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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재림-128화 (128/468)

제 43장. 청홍쌍흉(靑紅雙凶). -03

한데 소검이 반호진의 뒷배에 닿는 순간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소흉으로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소리가 귓전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손목에서 아릿한 고통이 느껴졌다.

“속도가 빠르다고 꼭 피할 필요는 없지.”

“……호신강기!”

여유로운 느릿한 말투에 소흉이 이를 갈며 소리쳤다.

어떤 방법으로 그의 공격을 막아 냈는지 눈치챈 것이었다.

그러나 호신강기라고 해서 만능은 아니었다.

웅웅웅웅!

제아무리 단단한 강철도 더 탄탄한 강철에는 부서졌다.

이 세상에 절대적이란 것은 없기에 소흉은 공력을 가일층 끌어올렸다.

다음번에는 더욱 강력한 일격을 날릴 생각이었다.

스스슥!

물론 가만히 서서 공격할 생각은 없었다.

기습이 실패한 순간 소흉은 다시 움직였다.

그러면서 빠르게 눈알을 굴렸다.

동생인 거흉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형!”

다행히 날아가긴 했어도 큰 충격을 받은 건 아닌지 거흉은 소매로 입가를 거칠게 닦으며 몸을 일으켰다.

개개인도 강하지만 역시 두 사람의 힘을 극대화하려면 합격진을 펼쳐야 했다.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거흉은 황급히 몸을 날렸다.

다만 소흉만큼 빠른 민첩함을 지니지 못했기에 거흉은 뒤뚱뒤뚱 뛰어왔다.

슈아악!

소흉은 그걸 확인하면서 재차 두 자루의 쌍검을 휘둘렀다.

그의 체형에 맞춰 특수 제작된 소검에 시퍼런 강기가 휩싸이며 반호진의 왼쪽 어깨와 오른쪽 오금을 노렸다.

어느 쪽으로 회피하든 일단 하나는 맞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물론 피할 수 있다면 말이지!’

솔직히 방금 전의 일격은 소흉이 방심했었다.

반호진이 힘으로 거흉을 날려 버렸다고 하나 속도전은 달랐다.

천하십대고수와도 속도 대결로는 지지 않았었기에 소흉은 내심 반호신을 무시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끄그그긍!

“어?”

이번에는 조금의 방심도 하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했다.

굴욕은 한 번으로 족해서였다.

한데 제대로 쌍검을 휘둘렀음에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전력을 다한 참격에도 반호진의 호신강기에는 생채기조차 나지 않았다.

“그게 네 수준이야.”

“이이익!”

조금도 긴장되지 않는다는 듯이 뒷짐을 지고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반호진의 시선에 소흉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한낮 애송이 따위가 자신을 무시하자 극도로 흥분한 것이었다.

그 분노를 소흉은 자신의 쌍검에 모조리 집어넣었다.

까가가강!

그러나 광기에 찬 듯이 휘두르는 수십 번의 참격에도 반호진의 호신강기는 견고했다.

여전히 흠집 하나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 모습이 소흉을 더욱 분노케 했다.

“내가 할게!”

웬만해서는 보기 힘든 소흉의 격노에 어느새 다가온 거흉이 자신 있게 소리쳤다.

속도로는 형을 따라잡을 수 없지만 대신 그에게는 태어났을 때부터 타고난 신력이 있었다.

거기에 열양공이 합쳐지니 폭발력까지 추가됐다.

부우우웅!

그 가공할 힘을 거흉은 오른손 주먹에 담았다.

반호진이 제자리에 있는 걸 이용해 모든 힘을 주먹에 쏟아부었다.

꽈아아앙!

거만을 떨고 있는 반호진의 호신강기에 거흉의 일격이 제대로 꽂혔다.

뜨거운 열기를 머금은 무지막지한 권강이 호신강기를 후려쳤던 것이다.

그로 인해 지축이 뒤흔들렸다.

압축된 기운도 기운이지만 열양공이 지닌 성질 때문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서였다.

“이번에는 네놈도 멀쩡할 수는……! 아닛!”

소흉은 동생의 힘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단순히 파괴력만 따지자면 거흉은 녹림대군도 뛰어넘었다.

그렇기에 소흉은 득의양양했다.

거만함이 자승자박이 되어 반호진의 발목을 잡다 못해 넘어뜨릴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반호진은 멀쩡했다.

전력을 다한 거흉의 일격을 여전히 오만한 자세로 받아 냈다.

“말했을 텐데. 둘이 힘을 합쳐도 약하다고.”

“다시 간다!”

“응!”

딱 봐도 멀쩡한 반호진의 모습에 소흉의 표정이 일변했다.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하긴 했으나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소흉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문득 그의 뇌리로 안 좋은 상상이 떠올라서였다.

‘그럴 리 없다!’

그러나 소흉은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반호진의 나이 이제 스물하나였다.

그가 생각하는 수준에 오르는 건 불가능했다.

꽈앙! 꽈콰콰쾅!

떠오른 망상을 애써 털어 내며 소흉은 거흉과 협공했다.

거흉이 정면에서 힘으로 찍어 누르면 그는 은밀하게 빈틈을 찾아서는 파고들어 칼을 휘둘렀다.

신경을 거흉에게 집중하게 만들고서 그는 치명적인 일격일 날리는 게 합격술의 핵심이었다.

다만 문제는 그게 반호진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견고한 철벽처럼 반호진의 호신강기는 거흉의 강격은 물론이고 그의 참격 역시 전부 다 막아 냈다.

“크릉! 크아아앙!”

생채기가 나기는커녕 미동도 하지 않는 호신강기에 거흉이 점차 흥분했다.

조금의 균열도 생기지 않자 짜증이 점점 더 치솟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반호진은 여전히 뒷짐을 진 채로 응시했다.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네.”

청홍쌍흉은 반호진을 처음 보는 것이지만 그는 달랐다.

직접 처단하기도 했기에 반호진은 청홍쌍흉의 무공에 대해 전부 다 알고 있었다.

오래전 기억이기는 하나 머리가 아닌 몸이 기억한다고나 할까.

그리고 꼭 청홍쌍흉의 무공에 대해 모두 알 필요는 없었다.

터터터텅!

청홍쌍흉의 합격술을 파훼할 방법만 확실하게 알면 되었다.

지난 생에서는 경험이 부족해서 청홍쌍흉과의 싸움에서 꽤나 고전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완벽한 파훼법을 알고 있었기에 반호진은 여유롭게 협공을 받아 내며 주변을 살펴봤다.

그러자 청홍쌍흉을 믿고 있는 건지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지켜보는 철혈성의 무인들이 보였다.

“뭐, 나야 좋지만.”

우르르 몰려온다고 한들 쉽게 밀릴 일행들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반호진을 만나기 전이었다면 목숨이 위태로웠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한 명 한 명이 각자만의 무도를 걸어가고 있었기에 위험하기는 하겠으나 그렇다고 크게 위협적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왕이면 최소한의 피해로 전투를 끝내는 게 모두에게 좋았기에 반호진은 검을 뽑았다.

스르릉.

기분 좋은 마찰음과 함께 뽑혀져 나온 검을 반호진은 부드럽게 쥐었다.

그러고는 가볍게 전방을 향해 휘둘렀다.

쩌어어억!

힘이라고는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듯한 가벼운 횡베기였으나 그로 인한 결과는 놀라웠다.

저돌적으로 쌍권을 번갈아 내지르던 거흉의 손과 팔, 가슴에 혈선이 생겼다.

반호진의 검극이 그린 그대로 살가죽이 베인 것이었다.

“커헉!”

그러나 문제는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살갗만 살짝 베인 듯했으나 실상은 내상이 더 컸다.

진기와 진기의 충돌로 인한 반탄력으로 거흉은 다시 한번 새빨간 피를 토했다.

“거흉아!”

입에서 또 한 번 피분수를 내뿜는 거흉의 모습에 소흉이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하나 소흉은 동생에게 갈 수 없었다.

반호진의 검이 이번에는 그에게 향해서였다.

부르르르!

검격이 부딪친 것도 아니고 그저 검극이 향한 것뿐인데도 소흉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었다.

동시에 머릿속에 경종이 울렸다.

본능이 그에게 말하고 있었다.

‘피해야 한다……!’

본능의 경고에 소흉은 곧바로 땅을 박찼다.

원래대로라면, 평소의 그였다면 망설이지 않고 반호진에게 쇄도했을 것이었다.

쌍검의 이점을 십분 이용해 하나로는 반호진의 검을 막고 나머지 소검으로 팔을 잘라 내든, 심장을 찌르든 했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생각들이 일절 들지 않았다.

“감이 좋은데.”

간발의 차이로 스쳐 지나가는 은빛의 궤적에 소흉은 다시 한번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흔하디흔한 검기 하나 서리지 않은 평범한 검이었으나 소흉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저 검에 닿는 순간 자신의 검강이 종잇장처럼 썰려 나갔을 것임을 말이다.

“이, 이노옴!”

소흉이 가까스로 반호진의 검을 피했을 때 거흉이 포효했다.

형이 벌어 준 시간에 상처를 어느 정도 수습하고 재차 반호진에게 달려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기세가 사뭇 대단했다.

온몸에 강기를 일으키고서 마치 거대한 망치처럼 반호진을 향해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우우우웅.

비대한 체구 때문인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뒤흔들렸다.

하지만 그 시끄러움 속에서도 반호진은 느긋하게 검에 진기를 집중했다.

그러고는 그대로 검극을 통해 강환을 뿌렸다.

뻐어어엉!

이윽고 거대한 바위가 굴러오듯 무시무시한 기세로 달려들던 거흉과 작은 구슬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금빛 강환이 충돌했다.

날아오는 강환을 봤음에도 거흉은 피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데 결과는 거흉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충돌과 동시에 강환을 박살 내고 곧바로 반호진까지 밀어 버릴 계획이었는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끄아아악!”

팔을 들고서 황소처럼 달려들던 거흉은 날아오는 강환에 의해 호신강기는 물론이고 전신의 뼈가 박살 났다.

충돌로 인해 몸이 버티질 못했던 것이다.

신력과 함께 강골을 타고났지만 아무리 몸이 탄탄하더라도 강환에 무방비로 노출이 되면 답이 없었다.

그 결과 거흉은 전신의 뼈가 모조리 부러진 채로 비참하게 땅에 누웠다.

스으윽!

그런데 그 틈을 타 작은 인영이 반호진의 등 뒤로 스며들었다.

거흉이 목숨을 걸어 만들어 준 아주 찰나간의 틈을 소흉이 파고들었던 것이다.

이번이 아니면 자신과 동생이 죽는다는 생각으로 소흉은 혼신의 힘을 다해 반호진의 등 뒤를 점하고는 그대로 소검을 찔렀다.

어쭙잖게 허세를 부리던 공격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사생결단을 내려는 공격이었다.

슈우욱!

근데 심장과 단전을 향해 정확히 소검을 찔러 넣었던 소흉의 두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분명 검을 제대로 찔러 넣었건만 손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였다.

그게 말하는 바는 하나뿐이었기에 소흉은 곧바로 땅을 박찼다.

특유의 순발력으로 이 자리를 피하려는 것이었다.

서걱.

그러나 소흉은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화끈한 감촉이 오금에서 느껴진 것과 동시에 소흉은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어느새 그의 등 뒤로 돌아간 반호진이 다리를 무릎에서부터 잘라 버린 것이었다.

“내, 내 다리! 내 다리이!”

순식간에 두 다리를 잃은 소흉이 반사적으로 절규했다.

경신술이 강점인 그에게 있어 두 다리는 심장과 단전만큼이나 소중한 것이었다.

한데 그걸 잃었기에 소흉은 고통보다도 충격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시끄럽네.”

푸욱!

괴성을 내지르던 소흉의 몸이 얼어붙었다.

반호진의 검이 심장을 꿰뚫자 절명한 것이었다.

“혀, 형님!”

그 광경에 멀찍이 떨어져 있던 거흉이 퉁방울만 한 두 눈에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하지만 반호진은 그 모습이 너무나 가증스러웠다.

단지 심심하다는 이유로 마을 하나를 괴멸시키고, 수없이 많은 여인들을 윤간하고 간살했던 게 청홍쌍흉이었다.

남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고 자기 형제만 중요하다고 여겼었기에 반호진은 코웃음을 치며 검기를 뿌렸다.

스극. 툭.

눈부신 금광을 흩뿌리며 날아간 검기가 정확하게 거흉의 목을 베었다.

동시에 장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청홍쌍흉을 홀로 잡은 것도 대단했지만 중요한 건 그 과정이었다.

어렵게, 가까스로 이긴 게 아니라 마치 어린아이를 다루듯이 가지고 놀았기에 철혈성의 무인들은 하나같이 경악한 눈빛으로 반호진을 쳐다봤다.

“너무 걱정하지 마. 곧 함께하게 될 테니까.”

파아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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