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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재림-95화 (95/468)

제 33장. 제일 재미난 구경은. -01

당우혁은 고개를 저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반호진과 비견될 만한 후기지수는 없었다.

괜히 삼봉을 비롯해서 무림세가의 여식들이 반호진의 주변에서 얼쩡거리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반호진의 실력은 알려진 게 전부가 아니었다.

‘말로만 신룡이 아니라 진짜 신룡이었어.’

반호진은 사천당가에 와서 단 한 번도 실력발휘를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당우혁쯤 되면 아무리 본 실력을 갈무리하고 있어도 보였다.

완벽하게 꿰뚫어 보는 건 힘들어도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가늠이 되었다.

한데도 말하지 않는 건 굳이 다른 이들에게 말할 필요가 없어서였다.

“방법이 있겠느냐?”

“아버지께서는 이미 결정을 내린 것 같습니다.”

“그럼 딴 놈에게 줘? 저런 녀석을? 남이 가지고 있어도 빼앗아 와야 할 판에? 아니면 저 녀석보다 더 나은 아이를 서린에게 줄 수 있느냐?”

“……당장은 힘들지요.”

당우혁은 냉정하게 생각했다.

어쩌면 반호진 이상 가는 후기지수가 이 무림에 있을 수도 있었다.

이 넓은 강호에는 기인이사들이 모래알처럼 많으니까.

다만 문제는 그런 존재들을 쉽게 찾을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데려와야지. 더구나 데릴사위도 가능한 아이이지 않더냐.”

“그렇습니다.”

당비의 두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모든 걸 따져 보았을 때 반호진보다 당서린의 짝으로 어울리는 후기지수는 없었다.

같이 있는 서조운과 모용척도 미래가 기대되는 후기지수이기는 했으나 반호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둘 다 차선은 될 수 있지만 최선이 있는데 굳이 차선책을 택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하나를 잃었으니 그 빈자리를 채워야 하지 않겠느냐.”

“으음!”

당우혁이 두 눈을 감았다.

배신자라고 하나 그래도 그의 아들이었다.

그것도 막내아들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처형했기에 당우혁의 마음은 썩 편치 않았다.

정이라는 게 단칼에 잘라 낼 수 없는 것이니만큼 지금 그는 그저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내일 내가 방장을 만나 보겠다. 네가 직접 나서는 것보다는 내가 먼저 만나 보는 게 낫지 않겠느냐?”

“그리 생각하신다면, 따르겠습니다.”

“따르기는. 그냥 물어보는 거지. 이제 가주는 너다. 내가 아니라. 그걸 잊으면 안 돼.”

“알고 있습니다.”

“방계 아이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

두 눈을 뜬 당우혁이 턱을 쓰다듬었다.

워낙에 일이 많았기에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증명을 시킬까 합니다.”

“진심인지 아닌지?”

“예. 한 번 배신한 자에게 두 번, 세 번은 쉬우니까요. 그러니 증명할 기회를 줄까 합니다.”

“괜찮군.”

당비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구천문과 접촉한 건 당서곤뿐이었다.

그 외의 방계들은 그저 당서곤을 믿고 따른 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말들을 온전히 믿을 수는 없기에 시험할 필요는 있었다.

“개똥도 약에 쓴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렇게라도 활용해야지요.”

“알지? 칼을 뽑았으면 확실하게 해야 해.”

“물론입니다. 이대로 넘어갈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구천문이 사라지든, 본가가 사라지든 둘 중 하나는 이 세상에서 없어질 겁니다.”

“좋아. 그래야 사천당가의 가주라고 할 수 있지.”

당비가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호사가들 중에는 이런 사천당가의 방식이 과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와 당우혁의 생각이었다.

두 사람은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이 방식을 바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지금 바로 시작할 생각입니다.”

“내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거라.”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할 겁니다.”

“녀석.”

가주답게 자신의 선에서 끝내겠다는 말에 당비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자신이 할 일에 대해서.

스승인 담현과 마주 앉은 법무는 늦은 시각임에도 확 달라진 사천당가의 분위기를 느꼈다.

어제와는 확연히 달라졌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당가가 부산스러워진 것 같습니다.”

“그럴 만한 일이 있었다고 하더구나.”

“심상치 않던데요.”

“구천문과의 전쟁인데 당연히 그럴 수밖에.”

“예?”

전혀 생각지도 못한 세력의 등장에 법무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웬만한 일로는 놀라지 않는 법무였으나 거론되는 곳이 구천문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구천문이 이 공자를 데리고 수작을 부린 모양이야. 근데 그걸 호진이가 우연히 발견했다더구나.”

“우연히요?”

법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토록 커다란 사건을 우연히 발견했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아서였다.

“알고 쫓은 게 아니라 수상한 이들이 있어 따라갔다가 제압한 후에 후개를 불렀다고 하더구나. 이 공자를 보고 다른 이들이 알아서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해서 후개를 부른 모양이야. 괜히 사천당가의 사람들을 부르는 것보다는 낫기도 하고. 또 사천당가에 아는 이들이 별로 없기도 하고. 그럴 바에는 차라리 어느 정도 믿을 수 있는 후개를 부르는 게 최선이었겠지.”

“하긴. 괜히 적을 더 불러 모을 수도 있으니까요.”

법무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훌륭한 판단이었다.

적아를 구분할 수 없을 땐 믿을 수 있는 사람부터 찾는 게 맞았다.

물론 적이 몰려온다고 해서 반호진이 위험에 빠지지는 않겠지만 그건 일반적인 무인들이었을 때였다.

상대가 구천문이라면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했다.

만독불침이 아닌 이상 독에서 자유롭지 않기에 가급적 피하는 게 좋았다.

“어쩔 때 보면 완전 노련한 무인이야. 제 나이로 보이지가 않아.”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놀랍네요. 이 공자가 구천문과 손을 잡다니.”

불과 어제만 하더라도 이 공자와 말을 섞었었기에 법무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절로 떠올라서였다.

그러나 가장 놀란 이는 누가 뭐래도 당가주일 것이었다.

“후계 다툼이라는 게 그렇게 무서운 것이야. 더욱이 이 공자는 서자이기도 하니 당연히 욕심이 날 수밖에. 다만 선택한 방법이 좋지 않았을 뿐.”

“내일부터 시끄러워지겠네요. 사천당가의 성격상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가지 않을 텐데.”

“피바람이 불겠지. 하나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어.”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담현도 생각이 완고했다.

단순히 당서곤이 외세의 힘을 끌어들인 게 아니었다.

자칫 잘못하면 구천문이 자연스럽게 중원무림에 파고들 수도 있었던 문제였기에 더더욱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거부터 중원의 땅에 야욕을 드러냈었던 구천문인 만큼 단순히 재료수급을 위해서 당서곤과 손을 잡은 건 아닐 터였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지키기 위해서라면 싸움을 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사제가 조금 걱정이 되는군요.”

“걱정할 필요는 없어. 사천당가가 지독하기는 해도 은혜를 원수로 갚는 가문은 아니니까. 다만 기준이 자기 마음대로라서 보은이 보은 같지 않은 경우도 더러 있기는 하지만.”

“사제가 무언가를 요구할 성격은 아니지 않습니까?”

“호진이 성격상 준다고 해도 안 받을 가능성이 크지.”

담현이 피식 웃었다.

어느새 그의 품에서 훌쩍 떠나 버린 제자가 바로 반호진이었다.

하나 그렇다고 가만히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다.

다 컸다고 해서 제자가 아닌 건 아니었으니까.

“당가주님은 어떻게든 주려 할 텐데요.”

“그래도 별수 없을 거야. 그냥 후기지수도 아니고 호진인데. 힘으로 압박한다고 통할 이도 아니고.”

“그건 그렇죠.”

“우리는 그것보다 다른 쪽에 신경을 써야지. 상관세가에 대해서.”

법무의 눈빛이 달라졌다.

안 그래도 사천당가에 오면서 법무는 내심 벼르고 별렀다.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있기에 이번에 확실하게 알아낼 작정이었다.

그런데 상관세가는 마치 그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볼일만 잽싸게 보고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증거는 찾기 힘들 거야. 상관세가주가 어설픈 성격도 아니고. 심증만 가지고 따지면 압박한다고 도리어 큰소리를 치겠지.”

“그럴 겁니다.”

상관세가주가 교활한 건 법무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껏 속앓이를 하며 지켜보기만 한 것이었다.

만약 증거가 있었다면 법무가 가장 먼저 상관세가로 쳐들어갔을 터였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범죄는 없는 법. 아마 우리만큼이나 상관세가도 답답할 게다. 단위가 행방불명이 되면서 아무것도 알 수가 없으니까. 우리는 그 틈을 노려야 해.”

“시간이 오래 걸리겠네요. 어쩌면 타협하자고 나올 수도 있고요.”

“그럴 가능성이 크지. 상관세가 역시 백도무림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곳이니. 그러나 은원이 있으면 풀어야 하는 법. 타협을 보더라도 풀 건 풀어야지.”

담현도 알고 있었다.

이 정도 일로 상관세가를 멸문시킬 수 없다는 것을.

하나 그렇다고 참고 넘어가는 것도 어불성설이었다.

사천당가처럼 지독하지는 않더라도 소림사 역시 은원에 확실했다.

‘아미타불.’

담현이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소림사가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건 단순히 역사가 있어서, 강해서만이 아니었다.

필요할 때는 망설이지 않고 살계를 열었기에 가능했다.

물론 용서와 아량을 베풀 때도 있었으나 이번에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맞습니다. 그런 점에서 사제가 참고 있다는 게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진즉에 상관세가에 찾아가서 난리를 피웠을 텐데.”

“냉철한 아이니 지금이 때가 아니란 걸 아는 게지. 근데 절대 잊지는 않을 거야. 웬만한 걸로는 타협을 보려 하지도 않을 거고.”

“사제가 호구 같은 성격은 절대 아니지요.”

“그러니까. 아마 나름 생각하고 있는 게 있을 거야. 그렇지만 우리가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지. 명색이 사부와 사형 아니더냐?”

“예의 주시하겠습니다. 절대 상관세가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담현이 씨익 웃었다.

그가 원하는 대답을 들어서였다.

최악의 상황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사과는 반드시 받을 생각이었다.

어쩌면 그게 상관세가한테는 가장 싸게 먹히는 것일지도 몰랐고.

반호진은 도망치듯 소림사로 돌아왔다.

사천당가가 구천문과 전쟁을 앞두고 있기도 했지만 그를 쳐다보는 당비와 당우혁의 눈빛이 심상치 않아서였다.

그뿐만 아니라 선우방과 동생들도 끈질기게 매달리는 여인들 때문에 많이 시달렸는지 서둘러 떠나는 것에 동의했다.

“일단 구천문은 어느 정도 해결이 됐어.”

모두가 잠든 야심한 시각에 반호진은 현재 상황을 정리했다.

이제는 지난 생과 미래가 완전히 바뀐 만큼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문서로 남기지는 않았다.

믿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서였다.

“지금도 축적한 힘이 상당하겠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아. 사천당가의 전력도 만만치 않으니까.”

숭산으로 오면서도 반호진은 사천당가의 행보에 대해서 주기적으로 들었다.

그가 알려고 했던 것도 있지만 오중건이 알려 준 것도 많았다.

어떻게 보면 구천문과 사천당가와 얽혀 있다고도 볼 수 있기에 알려 준 듯했다.

“사천당가를 중심으로 운남성, 귀주성, 광서성의 무림세력들이 힘을 합치면 충분히 해볼 만해.”

솔직히 말해 반호진은 현재 구천문의 전력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가 알고 있는 건 천하사패라 불릴 때의 구천문이었다.

하나 그때의 구천문을 기준으로 비교해도 사천당가를 중심으로 한 연합의 힘은 절대 밀리지 않았다.

구천문을 압도하지는 못하더라도 약간은 우세하리라고 생각했다.

“변수는 서장무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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