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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재림-99화 (99/468)

제 34장. 진짜 표적. -02

“저도 그렇게 예상합니다. 일급살수들은 실력 차이가 상당하지만 특급살수들은 거의 비슷한데 그럼에도 특급살수를 잡았다는 건 웬만한 살수 조직의 역량으로는 힘드니까요.”

“우선은 주무시죠. 많이 피곤해 보이시는데.”

“죄송합니다. 매번 도움만 청해서요.”

금호연이 고개를 숙였다.

그렇지만 궁지에 몰리자 생각하는 건 반호진밖에 없었다.

금가장에 있으면 살수의 손에 죽지는 않겠지만 대신 과로와 피로로 인해 죽을 게 뻔했다.

게다가 살수가 뒤따르고 있다는 걸 한눈에 알아차린 만큼 기대도 되었다.

“힘들 땐 서로 돕는 게 사람이지 않습니까. 저 역시 도움을 받기도 했고요. 지난번에 알려 주신 것 때문에 사부님과 대사형께서도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하하. 그건 진짜 별거 아닌 것이었는데요.”

“금 공자님께는 별거 아닐지 모르나 저나 대사형, 사부님의 입장에서는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것처럼 지금의 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편히 쉬고 계시죠.”

“감사합니다!”

금호연의 눈동자가 촉촉해졌다.

단순히 거래 관계가 아니라 진심이 담긴 위로에 감격한 것이었다.

동시에 잘 찾아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단 주무시지요. 호위무사들도요. 보아하니 다들 그동안 제대로 자지 못한 것 같은데. 이곳은 괜찮으니 마음 편히 주무시면 됩니다.”

“네!”

금호연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대답하고는 반호진이 안내해 준 객실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침상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호위무사들 역시 정자 근처에 우르르 모여서 잠들었다.

“암만 생각해도 몰이 같은데 말이지.”

코까지 골며 곯아떨어진 호위무사들을 내려다보며 반호진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금가장에서부터 여기까지 설계가 된 것 같아서였다.

판단력이 흐려진 금호연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반호진은 달랐다.

“일단 지켜볼까.”

후르릅.

반호진은 느긋하게 차를 마셨다.

만약 모든 게 다 계획된 것이라면 분명히 저쪽이 먼저 움직일 터였다.

그러니 반호진은 여유롭게 상황을 지켜보면서 대응하면 되었다.

“아니면 일단 잡아서 심문해도 되니까.”

어느 쪽이든 반호진은 상관없었다.

선택권은 그에게 있었으니까.

휘이이잉.

겨울이라 그런지 해가 빨리 저물고 있었다.

서산에 닿아 있던 태양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사위에 어둠이 잔잔하게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숭산으로 검은 그림자들이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내가 잘못 본 거겠지?’

집결하는 일급살수들의 기척을 확인하던 구월(九月)이 미간을 좁혔다.

마지막에 스치듯이 닿았던 반호진의 시선이 잊히지가 않아서였다.

창졸간이었으나 구월은 이상하게도 반호진이 그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불가능해.’

구월은 이내 생각을 털어 냈다.

아무리 반호진이 현재 최강의 후기지수라 불린다고 하나 그는 무려 십 년 전부터 특급살수로 활동하던 이였다.

그의 손에 죽은 절정고수들만 서른 명이 넘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백대고수들도 많았다.

-전부 다 모였습니다.

반호진이 녹림대군을 쓰러뜨렸다고 하나 무인의 방식과 살수의 방식은 완전히 달랐다.

제아무리 고수라도 머리와 목, 심장에 칼이 박히면 죽은 건 똑같았다.

또 살수는 칼만 사용하지 않았다.

-준비는?

-바로 시작해도 됩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계획을 확인하도록. 위치도 파악하고. 다들 알고 있겠지만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예.

그다음으로 서열이 높은 일급살수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말이 없었다.

다른 일급살수들에게 그가 한 말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그사이 구월은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어둠에 순식간에 잠긴 작은 목조건물을 주시했다.

두 개 중 더 작은 건물에 이번 살행의 표적이 있었다.

‘임무를 완수하고 바로 빠진다.’

구월의 눈빛이 무거워졌다.

소림사 내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무인에게 있어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이기에 표적의 목숨을 빼앗는 것과 동시에 빠져나가야 했다.

운이 좋다면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살아서 만나겠지만 냉정하게 말해 구월은 안가에서 다시 볼 수 있는 인원은 반이 채 안 될 것으로 예상했다.

‘지금 생각할 건 딱 하나다. 목표물의 죽음.’

구월은 눈을 감았다.

피해에 대해서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그는 살수이고 상부의 지시를 받았다.

그러니 그가 생각할 건 딱 한 가지뿐이었다.

스르르륵.

지시 전달이 끝났는지 일급살수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바람소리를 타고서 일급살수들은 순식간에 뿔뿔이 흩어져 자리를 잡았다.

-준비가 끝났습니다.

-시작해.

-예.

대답과 함께 총 열 명의 일급살수들이 은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립한 작전대로 서로의 움직임에 맞춰서 이동했다.

모두가 웬만한 절정고수들은 어렵지 않게 암살할 수 있는 실력자들이었으나 누구도 긴장을 풀지 않았다.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집중하는 것이었다.

스윽.

그리고 그 뒤를 따라 구월도 움직였다.

열 명의 일급살수들은 미끼였고 핵심은 그였다.

표적을 암살하는 건 그였기에 구월은 모든 감각을 끌어올리고서 표적에 집중했다.

스스슥.

일체의 소리도 없이 바람 부는 소리만 공터에 휘몰아칠 때 일급살수들은 목조건물에 도달해 있었다.

제법 시간이 소요되기는 했으나 들키지 않고 건물 벽에 도착한 것이었다.

동시에 일급살수들이 벽을 타고 기어올랐다.

덜컥!

그런데 그 순간 창문이 활짝 열렸다.

열 명 중 한 명의 신형이 창문에 가까워진 순간 저절로 열린 것이다.

마치 일급살수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가 열린 것 같은 창문에 모두의 동공이 크게 확대됐다.

“소림사에서 살행이라. 대범한데? 아니면 뒷감당을 생각하지 않을 정도의 의뢰비를 받은 건가?”

쌔애액!

활짝 열린 창문에서 당혹감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말투와 표정의 반호진이 나타나자 가장 가까이에 있던 살수가 암기를 던졌다.

새까맣게 칠해서 반사광을 차단한 암기가 미세한 소성과 함께 섬전처럼 반호진에게 쇄도했다.

괜히 일급살수가 아니라는 듯이 갑작스러운 등장에도 불구하고 정확하게 반호진의 심장을 노리고서 날아갔다.

“성질이 급하네. 아직 말도 끝나지 않았는데.”

투웅.

벼락같은 일격이었으나 반호진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대신 제자리에 선 채로 손가락만 튕겨 암기를 산속으로 날려 버렸다.

놀랍게도 날아오는 암기를 지풍으로 정확히 맞혀서 튕겨 낸 것이었다.

쉬이익!

그러나 살수들은 놀라지 않았다.

마치 이것도 예상했다는 듯이 나머지 살수들이 차례대로 암기를 뿌렸다.

가지고 있던 암기를 한꺼번에 모조리 던졌다.

퍼엉!

그뿐만 아니라 연막탄과 독탄까지 사용했다.

반호진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도록 한 번에 몰아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상황은 그들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후우우웅!

연막탄에 독탄까지 터트렸으나 반호진의 몸 근처에는 가지도 못했다.

왼팔을 크게 딱 한 번 휘저었을 뿐인데 독연(毒煙)은 창문을 통해 밖으로 뿜어져 나갔다.

그러자 일제히 달려들던 다섯 명의 일급살수들이 멈칫거렸다.

몸을 가려 주던 독연이 사라지자 모두 당황한 것이었다.

퍼퍼퍼퍼펑!

그 틈을 반호진은 놓치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멈칫거린 일급살수들의 미간에 지풍이 정확히 박혔다.

쿵! 쿵! 쿠쿠쿵!

황망히 눈을 뜬 채로 다섯 명의 일급살수들이 뒤로 넘어갔다.

하나같이 뒤통수에 구멍이 뚫린 채로 말이다.

그러나 동료들의 죽음에도 나머지 일급살수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다섯 명이 쓰러지는 순간을 이용해 반호진에게 접근했다.

“암기에, 독탄에 이어 육탄돌격이라. 쓸 수 있는 패는 다 꺼낸 거 같은데.”

좌우와 등, 머리 위에서 비수가 파고들고 있음에도 반호진의 표정에는 여유가 있었다.

자기들 딴에는 완벽한 합격진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반호진에게는 아니었다.

천하사패와의 전쟁 당시 이 정도 암습은 암습도 아니었다.

그걸 증명하듯 반호진은 검도 뽑지 않고 오로지 천광수(天光手) 만으로 네 방향에서 달려드는 이들을 날려 버렸다.

퍼퍼퍼퍽!

무늬만 일급살수는 아니라는 듯이 전신의 뼈가 박살 났음에도 네 명은 신음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대신 두들겨 맞으면서도 눈을 빛냈다.

비록 자신들은 실패했지만 아직 암살은 끝난 게 아니었다.

퍼석!

반호진의 천광수에 네 명이 튕겨 나감과 동시에 바닥에 구멍이 뚫리며 검은 인영이 솟구쳤다.

네 명을 미끼로 마지막 남은 일급살수가 반호진을 기습한 것이었다.

따아앙!

하지만 회심의 일격조차 반호진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무심하게 발길질로 단검을 튕겨 내는 모습에 일급살수의 동공이 흔들렸다.

이렇게 허무하게 막힐 줄은 몰라서였다.

빠각!

그러나 그의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반호진의 발이 턱을 시원스럽게 강타해서였다.

제자리에서 휘두른 앞차기였으나 위력은 머리를 박살 내기에 충분했다.

턱에 일격을 맞은 순간 일급살수는 즉사했다.

“나오지. 미끼들이 다 죽었는데.”

파리를 잡듯이 너무나 쉽게 열 명을 해치운 반호진이 중얼거렸다.

정확히 구월이 숨어 있는 곳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그 모습에 구월의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동시에 아까 전에 자신이 봤던 게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파아앗!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순간 구월은 몸을 돌렸다.

위치를 발각당한 살수는 더 이상 암살자가 아니었다.

정면대결로는 승산이 없기에 구월은 망설이지 않고 도주를 택했다.

“오는 건 마음대로지만, 가는 건 아냐. 내 허락이 있어야 하거든.”

쌔애애액!

반호진의 검이 한줄기 벼락으로 화했다.

허리춤에 있던 검을 뽑음과 동시에 구월을 향해 던진 것이었다.

푸욱!

전광석화처럼 날아간 검은 정확히 구월의 오른쪽 허벅지에 박혔다.

전력질주가 무색하게 관통상을 당한 구월이 휘청거리더니 이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쿵!

허벅지에 검이 박히는 순간까지도 구월은 느끼지 못했다.

땅바닥을 나뒹굴고서야 검이 박혔다는 걸 느낀 구월이 황급히 검병을 붙잡았다.

다행히 뼈가 부러지지는 않았기에 일단 검을 뽑은 후 지혈하고서 다시 도망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검을 뽑기도 전에 반호진이 그의 앞에 내려섰다.

툭.

검이 거의 다 뽑혀져 나온 순간 반호진의 손가락이 구월의 몸에 닿았다.

그리고 그의 몸이 굳어졌다.

접촉과 동시에 마혈을 점혈당한 것이었다.

순식간에 나무토막처럼 딱딱하게 굳어진 구월을 무심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며 반호진이 검을 마저 뽑고는 지혈을 해 주었다.

부르르르!

그러나 그 손길에 구월은 몸을 떨었다.

일급살수들과 달리 바로 죽이지 않는다는 건 그를 심문하겠다는 뜻이었기 때문이었다.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네가 암월교(暗月橋) 소속인 건 알고 있으니까. 어디 보자. 이쯤에 보통 문신을 새겨 놓던데.”

지이익!

꼼짝도 못 하는 구월의 오른쪽 어깨 부분의 암행복을 반호진은 가볍게 뜯어냈다.

그러자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보름달과 초승달을 겹쳐 놓은 듯한 문신이 눈에 들어왔다.

더불어 구월의 동공이 더 이상 커지기 힘들 정도로 커졌다.

설마하니 반호진이 암월교에 대해서 알고 있을 줄은 몰라서였다.

“내가 어떻게 알고 있는지 궁금한 모양이야? 근데 어쩌나? 난 말해 줄 생각이 없는데. 아, 한 가지는 말해 줄 수 있지. 월벽(月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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