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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재림-144화 (144/468)

제 48장. 새로운 십왕(十王). -03

남궁호가 속으로 입맛을 다시며 앞에 앉은 반호진을 지그시 바라봤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의도대로 될 가능성은 희박했다.

“거리는 대막이 더 가깝지 않나?”

“그렇기는 한데 아직 결정된 건 없습니다.”

“생각해 둔 건 있고?”

“한동안 정신없이 움직여서 그런지 당분간은 좀 쉴 생각입니다. 무공에 대해 정리할 것도 있고, 복기도 해야 하고요.”

“많이 돌아다니긴 했지.”

남궁호는 물론이고 삼남매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팔흉 중 여섯을 잡은 만큼 피곤할 법도 했다.

보통의 후기지수들은 감히 시도조차 못 할 일을 해내기도 했고.

그래서 몇몇 호사가들은 반호진이 이미 천하십대고수의 수준에 올랐다고 말했다.

“저뿐만 아니라 일행들도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고요.”

“중요하지. 단순히 경험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니까. 모자란 부분을 아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채워야 하지. 알겠네. 함께 갔으면 좋겠지만 자네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조심히 가십시오.”

반호진이 살짝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여기까지 온 만큼 좀 더 치근덕거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시원스럽게 물러나서였다.

그런데 그건 삼남매도 같은 생각인지 다들 신기한 눈으로 남궁호를 힐끔거렸다.

“여전히 매정하구먼. 예의상 한 번 정도는 붙잡을 법도 한데.”

“더 이상 할 얘기는 없지 않습니까?”

“그거 아나? 나를 이렇게 매몰차게 대하는 건 자네밖에 없네.”

“저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시죠.”

“하하하하!”

남궁호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조금 불편하긴 해도 재미있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밉지 않은 건지도 몰랐다.

“그래도 앞마당까지는 배웅해 드리지요. 여기까지 직접 오셨으니.”

“방장께도 인사는 드리고 갈 걸세. 물론 그 전에 볼일이 하나 더 있지만. 일정에는 없었지만 말이지.”

“흐음.”

“지금 자네가 생각하는 바로 그것이네.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자리를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데.”

“굳이 제 도움이 필요할까요?”

반호진이 차를 호로록 마시며 반문했다.

상일기나 남궁호나 둘 다 일대종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무인들이었다.

이미 한 번 번갯불이 튕기기도 했고.

그렇기에 굳이 자신이 나설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 대뜸 비무를 청하는 것보다는 자네가 중간에서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게 분위기상 좋지 않겠나?”

“그렇기는 하죠.”

“부탁하네.”

“장소는 따로 마련해 드립니까?”

“다 같이 봐도 좋을 것 같네.”

미리 생각해 두었다는 듯이 남궁호는 거침없이 말했다.

욕심 같아서는 남궁광만 관전하게 하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형평성이 너무 어긋났다.

염왕으로서의 체면도 있었고.

더욱이 이곳은 남궁세가가 아니라 소림사 바로 옆이었기에 그의 마음대로 하기에는 힘들었다.

“배려 감사합니다.”

“흠흠! 고마우면 우리 아이들을 부탁하네.”

“알겠습니다.”

“좋군.”

남궁호가 씨익 웃었다.

반호진이 지켜 준다면 정말 마음 편히, 전력으로 겨뤄 볼 수 있었다.

휘이이잉.

한여름이라서 그런지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도 더위가 서려 있었다.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더운 바람은 아니었으나 텁텁함이 담긴 바람이 남궁호와 상일기의 사이를 한차례 휩쓸고 지나갔다.

그러나 두 사람 다 바람의 영향은 전혀 받지 않는다는 듯이 서로를 조용히 응시했다.

“시작할까요?”

“그러죠.”

한눈에 봐도 상일기의 연배가 더 높아 보였기에 남궁호는 예의를 차렸다.

단순히 나이만 많은 게 아니라 실력 역시 범상치 않았기에 그는 존중을 표했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동시에 가슴이 뛰었다.

‘반호진 이후로 처음인가.’

언뜻 느껴지는 기도는 그와 비교해도 크게 뒤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달리 말하면 천하의 염왕이 상대의 수준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남궁호는 그게 너무나 설레었다.

사실 반호진과의 대결은 너무 급작스러웠고, 예상 밖의 무위였기에 제대로 겨루지 못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얼추 느끼고 있었기에 반호진 때처럼 어이없게 결판이 나지는 않을 것이었다.

우우우웅!

서서히 바람이 가라앉는 걸 느끼며 남궁호는 기도를 드러냈다.

초월경에 오른 무인만이 뿌릴 수 있는 기세를 일으켰던 것이다.

그러자 상일기 역시 기다렸다는 듯이 갈무리해 두었던 기도를 펼쳐 냈다.

키이잉! 키이이잉!

두 사람에게서 흘러나온 기도가 이내 허공에서 격렬하게 충돌했다.

보이지는 않으나 영역싸움이 사납게 펼쳐진 것이었다.

“흡!”

“허억!”

동시에 멀찍이 떨어져서 지켜보던 일행들이 숨을 들이켰다.

거리가 상당함에도 두 사람이 흩뿌리는 기도가 그 정도로 압도적이어서였다.

단순히 지켜보는 것뿐인데도 전신을 짓누르는 압박감에 모두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왜 초월경을 달리 탈인경이라 부르는지 느꼈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이 정도인데 만약 마주 보고 있었다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걸 느끼며 남궁광과 남궁수연, 남궁소연 삼남매는 반호진을 슬쩍 훔쳐봤다.

스윽.

하지만 세 사람의 예상과 달리 반호진은 담담했다.

절대고수라 해도 과언이 아닌 두 사람의 기세싸움을 보고서도 딱히 놀라거나 감탄한 기색이 아니었다.

늘 그렇듯이 무덤덤한 신색이었다.

게다가 이상한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들 생각보다 덜 놀라는 거 같은데?’

‘익숙한 광경을 보는 듯한데.’

부친이지만 남궁호의 이런 모습을 보는 건 삼남매도 드물었다.

남궁세가에서 남궁호가 이렇게 긴장할 만한 일이 없어서였다.

아니, 전 무림을 놓고 봐도 이런 경우는 드물었다.

카카카캉!

삼남매가 반호진 일행들의 반응에 의아해하는 순간에도 남궁호의 비무는 계속 이어졌다.

무형강기가 쉴 새 없이 휘몰아치며 상일기에게 쇄도했다.

그러나 제왕검형의 묘리가 담겨 있는 무형강기에도 상일기는 굳건했다.

이 정도 무형강기로는 상처 하나 낼 수 없다는 듯이 옅게 웃는 얼굴로 남궁호의 파상공세를 막아 냈다.

끼기긱!

‘역시 통하지 않나.’

막아 내는 걸 넘어 오히려 밀어붙이는 상일기의 기세에 남궁호가 속으로 탄식을 흘렸다.

하지만 생각보다 충격은 크지 않았다.

이미 반호진에게 한 번 패배를 해서 그런지 좌절감이 들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흥분하지도 않았고.

‘검객은 역시 검으로 말을 해야지.’

자신 있는 기세싸움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했지만 남궁호는 실망하지 않았다.

애초에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였다면 호승심이 일지도 않았을 터였다.

그렇기에 남궁호는 정말 오랜만에 설레는 표정을 지으며 애검인 창천을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상일기에게 돌진했다.

꽈아아앙!

검기도 서리지 않은 검격이었으나 충돌 직후 일어나는 후폭풍은 어마어마했다.

마치 태풍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주변을 삽시간에 휩쓸었다.

두 사람을 중심으로 후폭풍이 사납게 일었으나 눈을 감는 이는 없었다.

지금의 비무가 보고 싶다고 해서 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너무나 잘 알았기에 사나운 돌풍에도 오히려 두 눈을 부릅뜨고 대결을 주시했다.

까아앙! 깡!

그러나 정작 상일기와 남궁호는 일행들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오직 상대에게만 극도로 집중했다.

상일기의 양손 역시 남궁호와 마찬가지로 권기가 서려 있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창천의 검극과 부딪쳐도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수십 년 동안 단련된 주먹이었기에 병장기와 충돌해도 생채기도 나지 않았다.

꽝! 꽝! 꽝! 꽝!

오히려 적수공권임에도 상일기는 남궁호를 몰아붙였다.

명왕권을 극성으로 펼치며 남궁호의 전신을 두들겼다.

쌔애액!

물론 남궁호 역시 순순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남궁세가를 천하제일가로 만들어 주었던 제왕검형을 전력으로 펼쳤다.

그와 동시에 자신만의 영역을 펼쳤다.

일정 구역을 자신의 권역으로 만들어 상일기의 움직임을 방해하려는 것이었다.

까드드득!

그런데 놀랍게도 상일기는 남궁호의 권역을 힘으로 찢어 버렸다.

주먹질로 우악스럽게 공간 자체를 뭉개 버렸던 것이다.

육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선명하게 느껴지는 상일기의 권격에 남궁호는 물러나지 않고 검을 내질렀다.

공력은 비슷하지만 신체 능력은 자신이 더 우위에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쩌어어엉!

하지만 그 생각은 충돌과 함께 산산조각 났다.

아무리 육체 단련을 꾸준히 해 왔다고 해도 나이가 들어 감에 따라 노쇠화는 피할 수 없었다.

그게 상식인데 상일기는 그 상식을 부쉈다.

힘 대 힘의 대결에서도 밀리지 않았던 것이다.

“크흡!”

그뿐만 아니라 상일기는 단순히 그의 검을 받아 내는 데 그치지 않았다.

충돌과 동시에 검신을 타고 신체 내부로 파고들어 오는 전사경(纏絲勁)에 남궁호는 이를 악물었다.

가만히 놔두면 기맥을 마음대로 헤집어 놓는다는 걸 알기에 남궁호는 어떻게든 상일기의 공력을 밀어냈다.

한데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부우우웅!

이번 공격은 그저 첫 번째 공격일 뿐이었다.

사람의 팔은 두 개였기에 상일기는 우권이 막히자마자 좌권을 내질렀다.

정확히 활짝 열린 옆구리를 노리고서 말이다.

터어엉!

벼락같이 쇄도하는 상일기의 일권을 남궁호는 검신으로 막아 냈다.

그러고는 그대로 압축될 대로 압축된 검강을 내뿜었다.

쩌저저적!

검신에서 뿌려진 수십, 수백 개의 검강에 상일기가 반사적으로 물러났다.

막는 것보다는 피하는 게 나을 거라고 판단함과 동시에 움직인 것이었다.

그런데 상일기도 완벽히 회피하지는 못했는지 회의무복 곳곳이 갈라졌다.

거미줄처럼 갈라진 지면처럼 말이다.

“차합!”

그러나 상일기는 그걸 느낄 새가 없었다.

연이어 쇄도하는 남궁호의 제왕검형을 받아치기 위해 명왕권을 극성으로 펼쳤다.

꽈아앙! 꽝! 꽈과과광!

접근을 불허하는 남궁호와 어떻게든 파고들려는 상일기의 싸움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둘 다 조금도 양보할 생각이 없다는 듯이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언뜻 보면 생사결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두 사람의 집중력은 어마어마했다.

순간순간의 판단으로 공수전환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우와…….”

“대단하다.”

“미쳤다.”

“……대체 누구지?”

말 그대로 후기지수들의 비무와는 격이 다른 수준에 모두가 입을 쩍 벌렸다.

두 절대고수의 공방을 제대로 볼 수는 없었지만 느끼는 건 비슷했다.

다만 자세히 파고들면 방향이 완전히 달랐다.

서조운을 비롯한 사인방이 절대고수들의 비무에 순수하게 감탄하고 있다면, 남궁광과 남궁수연, 남궁소연 삼남매는 상일기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하고 경악했다.

“정 공자의 사부님이라고 듣긴 들었는데.”

“저 정도면 천하십대고수급 아냐? 아빠는 전심전력으로 제왕검형을 펼치는 것 같은데. 언니가 보기엔 어때?”

“나도 그렇게 생각해. 오빠는?”

“저걸 보고 어떻게 봐주는 거라고 생각해? 윽!”

인간의 대결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무시무시한 기의 폭풍이 사방에 휘몰아쳤다.

두 사람 주변을 초토화시키고도 모자라 상당히 떨어져 있는 이곳까지 그 여파가 끼쳤다.

하지만 삼남매는 몰랐다.

둘의 비무로 인해 파생되는 후폭풍을 반호진이 상쇄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빠가 지지는 않겠지?”

“모르겠어. 내가 보기에는 박빙이라.”

남궁광의 시선이 반호진에게로 향했다.

여기 있는 이들 중 가장 강한 게 그인 만큼 자신을 비롯해서 일행들이 보지 못하는 걸 반호진은 볼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후아아앙!

그때 거대한 기운이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두 개가 말이다.

그게 말하는 바는 명백했기에 모두가 입을 다물고 상일기와 남궁호를 쳐다봤다.

뻐어어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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