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0장. 염왕(閻王) 대 검신(劍神). -02
남궁세가의 가주만이 익힐 수 있는 무공이자 천하제일을 논할 수 있는 검공이 바로 제왕검형이었다.
제왕검형으로 인해 남궁세가가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정도로 제왕검형은 분명 대단한 절학이었다.
하지만 그에 비견될 만한 검공이 없는 건 아니었다.
우우우웅!
소림사의 달마삼검 역시 절대검공이라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그리고 무공만큼이나 중요한 게 그 무공을 익힌 사람이었다.
“으음!”
남궁호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반호진이 기세를 일으킨 순간 그가 지배하는 영역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어서였다.
심지어 반호진은 검을 휘두른 것도 아니었다.
그저 검을 늘어뜨리고서 기세를 일으킨 것뿐이었다.
사하아앗!
그런데 그의 검역이 갈라지고 있었다.
정확히 반호진이 서 있는 곳에서부터 말이다.
남궁호는 그게 믿겨지지가 않았다.
‘제왕검형을 가른다고?’
반호진이 소림사의 비전절학이자 유일한 검공인 달마삼검을 익히고 있다는 걸 남궁호 역시 알고 있었다.
익히기가 너무나 난해해서 맥이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것도.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지금의 상황은 비현실적이었다.
제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이건 불가능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후기지수의 수준을 뛰어넘었다고 해도 이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남궁호는 확인해 보고자 했다.
지금 보여 주는 모습이 진짜 실력인지, 아니면 단순히 기세검도만 뛰어난 이인지를 말이다.
흔하지 않기는 해도 가끔 본래 실력보다 기세검도가 더 뛰어난 이가 있었기에 남궁호는 반호진이 그런 경우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스으윽.
그걸 확인해 보고자 남궁호는 검을 느릿하게 밀었다.
상단세를 유지하고 있던 검을 반호진을 향해 찔렀던 것이다.
그러나 느리다고 절대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되었다.
다가오는 만큼 검에서 흘러나오는 중압감 역시 강해졌기 때문이다.
‘증명해 봐라. 네 실력을.’
진기를 느끼고 다루는 게 예민한 이들일수록 기세검도에 강점을 보였다.
반대로 검을 다루는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부족한 면모를 보였다.
남궁호는 반호진이 어느 쪽인지 궁금했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히 기술이나 기교에서 뒤떨어지는 게 맞았기에 남궁호는 반호진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서 검을 천천히 밀어 넣었다.
스윽.
남궁호의 검은 느리지만 확실하게 압박해 왔다.
회피 자체를 막아 버리고 오로지 막을 수밖에 없는 검이 지금 남궁호가 펼치는 검이었다.
그가 다져온 길이고 평생 동안 수련한 검도(劍道)가 지금의 일검이었다.
천하제일인은 아닐지라도 일대검호라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는 검을 향해 반호진 역시 달마삼검을 펼쳤다.
‘개인적으로 궁금했었지. 함께 싸운 적은 있어도 검을 겨룬 적은 없었으니까.’
반호진도 남궁호와 검을 겨루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다만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
정중하게 비무를 청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강압적인 태도를 고수했기에 반호진이 삐딱하게 나간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남궁호가 이러는 것도 이해가 가기는 했다.
비슷한 연배도 아니고 심지어 아들인 남궁광과 동갑이었다.
그렇다 보니 남궁호의 입장에서는 반호진을 아래로 볼 수밖에 없었다.
배분은 물론이거니와 남궁호는 당대 남궁세가의 가주였으니까.
‘그러니 우선은 보여 주어야겠지. 내가 만만하지 않다는 걸 말이야.’
반호진이 히죽 웃었다.
안 그래도 영약을 먹고 한 번쯤 몸을 제대로 풀고 싶었다.
혼자서 하는 수련에는 한계가 있었고, 실전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강자와의 비무는 주기적으로 필요했다.
그렇기에 반호진은 지금의 비무를 실컷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쩌어어엉!
그 흔한 검기 하나 서리지 않았으나 남궁호의 검에는 거대한 내력이 실려 있었다.
단순히 육안으로만 보이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런 남궁호의 검을 반호진은 정면으로 받아쳤다.
똑같이 검극으로 남궁호의 검극을 밀어 버렸던 것이다.
“허어!”
느리지만 그 무엇보다 묵직한 거력이 서려 있는 게 남궁호의 검이었다.
중검(重劍)의 극의가 담겨 있는 검이 제왕검형이었는데 그걸 정면으로 튕겨 내자 남궁호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고수는 단 일검만 보고도 상대의 수준을 알아차린다는 말처럼 이번 격돌로 남궁호는 알 수 있었다.
반호진이 반쪽짜리 검객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쌔애액!
하지만 아직 놀라긴 일렀다.
반호진의 달마삼검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평소에는 따로 달마삼검의 초식을 펼치지 않았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남궁호의 제왕검형과 제대로 맞붙기 위해 반호진은 달마삼검의 일검과 이검을 연달아 펼쳤다.
꽈과과광!
남궁호와 마찬가지로 반호진의 검신에는 검기가 서려 있지 않았다.
그런데 남궁호의 검과 충돌할 때마다 굉음이 터져 나왔다.
겉으로 보이지는 않아도 거대한 내력이 실려 있었기에 폭발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쩌어엉! 쩌엉!
현란한 반호진의 검격에 비해 남궁호는 상대적으로 단조로웠다.
압도적인 힘으로 상대를 찍어 눌러 굴복시키는 제왕검형답게 그의 검식은 화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게 약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오히려 남궁호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반호진의 모든 공세를 튕겨 냈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자신의 검역을 차곡차곡 쌓은 후 반호진을 압박했다.
제왕이라는 이름처럼 반호진을 무릎 꿇게 만들겠다는 듯이 말이다.
쩌어어억!
하지만 반호진도 순순히 당하지는 않았다.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검벽이 그를 압박해 오자 반호진 역시 힘으로 그걸 분쇄해 버렸다.
“허허허.”
그 모습에 남궁호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직접 보고도 믿기지가 않아서였다.
심지어 반호진은 전력을 다한 것도 아니었다.
아직 여유가 있음을 알 수 있었기에 남궁호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럼 이것도 막아 낼 수 있는지 궁금하군.”
웅웅웅웅!
지금까지는 몸 풀기였다는 듯이 남궁호의 기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방금 전까지는 단순히 실력을 확인하기 위한 시험이었다면 지금은 한 명의 무인이자 검객으로서 검을 잡았다.
그래서인지 분위기는 물론이고 기도 자체가 달라졌다.
거기다 창천검에 우윳빛 검강이 서리기 시작했다.
우우웅!
그 광경에 반호진도 옅은 미소를 지으며 검강을 일으켰다.
눈부신 황금빛 검강을 말이다.
그리고 이차전이 시작되었다.
꽈아앙! 꽈광!
남궁호의 검격이 짓뭉개 버릴 기세로 반호진에게 떨어져 내렸다.
변초나 허초 없이 오로지 무지막지한 힘만으로 찍어 눌렀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반호진도 마찬가지라는 점이었다.
물러설 생각이 없다는 듯이 반호진은 제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정면으로 남궁호의 검을 맞받아쳤다.
쩌저저적!
그로 인해 두 사람을 중심으로 연무장이 갈가리 갈라졌다.
두 사람의 충돌로 인한 충격파로 인해 지면이 버티지 못하고 찢어진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검과 검이 부딪칠 때마다 연무장을 감싸고 있는 벽이 뒤흔들렸다.
후폭풍으로 인해 격렬하게 흔들리는 것이었다.
‘허!’
그러나 남궁호는 그걸 느낄 새가 없었다.
자신의 검을 피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 내는 반호진 때문이었다.
사실 그에 비하면 반호진의 내공 수위는 별 볼일 없었다.
아무래도 살아온 시간이 다르기에 축적한 공력이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반호진은 놀라운 효율을 보여 주며 그의 검강을 막아 냈다.
‘달마삼검이 이 정도였단 말인가.’
게다가 놀라운 점은 반호진만이 아니었다.
반호진이 펼치는 달마삼검도 그에게 충격을 주었다.
대단하다는 말은 들었었지만 제왕검형과 비교해도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 수준이자 남궁호는 정말 크게 놀랐다.
하지만 역시 그에게 가장 큰 충격을 주는 건 상대하는 반호진이었다.
쌔애애액!
그와 마찬가지로 반호진의 검식에는 허초나 변초가 없었다.
오로지 순수하게 기술과 기교로만 검을 휘둘렀다.
한데 그 수준이 그와 비슷하거나 조금 높은 정도였다.
남궁호는 그게 공방을 주고받으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신체능력에서는 내가 밀린다.’
체격은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신체능력에서 명백한 차이가 났다.
남궁호 역시 아직 전성기의 육체를 가지고 있었으나 이제 스물한 살인 반호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젊음에서 파생되는 폭발적인 힘과 체력은 남궁호가 따라잡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스극.
내공은 그가 압도적이지만 반호진은 놀랍게도 극한의 효율로 제왕검형을 받아 냈다.
그뿐만 아니라 그보다 먼저 공격에 성공했다.
아주 작은 베어짐이지만 중요한 건 반호진의 검이 그의 옷을 갈랐다는 점이었다.
까앙! 까가가강!
거기다 시간이 갈수록 반호진은 제왕검형에 익숙해졌다.
반면에 아직 그는 달마삼검에 익숙해지지 않았는데 말이다.
검로를 마치 예상한 듯 반 박자 빠르게 먼저 쇄도해서 길목을 막고 있는 반호진의 검에 남궁호는 자기도 모르게 실소가 흘러나왔다.
동시에 두려움도 느꼈다.
공력을 제외하면, 적어도 검술에 한해서는 자신보다 반호진이 모든 면에서 뛰어나서였다.
그걸 느낀 순간 남궁호는 더 이상 반호진을 후기지수로 생각할 수 없었다.
파아아앗!
생각이 달라진 순간 그의 기도가 다시 한번 일변했다.
강호의 선배가 아닌, 염왕으로서 반호진의 앞에 선 것이었다.
쿠그그긍!
단순히 공력을 끌어 올린 것뿐인데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땅이 들썩였다.
서 있는 남궁호를 중심으로 말이다.
동시에 공기가 달라졌다.
남궁호를 중심으로 일정 영역에는 바람이 전혀 불지 않았다.
“다시 시작하지. 이제부터는 제대로 말이야.”
“이제야 붙어 볼 만하겠네요.”
“하하하하!”
천하십대고수이자 무림십왕의 일인인 염왕의 모습을 드러냈음에도 반호진은 여전히 당찼다.
그의 경지를 느끼지 못할 리가 없을 텐데도 말이다.
한데 신기하게도 남궁호는 심기가 불편하다기보다는 흥미가 일었다.
반호진이 어떤 모습을 보여 줄지가 말이다.
“그럼 본격적으로 겨루어 볼까요.”
반호진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사실 지금까지는 전초전이나 마찬가지였다.
검강은 물론이고 보이지 않는 무형강기가 쉴 새 없이 휘몰아치기는 했으나 여기까지는 인간의 싸움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초월경은 달리 탈인경(脫人境)이라 불리는데 그 이유는 명백했다.
바로 인간이라 부르기에는 지나칠 정도의 힘을 다루어서였다.
후아아앙!
그렇기에 초월경의 힘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똑같이 초월경의 경지에 올라야만 했다.
괜히 초월경을 탈인경이라 부르는 게 아니었다.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절대 상대할 수 없는 힘을 가지기에 탈인경이라 부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힘을 반호진 역시 드러냈다.
“허업!”
반호진을 중심으로 흉포하게 흘러나오는 거대한 기압(氣壓)에 남궁호의 두 눈이 더 이상 커지기 힘들 정도로 커졌다.
지금까지 보여 준 실력만 하더라도 오대세가의 장로들과 비견될 정도였다.
그런데 그와 똑같이 초월경의 힘을 드러내자 남궁호는 두 눈뿐만 아니라 입을 쩍 벌렸다.
경악을 금치 못하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제가 먼저 가겠습니다.”
마치 석상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남궁호를 향해 반호진이 검을 휘둘렀다.
강호의 삼류무사는 물론이도 어린아이도 알고 있다는 일도양단의 초식이었다.
하지만 똑같은 초식이라도 누가 펼치느냐에 따라 위력은 천양지차였다.
그 사실을 반호진이 지금 보여 주었다.
쑤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