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122화 (122/468)

제 41장. 눈치싸움. -01

이런 말을 꺼내기가 민망했던 모양인지 선우청이 연신 헛기침을 했다.

그러면서 선우방의 표정을 살폈다.

어떤 반응이 나올지 좀처럼 예상할 수가 없었기에 선우청은 빠르게 아들의 얼굴을 훑었다.

“장녀라면, 팽수영 소저요?”

“그래.”

“그게 무슨 말이에요?”

“무슨 말이긴. 네가 생각한 그대로의 말이지.”

선우방이 일순 얼음이 되었다.

그 정도로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자세하게 말하지는 않았으나 질문의 의도는 명백했다.

그렇기에 선우방은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참고로 말해 주자면 하북팽가만 아니다. 꽤 많은 곳에서 진지하게 혼담을 꺼냈어.”

“……그중에 하북팽가가 가장 낫다고 생각하신 거군요.”

“맞아. 사실 생각지도 못했고. 오늘 네가 주목을 받기는 했으나 냉정하게 말해 이제 막 이름을 알린 것이나 마찬가지이지 않더냐.”

“좀 놀랍네요. 팽 소저라니.”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선우방이 연신 헛웃음을 흘렸다.

생각지도 못한 제안이었기에 선우방은 머리가 하얘지는 느낌이었다.

동시에 얼마 전부터 묘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던 팽수영이 떠올랐다.

“나도 너만큼 놀랐다. 팽가주님이, 천하의 도왕이 나에게 혼사에 대해서 말을 꺼내는데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했다.”

“그러셨겠네요.”

“아마 지금의 너보다 더 놀랐을 거다. 근데 동시에 기쁘기도 하더구나. 천하의 도왕이 내 아들을 인정한 것이지 않더냐.”

“으음!”

어깨에 힘이 바짝 들어간 선우청이 연신 기분 좋은 헛기침을 했다.

그러나 선우방의 심정은 복잡했다.

기분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당황스러웠다.

언젠가는 혼인을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으나 그게 지금일 줄은 몰랐기에 선우방은 머리가 복잡했다.

“꼭 하라는 건 아니다. 그저 네 생각을 묻는 것이야.”

“제가 싫다면 거절하실 겁니까?”

“흐음. 고민은 해 보겠지? 너도 알겠지만 좋으면 좋았지 나쁘지 않은 곳이 하북팽가니까.”

선우청은 솔직하게 말했다.

현재의 선우세가에게 있어 하북팽가라는 혼처는 놓치기 아까운 곳이었다.

“팽 소저라니.”

“일단 싫지는 않은 모양이구나.”

“좋은 것도 아니지만요.”

“그럼 마음에 둔 사람이 있더냐?”

훅 하고 들어오는 질문에 선우방은 눈을 껌뻑였다.

몇몇 여인들이 머릿속에 떠오르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호감 이상의 감정이 있는 건 아니었다.

“아니면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갈 자신이 있는 게냐?”

“그건 맞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테니까요.”

“흐음.”

이번에는 선우청이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 역시 아들의 생각에는 일정 부분 동의했다.

반호진을 만난 뒤로 날개를 단 듯 급격한 성장을 한 게 선우방이었다.

물론 수준이 높아진 만큼 앞으로는 지금처럼 큰 성장을 하기는 힘들겠으나 중요한 건 정체되지는 않을 거라는 점이었다.

‘그래도 아까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우청이 고민하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놓치기에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앞으로도 선우방은 계속 성장하고 발전하겠지만 그게 꼭 더 나은 혼처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이 되지는 않았다.

‘반 공자를 제칠 수 있다면야 가능하겠지만…….’

선우청도 같은 남자이기에 선우방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감이 생긴 만큼 욕심도 날 터였다.

아예 안 봤다면 모르겠으나 삼봉을 가까이서 봤고, 그중 모용희수와 당서린과는 담소도 나눠 봤으니 팽수영이 성에 안 찰 수도 있었다.

조금 더 노력하면, 반호진을 뛰어넘지는 못하더라도 비슷한 수준에 도달하면 삼봉 중 한 명을 반려로 맞이하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해서 당 소저나 모용 소저를 바라는 건 아닙니다. 제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그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죠. 호진이 정도라면 모르겠으나 지금 당장은 힘드니까요. 다만 지금은 여자에 신경 쓸 때가 아닌 것 같아서요. 탄력을 받았을 때 제대로 집중하고 싶습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저도 알고 있습니다. 혼처로서 하북팽가가 최선일 수도 있다는 것을요.”

“맞아. 이 이상은 현실적으로 힘들어. 주도권이 완전히 넘어갈 수도 있으니까. 어느 정도 비빌 수 있을 정도가 딱 좋아.”

선우청은 말해 놓고도 살짝 민망했다.

아무리 자신의 가문이라지만 선우세가가 하북팽가에 비벼 볼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더욱이 하북팽가에는 당대 무림십왕 중 한 명인 도왕이 있었다.

“그래도 저는 아버지 의견에 따르겠습니다. 저는 소가주이고, 선우세가에 조금이라도 이득이 된다면 어떤 것이라도 수용할 생각이 있습니다.”

“고맙구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좀 더 대화를 나눠 보마.”

선우청이 빙그레 웃었다.

어떤 마음으로 선우방이 이런 말을 했는지 잘 알아서였다.

그 또한 소가주이던 시절에 선우방과 같은 마음이기도 했고.

‘정말 많이 달라지기는 했구나. 내가 천하의 도왕과 독대도 해 보고.’

예전이었다면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선우방이 검룡이라는 별호를 얻게 되자 많은 게 변했다.

가장 먼저 선택지가 말이다.

선우청은 그걸 최대한 잘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선우방과 마찬가지로 모용척 역시 오늘 있었던 비무로 인해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특히 모용궁은 잊혔다가 다시 비상했다는 의미로 비룡(飛龍)이라는 별호를 얻은 모용척을 애정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장하다.”

“이 정도 가지고 뭘요. 아직 멀었습니다.”

모용궁의 칭찬에도 모용척은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대답했다.

비룡이라는 별호를 얻었으나 그에게는 별거 아니었다.

용의 칭호를 얻었다고 해서 다 같은 수준이 아니라는 걸 너무나 잘 알아서였다.

당장 반호진만 보더라도 그걸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시작이 좋지 않더냐. 난 널 믿고 있었다.”

“아직 갈 길이 멀었어요. 비룡이라고 해 봤자 후기지수들 중에서나 조금 뛰어난 수준이죠.”

“그것도 못 얻은 이들이 태반이다.”

“재능도 없고, 노력도 하지 않은 대가지요. 그저 바라기만 한다고 이루어지는 건 없으니까요. 그리고 용이라 불린다고 해서 다 같은 수준이 아니에요.”

“그건 그렇지.”

모용궁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당장 그의 머릿속에만 하더라도 반호진이 떠올랐다.

같은 범주에 넣으면 안 될 정도로 반호진은 유달리 튀었다.

“사내대장부라면 응당 천하를 봐야지요. 무공에 뜻을 두었다면 당연히 천하제일을 노려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사내라면 야망이 있어야지. 야망이 없는 사내는 남자라고 할 수 없지.”

당당히 포부를 드러내는 장남의 모습에 모용궁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의 모습이야말로 그가 바라던 모습이었다.

재능 넘치고, 자신감 넘치는.

그의 자식이라서가 아니라 모용척은 충분히 이럴 자격이 있었다.

“천하제일인은 힘들지 않을까?”

“네가 초치지 않아도 나도 알고 있어. 근데 나중 일은 또 모르는 거니까. 일단 형님보다는 내가 더 오래 살지 않겠어?”

“그렇게 따지면 꿈은 이룰 수 있겠네.”

모용희수가 실소를 흘렸다.

하루라도 천하제일인이 된다면 만족한다는 뜻이어서였다.

근데 이게 또 틀린 말은 아니었다.

반호진도 사람인 이상 언젠가는 귀천할 테고, 그때까지 모용척이 살아 있다면 뜻을 이루는 것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발상의 전환이 필요해. 생각지도 못한 방법이 떠오를 수도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너도 슬슬 혼인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느냐?”

“……말이 왜 그렇게 흘러갑니까?”

은근슬쩍 혼사에 대한 얘기를 꺼내는 부친을 향해 모용척이 대놓고 싫은 표정으로 반문했다.

한 살을 더 먹어 스무 살이 되었다고 하나 아직 그는 혼인을 생각하기에는 이른 나이였다.

“너도 무림에서 어느 정도 입지를 다졌으니 이제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지 않겠느냐? 명문세가에서 후대만큼 중요한 사안은 없어.”

“아직 멀었습니다.”

똑같은 말이지만 좀 전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 모용척이 말했다.

여동생이라면 모를까 아직 그는 결혼을 생각할 나이는 아니었다.

당장 내일 혼례를 올리는 남궁광만 하더라도 스물한 살이었다.

‘그러고 보니 형님이랑 동갑이네?’

남궁광의 나이를 떠올리던 모용척이 순간 눈을 끔뻑거렸다.

즉 당장 혼인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라는 걸 인식한 것이었다.

“뭐가 멀어? 마음만 먹으면 금방이지. 남궁광과 제갈혜정의 혼인은 결정되고 날짜 잡는 것까지 반년이 채 안 걸렸다는데.”

“그런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이런저런 조율로 시간이 좀 걸리지 않습니까.”

“정석대로 가면 그렇지. 근데 모든 건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니까.”

“마음에 드신 곳에서 혼담이 들어온 모양이군요.”

모용궁이 모용척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모용척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런 말을 괜히 꺼낼 리가 없다는 걸 알기에 모용척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이럴 때는 눈치가 비상하단 말이지.”

“어디입니까?”

“황보세가다.”

“흐음.”

“표정을 보아하니 별로인 모양이구나.”

떨떠름한 모용척의 표정에도 모용궁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째서 저런 표정을 짓는지 짐작이 가서였다.

“제 짝으로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만.”

“희수 때문에 네 눈이 높아진 거야.”

“삼봉이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미녀는 세상에 많습니다.”

“여자는 미모가 다가 아니다.”

“그래도 예선을 통과하느냐 마느냐의 기준은 외모입니다.”

모용척이 단호하게 말했다.

황보세가라면 썩 괜찮은 혼처이기는 했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 있는 여인들은 모용척의 취향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었다.

“나쁘지는 않지.”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끄응!”

모용궁이 앓는 소리를 냈다.

은근슬쩍 두둔하는 말을 흘렸으나 그도 알고 있었다.

이번에 들어온 혼담의 주인공이 모용척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무리 혼인이 가문 대 가문의 결합이라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마음이 오고 가야 좋았다.

“전 싫다고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넌 모용세가의 후계자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좀 더 찾아보죠.”

모용궁은 물론이고 얌전히 대화를 듣고 있던 모용희수가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당해도 너무 당당해서였다.

근데 딱히 틀린 말이 없기에 뭐라고 지적하기에도 애매했다.

“그럼 여동생이라도 도와줘야지.”

“원래 인생은 각자도생입니다.”

“허참!”

“그래도 문전박대당하지 않는 건 저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모용척은 당당하게 말했다.

반호진의 거처에 모용희수가 마음 편히 들락날락 거릴 수 있는 건 전부 다 그 덕분이었다.

만약 모용척이 아니었다면 모용희수가 다른 사람들 눈치 보지 않고 찾아오는 건 불가능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니까 그렇지.”

“진심이십니까?”

“반 공자보다 더 나은 상대가 있느냐?”

“……없죠.”

모용척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서조운과 정이륭도 또래에 비하면 압도적인 재능과 실력을 지니고 있었으나 반호진 앞에서는 빛을 잃었다.

그는 물론이고 말이다.

그러니 모용궁의 눈에도 다른 이가 들어올 리 없을 터였다.

“하니 도와 달라는 말이다. 희수와 맺어진다면 반 공자가 진짜 가족이 되는 것이지 않더냐.”

“호오.”

모용척이 솔깃한 표정을 지었다.

이 부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기에 모용척은 두 눈을 크게 떴다.

가족처럼 친하기는 하지만 진짜 가족에 비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모용희수와 반호진이 맺어진다면 한 가족이 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노력해 봐. 경쟁자들도 치워 주고.”

“알겠습니다.”

방금 전에 비해 확연히 협조적인 어조로 모용척이 대답했다.

그 정도로 가족이라는 두 글자가 주는 힘은 컸다.

‘아주 뚫어지겠네.’

아침부터 시작된 남궁광과 제갈혜정의 혼례를 지켜보며 반호진은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중간중간 남궁호의 눈초리가 그를 꿰뚫듯이 쏘아져 왔으나 반호진은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의 두 눈으로 보겠다는데 그거 가지고 뭐라 할 수는 없어서였다.

지금 당장 남궁호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기도 했고.

“잠 설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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