윗대가리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훤히 보여서였다.

그 역시 명문세가 출신이었기에 깊게 고민할 필요 없이 그냥 보였다.

“이러던 차에 두 분께서 와 주셔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허허허.”

예전에도 깍듯했지만 지금은 더했다.

특히 오중건은 따로 알아낸 정보가 있는지 상일기를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누가 봐도 무언가 알고 있는 표정으로 말이다.

그 부담스러운 시선에 상일기가 어색하게 웃었다.

“철혈성의 산하로 들어간 세력에 대해서는 알아낸 것이 없습니까?”

“알아보는 중이기는 한데, 성과는 미비합니다. 양측에 중요한 시기이다 보니까 조금의 틈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팔흉 중 남아 있는 둘에 대해서는요?”

“그게, 저희 쪽 인력이 전부 다 이곳에 동원되어 있는 상태라. 나머지는 운남성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오중건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반호진은 충분히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개방의 규모가 중원에서 제일 크다고 하지만 한계가 없는 건 절대 아니었다.

그걸 잘 알기에 반호진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일단은 붙어 봐야 알 수 있다는 뜻이군요.”

“그에 따른 대비는 하고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이미 다 이긴 것처럼 사람들이 여기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부분을 걱정하는 분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있긴 합니다만, 숫자가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오중건이 안타까운 어조로 대답했다.

분명 있기는 했다.

다만 그 숫자가 반대쪽과는 비교 불가였다.

“어쩔 수 없지요.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걸 할 수밖에는.”

“잘 부탁드립니다, 반 공자님.”

오중건이 반호진의 손을 덥석 잡았다.

지금 그가 믿을 수 있는 건 상일기와 반호진뿐이었다.

다른 이들도 있기는 하나 두 사람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오중건은 간절한 눈빛으로 둘을 번갈아 쳐다봤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있을 전투에서 개방의 역할이 큽니다. 특히나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오중건이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게 바로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었다.

상처뿐인 승리는 아무런 의미도 없기에 오중건은 진지한 얼굴로 현 상황에 대해 꼭 필요한 것들을 전달하고는 응접실을 나섰다.

전시 상황이니만큼 그도 정신없이 바쁜 것이었다.

“상황이 애매하네요.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고.”

“어떤 점에서?”

“적어도 전체적인 분위기가 무겁지는 않잖아요. 패배의식에 휩싸여 있는 것도 아니고. 다만 문제는 자신감이 과하다는 거고. 만만하게 보다가 큰코다치기 딱 좋은 상황이잖아요.”

“정확해.”

정이륭의 평가에 선우방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가 보는 현 상태도 이와 똑같았다.

하지만 정이륭은 현황에 대해 냉정하게 파악은 했어도 대책을 강구해 내지는 못했다.

“그럼 여기에서 우리의 참모, 부관, 책사, 지자의 역할을 맡을 의성이의 의견을 들어 볼까?”

반호진의 시선이 사마의성에게 향했다.

그러자 모두 사마의성을 바라봤다.

생각해 보니 지금껏 사마의성은 듣기만 할 뿐 말을 하지 않았기에 다들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뭐라 말씀드리기에는 정보가 너무 부족합니다. 철혈성 본진의 숫자, 이동 경로에 대해서만 들었지 자세한 내용은 없으니까요.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들만 파악된 상태라 지금은 정보가 필요합니다. 다양한 정보들요.”

“섣부른 판단만큼 위험한 것도 없지. 그렇다면 일단은 정보를 모아야겠는데.”

근시안적인 계책을 말했다면 오히려 실망했을 것이었다.

전쟁은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다.

다양한 변수들이 순간순간 휘몰아치는 세계였다.

정치가 살아 있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전쟁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반호진은 선우방과 모용척을 차례대로 쳐다봤다.

원하는 것이 있다는 눈빛으로 말이다.

“어떤 정보를 원해?”

“그건 의성이가 말해 줄 거야.”

“주변의 지형에 대해서 파악해 주셨으면 합니다. 사람에 대한 정보는 개방에서 얻을 수 있으니 그 외에 다른 것들이요.”

“격전지를 비롯해서 말이지?”

“네.”

선우방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면서 새삼 아쉬웠다.

만약 하오문과 금가장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면 좀 더 편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나 두 곳의 입장도 이해했기에 선우방은 상념을 털어 냈다.

“본가만이라면 힘들겠지만 모용세가와 함께라면 어찌어찌 시간을 맞출 수 있겠어.”

“안 되도 되게 만들어야지요. 그러라고 이렇게 모여 있는 건데.”

어떻게 보면 부탁 같은 지시였으나 선우방과 모용척은 군말 없이 따랐다.

사마의성의 능력을 직접 겪어 봤기에 의문을 품지 않는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이게 다 크게는 중원의 평화, 작게는 우리들을 위해서인데.”

“근데 화산파에서 너무 푸대접하는 거 아니에요? 아무리 전시 상황이라지만 이대제자만 달랑 보내고. 대제자도 아니고.”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