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장. 징벌(懲罰). -01
구월의 동공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암월교 소속이 아니라면 절대 알지 못할 두 글자가 반호진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구월의 눈동자에는 경악이 떠올라 있었다.
“처음부터 나를 노렸다는 것도 알고 있어. 충분히 이 공자를 죽일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지. 왜 그랬을까? 애초에 목표가 그가 아니었던 거지. 사실 후계 다툼에서 가장 방해가 되는 건 이 공자가 아니라 나일 테니까. 그러니 치워 버릴 생각이었던 거지. 이 공자는 금가장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죽일 수 없지만 나는 아니니까. 안 그래?”
꿀꺽!
모든 계획을 훤히 다 알고 있는 반호진의 모습에 구월은 마른침을 삼켰다.
듣고 있어도 믿기지가 않아서였다.
“형님!”
“무슨 일이야!”
그때 반호진의 거처 반대편에서 우당탕 거리는 소리와 함께 일행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다들 놀래서 헐레벌떡 뛰어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금호연과 호위무사들도 있었다.
“살수?”
“어, 어떻게 여기까지?”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살수들의 모습에 일행들은 물론이고 금호연도 대경했다.
설마 하니 소림사에서 암살을 시도할 줄은 몰라서였다.
그것도 보아하니 그가 아니라 반호진을 노린 듯하자 금호연의 동공이 흔들렸다.
“암월교의 살수들이야.”
“암월교라면 살문(殺門) 다음으로 꼽히는 곳 아냐?”
“맞아. 규모만 보면 살문보다 더 크지. 숫자도 많고.”
“근데 왜 널?”
서조운이나 정이륭은 암월교에 대해 몰랐지만 선우방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선우방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금호연이 아니라 반호진을 노리자 의아했던 것이다.
“내가 가장 걸림돌이니까. 나만 사라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한 거지.”
“그거야 그렇지만, 소림사의 제자를 암살한다고? 아무리 암월교가 중원에서 두 번째에 꼽히는 살수문파라고 하지만 소림사와 비교할 수는 없지. 게다가 여기는 소림사와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인데?”
선우방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건 모용척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암월교가 대단하다고 하나 소림사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게다가 그냥 소림사의 제자도 아니고 반호진은 방장의 막내제자였다.
그런 이를 대놓고 노렸다는 게 선우방과 모용척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데 반호진은 둘의 반응에 오히려 고개를 저었다.
“들켰으니까 큰 문제가 된 거지. 만약 들키지 않고 살행에 성공했다면? 과연 암월교의 소행을 알 수 있었을까?”
“어?”
“만고불변의 진리가 있지.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
모두의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자신들이 가장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었다.
“맞습니다. 당장 저만 하더라도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어디인지 알아봤지만 알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거기다 더 충격적인 건, 제가 암월교에 의뢰를 넣었다는 겁니다.”
금호연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단순히 그냥 깨문 게 아니라 피가 흘러나왔다.
자신이 얼마나 멍청한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아서였다.
거금을 사용했음에도 실패할 수밖에 없던 이유를 알았기에 금호연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상대에 대해 정보가 전혀 없었던 상황이지 않습니까. 살문은 아무래도 알려진 게 극히 드물다 보니 선택지는 암월교밖에 없었고요.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를 얼마나 비웃었을까요.”
금호연의 눈이 붉어졌다.
암월교주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금호연은 노기를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농락당했다고 흥분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적이 누구인지 알았으니 이제는 복수를 할 차례였다.
“근데 암월교의 살수인 건 어떻게 알았어? 살수들은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발설하지 않게 교육을 받는데. 어떤 곳은 아예 혀를 잘라 낸다고 하던데.”
“혀를 잘라 내면 전음을 못 해. 혜광심어(慧光心語)의 수준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암월교의 살수들은 신체에 문신을 해. 다른 살수문파들도 마찬가지고. 보통은 보이지 않는 곳에 하는 편이지.”
“아.”
선우방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깻죽지 부분의 옷이 왜 뜯겨져 있나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다.
반면에 금호연은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반호진을 쳐다봤다.
암월교에 대해서 꽤나 상세히 알고 있어서였다.
“특급살수라서 제압해 두긴 했는데, 아마 알아낼 수 있는 건 없을 거야.”
“보통의 방법으로는 힘들겠지. 고문도 통하지 않을 테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요! 형님이 암습을 당했는데!”
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선우방과 달리 서조운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다른 이도 아니고 반호진을 암살하려고 했었다.
그러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복수를 해야 했다.
할 수 있다면 아예 뿌리를 뽑아 버리고 싶었다.
스윽.
그런 감정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서조운은 금호연을 쳐다봤다.
금가장의 정보력이라면 암월교의 위치에 대해 알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죄송하지만 저도 암월교의 위치는 잘 모릅니다. 청부하는 방법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청부하는 척하면서 뒤를 추적하면 되지 않을까요? 꼬리부터 밟아 가는 거죠.”
“힘들 겁니다. 저도 암월교를 갈아먹고 싶지만, 현재까지 암월교의 본부는커녕 분타의 위치도 드러난 적이 없습니다. 암월교가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적도 많아졌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성세를 과시한다는 건 누구도 복수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으음!”
서조운만큼이나 금호연 역시 암월교를 분쇄하고 싶었다.
하지만 암월교의 위치를 알 수 없다면 복수 또한 불가능했다.
더구나 상대는 살수들이었다.
몸을 숨기는 데는 이골이 난 이들이기에 찾는 건 더더욱 쉽지 않았다.
“위치를 알아낼 방법이 있다면요?”
“예?”
“금가장만으로는 힘들지도 모르죠. 하지만 거기에 개방과 하오문이 합세한다면요?”
금호연의 동공이 확대되었다.
천하에서 제일가는 정보조직 세 곳이 합친다면 제아무리 암월교라도 완벽히 숨는 건 불가능했다.
몸을 숨길 수는 있어도 먹지 않을 수는 없었다.
살수들도 사람이었기에 식량은 필수였다.
어느 정도는 자급자족을 할 수 있겠으나 한계는 분명히 있었다.
더욱이 한두 명이 아닌 만큼 소모되는 식량 역시 상당할 터였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개방과 하오문, 금가장의 정보력이 합쳐진다면요.”
금호연이 확신하듯 말했다.
세 곳이 힘을 모은다면 천하의 정보력이 합쳐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리기는 하겠으나 암월교를 찾아내는 것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본사 역시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반호진을 암살하려 했기에 소림사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소림사 전체가 나서지는 않더라도 방장인 담현은 반드시 나설 게 분명했다.
“어쩌면 다른 곳과도 연관이 있을 수도 있고요. 일단 잡아서 알아보면 되겠죠.”
반호진은 단순히 금상룡이 천문학적인 청부금을 지불해서 암월교가 의뢰를 받아들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중간한 곳도 아니고 살수문파 중에서는 두 번째로 큰 세력이 암월교였다.
그런 곳이 아무런 사전 조사 없이, 실패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을 리 없었다.
물론 자신들의 역량에 대해 과신했을 수도 있지만 다른 이유가 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나는 암월교의 위치를 알고 있기도 하고.’
지금도 그렇지만 나중에는 더더욱 악명을 떨치는 곳이 암월교였다.
바로 천하사패의 수족으로서 말이다.
살문을 제치고 현재의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와 같은 위치에 오르기 위해 암월교주는 천하사패의 휘하로 들어갔다.
그때 직접 암월교주까지 상대해 봤기에 반호진은 암월교의 본부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다.
“일단 엄청 노발대발하시겠지. 방장뿐만 아니라 법무 대사도.”
“심지어 소림사 바로 근처에서 벌어진 일이잖아요. 저 같아도 갈아 마시고 싶을걸요.”
눈만 껌뻑거리는 구월을 노려보며 선우방과 서조운이 입을 열었다.
당장이라도 오체분시해 버리겠다는 눈빛에 구월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일단 나부터가 가만히 있을 생각이 없어. 그래서 말인데, 너희들은 어떡할래?”
“저는 당연히 형님과 함께 갑니다!”
“나 역시. 그리고 너 다음에는 우리 아니었겠어?”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무조건 저도 함께 갑니다. 형님을 노렸는데 가만히 있으면 안 되죠. 오히려 더욱 확실하게 짓밟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우방을 시작으로 서조운, 정이륭, 모용척이 스산하게 말했다.
정말 청부한 이가 금상룡이었다면 그들이라고 해서 안전하지는 않았다.
가장 큰 걸림돌은 반호진이지만 네 명도 금호연과 인연이 있었으니까.
만약 반호진의 암살에 성공했다면 곧바로 그들을 노렸을지도 몰랐다.
“위험할 텐데?”
“그렇기에 더더욱 힘을 합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좋은 경험도 될 테고요.”
모용척이 씨익 웃었다.
이 짧은 사이에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는 모습에 반호진은 역시 머리가 비상하다고 생각했다.
“근데 일 공자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증거가 없잖아.”
“아.”
너무 암월교에만 집중하는 것 같아 금상룡을 거론했던 서조운이 입을 살짝 벌렸다.
지금까지 대화한 게 전부 다 심증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었다.
확률은 가장 높지만 물증은 어디에도 없었다.
증인으로 삼을 수 있는 살수가 있으나 입을 열 가능성은 희박했다.
“아마 청부도 자기가 직접 하지 않았을 거야. 원래 그런 이들은 또 자기 손이 깨끗하길 바라거든. 그러니 더더욱 본부를 쳐야지. 거기에 증거들이 있을 테니까.”
“결국 암월교가 핵심이네요.”
“그렇지.”
모두의 시선이 구월에게 집중되었다.
하지만 모두가 쳐다보는 걸 느낄 텐데도 구월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우선 다들 준비하고 있어. 나는 사부님께 다녀올 테니까. 일단 말씀은 드려야지. 어디 간다고는.”
“발칵 뒤집어지겠네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반호진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담현이나 법무는 당연히 대노하겠지만 다른 이들은 달랐다.
현재 반호진의 무명이 상당하다고 하나 냉정히 말하면 소림사의 수많은 속가제자들 중에 한 명이었다.
그렇기에 반호진은 섣불리 장담하지 않았다.
“저도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도 하니까요.”
금호연이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 암살 계획에 자신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였다.
그래서 금호연은 이내 얼굴 가득 미안한 기색을 띠었다.
도와주기도 모자랄 판에 암월교가 덫을 만드는 데 일조해서였다.
“안 그래도 금 공자님께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러니 우선은 아침에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경계도 확실하게 서겠습니다.”
불침번이 무슨 소용일까 싶지만 원래 가장 위험할 때는 위기가 막 끝난 순간이었다.
그 틈을 암월교에서 다시 노릴 수도 있기에 금호연이 두 눈을 부리부리하게 떴다.
“아마 괜찮을 겁니다. 이번에 투입된 인력이 적지 않아서요. 또 방이를 비롯해서 아이들도 있고.”
반호진의 말에 일행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순수하게 실력만 따져 보았을 때 금호연의 호위대보다는 그들이 위였다.
그렇기에 경계를 서야 한다면 네 사람이 하는 게 맞았다.
“네 기감에는 없다는 뜻이지?”
“맞아.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너무 마음은 놓지 말고.”
“물론이지.”
믿음직스럽게 대답하는 선우방을 향해 씨익 웃어 준 반호진은 몸을 돌렸다.
야심한 시각이지만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반호진은 담현의 처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