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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재림-102화 (102/468)

제 35장. 징벌(懲罰). -03

갑작스러운 기습이었으나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단순히 시간을 버는 것을 넘어 삼급살수들과 이급살수들은 본인의 역량 이상을 발휘했다.

죽어 가는 와중에도 수중에 가지고 있던 연막탄과 독탄을 일제히 터트렸다.

덕분에 암월교주는 보다 수월하게 몸을 숨길 수 있었다.

스스슥!

그뿐만 아니라 접근하던 특급살수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다.

암습을 하기에 최적의 요건이 갖추어졌던 것이다.

“어떻게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지?”

화르르륵!

한데 그때 한쪽에서 거대한 불꽃이 일어났다.

서조운이 극양지기를 내뿜은 것이었다.

과연 상극답게 서조운의 쌍장에서 내뿜어진 극양지기는 독연을 모조리 증발시켰다.

부우우웅!

거기에 강풍이 가세했다.

선우방과 정이륭, 모용척이 각각 검풍과 권풍을 일으켜 연막탄이 일으킨 연기와 독연을 일제히 날려 버린 것이었다.

‘저, 저놈들은?!’

그로 인해 법무와 팔대호법은 물론이고 반호진 일행도 훤히 드러났다.

더해서 달려들던 살수들도 말이다.

그 결과 삼급살수들과 이급살수들은 순식간에 전멸했다.

파아앗!

하지만 하급살수들의 죽음은 무의미하지 않았다.

그들의 희생 덕분에 일급살수들이 무사히 접근할 수 있어서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공격이 성공한 건 아니었다.

퍼퍼퍼퍽!

밤이었다면 충분히 위협적이었겠으나 안타깝게도 현재는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시각이었다.

제아무리 절륜한 은신술을 익히고 있어도 한낮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점을 법무와 팔대호법은 놓치지 않았다.

‘어째서 독연에 멀쩡한 거지?’

이급살수, 삼급살수들과 마찬가지로 일급살수들도 무참히 베어 버리는 모습에 지켜보던 암월교주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연막탄이 통하지 않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독탄은 아니었다.

일반 양민이 무인도 사냥할 수 있게 해 주는 게 독이었는데 적들 중 그 누구도 중독된 모습을 보이지 않자 암월교주의 동공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퍽! 퍼퍽!

그러는 사이 부하들의 숫자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법무와 팔대호법만으로도 암담한데 거기에 서조운, 선우방, 모용척, 정이륭이 가세하자 그 기세가 대단했다.

누구도 그들에게 상처는커녕 근처에 다가가지도 못했다.

정작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이라 할 수 있는 반호진은 나서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졌다.’

참전하기는커녕 팔짱을 낀 채로 도도하게 서 있는 반호진의 모습을 확인한 암월교주는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아직 특급살수들이 남아 있지만 구월의 경우를 보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더욱이 지금의 환경은 암월교에게 너무나 불리했다.

밤이었다면 상황이 달랐겠으나 중요한 건 가정이 아니라 현재였다.

‘일단 물러난다. 특급살수들만 있다면 재기할 수 있어. 그리고 복수도 할 수 있다.’

암월교주는 냉정하게 생각했다.

모든 기반을 버려두고 도주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뼈아팠으나 우선은 살아야 했다.

복수도 살아 있어야 가능했기에 암월교주는 일보전진을 위한 이보후퇴를 선택했다.

대신 나중에 이 빚을 배로 갚아 줄 생각이었다.

-모두 물러난……!

“어딜 도망치려고?”

결정을 내리기 무섭게 암월교주는 아홉뿐인 특급살수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아니, 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반호진의 시선에 그는 말을 끝까지 맺지 못했다.

분명 은신한 상태인데도 반호진이 그를 정확히 보고 있어서였다.

“아직 특급살수들이 안 나온 거 같은데.”

“핵심전력만 가지고 빠져나가려고? 그렇게는 안 되지!”

반호진의 말에 서조운과 선우방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동시에 모용척과 정이륭도 움직였다.

도주를 막기 위해 각자 한 방위를 맡은 것이었다.

퍼퍼퍼펑!

시야를 차단하기 위해 살수들이 연막탄과 독탄을 쉴 새 없이 터트렸으나 소용이 없었다.

미리 독탄을 연구해 해독약을 먹은 상태였고, 혹시 몰라 피독주도 다들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꼭 두 가지가 아니더라도 독연을 막아 낼 방법은 많았다.

후우우웅!

네 사람은 동시에 검풍과 장풍을 일으켰다.

바람을 이용해 독연과 연기를 하늘 위로 날려 보냈다.

저벅저벅.

그 사이로 반호진이 걸어갔다.

뒷짐을 지고서 암월교주가 숨어 있는 곳을 향해 다가갔다.

쉬이익!

무방비나 다름없는 상태로 암월교주에게 다가가는 반호진을 향해 특급살수 중 한 명인 팔월(八月)이 등 뒤에서 단검을 꽂았다.

반호진의 등 뒤에서 귀신같이 나타나 독이 잔뜩 발라져 있는 단검을 찔렀다.

‘잡았다!’

등짝을 단숨에 꿰뚫은 광경에 복면을 쓰고 있던 팔월의 입가에 환희가 맺혔다.

아무리 대단한 고수라도 등에 구멍이 뚫리면 죽는 건 매한가지였다.

더구나 그가 노린 곳은 심장이 있는 부근이었기에 꿰뚫린다면 무조건 즉사였다.

그런데 환희에 찼던 팔월의 두 눈이 일순 크게 흔들렸다.

스륵.

눈앞에 있는 반호진의 육신이 안개처럼 흩어져서였다.

동시에 그는 손맛이 없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공격이 성공했다는 사실에 너무 기뻐한 나머지 가장 중요한 걸 놓친 것이다.

덥석.

그래서 팔월은 느끼지 못했다.

등 뒤로 접근한 반호진을 말이다.

그리고 그로 인한 대가는 냉혹했다.

콰아앙!

팔월의 뒷목을 움켜쥔 반호진은 그대로 팔월을 내려찍었다.

우악스럽게 땅바닥에 박아 버리자 팔월의 하반신이 작살났다.

허리가 기괴하게 꺾이며 팔월이 입에서 시뻘건 피를 토했다.

-피해라!

그 모습을 본 것과 동시에 암월교주는 비명과도 같은 명령을 내렸다.

팔월이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고 당하는 모습을 보자 암월교주는 알 수 있었다.

적어도 지금은 반호진을 쓰러뜨릴 수 없다고 말이다.

“미안한데, 그쪽이 갈 수 있는 곳은 저승밖에 없어.”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는 특급살수들을 미끼 삼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주하는 암월교주를 주시하며 반호진이 땅을 박찼다.

그러자 그의 신형이 엿가락처럼 늘어졌다.

절정에 달한 궁신탄영이었다.

암월교주의 경신술도 빠르고 은밀했지만 순수하게 속도만 따지자면 반호진이 몇 수 위였다.

“흐읍!”

그리고 그걸 암월교주도 느꼈다.

보지 않아도 반호진이 지척까지 접근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도대체 어떻게 자신의 위치를 파악한 건지 너무나 궁금했으나 지금은 안전하게 빠져나가는 게 최우선이었다.

그렇기에 암월교주는 이를 악물고서 단전의 모든 공력을 용천혈로 보냈다.

파아아앙!

암월교주의 신형이 용수철처럼 쏘아졌다.

이미 들킨 것 그는 양자택일을 했다.

은신보다는 속도에 중점을 두었던 것이다.

투욱.

하지만 안타깝게도 혼신의 힘을 다한 도주는 실패했다.

전력을 다해 경신술을 펼쳤음에도 반호진을 떨쳐 내지 못했던 것이다.

쌔애액!

어깨에서 느껴지는 섬뜩한 느낌에 암월교주는 반사적으로 반대쪽 팔을 크게 휘저었다.

암월교의 주인답게 순순히 당해 주지는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아래에서 솟구치는 공격이었기에 반호진으로서는 뜬금없이 단검이 솟구치는 것처럼 보였다.

쉬아아앗!

그리고 암월교주의 공격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역수로 쥔 단검이 허공을 가를 걸 예상하고 몸을 반회전 시키며 또 다른 단검을 휘둘렀다.

쌍검술에 일가견이 있는 그답게 단검이 그리는 궤적은 매서웠다.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반호진의 심장과 단전을 노렸다.

“꼴에 암월교주란 말이지?”

등 뒤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닌데 정확히 단전과 심장을 노리고서 파고드는 두 자루의 단검을 보며 반호진이 피식 거렸다.

어깨에 손이 닿은 그 짧은 순간에 그의 위치를 파악하고서 반격하는 것임을 눈치채서였다.

그러나 기민한 반격이라고 해서 무조건 성공하는 건 아니었다.

휘이익!

시간차를 두고 휘둘러진 두 자루의 단검이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정확히 반 보 물러나는 것으로 반호진이 쉽게 암월교주의 공격을 피해 낸 것이었다.

딱 필요한 간격만 움직인 반호진은 두 자루 단검이 스쳐 지나가기 무섭게 손을 뻗었다.

별다른 초식을 펼친 게 아니라 단순히 멱살을 잡기 위해서였다.

“흥!”

하지만 암월교주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따라잡히기는 했으나 그의 경신술이 수준 낮은 건 아니었다.

단지 반호진의 움직임이 예상을 뛰어넘었을 뿐.

그리고 승패는 무공의 고하만으로 결정되지 않았다.

퍼엉!

종이 한 장 차이로 반호진의 손을 피해 낸 암월교주가 연막탄을 사용했다.

소매를 흔들어 숨겨 두었던 연막탄을 터트린 것이었다.

“또 연막탄이냐.”

벌써 몇 번이나 실패한 연막탄을 또 사용하자 반호진이 비아냥거렸다.

성공했다면 모르겠으나 독탄과 연막탄은 지금까지 전부 다 실패했었다.

그런데 또 연막탄을 터트리자 반호진은 어이가 없었다.

한데 그때 미세한 소성이 반호진의 고막을 때렸다.

“지저분한 짓을 하네.”

“칫!”

짙은 연기 사이로 바늘처럼 가늘고 짧은 암기가 은밀하게 쇄도했다.

연막탄으로 시야를 차단한 후 혀 밑에 보관하던 독침을 날린 것이었다.

나름 비장의 한 수였는데 반호진이 지풍으로 튕겨 내자 암월교주는 다시 몸을 돌려 내뺐다.

이번에는 그가 직접 만든 특제 연막탄을 사방에 터트리면서 말이다.

슈하핫!

거기다 이번에는 방해꾼까지 출몰했다.

암월교주가 위기에 빠지자 특급살수 중 한 명인 오월(五月)이 지둔술로 반호진의 발밑까지 접근한 후 기습했다.

쨍쨍한 햇빛으로 인해 은신술을 펼치기가 용이하지 않자 아예 땅 속에서 이동해 접근한 것이었다.

“너희도 참 한결같다.”

빠각!

실력 차이를 인정해서 그런지 하급살수건 특급살수건 사용하는 무기에는 모조리 독이 발라져 있었다.

격차를 독으로 상쇄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월의 기척은 진즉부터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반호진은 벼락같이 솟구치는 오월의 단검을 슬쩍 피한 후 발바닥으로 정수리를 찍었다.

쿵!

오월의 단단한 두개골에 자신의 발자국을 남겨 준 반호진은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짙은 회색 연기가 사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으나 반호진의 시야를 가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 반호진은 꽁지가 빠지게 도망치는 암월교주의 뒷모습을 보며 검을 뽑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검을 좌에서 우로 그었다.

서걱.

흔하디흔한 검기 하나 서리지 않은 검이었으나 결과는 놀라웠다.

전심전력을 다해 도주하던 암월교주의 두 다리가 깔끔하게 베어졌던 것이다.

심지어 절단된 무릎에서는 피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끄아아악!”

대신 암월교주의 절규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출혈은 없다고 해서 고통이 없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놀라운 건 고통에 신음하면서도 암월교주가 두 팔을 이용해 엉금엉금 기어간다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반호진에게서 멀리 떨어지고 싶다는 듯이 암월교주가 이를 악물고 두 팔을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스극.

하지만 그 움직임도 얼마 가지 못했다.

팔로 도망친다면 그 팔을 없애 버리겠다는 듯이 반호진이 어깻죽지에서부터 두 팔을 잘라 버렸다.

말하는 데 있어 사지가 꼭 필요한 건 아니기에 반호진은 과감하게 손을 썼다.

콰아앙! 꽝!

어느 정도 정리된 이쪽과 달리 다른 곳에서는 여전히 치열한 공방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법무나 팔대호법 쪽은 아직 여유가 있었는데 선우방과 동생들은 아니었다.

초반에야 기습의 묘를 살려서 암월교를 밀어붙였는데 점점 달려드는 숫자가 늘어나자 네 사람도 지칠 수밖에 없었다.

인해전술에는 넷도 별수 없었던 것이다.

“이대로 무너질 줄 알고?”

“차하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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