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98화 (98/468)

제 34장. 진짜 표적. -01

서조운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반호진은 콧방귀를 뀌었다.

“나도 천재야.”

“혼자보다는 둘이 낫지 않겠어요?”

“쉽지 않을 거야.”

“쉬우면 재미없죠. 힘들어야 성공했을 때 기쁨이 배가되지 않을까요?”

“고생길을 걷더라도 행복하면 됐지.”

반호진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형으로서 조언은 해 줄 수 있어도 선택은 당사자가 하는 것이었다.

조언의 선을 넘으면 그때부터는 오지랖이 되었기에 반호진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형님은 행복하세요?”

“흐음. 글쎄?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그렇다고 행복한 건 아냐.”

“걱정이 많아서 그렇죠?”

“꼭 그런 건 아니고. 지금도 나쁘진 않아.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으니까.”

“다행이네요.”

만족의 기준은 모두가 달랐다.

그렇기에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기준 역시 다를 수밖에 없었다.

하나 적어도 원하는 삶을 산다면 불행한 건 아니었다.

“넌?”

“전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감사하죠. 형님께서 저를 살려 주시지 않았다면 올해의 눈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서조운이 해맑게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겨울답게 숭산은 가을과 달리 새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이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게 서조운은 행복하고 감사했다.

“기쁘네. 네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니.”

“전부 다 형님 덕분이에요.”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네가 살겠다는 의지가 없었다면 아무리 영초와 축융신공이 있다고 하더라도 힘들었을 거야. 그보다 이제 슬슬 검을 맞출 때가 된 거 같은데.”

반호진의 시선이 아직 들고 있는 서조운의 검으로 향했다.

아직 일 년도 채 되지 않았음에도 검의 상태는 상당히 좋지 않았다.

서조운이 나름 잘 관리한다고 했지만 평범한 청강검으로는 극양지기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정이 들 대로 들었는데.”

“더는 무리야. 너도 잘 알 텐데.”

“힘겨워하긴 하더라고요.”

“앞으로는 더 그럴 거야. 네가 가진 극양지기는 더 늘면 늘었지 줄지는 않을 테니까. 뭐, 휘두르다가 녹아서 적을 공격하는 방식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진담이세요?”

서조운이 실소를 흘렸다.

너무 진지하게 말해서였다.

“이도저도 안 될 때 예측불가의 공격으로 사용하기에는 나쁘지 않잖아? 구명절초가 꼭 특별해야만 하는 건 아니니까. 파검술(破劍術)이라는 것도 있고.”

“저는 거기에 응용도 가능하겠네요.”

“네 무지막지한 공력을 사용하기에 꽤 괜찮은 방법이긴 하지. 근데 최후의 일격이라 자주 사용할 수는 없지.”

“그래서 제가 권장지각도 같이 익히려고 하는 겁니다.”

“최악의 사태에 대비하는 건 기본이니까. 일단 실력 있는 대장간부터 찾아봐야겠네. 방이나 척이가 좀 알고 있으려나.”

반호진도 검을 쓰지만 그는 딱히 도구를 가리지 않았다.

그리고 죽기 전까지도 지금의 검을 사용했었고.

하지만 서조운은 조금 특별한 경우이기에 맞춤형 무구가 필요했다.

“난 소저에게 물어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것 같아요.”

“사천당가에도 뛰어난 장인들이 많기는 한데, 지금 전쟁 준비 중이라 주문제작을 요청하기에는 좀 그렇고.”

“금 공자님이 그쪽은 잘 알지 않을까요?”

“그것도 괜찮겠네.”

반호진이 턱을 쓰다듬었다.

어쩌면 금가장의 거래처가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렇게 따지니까 저희 인맥도 상당한데요?”

“어디 가서 꿀릴 정도는 아니지. 일단 네 새 검에 대해서는 내가 알아볼 테니까 너는 수련하고 있어.”

“예!”

“극양지기가 늘어나는 만큼 제어하기가 힘들겠지만 그럼에도 해야 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칼은 결국 주인을 상처입히는 법이야. 또 공력이 바닥났을 때도 대비하고. 극한의 상황에 대해서도 평소에 생각을 해 두어야 해.”

서조운의 공력은 무지막지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어마어마했지만 그렇다고 무한한 건 아니었다.

그래서 가끔씩 대련할 때 전부 다 소모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아직 대비가 미흡하다고 여겼기에 반호진은 그 부분을 지적했다.

구천문과 사천당가의 전쟁이 현재 발발했기에 다른 세 곳도 안심할 수 없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힘차게 대답한 서조운이 다시 개인수련을 하러 이동하자 반호진도 걸음을 옮겼다.

서조운을 시작으로 다른 이들도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정이륭과 모용척을 지나 반호진은 멀리서 두 눈을 감고 검무를 추는 선우방을 조용히 주시했다.

‘곧 넘겠는데.’

우직스러울 정도로 선우방은 기본기에 집중했다.

자신의 재능이 어느 정도인지 알기에 오직 검술 하나만 팠다.

그런데 그 결실이 서서히 맺어 가고 있었다.

가문의 검공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정립해 나가는 걸 보며 반호진은 전생에서 만났던 선우방을 머지않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주 좋아.’

재능을 만개한 선우방은 반호진도 가볍게 여길 수 없을 정도의 검호(劍豪)였다.

그렇기에 반호진은 기대가 되었다.

자신을 위협할 선우방이 말이다.

***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숭산의 풍경을 금호연은 가만히 지켜봤다.

숭산에 온 게 처음은 아니지만 눈 덮인 겨울의 숭산은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금호연은 잠시나마 평온한 마음으로 감상했다.

“겨울의 숭산도 운치 있지요?”

“웅장하면서도 아름답습니다.”

옆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금호연이 싱긋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수수한 흑의무복을 입고 있는 반호진의 모습이 보였다.

“이쪽으로 오시죠.”

난희주를 데려갔던 샛길로 이번에는 금호연을 데려갔다.

그 뒤를 금호연의 호위대가 뒤따랐다.

“앞으로는 이 길을 애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시라고 알려 드린 겁니다. 번잡한 소림사 외원을 굳이 관통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이곳도 아름다운데요? 신선들이 살 법한 장소 같습니다.”

우거진 수풀을 지나 아담한 목조건물 두 채가 산의 품에 안겨 있는 듯한 모습에 금호연이 눈을 크게 떴다.

인위적인 건물과 자연이 오묘하게 잘 어울려서였다.

가만히 보면 한 폭의 그림 같은 모습에 금호연은 눈을 반짝였다.

상인이지만 그림도 좋아하고 자주 그렸기에 그는 지금의 풍경을 머릿속에 온전히 담았다.

“우화등선이라. 한 번 해 보고 싶기는 하네요. 우화등선을 할 정도면 천하제일인일 테니까요.”

“전설처럼 회자되기는 하지만 성공한 분들이 계시니 반 대협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가능성은 모두 다 있으니까요. 들어가시죠.”

평소에는 일행들이나 이대제자들로 가득 차 있던 연무장이 지금은 텅 비어 있었다.

그 연무장을 가로지르고서 반호진은 자신의 처소로 금호연을 이끌었다.

마지막에 슬쩍 어느 한 곳을 주시하면서 말이다.

또르륵.

“감사합니다.”

김이 몽글몽글 올라오는 차를 금호연은 한 모금 들이켰다.

그러자 얼어붙었던 몸이 사르륵 녹는 느낌이었다.

기분 좋은 열기에 금호연은 다시 한 모금을 더 들이켰다.

“많이 피곤해 보입니다.”

“하하하. 요새 통 잠을 자지 못해서요. 사실 그것 때문에 반 대협께 찾아온 것이기도 하고요.”

“살수 때문이죠?”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하나 고민하던 금호연이 화들짝 놀랐다.

이렇게 단번에 알아맞힐 줄은 몰라서였다.

“멀리서 지켜보고 있더라고요.”

“역시 여기까지 따라왔군요.”

금호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바로 알아본 반호진과 달리 그의 호위무사들은 살수가 따라온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간의 혹독한 수련으로 호위대의 수준이 높아지기는 했으나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걸 새삼 느꼈기에 금호연은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 공자의 짓이겠군요.”

“맞습니다. 한 달 전부터 피를 말리려는 속셈인지 일부러 기척을 드러내거나 흔적을 남겨 놓고 사라집니다. 머리맡에 막 자른 닭이나 고양이, 돼지, 소의 머리 등등을요. 저를 죽일 수 있지만, 죽이지 않는다는 뜻이죠. 정확하게는 죽일 수 없다가 맞겠지만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금가장의 후계 다툼은 오로지 상인으로서의 실력만 본다고요. 경쟁자를 암살하는 순간 자격을 박탈당한다고 들었습니다.”

“근데 허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후계 다툼을 벌이는 이가 셋 이상이면 솔직히 누가 살수 조직에 청부했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이걸 악용해서 둘만 남게 만드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금호연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복형제가 아니라 같은 모친을 둔 형제끼리도 골육상쟁을 벌이는 게 금가장이었다.

그러니 살인청부는 어찌 보면 약과였다.

“확실히 특이한 경우이기는 하네요. 누가 보더라도 의심할 수밖에 없는데.”

“장원 내부에서 은근히 소문이 돌고 있는데 일 공자는 잡아떼고 있습니다. 자신은 절대 아니라고요. 저와 은원 관계에 있는 다른 이의 소행이라고 떠드는 중입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만큼 궁지에 몰려 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이런 방법까지 사용해야 할 정도로요.”

“그건 그렇습니다만…….”

금호연이 말끝을 흐렸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반호진의 말이 맞았다.

그러나 문제는 정말 피가 말라 가고 미쳐 간다는 점이었다.

잠이라는 게 사람에게 있어 이렇게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 금호연은 처음 알았다.

“고문 중에는 잠을 자지 못하게 하는 것도 있습니다. 잠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데, 인간에게 있어 잠은 정말 중요합니다. 무인의 경우 하루 이틀 정도는 잠을 자지 않아도 크게 부담이 되지 않지만 나흘이 지나면 몸 상태가 확연히 달라집니다. 범인은 두말할 필요가 없지요.”

“정말 미치겠더라고요. 식욕도 떨어지고, 신경도 예민해지고. 일단 집중력과 판단력이 흐려지고 느려지는 게 제 스스로도 느낄 정도입니다.”

“일 공자 쪽에서는 수를 잘 썼군요. 본인에게도 타격이 있지만 효과는 확실하니.”

위험부담은 크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그걸 반호진은 눈앞에 있는 금호연을 보고서 알 수 있었다.

또한 어째서 금호연이 자신을 찾아왔는지도.

“저도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해 봤습니다. 똑같이 살수조직에 의뢰도 넣어 봤고요. 일 공자만 돈이 많은 건 아니니까요. 이독제독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실패하셨군요.”

“예. 오히려 당했습니다. 저만 아니라면 상관없다는 듯이 아예 살수의 머리를 제 베개 옆에 놓고 갔습니다.”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는 듯이 금호연이 몸서리쳤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었다.

“물론 저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자금력은 저도 일 공자에 뒤지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특급살수에게 의뢰를 넣었음에도 실패했습니다.”

“그건 좀 의외네요.”

반호진이 살짝 놀랐다.

일급살수와 특급살수는 한 등급 차이지만 실력은 천양지차였다.

아무리 일급살수가 떼로 달려들어도 잡지 못하는 게 특급살수였다.

무인들처럼 모습을 드러내고 싸운다면 모르겠으나 살수들의 방식으로 싸운다면 일급살수는 절대 특급살수를 이길 수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반 대협을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에 떠오르는 건 반 대협밖에는 없더라고요.”

깊은 한숨과 함께 금호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애써 웃고 있지만 반호진에게는 보였다.

정신적으로 금호연이 상당히 몰려 있음을.

그리고 금상룡의 수가 통했다는 걸.

“일 공자가 어디에 의뢰했는지는 알아내셨습니까?”

“의심 가는 곳은 두 군데 있습니다만 장담은 못 합니다.”

금호연이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반호진은 금호연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애초에 어느 세력보다 비밀스럽게 운영되는 게 살수 조직이었다.

알아내는 게 쉬울 리 없었다.

“일 공자의 성향을 생각하면 그쪽 업계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알려진 두 곳 중 하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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