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7장. 나 이런 사람이야. -01
금가장주가 담담하게 말했다.
아무리 자식이라도 죄를 지었다면 벌을 받아야 했다.
물론 아무도 모르게 했다면 신경 쓰지 않았을 터였다.
그 또한 어떻게 보면 능력이었으니까.
하지만 금상룡은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대체자가 없다면 모를까 금호연이라는 훌륭한 대체자가 있기에 금가장주는 결정을 내리는 데 망설이지 않았다.
“다행이네요. 만약 장주님께서 제게 선처를 바라시면 어떡하나 했는데.”
“먼저 선을 넘은 건 상룡이니까요. 오히려 저는 반 대협께서 배려해 주신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금가장주가 씁쓸한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첫 번째 자식이지만 말했던 대로 금상룡은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그러니 자신이 한 행동에 따른 결과를 받아들이고, 책임을 져야 했다.
상인도 장사에 실패하면 손해를 입듯이 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금가장의 일 공자이지 않습니까.”
“지금부터는 아닙니다. 그리고 최종 승자는 호연이가 되었지요.”
꿀꺽!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금호연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설마 하니 이 자리에서 이 말을 할 줄은 몰라서였다.
“축하드립니다.”
“자, 장주님?”
반호진이 고개를 돌려 금호연을 쳐다봤다.
그러나 금호연은 깜짝 놀란 얼굴로 금가장주를 바라봤다.
직접 듣고도 믿기지가 않은 모양이었다.
“오늘부로 네가 소장주다.”
“헙!”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는 금가장주의 말에 금호연이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막지 않으면 비명이 터져 나올 것 같아서였다.
“축하드려요!”
“이제는 금 공자님이 아니라 소장주님이라고 불러야겠네요.”
“축하드립니다.”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금호연의 모습에 서조운과 선우방, 정이륭이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금호연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도전하기는 했으나 사실 모두가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여겼었다.
워낙에 금상룡의 지지 기반이 탄탄해서였다.
그런데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걸, 심지어 그 스스로도 힘들 거라고 생각했던 걸 이루어 내자 금호연은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치솟았다.
동시에 글썽거리는 눈으로 반호진을 바라봤다.
“감사합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금호연은 가장 먼저 반호진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어찌 보면 그를 소장주로 만들어 준 게 바로 반호진이었다.
만약 반호진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그는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금호연은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반호진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후 다른 일행들과도 눈을 마주쳤다.
“앞으로도 제 아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한 건 별로 없습니다만.”
“허허허허.”
“제가 아니어도 혼자서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반호진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부탁하는 것과 동시에 금가장주가 염려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서였다.
그러나 반호진은 애초에 그럴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반호진이 바라는 건 딱 한 가지였다.
“그럼 힘들 때만이라도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그때 가 봐서 고민해 보겠습니다. 제 꿈이 무위도식 하는 거라서요.”
“예?”
금가장주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상상도 못 한 말에 놀란 것이었다.
“바쁘게 살기보다는 한가하고 평화롭게 사는 게 제 꿈입니다.”
“허어. 진심이시군요.”
“예. 근데 이게 정말 이루기 힘든 꿈입니다. 안타깝게도 말이죠.”
금가장주가 실소를 흘렸다.
다른 이도 아니고 반호진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몰라서였다.
한창 패기 가득할 나이고, 실력도 뛰어나기에 당연히 천하제일인이 꿈일 줄 알았는데 그와는 정반대의 꿈에 금가장주는 연신 헛웃음이 나왔다.
“그게 꿈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개인마다 꿈은 각자 다르니까요.”
이유를 설명하면 납득이 되겠지만 반호진은 그걸 말할 수는 없었다.
아니, 말해도 믿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렇기에 반호진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아, 그리고 상룡이는 반 대협의 처분에 따르겠습니다. 상룡이는 상인이지만 그렇다고 강호의 법도에 자유로운 건 아니니까요.”
“진심이시군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모든 행동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정하다고 여기실지 모르나 이 자리는 냉정하고 냉철해야지만 앉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상룡이의 아버지이기에 앞서 저는 금가장주입니다. 누구보다 금가장을 생각해야 하는 사람이지요.”
“이해합니다.”
수장으로서의 결단이라는 걸 반호진도 알았다.
만약 그가 금가장주였어도 똑같은 선택을 내렸을 터였다.
가슴이 아프고, 슬프지만 자식보다는 금가장이 더 중요했다.
또한 후계자가 없는 것도 아닌 만큼 애초에 답은 나와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건, 고통 없이 보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원래부터 후환을 남겨 놓을 생각이 없었지만 그래도 금가장주가 이렇게 말해 주니 반호진도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또 앞으로 소장주로서 활동할 금호연을 위해서라도 금상룡은 확실하게 처벌하는 게 맞았다.
‘마무리 짓고 바로 돌아가면 되겠네.’
울먹거리는 금호연과 그런 그를 다독이는 일행들을 보며 반호진은 피식 웃었다.
저 모습을 보니 이제는 진짜 많이 친해진 것 같아서였다.
스윽.
한편 금가장주는 그런 반호진을 조용히 주시했다.
사실 이 자리를 마련한 건 반호진이라는 인물을 직접 보고 싶어서였다.
다른 이를 통해서 듣고, 파악하는 게 아니라 그가 직접 반호진을 만나 보고 싶었다.
사람들을 오래 상대했기에 나름 관상을 잘 보기도 했고 말이다.
‘무조건 같이 가야 해.’
관상은 단순히 얼굴만 보는 게 아니었다.
눈빛과 안색 등등 많은 걸 같이 봐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금가장주는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자식인 금호연뿐만 아니라 금가장을 위해서라도 반호진과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이다.
‘지금보다 더 큰 인물이 될 거야.’
금가장주는 확신했다.
지금도 강호를 진동시키는 고수이지만 미래에는 더욱 대단한 인물이 될 게 분명하다고 말이다.
그러니 더욱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금호연과 금가장, 그리고 그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금가장에서의 일을 마무리 짓고 숭산으로 돌아온 반호진은 전리품을 확인했다.
금상룡에 대한 일이 끝났으니 이제는 전리품을 분배할 차례였다.
법무나 팔대호법은 딱히 바라는 게 없었기에 반호진은 아홉 명에게 줄 걸 담현에게 넘길 생각이었다.
“이제 남은 건 우리 애들뿐이네.”
금호연이 보낸 무사들에 대한 몫은 이미 대가를 치른 상태였다.
무인들이지만 실제로 전투에 참여하지는 않았기에 반호진은 딱 일한 만큼의 삯만 지불했다.
원래는 안 받겠다고 했으나 노동에 대한 대가는 확실해야 했기에 반호진은 억지로 쥐여 주었다.
똑똑똑.
“우리들 왔어.”
“들어와.”
문 너머에서 들리는 선우방의 목소리에 반호진이 고개를 돌렸다.
이윽고 익숙한 경첩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선우방을 위시로 서조운, 모용척, 정이륭이 안으로 들어왔다.
“해가 바뀌어서 그런가. 방이 좀 쌀쌀한 거 같아요. 제가 극양지기 좀 흩뿌릴까요?”
“겨울인데 당연히 추워야지. 안 추우면 그게 겨울인가. 그리고 한서불침이라 괜찮아.”
“저도 알고는 있는데, 그래도 너무 추운 것보다는 따뜻한 게 좋잖아요. 헤헤.”
당장 의자만 하더라도 냉기가 가득했다.
엉덩이가 닿기 무섭게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냉기에 서조운이 넉살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확실히 산은 산이야.”
“올 겨울은 작년보다 더 추운 거 같아요.”
“눈도 많이 오는 것 같고.”
창문이 굳게 닫혀 있었으나 전문가가 지은 집이 아니라서 그런지 우풍이 좀 있었다.
지금만 하더라도 창문 틈새로 찬바람이 들어왔기에 선우방은 몸을 한 차례 떨며 반호진이 따라 주는 차를 받았다.
뒤이어 정이륭도 두 손으로 공손히 차를 받고서는 한 모금 들이켰다.
“작년 겨울에는 다들 각자의 집에 있었잖아. 숭산에서 겨울을 보내는 건 처음이니까 다른 게 당연하지.”
“아.”
반호진의 말에 네 사람의 눈이 동그래졌다.
생각해 보니 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서였다.
“일단 다들 이거 하나씩 받아.”
툭.
별것도 아닌 사실에 놀라는 네 명의 모습에 반호진이 피식 웃으며 미리 준비해 두었던 작은 목함을 꺼내 각자의 앞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모두가 눈을 껌뻑이며 반호진과 목함을 번갈아 쳐다봤다.
“이게 뭐예요?”
“소림사와 금가장에는 삯을 치렀지만 우리들은 아니잖아. 다 함께 얻은 것들이니 마찬가지로 분배해야지. 물론 활약도에 따라 차등은 있겠지만.”
서조운은 물론이고 선우방과 모용척, 정이륭이 은근슬쩍 서로를 쳐다봤다.
목함 안에 뭐가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보다 이걸 받아야 하나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차등이라고 말하기는 했으나 사실 반호진을 제외하면 넷의 활약은 고만고만했다.
“일단은 열어 보자. 뭐가 있는지는 봐야지.”
“그럴까요?”
먼저 운을 떼는 선우방의 말에 서조운이 냉큼 대답했다.
사실 그도 궁금하긴 했다.
정이륭과 모용척도 마찬가지라는 듯이 조심스럽게 목함에 손을 뻗었다.
달칵.
손바닥 위에 딱 들어오는 목함을 열자 은은하게 쌉싸래한 향이 올라왔다.
약초 냄새와 비슷한 향에 선우방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환약 같은데 정확하게는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기에 선우방은 자연스레 반호진을 쳐다봤다.
“백독환(百毒丸)이야.”
“설마 사천당가의 백독환?”
“맞아.”
“이걸 어떻게? 아니, 암월교의 비밀금고에 이게 있었다고?”
선우방의 두 눈이 휘둥그레 졌다.
그리고 그건 모용척도 마찬가지였다.
방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표정으로 모용척은 두 눈을 부릅뜨고서 반호진을 쳐다봤다.
반면에 백독환에 대해 잘 모르는 서조운과 정이륭은 세 사람의 눈치만 봤다.
“나도 놀랐어. 천독환만큼은 아니지만 백독환도 외부에 나오는 경우가 극히 드무니까. 당가주의 허가가 있어야지만 외부로 유출되는 물건이기도 하고.”
“근데 어떻게?”
“나도 모르지. 어떤 경로로 얻게 되었는지까지는 적혀 있지 않으니까. 다만 알아본 바에 의하면 진품이야.”
“허어.”
소림사 역시 연단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무림의 영약이라 불리는 대환단과 소환단을 제조하기도 했고.
그런 만큼 진품을 알아볼 역량은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선우방은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다만 놀랐다.
암월교가 네 개나 되는 백독환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이걸 아무렇지 않게 내놓은 반호진이 말이다.
“저기. 백독환이 뭔가요?”
“영약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가치만 따지면 그에 준할 정도라고 할까. 어떻게 보면 영약이라고도 할 수 있고. 독에 한정해서는. 이걸 먹으면 백독불침지체가 될 수 있어. 정확히 말하면 완벽하게 흡수했을 경우.”
“헉!”
선우방과의 대화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듯하자 조심스럽게 물었던 서조운이 경악했다.
백독불침지체로 만들어 준다는 말에 놀란 것이었다.
동시에 선우방과 모용척이 왜 그렇게 놀랐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야 축융신공이라는 희대의 열양공을 익혔기에 상대적으로 독에 내성이 있다지만 다른 이들은 아니었다.
그리고 내성이 있다고 해서 독에 자유로운 건 아니기에 백독환을 먹어서 나쁠 건 없었다.
오히려 좋으면 좋았지.
“정말 이걸 저희에게 주시는 겁니까?”
마른침을 삼키는 서조운을 대신해 정이륭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반호진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조금 많이 과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암월교와 목숨을 걸고 싸웠는데 이 정도는 당연히 받아야 하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