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장. 사천당가(四川唐家). -02
“왜?”
“저희 인기폭발인 거 같아요.”
그때 서조운이 은근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주위를 힐끔거리면서 말이다.
“그래서 좋아?”
“남자들의 시선은 기분 나쁜데 여인들의 시선은 좋네요. 흐흐흐!”
“너도 참 한결같구나.”
여전히 솔직하다 못해 발칙한 서조운의 대답에 반호진이 실소를 흘렸다.
그러나 걱정하지는 않았다.
말은 화화공자처럼 하지만 실속은 별 볼일 없다는 걸 잘 알아서였다.
막상 미녀 앞에 서면 말수가 확연히 줄어들었기에 반호진은 그냥 피식 웃고 말았다.
“오늘에야말로 삼봉을 전부 보겠죠?”
“아마도? 화산파도 오긴 올 테니까. 대사형이 왔으니 화산파도 대제자가 오겠지.”
“오오오.”
“벌써부터 발랑 까져서는.”
이제야 하나 건수를 잡았다는 듯이 모용척이 빈정거렸다.
하지만 서조운은 흔들리지 않았다.
아까도 말했지만 서조운은 인정할 건 인정하는 성격이었다.
사기를 치거나 매도하는 게 아니었기에 서조운은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건 자연의 이치입니다. 또 음양의 조화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닙니다. 고로 제가 미녀를 좋아하는 건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라는 거죠.”
“그래. 네 똥 굵다.”
당황하기는커녕 오히려 당당하게 인정하는 서조운의 모습에 모용척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어째 본전도 못 찾은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그럴수록 서조운의 어깨는 쭉쭉 올라갔다.
“다른 두 사람은 왔어?”
“역시 형도 관심이 가죠?”
“궁금하기는 하지. 나는 삼봉을 아예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데 미인이신 분들도 많은데?”
“그럴 수밖에 없죠. 여기에 내로라하는 후기지수들이 전부 모였잖아요. 어떻게 보면 최고의 신랑감과 신붓감들이 모여 있는 자리니 당연히 치장에 신경 쓸 수밖에요.”
“너도 이런 자리는 처음이지 않아?”
정이륭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서조운 역시 이런 연회에 참석한 건 처음일 텐데 너무나 태연해서였다.
“처음이긴 한데, 나름 대단하다는 이들을 봐서 그런지 딱히 긴장되지가 않네요. 삼봉 중 한 분인 모용 소저를 직접 보기도 했고. 모용 소저에 못지않은 미녀도 봤으니까요.”
“자랑하는 거지?”
“형도 봤잖아요. 난 소저.”
“아.”
정이륭이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고 보니 그도 직접 본 적이 있었다.
두 눈이 번쩍 뜨일 만한 미녀를 말이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비등비등해요.”
“그럼 대단한 거 아냐?”
“그렇죠. 그러니까 면사를 했겠죠?”
“내 동생이 더 예쁘다.”
두 사람의 대화에 모용척이 끼어들었다.
독봉이나 매봉이라면 모를까 여동생인 모용희수에 비할 바는 아니라고 생각해서였다.
친오빠여서가 아니라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삼봉 중 미모로만 따지자면 모용희수가 제일이었다.
편파적인 게 아니라 대다수의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외모를 모용희수는 가지고 있었다.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 건가요?”
“객관적으로 봤을 때 독봉이나 매봉은 취향이 확 갈리지만 희수는 달라.”
“그건 인정합니다. 아무래도 두 분은 개성이 강하다고 하니까요.”
“넌 내 동생만 봤지만 나는 셋 다 봤지.”
“어렸을 때 아니에요?”
훅 치고 들어오는 서조운의 말에 모용척의 말문이 막혔다.
마지막으로 독봉과 매봉을 봤을 때가 몇 년 전이어서였다.
“혈기왕성하네.”
“한창 그럴 때지.”
“아직 안 온 것 같지? 상관세가.”
“내 눈에도 안 보여.”
열심히 티격태격하는 동생들과 달리 선우방과 반호진은 차분했다.
동생들이 옥신각신하거나 말거나 우아하게 차를 홀짝이며 연회장 내부를 살폈다.
상관적이 있나 없나 찾아봤던 것이다.
“오긴 올 거 같은데. 궁금해서라도 말이지.”
“내 생각에도.”
“아니면 일부러 피하고 있나?”
“그럼 온 의미가 없지.”
“변명거리는 많잖아? 만들면 되기도 하고.”
선우방의 눈동자가 예리해졌다.
동생들도 마찬가지지만 그 역시 상관세가에 결코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담현이 단위에 대해서 가급적 말을 아껴 달라고 했기에 부친에게 말은 하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순순히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그건 그뿐만 아니라 동생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안녕하세요?”
“팽 소저.”
“되게 오랜만이죠?”
“그러네요. 두 분만 오신 겁니까?”
반호진의 원탁으로 늘씬한 인영 두 개가 다가왔다.
바로 팽화영과 팽수영이었다.
모두가 훔쳐보기만 하고 정작 다가오지를 못할 때 두 여인은 성큼성큼 걸어왔다.
“네. 오빠들은 아직 폐관수련 중이에요.”
“일찍 나올 줄 알았는데, 아닌 모양이네요.”
“적어도 일 년은 채워야 될 거예요. 더 늘어날 수도 있고요.”
친오빠 두 명이 다 갇혀 있다시피 하고 있지만 팽화영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생각해서였다.
“앉아도 될까요?”
“물론이죠.”
어깨를 으쓱이는 팽화영과 달리 팽수영은 웃으며 물었고 반호진은 흔쾌히 허락했다.
빈자리가 없다면 모를까 충분히 있었기에 반호진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오랜만입니다.”
“저희도 합석 가능할까요?”
팽화영, 팽수영 자매가 시작을 끊자 다른 이들도 은근슬쩍 다가왔다.
그런데 반호진의 원탁을 향해 걸어가는 다섯 남녀를 본 후기지수들이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한 번 자리에 앉으면 움직이지 않았던 남궁광과 제갈기정이 여동생들을 데리고 먼저 다가가서였다.
“상관없기는 한데, 보시다시피 자리가 없습니다.”
“비어 있는 탁자를 붙이면 됩니다.”
제갈기정이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잽싸게 움직였다.
옆에 덩그러니 비어 있는 원탁을 끌고 와서는 반호진이 앉아 있는 원탁과 붙였던 것이다.
“이러면 되지 않습니까?”
“그렇군요.”
괜히 친구가 아니라는 듯이 제갈기정이 움직이고 남궁광이 말을 잇자 반호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딱히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다.
다른 이들에게야 남궁광이 대단하겠지만 반호진에게는 아니었다.
그에게는 여느 후기지수와 똑같았기에 팽화영, 팽수영 자매를 대하듯이 대했다.
“저도 왔어요.”
남궁광, 남궁수연, 남궁소연, 제갈기정, 제갈혜정이 어색하게 이어 붙인 원탁에 앉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늦게 연회장에 도착한 모용희수가 다가온 것이었다.
“여기 앉아.”
“고마워, 오빠.”
삼봉 중 처음으로 등장한 모용희수에 다시 한번 장내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걸 본능적으로 느낀 모용척은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의 옆에 모용희수를 앉혔다.
그러고는 대놓고 여동생을 바라보는 남자들에게 매서운 안광을 쏘아 댔다.
쳐다보지 말라고 눈빛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스윽.
모용척이 내뿜는 그 강렬한 안광에 후기지수들이 헛기침을 하며 자연스럽게 시선을 피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나름 자신의 신분과 실력에 자신이 있는 이들은 모용척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도리어 도발적인 표정과 눈빛으로 그를 마주 봤다.
“어쭈?”
모용희수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는 이들의 등장에 모용척의 표정이 일변했다.
순식간에 사나운 얼굴이 되었던 것이다.
“오빠의 삶이란 게 녹록지 않네요.”
“조금 의외기는 하지만.”
“그러니까요. 척이 형에게 저런 면모가 있을 줄은.”
생소한 모용척의 모습에 서조운이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설마하니 저렇게나 여동생을 챙길 줄은 몰라서였다.
하지만 선우방은 모용척의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되었다.
“잘 지내셨어요?”
“예.”
“반 공자님의 소식은 꾸준히 듣고 있어요. 오라버니에 대한 것도요. 혹 오라버니가 실수를 하지는 않았나요?”
“지금 모습이 평소의 모습입니다.”
“아.”
모용희수가 장탄식을 흘렸다.
어째 반호진을 따라가서도 변한 게 없는 듯해서였다.
“그래도 사고는 안 칩니다.”
“다행이네요.”
“이쪽은 새로 합류한 동생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정이륭이라고 합니다.”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모용희수에게 반호진은 정이륭을 소개해 주었다.
분위기도 환기시킬 겸 해서 말이다.
그런데 두 사람의 인사에 일곱 쌍의 눈동자가 정이륭에게 집중되었다.
안 그래도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다들 궁금해하던 차였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모용세가의 모용희수라고 해요.”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누구에게요?”
“어…….”
정이륭이 당황했다.
예의상 한 말에 이렇게 물어볼 줄은 몰라서였다.
스윽.
그러나 눈빛은 솔직했다.
정이륭의 시선이 여전히 눈싸움을 벌이고 있는 모용척과 서조운에게로 향했다.
“어머?”
“으왁!”
모용척은 정이륭의 시선을 느끼지 못했지만 서조운은 달랐다.
그녀와는 안면도 있었기에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었는데 정이륭이 모용척과 자신을 쳐다보자 화들짝 놀랐다.
“쯧쯧쯧.”
그 숫기 없는 모습에 반호진이 혀를 찼다.
아까 전에 패기 있던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서였다.
-이름 들어 봤어?
-전혀. 처음 들어 봐. 네가 보기에는 어떤 거 같아?
-……모르겠어.
한편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묘하게 소외된 남궁광과 제갈기정이 정이륭을 힐끔거렸다.
서조운과 모용척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지만 정이륭은 달라서였다.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반호진의 일행에 합류했기에 정보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친구인 남궁광의 말은 제갈기정을 더욱 놀라게 했다.
-네 눈으로도 안 보인다고?
-어. 반박귀진은 아닐 테니 나와 비슷하다는 뜻이겠지.
-말도 안 돼.
제갈기정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한 번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쉬웠다.
반호진 같은 인물이 또 나타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그런데 반 소협 정도는 아냐. 막연하지는 않아.
-그래도 네가 가늠하지 못한다는 건 사룡급이라는 거 아냐? 그것만으로도 말이 안 되는 거지.
-대체 어디서 만났을까?
남궁광은 진심으로 궁금했다.
어째서 저런 인재들이 반호진의 곁으로만 모이는지.
만약 그가 먼저 만났다면 정이륭은 반호진이 아니라 남궁세가에 있었을 것이었다.
‘게다가 선우방도 엄청나게 성장했어.’
남궁광은 슬쩍 반호진의 옆에 앉아 있는 선우방을 힐끔거렸다.
예전에는 안중에도 없던 인물이 선우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못 본 사이에 몰라볼 정도로 성장했기에 남궁광은 그것도 믿기지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요술을 부린 거지?’
불가의 제자인 반호진과 요술은 상극이나 마찬가지였다.
즉 말이 안 되는 소리라는 걸 알면서도 남궁광으로서는 요술이라는 단어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 정도로 선우방의 성장은 믿기 힘들 정도였다.
동시에 너무나 궁금했다.
‘저 아이야 구양절맥을 앓았으니 비약적인 성장은 이해가 가지만.’
남궁광의 시선이 잠시 서조운에게 닿았다.
그러나 서조운은 선우방과 달리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었다.
구양절맥을 앓았다는 것 자체가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음을 증명하는 것이었으니까.
-나도 궁금하네. 내가 먼저 만났다면 내 의동생이 되었을 수도 있는데. 그럼 모용척은 어때?
-잊힌 천재가 부활했지.
-참나.
제갈기정이 탄식을 흘렸다.
안 그래도 천재들이 쏟아져 나오는 판국인데 과거의 천재까지 부활했다고 하자 제갈기정은 막막한 심정이었다.
자신의 자리가 점차 밀리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스윽.
한편 오빠들과 마찬가지로 제갈혜정과 남궁소연, 남궁수연은 조용히 눈치만 보고 있었다.
모용희수와 반호진 일행의 대화에 끼어들기가 애매해서였다.
마치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는 처지에 세 여인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이런 대접은 난생처음이어서였다.
“여기 모여 계셨네요?”
그때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사천당가의 삼남매가 모습을 드러냈다.
또 다른 삼봉 중 한 명인 당서린이 웃으며 다가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