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118화 (118/468)

제 39장. 신흥강자. -03

금호연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그의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남궁세가의 초대를 받자마자 사실 금호연은 그날의 기억부터 떠올랐다.

동시에 궁금했다.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자신을 대할지가 말이다.

그러나 과거의 안 좋은 기억 때문에 복수할 생각은 없었다.

‘난 소인배가 아니니까.’

똑같은 방법으로 복수하면 똑같은 급밖에는 안 됐다.

금호연은 절대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진짜 복수는 통쾌하고 멋있어야 했다.

“흐음.”

금호연이 생각에 잠긴 듯하자 반호진은 말을 걸지 않았다.

군중 속의 고독까지는 아니더라도 각자 개인적인 시간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소장주로서 무림과 관계된 첫 대외활동이니만큼 생각할 게 많을 터였다.

‘딱히 눈에 들어오는 인재는 없네.’

만사에 무심한 것 같지만 반호진은 의외로 연회장을 몇 번이고 살펴본 상태였다.

혹시나 기억에 있는 무인이 있나 싶어서였다.

아니면 재능이 있는데 제대로 개화시키지 못했거나.

하지만 안타깝게도 선우방과 같은 인재는 반호진의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 경우가 많았다면 천하사패와의 전쟁에서 패하지 않았겠지.’

반호진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흔하다면 그건 더 이상 인재가 아니었다.

쉽게 볼 수 없기에 인재라 불리는 것이었기에 반호진은 실망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반 공자.”

“결혼 축하드립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아, 이번에 소장주가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금 공자님.”

새신랑답게 남궁광이 환한 미소와 함께 인사를 해 왔다.

그런 그의 곁에는 제갈혜정이 화사한 미소를 머금고서 서 있었다.

“감사합니다.”

“음? 혹시 안 좋은 일이 있으신가요?”

“아닙니다. 좀 생각할 게 있어서요.”

왠지 모르게 쌀쌀맞은 듯한 금호연의 목소리에 남궁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과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에 금호연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남궁광에게 있어 자신이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물이었다는 걸 이번에 알 수 있어서였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다를 것이었다.

“아, 제가 방해를 한 모양이군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도 잠시 피난을 온 상태라. 그보다 두 분 결혼 축하드립니다.”

“저야말로 초대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직 혼례를 올리기 전이었음에도 제갈혜정은 마치 부인처럼 나란히 서서 대답했다.

누가 봐도 조신한 모습으로 말이다.

“장주님께서도 와 주셨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아쉽네요.”

“너무 급작스러운 초대라서 일정을 조율하기가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중원상계의 거물인 만큼 금가장주가 바쁜 건 당연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리를 빛내 주길 바랐는데 와 주지 않자 남궁광이 서운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대신 장주님께서 친필서신을 주셨습니다. 받으시죠.”

“아.”

남궁광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러면서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주위에 있는 후기지수들이 들었나 싶어서였다.

대놓고 하는 자랑보다 이처럼 자연스럽게 차이를 보여 주는 게 훨씬 효과가 좋았기에 남궁광은 짐짓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금호연이 품속에서 꺼낸 서찰을 받았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답신은 제가 보고 바로 써서 드리겠습니다.”

“예.”

예전과는 확연히 다른 온도차에 금호연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미 예상했었기에 별다른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그저 기억에 담아 두기만 했다.

“참, 반 공자. 혹시 제 여동생들은 어떻습니까?”

“그게 무슨 말입니까?”

뜬금없이 여동생을 거론하는 남궁광의 모습에 조용히 차를 홀짝이던 반호진이 반문했다.

그러나 어이없어하는 반호진의 어조에도 남궁광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런 반응은 이미 예상했었기에 남궁광은 오히려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두 명이 다 마음에 드신다면 모두 거두셔도 됩니다만.”

“지금 이 자리에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반호진이 얼굴을 굳혔다.

농담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경박한 발언이어서였다.

그런데 반호진의 질타 섞인 한마디에도 남궁광의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참고로 이건 제 생각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생각입니다.”

“이런 식의 대화는 불쾌합니다만.”

툭툭.

점점 더 싸늘해져 가는 반호진의 표정에 옆에서 조용히 대화를 경청하던 제갈혜정이 팔꿈치로 남궁광을 찔렀다.

친분을 쌓아도 모자랄 판에 점수를 잃고 있어서였다.

더욱이 지켜보는 눈과 귀가 많았다.

“기분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저 나름대로 편안하고 재미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 된 모양이네요. 혹시나 오해하실까 싶어 말씀드리는데, 저는 동생들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반 공자와 잘되었으면 해서 말을 꺼낸 겁니다. 단순히 아버지의 지시였다면 그냥 본론만 간략하게 말했을 겁니다.”

“사과는 받아들이겠습니다.”

담담하지만 진심이 담겨 있는 대답에 반호진은 남궁광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적어도 다른 의도가 숨어 있지는 않은 것 같아서였다.

물론 사과를 받아들였다고 해서 그의 기분이 풀어진 건 아니었다.

“사과를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행히 오해가 생기기 전에 푼 것 같네요. 아, 그리고 개인적으로 반 공자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따로 비무를 청하고 싶습니다.”

남궁광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혼례만 아니라면 당당하게 비무를 신청하겠으나 좋은 날을 앞두고 못난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 주고 싶지는 않았다.

특히나 옆에 서 있는 제갈혜정에게는 더더욱 말이다.

비록 애정이 있어 결혼하는 사이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남편으로서의 체면이 걸려 있었기에 이왕이면 반호진과 단둘이 따로 만나고 싶었다.

“비무라.”

“혹시 선우 공자나 서 공자를 먼저 이겨야 하는 겁니까?”

다른 이였다면 남궁세가의 이름 때문이라도 거절하지 못하겠지만 반호진은 달랐다.

소림사라는 배경도 있었지만 일단 본인의 실력이 압도적이었다.

그 어떤 후기지수도 비벼 보지 못할 정도였기에 거절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제가 그렇게 하라고 말한 것도 아니고요. 시간약속을 따로 잡아 보죠.”

“감사합니다!”

잠깐 고민하기는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비무요청을 받아 주자 남궁광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목소리가 높아졌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그렇게나 기뻐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럼 나중에 뵙지요.”

“예. 연락드리겠습니다, 아니 제가 찾아뵙겠습니다.”

한때는 질투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달랐다.

순수하게 반호진의 실력을 인정했고, 자신보다 강자라는 걸 받아들였다.

그렇기에 남궁광은 이곳이 그의 가문임에도 자신이 찾아간다는 사실에 자존심 상해하지 않았다.

단순히 질투하고 시기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다.

노력하고 이기려고 해야 미래는 달라졌다.

비록 지금은 그가 하수이지만 미래에는 정반대가 될 수도 있었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만든다.’

남궁세가는 언제나 천하제일이어야만 했다.

천하제일인이 되지 못하더라도 그 자리를 위협하는 강자여야 하는 게 바로 남궁세가의 주인이었다.

그렇기에 남궁광은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다른 이들하고도 인사를 나누기 위해 이동했다.

“저희 앉아도 되죠?”

“물론이죠.”

“안녕하세요. 하북팽가의 팽화영이라고 해요.”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소장주님. 하북팽가의 팽수영이에요.”

“처음 뵙겠습니다. 모용세가의 모용희수예요.”

남궁광과 제갈혜정이 물러나자 숭산에서부터 함께 온 세 여인이 합류했다.

몸단장을 마치고 이제야 연회장에 도착한 것이었다.

한껏 치장을 해서 그런지 세 사람 다 어제와는 모습이 완전 딴판이었다.

그걸 증명하듯 금호연은 인사하는 것도 잊은 듯 입만 쩍 벌렸다.

“저기요?”

특히 모용희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금호연의 모습에 팽수영이 샐쭉한 얼굴로 불렀다.

그러나 팽수영의 부름에도 금호연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소장주님.”

“아, 예! 죄, 죄송합니다! 금가장의 금호연이라고 합니다!”

반호진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금호연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했다.

이래저래 스쳐 지나간 적은 있어도 이렇게 정식으로 인사를 한 건 처음이었기에 금호연의 얼굴은 바짝 굳어져 있었다.

하지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았다.

방금 전처럼 모용희수만 쳐다보지는 않았던 것이다.

“말씀은 많이 들었어요.”

“하하. 영광입니다.”

“반 공자님과 돈독한 사이시라고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반 대협께서는 다르실 수도 있겠지만요.”

새침한 표정의 팽수영을 대신해 팽화영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자리도 아주 자연스럽게 반호진의 옆자리에 앉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반대쪽 옆자리는 모용희수가 조용히 차지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반 대협.”

“별말씀을.”

“어? 오빠가 이겼어요!”

은근슬쩍 반호진의 옆자리에 앉았던 모용희수가 환호성을 내질렀다.

사룡 중 한 명과의 비무에서 모용척이 승리해서였다.

박빙의 대결이었는데 간발의 차이로 모용척이 이기자 모용희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번 일로 다시 한번 바람이 불겠는데요? 반 대협께 간택을 받기 위해서요. 하하하.”

박수를 치며 좋아하는 모용희수를 훔쳐보며 금호연이 말했다.

그런 그의 목소리에는 감탄이 서려 있었다.

어떻게 보면 잊혀졌던 천재가 다시 비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제 선택을 받아서라기보다는, 원래부터 타고난 재능이 뛰어나서입니다. 정신 차리고 노력도 열심히 했고요.”

“하지만 반 대협을 만나지 못했다면 저렇게까지 성장하지 못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건 부인하지 못하겠네요.”

비무에서 승리하고서 포효하는 모용척을 바라보며 반호진이 씨익 웃었다.

왠지 모르게 자식을 키운 듯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거기에 선우방도 오 년 넘게 최고의 후기지수로 꼽히던 사룡 중 일인에게서 승리를 따내자 반호진은 직감했다.

드디어 네 사람에게 별호가 생기리라고 말이다.

“네 분의 비무를 보니까 피가 끓네요.”

“오늘은 안 돼. 비무하면 꾸민 게 다 무용지물이 되어 버려.”

“으음!”

팽수영이 단호한 어조로 말하자 팽화영이 침음을 흘렸다.

뒤늦게 치장한 사실이 떠올라서였다.

게다가 평소에는 한시도 떨어뜨려 놓지 않는 애병도 지금은 없었다.

“나중에 해, 나중에. 기회가 꼭 오늘만 있는 건 아니니까.”

“알았어.”

팽수영, 팽화영 자매의 대화를 들으며 반호진은 애써 기쁨을 참고 있는 선우방을 쳐다봤다.

머릿속으로는 친구와 동생들의 별호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사위에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시각에 하나의 인영이 반호진의 거처로 찾아왔다.

살짝 왜소한 체격을 지닌 인영이었는데 미리 약속이라도 되어 있는 것처럼 당당하게 반호진의 방을 두드렸다.

“반 공자님.”

“나가겠습니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으나 반호진의 목소리에서는 졸음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미리 연락을 받고 기다리고 있었기에 반호진은 가볍게 장포 하나를 걸친 후 문을 열었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예.”

열대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하인이 정중히 허리 숙여 인사한 후 몸을 돌리자 반호진은 소년을 따라 남궁세가를 가로질렀다.

횃불이 곳곳에 있긴 했으나 짙게 내려앉은 어둠을 모두 걷어내는 건 불가능했다.

그런데도 하인은 익숙하게 내원을 가로질러 목적지까지 반호진을 안내했다.

“이리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다. 그럼 저는 이만.”

할 일을 마친 하인이 싱긋 웃어 보인 후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본 반호진은 어둠으로 인해 까맣게 보이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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