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142화 (142/468)

제 48장. 새로운 십왕(十王). -01

주르륵.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어서일까.

사마의성이 울컥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의 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서였다.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던 과거의 모습이 떠오르자 사마의성은 눈물샘이 폭발했다.

“아,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이걸로 닦으시죠.”

“감사합니다. 그리고 편히 말씀해 주세요. 저보다 형님, 이신데요.”

“실례지만 몇 살이시죠?”

반호진은 사마의성의 나이를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 물었다.

이번 생에서는 처음 만난 사이였기에 너무 아는 체를 해서는 안 되었다.

“열여덟 살이에요!”

“조운이와 동갑이네요. 근데 훨씬 동안으로 보입니다.”

“말 편히 해 주세요, 헤헤.”

“알았어. 근데 가전무공을 익힌 거야?”

이제야 말을 놓는 반호진의 모습에 사마의성이 활짝 웃었다.

말을 편하게 하니 진짜 자신이 반호진의 무리에 들어갔다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든든했다.

또 반호진의 선택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

“네. 근데 약간의 문제가 있어요.”

“소실된 부분이 있구나. 어쩐지 기도가 조금 불안정해 보이더니.”

“그것도 보이세요?”

“나 정도 되면 딱 보면 알아.”

“우와.”

언뜻 들으면 허세처럼 느껴질지 모르나 사마의성은 눈곱만큼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말을 한 이가 바로 반호진이었기 때문이다.

차대 천하십대고수로 가장 먼저 꼽히는 인물일뿐더러 녹림대군과 청홍쌍흉을 홀로 잡으며 스스로의 무경을 직접 증명해 보였다.

그런 인물의 말이었기에 사마의성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복구할 생각은 있는 거지?”

“네. 본가의 무공이니까요. 또 무림세력으로서 가전무공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선대의 잘못된 선택으로 가문이 무너졌지만, 실패에서 배운다는 말이 있잖아요.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을 거예요.”

“좋은 생각이야. 연구는 어느 정도 됐어? 필요한 게 있다면 장경각에서 찾아봐 줄게. 나는 속가제자라 열람하는 데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또 혹시 모르니까.”

“정말요?”

“대신 너도 일행들 수련하는 거 도와줘.”

반호진은 단순히 도와주기만 할 생각은 없었다.

주는 만큼 받아 낼 생각이었다.

그리고 사마의성은 그럴 능력이 충분히 있었다.

또 지금의 사마의성도 대단하지만 미래의 사마의성을 알기에 반호진은 좀 더 성장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만들어 줄 계획이었다.

“물론이에요! 얼마든지 도와드릴게요! 근데 어떻게 도와드려야 할까요?”

“네가 잘하는 거 있잖아. 기문진법. 겸사겸사 너도 경험을 쌓아야지. 상대가 구룡이라면 경험을 쌓기에 충분하지 않겠어?”

“……!”

사마의성의 두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확실히 기문진법이라면 서로에게 도움이 될 터였다.

다만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말하지도 않은 사실을 반호진이 알고 있다는 게 사마의성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사마세가에서 유명한 게 기문진법이잖아. 제갈세가와 기문진법으로 대결을 하기도 했었고. 이제는 오래전 이야기긴 하지만.”

“아.”

눈빛에서 그 의문을 읽었는지 반호진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

그 말에 사마의성은 금세 납득했다.

“일단 짐부터 풀까? 메고 온 게 상당해 보이는데. 다 소중한 물건들이지?”

“네.”

“그럼 방은 따로 줘야겠네. 짐이 많으니까.”

“그,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자연스럽게 독방을 주겠다는 말에 사마의성은 거절하지 않았다.

앞으로 친해질 사이라고는 하나 그래도 아직은 낯설었다.

원래 성격이 낯을 좀 가리기도 했고 말이다.

그럼에도 반호진을 찾아온 건 그만큼 절박해서였다.

“우선 짐부터 풀고 인사하자. 앞으로 함께 지낼 텐데.”

“네!”

사마의성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기에 사마의성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

“어, 어라?”

원이 그려진 공간 안에서 서조운이 엉기적거렸다.

감각을 비트는 기문진이라고 해서 처음에는 별거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겪어 보니 상상 이상이었다.

오감이 자기 맘대로 뒤섞인 듯한 느낌에 서조운은 연신 비틀거리며 균형을 잡지 못했다.

“거봐. 직접 겪어 보면 다를 거라고 했지?”

“공력을 펼쳐도 소용없더라고. 잠깐 제자리를 찾는 듯하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 아마도 의성이가 따로 손을 봐서 그런 거 같아.”

“맞아요.”

간단한 기문진이지만 사마세가 출신이 펼치면 다르다는 걸 사마의성이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러나 실상은 조금 달랐다.

원 안에 들어가 있는 무인은 현재 강호에서 손꼽히는 후기지수 중 한 명인 염룡이었다.

그렇다 보니 사마의성도 계속 신경을 쓰며 기문진의 축이 되는 작대기를 신경 써야 했다.

“근데 신기하네요. 저 작은 작대기로 기문진을 펼친다니.”

선우방, 모용척에 이어 정이륭도 신기한 눈으로 사마의성을 바라봤다.

정확하게는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사마의성을 손을 말이다.

그의 손에는 이 척 정도 되는 나무 작대기가 한가득 들려 있었는데 그걸 서조운의 움직임에 따라 바닥에 꽂거나 뽑았다.

“내가 알기로 돌로도 펼치는 게 가능해. 아니면 지형지물 자체를 활용하거나. 진짜 기문진법의 대가는 작대기나 돌 하나로 기문진을 펼칠 수 있어.”

“허어.”

반호진의 설명에 정이륭이 놀랐다.

그러면서 새삼 만류귀종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분야는 달라도 극에 달하면 비슷해진다는 말처럼 기문진법도 그런 듯했다.

“물론 의성이는 아직 그 정도 수준은 아니지만 우리가 도와주면 빠르게 성장할 거야. 너희들에게도 도움이 될 테고.”

“재미있긴 해.”

선우방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금까지 꽤 다양한 경험을 쌓았지만 이 정도 수준의 기문진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사마의성이 펼칠 수 있는 진법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미혼진과 미로진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즐기는 자세, 아주 좋아. 쪽만 팔리지 않으면 되겠네.”

“무, 무슨 소리야?”

“아까 전에 위험하지 않았어? 미혼진에서 정신을 못 차리던데.”

“절대 아니거든!”

선우방이 평소답지 않게 벌게진 얼굴로 소리쳤다.

하지만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었다.

그걸 다른 이들도 눈치챘는지 대놓고 킥킥거렸다.

“미혼진과 미로진은 시작에 불과해. 의성이는 환상진도 펼칠 줄 알거든. 그렇지?”

“사실 제일 자신 있는 게 환상진이기는 해요. 특히 남자에게는 즉효약인 환상진이 있죠.”

“후후후!”

조심스럽게 대답하지만 두 눈에는 자신감이 서려 있었다.

그리고 반호진은 사마의성이 가장 자신 있다는 환상진이 무엇인지 알았다.

지난 생에서는 직접 경험해 보기도 했고.

물론 그때의 수준과 비교하면 지금이 많이 부족하겠지만 그래도 사인방을 괴롭히기에는 충분할 터였다.

“왜 그렇게 웃어? 사람 불안하게.”

“재미있을 것 같아서?”

“……네가 재미있다고 하면 난 이상하게 불안해지더라.”

“너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거야. 난 미리 겪어 보는 걸 추천해.”

“그렇게 말하니까 더 불안해지는데. 대체 뭐야?”

선우방의 시선이 사마의성에게 향했다.

그러나 사마의성은 어색하게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못했다.

반호진이 눈짓으로 대답하지 말라고 해서였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사마의성 역시 모르는 상태로 당하는 게 더 효과적일 거라고 생각했다.

‘재미있다.’

티격태격하는 반호진과 선우방을 힐끔거리며 사마의성은 마음이 포근해져 옴을 느꼈다.

언제나 혼자라는 외로움이 늘 전신을 짓눌렀었는데, 그래서 거의 매일 가위에 눌렸었는데 지금은 달랐다.

평생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더해서 매일매일 성장하고 있음을 몸으로 느꼈다.

‘만약 형님께서 받아 주시지 않았다면…….’

사마의성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제는 의미 없는 가정이었으나 그래도 가끔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반호진이 받아 주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하는.

아마도 숭산에 오기 전처럼 혼자 강호를 떠돌았을 것이었다.

‘그러니 더욱 노력해야 해. 믿어 주신 형님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언제나 혼자였기에 사마의성은 지금처럼 북적거리며 생활하는 게 너무나 좋고 행복했다.

그리고 언제라도 수련할 수 있다는 게 기뻤다.

심지어 하류무사도 아니고 여기 있는 이들은 전부 다 구룡에 속해 있는 후기지수들이었다.

예전이었다면 감히 인사도 하지 못할 이들과 매일 대련을 하고 실험을 할 수 있기에 사마의성은 하루가 너무 짧게 느껴졌다.

화르르륵!

그때 화끈한 열기가 확 뿜어져 나왔다.

기문진 안에 있던 서조운이 본격적으로 축융신공을 운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단순히 공력만 많은 걸 넘어 주변의 환경도 바꿔 버리는 무지막지한 극양지기에 사마의성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이 정도의 극양지기를 겪어 보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기에 사마의성은 집중한 얼굴로 두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후우웅.

그러자 놀랍게도 열기가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솟구쳐 오르는 열기를 억누른 것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억누르기만 하지는 않았다.

열기가 빠져나갈 틈을 네 곳 만들어 주었다.

“칫!”

그 광경에 서조운이 입술을 비틀었다.

자신과는 다른 방식으로 열기를 통제해서였다.

“거기까지.”

“네.”

“어후.”

막상막하의 대결을 반호진이 중지시켰다.

더하면 서로에게 무리가 갈 것 같아서였다.

수련도 좋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다치지 않는 것이었다.

부상이 회복되는 동안은 수련을 할 수 없기에 어떻게 보면 시간을 버리는 꼴이었기에 반호진은 이 부분을 가장 중요시했다.

“고생했어.”

“너도. 근데 다음번에는 꼭 빠져나올 거야.”

“쉽지는 않을걸?”

“이제 슬슬 감이 잡히고 있어.”

“지금 펼친 건 내가 아는 수백 개의 기문진 중 하나일 뿐이야.”

동갑이라서 그런지 유달리 더 티격태격하는 것 같은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반호진은 흐뭇하게 웃었다.

다행히 잘 지내는 것 같아서였다.

서조운도 말은 저렇게 하지만 동갑내기 친구라서 그런지 알게 모르게 잘 챙겨 주고 있었다.

말로는 극구 부인했지만 말이다.

“친구가 생겨서 은근히 기쁜 모양이야.”

“늘 막내였으니까.”

“그렇다고 막내다운 귀여움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선우방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용척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반호진에게만 깍듯하지 다른 이들에게는 아니어서였다.

자신에게도 존경심을 표할 법도 한데 서조운은 그런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애교가 많은 성격이 아닌데 뭘 바라.”

“하긴. 그것도 그러네. 근데 기문진법은 보면 볼수록 대단한 것 같아. 제갈세가도 이 정도는 하겠지?”

“비슷한 수준은 있겠지. 근데 의성이는 매일 성장하고 있으니까.”

“대단한 수준인 건 맞지?”

선우방은 물론이고 모용척과 정이륭도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기문진법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기에 대단하다고만 생각하지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히 몰랐다.

“응. 그런데 기문진법도 약점이 없는 건 아냐. 혼자서 펼치는 건 한계가 있기도 하고.”

“일단 준비하는 데 시간이 꽤 필요하니까.”

직접 겪어 보았기에 선우방은 물론이고 일행들도 기문진법의 무서움을 알았다.

그러나 단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제대로 준비한다면 엄청나게 무서운 게 기문진법이야. 한두 명이 아니라 수백, 수천 명을 보내 버릴 수 있거든.”

“한마디로 천재라는 뜻이지?”

“응.”

반호진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냥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렀고,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어쩌면 빠른 시일 안에 마군사라 불리던 사마의성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확실히 소림사는 전운이 감도는 느낌은 아니네요.”

“대막과는 거리가 좀 있으니까.”

“그래도 나름 준비는 하고 있겠지요?”

“그럴 테지.”

부친의 대답을 들으며 남궁광은 뒤따라오는 쌍둥이 동생들을 힐끔거렸다.

거의 강제로 끌려오다시피 한 거나 마찬가지기에 남궁광은 여동생들의 표정을 살폈다.

“뭘 그렇게 눈치를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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