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133화 (133/468)

제 45장. 지원군은 우리도 있네? -01

“그래도 부정을 안 하는 걸 보니 자신의 나이는 인지하고 있나 보네요.”

난희주가 시종일관 얄미운 미소를 지은 채로 말을 이었다.

똑같이 반말을 할 수 있었음에도 일부러 존대를 해 주는 이유를 알기에 중년여인의 매끈한 이마에 핏줄이 선명하게 튀어 나왔다.

“미녀는 단명한다는데, 그게 아무래도 오늘인 듯싶구나, 꼬마야.”

“어머? 이렇게 들어갈 데 들어가고 나올 데 다 나온 꼬마 아이를 본 적 있나요?”

요흉(妖凶)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난희주가 팔짱을 꼈다.

상체를 자연스럽게 앞으로 내밀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 모습에 서조운과 정이륭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도발은 요흉에게 했는데 제대로 먹힌 건 두 사람이었다.

“호호호!”

물론 요흉에게도 어느 정도 먹히긴 했다.

다만 분노보다는 가소롭다는 듯이 웃기만 했다.

“고작 그 정도로? 자고로 여자라면 이 정도 풍만함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겠니?”

스윽.

요흉이 난희주와 똑같은 자세를 취했다.

팔짱을 끼며 자연스럽게 가슴이 도드라져 보이게 만들고는 허리를 살짝 비틀었다.

허리에서 골반으로 넘어가는 몸의 선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미세한 움직임으로 요흉이 가진 요염함이 극대화되었다.

“격언 중에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죠. 과한 건 모자람만 못하다는 뜻이지요. 아무리 가슴이 크고 엉덩이가 크면 뭐해요? 키가 짜리몽땅해서 비율이 안 좋은데. 더구나 애를 낳기에도 늦은 나이잖아요? 그럼 그 가슴과 엉덩이를 어디에 써요?”

부르르르!

유일한 약점이라 할 수 있는 나이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난희주를 보며 요흉이 몸을 떨었다.

마음 같아서는 욕을 한 사발 쏟아붓고 싶었으나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여자들끼리의 싸움에서는 먼저 흥분하는 사람이 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흉은 열불을 토해 내는 대신 몸을 떨며 머리를 식혔다.

“멀대처럼 키만 크면 뭐 해? 밋밋해서 남자들이 좋아하겠어?”

“어머? 남자한테 의지하는 사람이었어요? 제가 들은 거하고는 조금 다른데. 역시 여자는 나이를 먹어도 어쩔 수가 없나 봐요. 하긴. 그 나이에 왜 그렇게 남자를 밝히나 싶었는데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훗. 네가 남자를 아니? 보아하니 남자 맛도 모르는 거 같은데.”

요흉이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남자를 잘 아는 만큼 그녀는 여자도 잘 알았다.

딱 보면 남자 여럿 홀렸을 것 같지만 실제로 저런 아이가 남자 경험이 없었다.

“닳고 닳은 것보다는 낫죠. 물건도 중고보다는 새것이 훨씬 좋잖아요?”

빠직!

요흉의 눈매에 깊은 주름이 생겼다.

자기도 모르게 발끈한 것이었다.

“대신 제대로 익어서 농염함이 있지.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다는 남자가 원하는 게 뭔지 아는 게 더 중요한 법이야. 자고로 남자에게 사랑받는 여자는 침대기술이 좋아야 하는 법이지. 아참. 네가 이런 고급 어휘를 알아들으려나?”

“침대기술 가지고 무슨.”

요흉이 역공을 날렸으나 난희주는 넘어가지 않았다.

취향 차이가 있겠으나 그 어떤 것도 나이를 이기지는 못했다.

여자가 지닐 수 있는 최고의 패는 뭐니 뭐니 해도 나이였다.

“하긴. 네가 남녀의 운우지정에 대해서 뭘 알겠니?”

“저야 차차 알아 갈 수 있지만 그쪽은 이제 덜 느껴 가지 않겠어요? 나이를 먹을수록 감각이 둔해진다고 하던데. 성욕도 점점 떨어질 테고. 겉모습이야 주안술로 어찌어찌 유지한다고 하지만 안까지 가능할까요?”

난희주가 생글거리며 웃었다.

얄밉게 웃으면서 비수를 콱콱 박는 것이었다.

“미모만큼이나 입심도 제법 있구나. 근데 너. 감당할 수 있겠니? 지금 한 말의 뒷감당을?”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천하의 요흉에게 이렇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겠죠?”

“흐응. 옆에 있는 신룡을 믿는 건가?”

“맞아요.”

요흉의 시선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난희주의 옆에 서 있는 반호진에게 향했다.

그녀가 알기로 이제 스물한 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반호진은 마치 애늙은이 같은 얼굴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인생의 무상함을 다 알고 있는 듯한 얼굴로 말이다.

그게 요흉의 자존심을 묘하게 건드렸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기분을 오늘 느낄 수 있겠네. 그런데 어쩌나. 운우지락도 못 느껴 보고 처녀귀신이 될 것 같은데.”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언젠가는 죽겠지만, 그게 오늘일 것 같지는 않네요.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이 남아 있는 몸이라. 이왕이면 순서대로 가는 게 순리이지 않겠어요?”

“미안하지만 그럴 일은 없어. 오늘 넌 살아서 집에 돌아가지 못할 거야. 여기에 온 계집들 모두.”

“할 말은 다 했나?”

“어머? 목소리도 좋네?”

지겹다는 듯이 입을 여는 반호진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요흉이 눈을 반짝였다.

초면이지만 용모파기로 인해 그녀는 일행들에 대해 전부 다 알고 있었다.

개인적인 취향은 선이 가는 미남인 서조운과 모용척 쪽이지만 반호진과 선우방처럼 남자답게 생긴 외모도 좋아했다.

게다가 전부 다 나이가 한창 혈기왕성할 때이기에 요흉에게는 산해진미가 가득 차려진 진수성찬처럼 보였다.

“그런 말은 처음 듣는데?”

“남자들만 잔뜩 있는 사찰에서만 지냈으니 당연히 못 들었을 수밖에. 원래 이런 건 여자만 귀신같이 알아보거든.”

요흉은 반호진과 눈을 마주하며 가장 자신 있는 미소를 머금었다.

남자라면 심장이 두근거릴 수밖에 없는 미소를 말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인 가슴과 엉덩이를 은근슬쩍 강조했다.

자고로 남자 중에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 잘록한 허리를 싫어하는 이는 없었다.

“여자라고 하기에는 나이가 지나치게 많지 않나? 내가 알기로 올해 나이가 일흔넷으로 알고 있는데.”

“헉!”

“지, 진짜?”

생각지도 못한 나이 공개에 요흉이 얼어붙었다.

본인밖에 모르는 나이를 반호진이 정확히 알고 있어서였다.

그리고 일행들은 다른 의미로 놀랐다.

겉으로 보기에는 기껏해야 삼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데 실제 나이는 그 두 배 가까이 된다고 하자 하나같이 경악하며 요흉을 쳐다봤다.

“어머?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네?”

“이미 반응으로 대답 다 해 놓고 모르쇠로 나오기는.”

“……어떻게 알았지?”

순간적으로 표정 관리가 안 되었다는 걸 깨달은 요흉이 요사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진심으로 궁금해서였다.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는데 반호진이 알고 있는 게 그녀는 너무나 궁금했다.

“당신이 말해 줬거든.”

“우리가 만난 적이 있었던가?”

요흉이 고운 아미를 찡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반호진을 만난 적이 없어서였다.

비슷하게 생긴 남자아이를 본 적도 없었기에 요흉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마 기억 못 할 거야. 앞으로도 그럴 테고.”

“그게 무슨 말이야? 말하기 싫다는 걸 돌려 말하는 건가?”

“난 있는 그대로 말했을 뿐.”

반호진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는 적어도 이 자리에서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실제로 요흉의 나이는 그녀에게 직접 들었었다.

다만 그 시기가 지금이 아니었을 뿐.

“뭐, 좋아. 결국 중요한 건 현재니까. 지금 보이는 모습이 가장 중요하지. 안 그래?”

더 물어본다고 반호진이 말해 줄 것 같지 않기에 요흉은 빠르게 포기했다.

굳이 안 되는 일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걸 그간의 경험으로 잘 알아서였다.

그리고 궁금증보다는 호기심이 앞섰다.

특히 그녀의 취향에 너무나 딱 들어맞는 청년이 둘이나 있었기에 요흉은 그윽한 눈빛으로 서조운을 바라봤다.

꿀꺽!

가장 어리지만 순양지기로 따지자면 서조운이 으뜸이었다.

채양보음(採陽補陰)을 하는 그녀이기에 보는 순간 알았다.

아니, 몸이 말해 주었다.

서조운이야말로 지금껏 그녀가 만났던 남자 중에 최고라고 말이다.

‘그렇다고 나머지 넷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야.’

서조운이 워낙에 압도적이라서 그렇지 나머지 네 명도 평균 이상이었다.

특히 요흉은 반호진을 눈에 길게 담았다.

서조운 다음이 바로 반호진이어서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노리기에 반호진은 많이 부담스러웠다.

‘공력은 내가 훨씬 많겠지만 승부를 내는 데 있어 내공은 일부분일 뿐이야.’

요흉은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자신을 평가했다.

그녀도 나름 무림에서 구르고 구른 노강호인이었다.

그러나 청홍쌍흉을 혼자서 때려잡은 반호진을 정면으로 상대하는 건 살짝 부담스러웠다.

‘또 직접 손을 쓰는 건 내 방식이 아니기도 하고.’

요흉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녀는 무인이지만 근래 직접적으로 손을 써서 싸워 본 적은 없었다.

굳이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없어서였다.

스윽.

요흉의 시선이 반호진을 지나 정이륭에게 향했다.

느끼기에 가장 기력이 딸리는 건 선우방이었으나 직감이 말해 주었다.

노력에 비해 성과가 그리 크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정이륭은 달랐다.

딱 봐도 여자에 내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숙맥이었다.

거기다 최약체가 아니라는 점이 그녀가 원하는 조건에 딱 맞았다.

‘우선은 너다.’

수적으로 불리하다면 가장 먼저 균형을 맞춰야 했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적은 강적이 아니라 내부의 적이었다.

아무리 강한 무인도 약점은 있었고, 특히나 반호진 일행처럼 강호 경험이 일천한 이들에게 내부분열은 최악이자 최강의 한 수였다.

‘나의 노예가 되는 거다.’

요흉이 그윽한 눈빛으로 정이륭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녀의 눈동자에 창졸간 붉은 빛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무림팔흉 중 그녀를 요흉으로 만들어 준 섭혼술이 펼쳐진 것이다.

남자라면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요요탈백술(妖妖脫魄術)이 극성으로 펼쳐지며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기운이 정이륭의 두 눈을 통해 스며들었다.

“이리 오렴.”

완성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십 성의 수준이면 대성(大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십 성의 경지에 닿은 후 요흉은 실패한 적이 없었다.

중간에 빠져나간 적은 있어도 일단 무조건 걸리는 게 지금의 요요탈백술이었다.

그렇기에 요흉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정이륭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저벅저벅.

“그렇지. 아이구, 착해라.”

살짝 멍해진 눈빛으로 느릿하게 다가오는 정이륭의 모습에 요흉의 입꼬리에 맺힌 미소가 짙어졌다.

제아무리 대단하다는 은룡도 결국 그녀에게는 핏덩이 애송이에 불과했다.

거기다 한창 혈기가 들끓고 여자에 호기심이 왕성한 나이이기에 더더욱 요요탈백술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자아, 너도 나에게 오지 않으련?”

정이륭이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요흉의 시선이 또 한 번 이동했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눈독을 들이던 서조운에게 향했다.

선우방과 모용척은 아무래도 명문세가 출신이기에 요요탈백술이 어느 정도는 버틸 가능성이 있었다.

반면에 서조운은 달랐기에 요흉은 자신감 가득한 얼굴로 서조운을 향해 입을 열었다.

욕심이 덕지덕지 붙은 눈빛으로 말이다.

근데 그녀의 눈빛을 마주하고도 서조운은 눈 하나 까딱이지 않았다.

“내가 왜 가야 하는데?”

“응?”

“그리고 너무 자기 능력을 과신하는 거 아냐? 확인 작업은 해야지?”

분명 요요탈백술은 제대로 펼쳐지는 중이었다.

그런데 서조운은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는 듯했다.

그게 요흉은 놀라웠다.

하지만 놀랄 일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쌔애액!

대각선에서 한줄기 예리한 소성과 함께 묵직한 무언가가 날아왔다.

바로 정이륭이 걸어오던 방향이었다.

“아니!”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