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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재림-131화 (131/468)

제 44장. 사냥의 시간. -03

충흉이 살기등등한 눈빛을 뿌릴 때 힘찬 기합성이 허공을 갈랐다.

바로 선우방의 기합 소리였다.

동시에 매서운 파공음이 허공을 갈랐다.

서조운이 전방에서 독충들을 막아 주는 사이 선우방은 충흉을 직접적으로 노렸다.

쌔애애액!

제아무리 독충들의 숫자가 많다고 하나 결국 조종하는 건 충흉이었다.

충흉만 죽이면 사방을 가득 채우고 독충들이 알아서 흩어질 것이기에 선우방은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며 검을 휘둘렀다.

“흥!”

그러나 이런 식의 공격은 충흉이 수도 없이 겪어 봤던 방식이었다.

때문에 대응책 역시 수십 가지나 있었다.

그중 충흉은 가장 간단하면서도 위협적인 방법을 꺼냈다.

파다다닷!

다시 한번 이어지는 그의 손짓에 숲속에서 수백, 수천 마리의 검은 나방이 몰려왔다.

입이나 피리로 소리를 낸 것도 아니건만 삽시간에 허공을 빼곡히 채운 검은 나방들은 일제히 선우방에게 달려들었다.

“헙!”

그가 덮쳐드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날아와 충흉을 가로막는 검은 나방의 모습에 선우방이 경악성을 토했다.

막연히 독충이라고만 생각했지 이런 날벌레가 날아올 줄은 몰랐기에 당황한 것이었다.

하지만 놀란 것과 달리 그의 검은 맹렬하게 번뜩이며 검은 파도처럼 밀려드는 나방 떼를 무참히 갈랐다.

“그래 봤자 잠깐뿐이다.”

검강도 아니고 검기에 검은 나방들이 갈려 나갔다.

그러나 충흉의 말대로 공간이 벌어진 건 잠시뿐이었다.

이내 다시 검은 나방들이 빈 공간을 채워 버렸다.

“나를 잊으면 쓰나!”

“저도 갑니다!”

독충이 위험한 건 체내에 지니고 있는 독 때문이었다.

그 말은 몸에 닿지만 않으면 된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검은 나방은 기본적으로 곤충이었기에 굳이 검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었다.

단순히 검만 휘둘러도 베어 낼 수 있었는데 문제는 숫자였다.

끝도 없이 몰려드는 숫자에 선우방이 마른침을 삼켰다.

쉽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긴 했으나 이 정도로 엄청난 숫자가 몰려들 줄은 몰랐기에 선우방의 얼굴이 언뜻 질린 표정이 서렸다.

그때 모용척과 정이륭이 가세했다.

퍼퍼퍼펑!

독을 품고 있다고 해도 근본은 곤충이었다.

그렇기에 개체수 하나만 보면 보잘것없었다.

근데 문제는 숫자였다.

상상을 초월하는 어마어마한 숫자에 네 사람은 뒤덮여서 순식간에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됐다.

“마음껏 발악해 보도록. 그래 봤자 결과는 뻔하지만. 크큭! 크하하핫!”

독충들이 쓸려 나가는 소리가 시시각각 들려왔으나 충흉은 오히려 광소를 터트렸다.

숫자는 반호진 일행이 상상하는 것보다 많았다.

심지어 그조차도 정확히 몇 마리가 있는지 알지 못했다.

“이익!”

“도대체 얼마나 있는 거야!”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독충에 서조운은 물론이고 모용척도 짜증을 냈다.

아무리 베어 내고 갈아 버려도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아서였다.

인해전술보다 더욱더 끔찍한 충해전술에 둘은 물론이고 선우방의 정이륭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충흉의 장담대로 자신들이 먼저 지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서로가 서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대충은 예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 서조운은 결정을 내렸다.

지금이야말로 자신이 전력을 다해 나서야 할 때라고 말이다.

청홍쌍흉과 함께 있던 철혈성의 무리들과 싸울 때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화르륵!

그때는 사람과 싸우는 것이었기에 나름 힘을 조절했었다.

혹시라도 반호진이 인질을 필요로 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거기다 근처에 있던 형들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었기에 서조운은 극양지기의 사용을 조심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퍼퍼퍼펑! 퍼어엉!

서조운의 전신에서 일어난 시뻘건 불꽃이 삽시간에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갔다.

그를 중심으로 거대한 화마(火魔)가 일어났던 것이다.

“허!”

지상의 독충들은 물론이고 허공의 온갖 독충들까지 집어삼키며 영역을 넓히는 거대한 불꽃에 굴 앞에서 장내를 지켜보던 충흉의 입이 떡 벌어졌다.

염룡이 대단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서조운의 열양기공 수준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기에 충흉은 진심으로 놀랐다.

“후우!”

“살았다!”

우악스럽게 독충들을 집어삼키는 불꽃 사이로 세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딱히 다친 곳이나 물린 곳은 보이지 않았으나 셋 다 지친 기색이 완연했다.

아무래도 전후좌우는 물론이고 하늘과 흙 속에서도 끊임없이 몰려들다 보니 제아무리 세 사람이라도 지칠 수밖에 없었다.

“제가 길을 열게요!”

“알았어!”

세 형들의 상태를 확인한 서조운이 축융신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에게 고통을 주고 생명력을 갉아먹던 극양지기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의 뜻에 따라 순종했기에 서조운은 체내에 있던 모든 극양지기를 방출하며 말한 대로 길을 뚫었다.

“가자!”

한층 더 거대해진 화염이 폭풍처럼 사방을 휩쓸며 독충들을 태워 버렸다.

닿는 족족 무자비하게 재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로 세 사람이 충흉을 향해 달려들었다.

각자 다른 방향에서 아껴 두었던 공력을 이용해 강기를 일으켜서는 충흉에게 휘둘렀다.

쌔애애액!

각기 다른 색깔의 검강들과 권강이 세 방향에서 충흉에게 쇄도했다.

퇴로까지 차단한 완벽한 협공이었다.

그런데 강기들이 닿기 직전 세 사람이 비틀거렸다.

“큭!”

“흐윽!”

“꽤 오래 버텼네. 그래도 꼴에 용의 칭호를 받은 녀석들이란 건가.”

강기들이 쇄도함에도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던 충흉이 이죽거렸다.

그런 그의 시선은 가까스로 서 있는 네 사람에게 향했다.

“이, 이게……!”

“독에 물리지는 않았는데……!”

모용척은 물론이고 서조운 역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갑작스러운 마비 현상에 놀란 것이었다.

하지만 놀란 건 충흉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쯤이면 무조건 최소 빈사상태에 빠졌어야 했는데 넷 다 약간의 마비 증상만 있을 뿐 정신이 멀쩡해 보였다.

“어떻게 된 거지?”

순간 서로가 서로를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양쪽 다 지금의 상황이 이해되지가 않아서였다.

“어떻게 되긴. 네놈의 잘난 독이 통하지 않은 거지.”

“그럴 리가! 내 독은 완벽하다!”

“특수하긴 하지. 근데 이 녀석들은 백독환을 먹어서 말이야. 피독주도 제법 좋은 걸 가지고 있지.”

“백독환!”

충흉이 경악했다.

동시에 그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했다.

백독환을 먹었다면 고작 마비 증상에 그치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물론 나에게는 아예 소용이 없고.”

반호진은 허공섭물을 이용해 네 사람을 곁으로 끌어왔다.

백독환과 미리 준비한 피독주 덕분에 빠르게 회복되는 중일 테지만 그래도 평상시처럼 움직이려면 시간이 좀 필요했다.

지금 상태에서 독충에 물리면 해독까지 시간이 더 소요되기에 반호진은 일행들을 뒤로 물렸다.

“흐아압!”

그때 서조운이 괴성을 질렀다.

동시에 그의 전신에서 열기가 폭발적으로 솟구치며 연기가 몽글몽글 흘러나왔다.

체내에 잠입해 있던 독기를 극양지기로 증발시킨 것이었다.

“호오.”

그 모습에 반호진이 살짝 감탄했다.

진기를 다루는 능력이 예전보다 확연히 발전했음을 알 수 있어서였다.

“나도 질 수 없지!”

“흐으읍!”

서조운의 행동에 모용척과 두 사람도 따라 했다.

막내가 했으니 자신들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동시에 네 사람은 자신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중독된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했다.

“허!”

반대로 충흉은 기가 막혔다.

설마하니 이렇게 쉽게 중독에서 벗어날 줄은 몰라서였다.

보통의 무인이라면 진즉에 독수로 화했어야 했는데 오히려 체내의 독을 배출하는 모습에 충흉은 연신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반호진을 제외한 일행들은 하나같이 식겁한 상태였다.

미리 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중독이 되어서였다.

게다가 몸이 마비되는 건 처음 겪어 봤기에 다들 좀 전과는 달리 경계심이 바짝 든 얼굴로 서서히 충흉에게 접근했다.

-호흡을 통해 중독되었을 가능성이 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태우거나 검으로 베었을 때 독이 스며들었을 겁니다.

-혹은 검기에 의해 증발되었거나.

선우방과 서조운이 전음을 주고받았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었다.

하지만 모든 건 호흡으로 귀결되었다.

“제법이야. 나름 이름을 날린다고 하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서서히 접근하는 네 명을 주시하며 충흉이 그답지 않게 칭찬을 했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사이에도 수천, 수만 마리의 독충들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충흉의 명령을 기다리는 듯이 말이다.

“그러니 영광으로 알도록. 내가 만든 특제 독에 당하는 것을.”

콰우우우!

충흉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온간 독충들이 다시 파도처럼 덮쳐 왔다.

일행들을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던 것이다.

퍼어엉!

그러나 일행들의 대응은 방금 전과 완전히 달랐다.

한 번 당한 수법에 또 당하지 않겠다는 듯이 일행들은 철저하게 간격을 유지했다.

호흡을 멈추고서 검기나 권기로 독충들이 일정 간격 안에 들어오는 걸 완벽하게 차단했다.

하나 그렇다고 방어만 하는 건 아니었다.

쌔애애액!

충흉에게 다가가지 않는다고 해서 공격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걸 네 사람은 보여 주었다.

검기와 권기를 크게 일으킨 다음 충흉을 향해 그대로 내질렀다.

진기를 잔뜩 머금어 거대해진 선우방의 검기가 허공을 까맣게 물들인 독충들을 갈라 버리며 쇄도했다.

“훗!”

한데 금방이라도 몸을 꿰뚫을 것 같은 살벌한 공격에도 충흉은 조소를 머금었다.

방법은 나쁘지 않았으나 문제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었다.

비록 독공에 치중하기는 했으나 충흉 또한 무인이었다.

그렇기에 독충을 가르며 쇄도하는 네 줄기의 공격을 충흉은 어렵지 않게 피해 냈다.

쉬이이익!

그리고 충흉은 네 사람의 공격을 역으로 이용했다.

허공에 만들어진 네 줄기의 선에 특수 제조한 독을 바른 암기를 던졌다.

“흡!”

벼락같이 날아오는 바늘 모양의 시커먼 암기에 선우방이 황급히 땅을 박찼다.

못 막을 정도는 아니었으나 독이 발라져 있을 게 분명하기에 선우방은 피하는 걸 택했다.

괜히 막거나 튕겨 내서 위험을 자초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멀리 떨어지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였다.

다른 세 명 역시 같은 생각을 했는지 서로 겹치지 않게 각기 다른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쉬이익!

그런 네 명을 향해 충흉은 비릿하게 웃으며 독충들을 조종했다.

독충들로 공격하는 게 아니라 움직임을 방해하는 쪽으로 말이다.

암기를 피할 수 없게 충흉은 네 사람을 붙드는 용도로 독충들을 움직였다.

그러자 확실히 네 명의 움직임이 더뎌지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나랑 놀자고.”

점차 몰리기 시작하는 네 사람의 모습에 지금껏 잠자코 있던 반호진이 뒷짐을 풀었다.

이 정도면 애초에 목표했던 경험을 충분히 쌓은 것 같아서였다.

우우우웅!

그와 동시에 느릿하게 뽑혀져 나온 검에서 눈부신 금광이 번뜩였다.

느릿한 팔의 움직임과는 다르게 검극에서 검환이 맺힌 것과 동시에 충흉을 향해 날아간 것이었다.

뻐어엉!

어린아이 주먹만 한 검환은 말 그대로 모든 걸 꿰뚫고 지나갔다.

무시무시한 기세로 앞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깨부수며 나아갔던 것이다.

“으헥!”

점차 궁지에 몰리기 시작하는 네 명의 모습에 희희낙락하던 충흉은 무지막지한 기세로 쇄도하는 검환을 느끼고는 기겁하며 이동했다.

닿는 순간 몸이 갈가리 찢어진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기에 충흉은 황급히 몸을 날렸다.

꽈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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