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111화 (111/468)

제 37장. 나 이런 사람이야. -04

그때 밖에서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따로 하인이나 시비가 없었기에 방문자가 직접 자신이 왔음을 알린 것이었다.

“누구지?”

“오늘 따라 손님이 많이 오네.”

“그러게요. 제가 나가 볼게요.”

선우방과 모용척의 고개가 창문으로 향하자 서조운이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막내이기에 알아서 나선 것이었다.

모용희수도 동갑이긴 하나 엄연히 손님이었기에 서조운은 밖으로 나갔다.

“오랜만이에요, 서 공자님.”

“어?!”

서둘러 밖으로 나온 서조운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놀란 것이었다.

여기에 올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었기에 서조운은 인사를 해야 한다는 사실도 순간적으로 잊어버렸다.

“그 정도로 놀랄 일인가요? 제가 찾아온 게?”

“아, 죄송합니다. 당 소저께서 여기까지 오실 줄은 몰라서요. 지금 사천당가는 전쟁 중이지 않나요?”

“맞아요. 근데 저까지 전선에 나서야 할 정도는 아니에요. 아버지와 할아버지께서도 허락하셨고요. 사실 저를 이리로 보낸 게 두 분이시거든요. 여기가 더 안전할 수도 있다고요.”

“어,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서조운이 어리바리하게 대답했다.

아직 놀람이 가시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미간을 좁혔다.

“여기까지 오셨는데 안으로 모셔.”

“알겠습니다!”

밖으로 나오기는 했으나 서조운에게 결정권은 없었다.

어떻게 보면 그 역시 손님으로서 머물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반호진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서조운은 당서린을 이끌고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어머?”

“언니?”

서조운을 따라 방 안에 들어온 당서린이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방 안에 있어서였다.

모용희수가 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었기에 당서린은 진심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늘따라 손님이 많이 오네요.”

“느끼신 모양이네요.”

“혹시 따로 약속을 잡으신 겁니까?”

“그럴 리가요. 저희가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거든요.”

팽수영과 팽화영의 기척을 느낀 듯이 반호진이 말하자 당서린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사이가 나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

그저 오대세가에 속해 있기에 이리저리 자주 보는 사이일 뿐이었다.

“또 손님이 왔어요?”

“응. 팽수영 소저와 팽화영 소저.”

“허어.”

연이어 도착하는 여인들의 행렬에 서조운이 장탄식을 흘렸다.

모두 모이는 순간 분위기가 어떨지 예상이 가서였다.

당장 지금만 하더라도 모용희수와 당서린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너는 언제 왔니?”

“지금 왔어요. 근데 언니는 여기 와도 되는 거예요?”

“내가 못 올 곳에 온 건 아니잖아?”

“그건 맞는데 현재 사천당가의 사정이 좀 그렇잖아요.”

“평소와 다를 거 없어. 늘 그렇듯이 도전자를 상대해 주는 것뿐이니까.”

모용희수가 에둘러 말하는 것과 달리 당서린은 직설적으로 말했다.

구천문이 만만치 않은 상대인 건 맞지만 사천당가가 존망의 위협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더욱이 단독으로 싸우는 것도 아니었고.

그리고 자신이 당당한 모습을 보여야 가문이 얕잡아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당서린은 오히려 강하게 나갔다.

“개인적으로 별 탈 없이 정리되길 바라고 있어요.”

“고마워.”

중간중간 날 선 대화가 오고 가기는 했으나 그래도 두 여인은 나름 조절했다.

이곳에 두 사람만 있는 게 아니어서였다.

더욱이 신경 써야 하는 반호진이 같이 있기에 두 여인은 이쯤에서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방장께 전달할 서신이 있어서요. 전서구나 인편으로는 보내기 좀 민감한 내용인지 아버지께서 제게 직접 부탁하셨어요.”

“그렇군요.”

반호진은 깊게 파고들지 않았다.

명목상의 이유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굳이 그걸 캐물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이미 다들 알고 있기도 했고.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그사이 팽수영, 팽화영 자매가 반호진의 거처에 도착했다.

처음이 아니기에 익숙하게 방문한 두 자매는 당서린과 달리 자연스럽게 인사했다.

일행들과 한두 번 본 사이가 아니기에 편하게 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모용희수가 앉아 있는 걸 보고는 두 자매가 동시에 놀랐다.

“오랜만이에요, 언니들.”

“어, 안녕. 근데 언제 왔어?”

묘하게 언니라는 단어에 힘이 들어가 있는 듯했지만 팽수영은 그걸 느끼지 못했다.

그 정도로 팽수영은 모용희수의 등장에 놀랐다.

당서린이야 마주쳤기에 당연히 먼저 와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모용희수는 아니었다.

“좀 전에요. 춘절에도 오빠가 본가에 오지 않아서 제가 직접 왔어요. 엄마의 사자로서 왔다고나 할까요. 숭산에 가서 폐관수련하는 거 아니냐고 하시더라고요.”

“아, 그래?”

아들의 무심함에 대해서는 팽수영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팽만철이야 아들 두 명이 사고나 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생각하지만 엄마들의 마음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팽수영은 순간적으로 십분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정신을 번쩍 차렸다.

당서린도 그렇지만 모용희수 역시 동생의 경쟁자였다.

‘도착하자마자 장난 아니네.’

사천당가에서도 느꼈지만 역시 다들 생각하는 게 비슷했다.

하지만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꼭 반호진이 아니더라도 이곳에는 잠룡들이 수두룩했다.

“일단 앉으시죠. 날씨가 추운데 차라도 한 잔 하시죠.”

“감사합니다.”

“저는요?”

“당 소저도 앉으시죠.”

팽수영, 팽화영 자매에게만 자리를 권하는 것 같아 당서린이 끼어들었다.

다른 여자들보다 우위에 서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평등한 대우는 받아야 했기에 당서린은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챙겼다.

초대를 받진 못했어도 손님인 건 분명했기에 이 정도 요구할 자격은 있었다.

“고마워요.”

갑자기 손님들이 들이닥쳤음에도 반호진은 담담했다.

이런 일이 익숙하다는 듯이 말이다.

그냥 여자들만 모여도 당혹스러울 텐데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무림에서도 내로라하는 미녀들이었다.

무려 삼봉 중 두 명이나 찾아왔으나 반호진은 놀란 기색 없이 평온한 얼굴로 찾아온 순서대로 차를 따라 주었다.

찌릿!

대신 여인들이 매서운 눈빛으로 서로가 서로를 노려봤다.

상대방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반호진을 찾아왔는지 너무나 잘 알았기에 경계하는 것이었다.

-어후. 장난 아니네.

-저는 좋은데요?

-이 불편한 기류가?

-저 때문인 건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저한테 적대적인 것도 아니고.

-속도 좋다.

반호진을 대신해 이 상황의 곤혹스러움을 얼굴로 표현하고 있던 선우방이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아무리 자기 일이 아니라지만 너무 편하게만 생각하는 것 같아서였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방이 형. 이런 자리가 흔치는 않잖아요? 어디 가서 이런 조합을 보겠어요?

-사천당가에서도 봤잖아?

-에이. 남자들만 있는 것보다 가끔씩은 이렇게 모여 있는 게 좋죠. 이륭이 형도 내색은 안 하지만 입가가 씰룩이고 있잖아요. 척이 형이야 원래 자기 잘난 맛에 사는 형이라 삼봉이 있든 없든 신경 쓰지 않지만요.

-쟤도 참 대단해. 일관성이 있어.

반호진만큼이나 무덤덤한 얼굴로 차를 홀짝이는 모용척을 보며 선우방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저렇게 일관적이기도 쉽지 않다는 걸 잘 알아서였다.

-근데 팽수영 소저의 눈빛이 심상치 않은데요?

-응? 설마 자매의 싸움, 경쟁, 그런 건가?

-형도 참…….

서조운이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선우방을 쳐다봤다.

인생의 대부분을 절에서 산 반호진도 눈빛이 귀신같은데 반면에 속세에서 평생을 살아온 선우방은 너무나 둔해서였다.

심지어 그가 알아차릴 정도인데도 선우방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뭐야? 지금 그 눈빛은? 매우 건방진 눈빛인데?

-건방진 게 아니라 한심하다는 눈빛이었는데요?

-허어.

선우방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반호진에게는 그렇게 깍듯하고 공손한 서조운이지만 그에게는 달랐다.

특히 이럴 때 말이다.

-어쨌든 저는 형 응원해요.

-뭐라는 거야?

도무지 알 수 없는 말만 해 대는 서조운을 보며 선우방이 눈썹을 잔뜩 찌푸렸다.

그러나 정작 서조운은 그를 쳐다보고 있지 않았다.

반호진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당서린과 팽화영을 힐끔힐끔 훔쳐봤다.

-정말 이럴 거야?

-뭐가?

-나 좀 도와줘야 하는 거 아냐?

-내가 도와준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있을까? 어차피 결정은 형님께서 하시는 건데. 내가 말한다고 형님이 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하소연하듯 말하는 모용희수의 전음에 모용척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반호진의 성격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이러는 게 그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상했다.

-그럼 손 놓고 가만히 있어?

-오히려 그게 더 괜찮을 수도 있어. 역발상이라는 말 몰라?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흐으음.

모용척은 아무렇게나 지껄인 말이었는데 의외로 모용희수는 솔깃한 표정을 지었다.

들어 보니 또 아예 헛소리는 아닌 듯해서였다.

특히 당서린이 사천당가에서보다 더욱 저돌적이었기에 어쩌면 얌전히 있는 게 자신을 더 돋보이게 만들 수도 있었다.

-안 되는 일은 어떻게 해도 안 돼. 그러니 가끔은 포기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야. 모든 걸 다 얻을 수는 없으니까.

-반 공자님 말씀이지?

-……어떻게 알았어?

모용척의 두 눈이 확 뜨여졌다.

떠보는 게 아니라 확신이 담긴 어조였기에 놀란 것이었다.

-오빠가 그런 말을 떠올릴 리가 없잖아?

-은근히 자존심 상하네.

시큰둥하던 모용척이 미간을 좁혔다.

모용희수에게 자신이 읽혔다는 게 자존심을 건드려서였다.

하지만 아직 모용희수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참. 아빠가 이 말도 전하랬어. 슬슬 혼처를 알아보는 중이라고. 혹시 마음에 드는 처자가 있으면 미리 말하래. 제일 빠른 전서응을 통해서.

꿀꺽.

생각지도 못한 모용궁의 전언에 모용척의 얼굴이 굳어졌다.

농담이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어서였다.

사실 지금까지 그는 이 상황이 딴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여자에 대해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무공수련이 재미있어서 거기에 열중하고 있었다는 게 맞았다.

그런데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게 자신의 일이 되자 모용척은 순간적으로 머리가 하얘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모용희수는 즐겼다.

-장유유서라고, 당연히 오빠가 먼저 가야 하지 않겠어?

거기에 모용희수는 결정타를 넣었다.

확인사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마디에 모용척의 눈빛이 멍해졌다.

“넌 왜 그래?”

“아, 아닙니다.”

“뭔 일 있어?”

“어, 그게…….”

심상치 않은 모용척의 표정에 반호진이 물었다.

조금 전과는 표정이 극과 극이어서였다.

그런데 반호진이 관심을 보이자 모두가 모용척을 쳐다봤다.

“개인적인 일인가 보네. 그럼 나중에 따로 얘기하는 걸로.”

“예.”

눈치껏 알아채는 반호진의 말에 모용척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머릿속에는 여전히 모용희수의 말이 각인되어 잊히지가 않았다.

‘일이 재미있게 흘러가네.’

한편 반호진은 당서린의 등장에 이어 팽수영과 팽화영까지 나타나자 속으로 실소를 흘렸다.

자신뿐만 아니라 일행들에게까지 마수를 뻗치려고 한다는 걸 단박에 알아차려서였다.

그런데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능력 있는 남자에게 끌리는 건 모든 여인들의 본능이었다.

또한 부모 마음이라는 게 똑같았다.

이왕이면 비슷한 수준의 남자에게 시집보내는 것보다는 더 나은 남자와 맺어 주고 싶은 게 부모들의 마음이었다.

‘슬슬 결혼적령기가 되기는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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