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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재림-88화 (88/468)

제 31장. 신성들. -03

선우방과 모용척의 활약도 대단했지만 오중건은 개인적으로 서조운이 가장 놀라웠다.

물론 구양절맥을 앓았기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다고 하나, 그럼에도 서조운의 성장세는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단순히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서 모두가 고수가 되는 건 아니었다.

그 선례가 바로 모용척이었고.

“가르치는 쪽에도 재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눈빛들이 아주 뜨겁네요.”

오중건이 헛웃음을 흘렸다.

지켜보던 후기지수들이 하나같이 부러운 눈빛으로 반호진 일행들을 쳐다보는 게 보여서였다.

그런데 그 심정이 오중건은 이해가 갔다.

만약 그가 후기지수라도 저랬을 것이었다.

“다 인연이지 않겠습니까.”

“인연이라기보다는 반 소협이 다 끌어모은 것 같습니다만. 그나저나 오늘 밤은 여러 가지 의미로 뜨겁겠네요. 벌써부터 네 사람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보니.”

“한창 뜨거울 때 아니겠습니까. 오히려 뜨겁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요. 청춘은 청춘이기에 청춘인 법이지요.”

법무가 빙긋 웃었다.

그에게 있어 지금의 모습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또한 지금뿐만 아니라 예전부터 그래 왔었고.

젊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뜨겁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했다.

“아닌 사람도 있습니다만.”

“허허허.”

법무가 난감한 웃음을 흘렸다.

오중건의 시선이 반호진에게 향해 있어서였다.

주변은 활활 불타오르고 있는데 정작 중심에 있는 반호진은 시큰둥했다.

아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혼자만 딴 세상에 있는 듯했다.

“근데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닙니다. 반 소협에게는 저 자리가 시시할 테니까요.”

괜히 모용척이 반호진과 비무를 하고 싶으면 자신부터 넘으라고 말하는 게 아니었다.

후기지수들 중에서는 천외천의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게 반호진이었으니까.

그걸 모두가 인정하기에 기분 나쁜 티는 내도 딴말을 하지는 않은 것이었고.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겁니다. 만약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다면 저렇게 앉아 있지 않을 겁니다.”

“듣고 보니 그것도 그러네요.”

“또 지금은 사제가 가장 뛰어나다고 하나 일 년 후, 오 년 뒤에도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법무가 겸손하게 말했다.

하지만 오중건의 생각은 달랐다.

일이 년 만에 따라잡히기에는 반호진의 수준이 너무나 높았다.

아직 이십 대인 만큼 실력이 급격히 늘 수도 있다고 하나 그것도 한계가 존재했다.

“저도 부지런히 노력해야겠네요. 장강후랑추전랑(長江後浪推前浪)이라지만 아직은 밀려나고 싶지 않은지라.”

“후개께서 너무 앞서가신 것 같습니다.”

“제가 받는 느낌이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는 건 아닙니다. 흐흐흐!”

오중건이 능글맞게 웃었다.

그런데 미소 짓는 얼굴과 달리 눈빛은 진지했다.

처음에는 새로운 신성이 나타났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신성이 어느새 그를 추월했다.

아무리 성격 좋은 오중건이라고 하나 무인으로서의 자존심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따지면 저도 비슷한 심정입니다.”

“에이. 차대 소림사 방장께서 너무 약한 소리 하시는 거 아닙니까?”

“허허허.”

법무는 빙그레 웃었다.

묘하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이다.

그 모습에 오중건이 눈을 껌뻑거렸다.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떠올라서였다.

‘설마?’

그러나 이내 그는 문득 든 생각을 떨쳐 냈다.

너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였다.

대신 오중건은 남의 집임에도 자신이 주인공처럼 앉아 있는 반호진을 바라봤다.

둘째 날이 밝자 본격적인 고희연이 시작되었다.

후기지수들만 모였던 어제와 달리 연회장에 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이 속속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수장들과 장로들이 하나둘씩 나타나서 자리를 채웠고, 가장 상석에는 오늘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당비가 앉아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어째서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고 말하는지 알 거 같아요.”

반호진의 옆에 앉아 있던 서조운이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고 그건 정이륭도 마찬가지였다.

보통의 무인이라면 일생에 한 번 만나 볼까 한 천하십대고수가 이곳에는 널려 있었다.

고개만 살짝 돌리면 볼 수 있었기에 두 사람 다 연신 탄성을 터트렸다.

“흔하지 않은 자리이기는 하지.”

“존재감이 다들 어마어마하네요. 딱 봐도 무림십왕이라는 게 느껴져요.”

서조운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기도가 엄청나서였다.

“근데 그걸 느낄 수 있는 이는 그렇게 많지 않아. 설사 느낀다고 하더라도 정도가 각기 다르고.”

“아!”

“평상시에는 거의 갈무리하고 있다고 봐야지.”

“형님처럼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서조운을 향해 반호진이 피식 웃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존경심이 너무 과하게 담겨 있어서였다.

“나처럼은 무슨. 굳이 기도를 드러낼 필요가 없으니까. 아는 만큼 보인다고 엿볼 수 있는 사람은 보겠지.”

“역시 강자의 여유. 오늘도 하나를 배웁니다!”

“넉살은 아주.”

“헤헤헤헤!”

어째 날이 갈수록 능글맞아지는 서조운의 모습에 반호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처음에는 막내다운 귀여움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척이를 안 닮은 게 어디예요.”

“천만다행이지.”

동갑내기 친구지만 정이륭은 냉정했다.

모용척 특유의 잘난 척은 제아무리 정이륭이라도 받아 주기 힘들었다.

동시에 어쩌면 성향이 다르기에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륭이 형. 말이 너무 심하신데요. 아무리 그래도 척이 형과 저를 하나로 묶다니요?”

“그래서 안 닮아서 다행이라고 했잖아.”

“같이 묶이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치욕이에요.”

“하하하.”

정색하는 서조운의 모습에 정이륭이 실소를 흘렸다.

이런 모습은 반호진에게는 절대 보이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운하지는 않았다.

서조운과 반호진이 어떤 사이인지 알았기에 정이륭은 웃으며 넘어갔다.

“나 왔어.”

“먼저들 와 있었군.”

그때 선우방이 부친과 함께 일행에게 다가왔다.

선우청이 챙겨 온 선물상자를 들고서 말이다.

물론 선물상자는 일행들의 것이 아니라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인 당비를 위한 것이었다.

“예. 일찍 와야 좋은 자리를 선점할 수 있으니까요.”

“허허허허.”

선우청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오늘 같은 날에 좋은 자리라고 하면 당비나 사천당가주가 앉아 있는 곳에서 가까운 곳일 텐데 반호진 일행이 앉아 있는 위치는 정반대였다.

가장 구석지고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앉아서는 좋은 자리를 선점했다고 하자 선우청은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반호진답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순서가 오려면 오래 기다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반 공자는 방장과 함께 인사하지 않나?”

“사부님과 대사형은 태상가주님을 따로 뵈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이륭이랑 조운이와 함께 따로 인사드릴 생각입니다.”

“자리를 지키며 눈치를 보다가 슬쩍 떠날 생각은 아니고?”

선우청이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그가 아는 반호진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아서였다.

웃긴 건 다들 그 생각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저 그렇게 몰상식한 사람 아닙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인사는 드려야지요.”

“하긴. 방장과 법무 대사가 있으니.”

장난스럽게 묻기는 했으나 선우청도 반호진이 그러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가능성만 있다고 생각했을 뿐.

“어쩌면 우리랑 비슷하겠는걸?”

“더 늦을 가능성이 크지. 대기자들이 많으니까.”

따로 줄을 서 있지는 않았지만 얼추 순서라는 게 보였다.

그렇기에 반호진은 장담했다.

앞으로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한참 남았다고 말이다.

게다가 선물증정식은 단순히 가지고 온 선물만 건네는 게 아니었기에 반호진은 느긋하게 마음먹었다.

“오늘 밤 안에는 끝나겠지?”

“그러길 바라야지.”

“근데 선물받는 것도 일이겠다. 덕담도 주고받아야 하고.”

“그러니까 고희연, 산수연(傘壽宴)을 십 년마다 하는 거겠지. 매년 하기에는 체력적으로 힘드니까.”

“어후.”

선우방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매년 이렇게 연회를 열 걸 생각하니 끔찍해서였다.

그런데 옆에 있던 선우청은 생각이 다른 듯했다.

“내 고희연이 이랬으면 좋겠구나.”

“아버지.”

“바람이야, 바람. 너라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하고.”

선우청이 빙긋 웃었다.

부담을 주려고 한 말은 아니라는 듯이.

그러나 막상 이 말을 들은 선우방은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아직 한참 남으셨는데요.”

“이십사 년 정도 남았으니까 꽤 남긴 했네.”

반호진의 말에 선우청이 자신의 나이를 떠올렸다.

강산이 두 번 넘게 바뀔 시간이니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이 반만 되어도 나는 행복할 것 같구나.”

“부담을 너무 많이 주시는 거 아닙니까?”

“하하하.”

앓는 소리를 하는 아들의 모습에 선우청이 싱긋 웃었다.

부담스럽다고 말은 해도 불가능하다고는 하지 않아서였다.

그 차이를 눈치챘기에 선우청은 미소 지었다.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세요.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니까요.”

“그래그래.”

“허참.”

대답과 달리 환하게 웃고 있는 부친의 모습에 선우방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동시에 막막한 심정이 들었다.

원래 목표가 선우세가를 오대세가 중 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었지만 그건 일생의 꿈이자 목표였다.

그런데 선우청이 기한을 딱 정해 놓자 부담감이 엄습했다.

“힘내라.”

“응원합니다.”

“형은 할 수 있을 거예요.”

어깨가 축 늘어진 선우방의 모습이 안쓰러워서일까.

반호진과 정이륭, 서조운이 차례대로 한마디씩 했다.

하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 호진아.”

“왜.”

“상관세가는 어제 왔다가 인사만 하고 바로 갔대.”

“그래?”

선우방이 목소리를 낮게 깔며 말했다.

한데 반호진의 반응이 예상과 사뭇 달랐다.

딱히 놀라지 않았던 것이다.

“찔리는 게 있다는 거지.”

“굳이 부딪칠 필요는 없으니까. 왠지 그럴 것 같았어.”

“아마 우리에 대한 정보를 전달해 주는 자가 있을 거야.”

선우방이 싸늘한 시선으로 연회장을 훑었다.

그러나 이쪽을 주시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기에 상관적과 연관이 있는 자를 찾는 건 불가능했다.

“그럼 상관적과 친분이 있는 자들이 누구인지부터 확인해 봐야겠네요.”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이런 쪽에는 개방이 빠삭하지 않을까요?”

서조운의 시선이 오중건을 찾았다.

어제만 해도 연회장이 있었기에 오늘도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거지가 공짜 음식을 마다할 리 없으니 분명히 어디선가 포식을 하고 있을 터였다.

선우방도 같은 생각인지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누구를 그렇게 찾는가?”

“아, 가주님.”

“저 왔습니다, 형님!”

“안녕하세요?”

서조운과 선우방이 매서운 눈으로 주변을 살펴볼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모용궁과 모용척, 모용희수가 다가온 것이었다.

연회장에 들어오자마자 이곳으로 왔는지 선우방과 마찬가지로 모용척 역시 비단으로 포장된 작은 상자를 들고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모용 대협.”

“허허허. 한 십 년만이지요?”

“그런 것 같습니다.”

반호진과 인사를 마친 모용궁은 선우청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자식들 간의 사이가 좋아서 그런지 두 사람의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제삼자가 보기에는 상당히 친해 보였다.

“역시 여기 있었군.”

그런데 손님은 모용궁이 끝이 아니었다.

또 다른 이들이 반호진의 자리에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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