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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재림-76화 (76/468)

제 28장. 불청객(不請客). -01

“충분히 선물이 될 것 같습니다.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반호진과 하오문주가 서로를 보며 웃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본 서조운의 얼굴이 굳어졌다.

다른 세 명이야 새외의 정세에 그러려니 하는 모양이지만 서조운은 달랐다.

반호진과 함께 북해에 다녀왔기에 서조운은 단순히 관심 정도의 수준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역시 하오문주라고 하나?’

호호 할머니처럼 보이지만 역시나 그건 단순히 겉으로만 보이는 모습이었다.

실체는 중원의 암흑가를 주무르는 거인이었다.

지금 하오문주는 말하고 있었다.

중원뿐만 아니라 새외까지도 눈과 귀가 닿아 있다고 말이다.

‘그런데도 형님께서는 놀라거나 당황한 기색이 아냐. 왜지?’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서조운은 하오문주가 옆집 할머니처럼 느껴졌었다.

그러나 구천문에 대한 내용을 말한 순간 그의 손아귀에는 땀이 맺혔다.

하오문의 힘이, 정보력이 얼마나 무서운 힘인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어서였다.

‘예상 범위 내라서? 아니면 원래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서조운은 영리하지만 아직 세상 경험이 부족했다.

그걸 서조운 본인도 잘 알았다.

그래서 서조운은 모든 걸 보고 배우자는 마음가짐으로 노력했다.

하지만 반호진의 생각은 쉽게 추측이 되지 않았다.

‘선물. 선물을 받았다고 했지.’

이럴 때는 반대의 입장으로 생각하면 되었다.

자신이 반호진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자 안개 속과 같았던 머리가 맑아졌다.

‘능력의 증명인가.’

하오문주는 우리에게 정보력이 있다고 협박하려는 게 아니었다.

그저 순수한 의도로 선물을 준 것뿐이었다.

단지 그게 유형의 물건이 아니라 무형의 것이었을 뿐.

그리고 그 의미를 반호진은 단박에 알아차렸다.

동시에 하오문주는 말한 것이다.

무력은 떨어질지 모르나 하오문의 정보력은 천하에서 으뜸이라고.

‘이런 게 심계인가.’

서조운은 마른침을 삼켰다.

역시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표정이 왜 그래? 무슨 고민 있어?”

“아, 아니에요. 그냥 생각할 게 있어서요.”

“엄청 심각한 모양이네? 얼굴이 아주 딱딱하게 경직됐던데.”

“에이.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잡생각이에요.”

선우방을 보며 서조운이 손사래를 쳤다.

그와 동시에 표정을 풀었다.

반호진이 북해에 간 거에 대해서 먼저 말하지 않는 이상 그가 말할 필요는 없었기에 서조운은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구천문이라. 독이 좀 위험하기는 하지. 절정고수도 중독되면 한 줌 독수로 화하기도 하니까.”

“그나마 사천당가가 있어서 다행인 거 같아요. 묘강에서 그렇게 멀리 안 떨어져 있기도 하고.”

“진짜 중원침공을 계획 중이려나?”

하오문주가 괜히 구천문을 거론할 리 없기에 선우방이 걱정 어린 표정을 지었다.

만약 진짜로 구천문이 야심을 드러내고 침략해 온다면 피해가 어마어마할 터였다.

익히기는 까다롭지만 대신 엄청난 위력을 지닌 게 독이었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수백, 수천 명도 죽일 수 있는 게 독이었기에 선우방이 미간을 좁혔다.

“구천문이 흑심을 품고 있다면 개방이 가장 먼저 알아차렸을 겁니다.”

“글쎄. 개방도 모든 걸 알지는 못해.”

모용척이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듯이 말했지만 선우방의 생각은 달랐다.

전쟁에 있어 가장 위험한 게 바로 지금 모용척처럼 방심하는 것이었다.

화살이 턱 밑까지 다가왔을 때 알아차리면 이미 늦었다.

그러니 최고는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었다.

“에이. 그래도 개방인데.”

“평화가 길었지. 그리고 개방의 정보력은 대단하지만 그만큼 천하는 넓어. 만약 개방의 정보력이 엄청났다면 새외무림의 침공도 없었겠지. 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막았을 테니까.”

“…….”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그렇기에 모용척은 눈을 껌뻑거렸다.

동시에 자신이 놓치고 있는 것도 깨달았다.

개방을 너무 믿고, 의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의 상황만 봐도 선우방의 말에 무게를 실어 주었다.

만약 하오문주가 이곳에 와 있는 걸 알았다면 개방에서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보였을 텐데 그런 건 전혀 없었다.

꿀꺽!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모용척은 소름이 돋았다.

하오문주의 말을 허투루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대단하다는 하오문도 일부러 확인해서야 알아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는 말은 다른 곳은 모르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제야 심각성을 깨달았어?”

“……말 그대로 가능성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신경 안 쓰겠다고?”

“대비는 해야겠지요.”

모용척이 못 이기는 척 대답했다.

인정하기 싫었으나 대비해서 나쁠 건 없었다.

만사불여튼튼이라고 하지 않던가.

가능성이 희박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대비는 필요했다.

‘흐음. 조운이는 뭔가 아는 것 같던데.’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입술을 삐죽 내미는 모용척을 일별한 선우방이 슬쩍 서조운을 쳐다봤다.

반호진과 하오문주가 구천문에 대해서 말을 주고받을 때 그는 봤었다.

서조운이 움찔거리는 걸 말이다.

거기다 안면이 경직되었기에 선우방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모르는 걸 서조운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둘, 아니 셋 내지 넷은 알고 있다고 봐야겠지.’

선우방의 시선이 서조운을 지나 여전히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반호진과 하오문주, 난희주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급하게 묻지는 않았다.

굳이 지금이 아니더라도 물어볼 기회는 많았다.

게다가 하오문주가 있는 자리에서 묻기에는 껄끄러웠다.

***

이른 아침임에도 반호진의 처소는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새벽부터 나와서 운기조식을 하는 무인들 때문이었다.

거기에 하오문의 호위무사들이 합세했다.

까앙! 깡!

운기조식이 끝나기 무섭게 무한히 이어지는 대련이 시작되었다.

상대를 바꿔 가며 계속해서 비무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걸 피하거나 귀찮아하는 이들은 없었다.

오히려 하나같이 두 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대련에 임했다.

“어라? 손님들이 여기서 머무신 거예요?”

“응.”

“어, 이건 예상 못 했는데…….”

아침부터 시끄러운 반호진의 거처에 또 다른 손님들이 찾아왔다.

바로 정현을 비롯한 이대제자들이었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오전 수련을 여기에서 하게 된 이대제자들은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침부터 살벌한 기세로 비무를 하는 이들을 쳐다봤다.

“상관없잖아. 장소가 좁은 것도 아니고. 사실 대련을 굳이 평평한 곳에서 할 이유는 없지. 싸움이 어떤 환경에서 벌어질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데.”

“그건 또 그러네요?”

“다 경험이야.”

“근데 저분들은 실전경험이 상당하신 것 같아요. 역시 연륜이 있어서 그런가.”

정현이 눈을 반짝였다.

반호진 일행들처럼 화려하고 탄탄한 느낌은 없지만 대신 변칙적이고 임기응변에 강했다.

바로 명문세가나 대문파의 제자들에게 부족한 것들 말이다.

그걸 한눈에 알아봤기에 정현은 물론이고 이대제자들이 눈을 빛내며 지켜봤다.

“연륜이라기보다는 진흙탕 싸움에 익숙해서 그래. 지금의 너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경험이지.”

부르르르!

왠지 모르게 오한이 드는 것 같은 목소리에 정현과 이대제자들이 몸을 떨었다.

고저 없는 반호진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반사적으로 몸에 경련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래서 피하게?”

“그, 그럴 리가요!”

“소림제자는 절대 도망치지 않아요!”

“정면돌파!”

자존심을 직격으로 건드는 도발에 이대제자들이 단숨에 넘어갔다.

아직은 어린아이들이기에 곧바로 반응한 것이었다.

그 모습에 반호진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운기조식은 다들 했을 테고, 나랑 같이 몸부터 풀자. 체력단련은 하루도 빼먹어서는 안 돼.”

“예!”

정현과 이대제자들은 군말 없이 따랐다.

그들이 아는 반호진은 진즉에 체력 훈련도 했겠지만 왜 또 하냐고 묻지 않았다.

다들 반호진이 어떤 수련을 하는지 잘 알고 있어서였다.

평소에는 설렁설렁 돌아다니지만 수련할 때는 미치광이가 되는 게 반호진이었다.

“우, 우와!”

“미, 미쳤다!”

“선녀 아냐?”

“삼봉인가?”

“그럴 리가. 내가 저번에 삼봉 다 봤는데 저런 분은 안 계셨어.”

반호진을 따라 연무장으로 사용하는 앞마당을 크게 돌던 이대제자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난희주의 등장에 깜짝 놀란 것이었다.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면사를 안 한 상태이기에 난희주는 미모가 훤히 드러난 상태였다.

거기가 막 머리를 감고 나왔는지 긴 머리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누구지?”

“저런 미녀가 왜 무림에 알려지지 않았지?”

“어제는 저런 분이 오셨다고 말씀 안 하셨잖아요!”

정현이 반호진에게 따졌다.

자기도 모르게 흥분해서 소리친 것이었다.

그런데 그건 다른 이대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섭섭함이 가득한 눈빛으로 반호진을 쳐다봤다.

“어머?”

그 소리에 하오문주와 함께 밖으로 나온 난희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까까머리 소년들 십여 명이 우르르 나타나자 놀란 것이었다.

“지금 나한테 큰소리 친 거야?”

“그, 그게 아니라요!”

“너무 놀라서!”

“죄송합니다!”

반호진 특유의 까칠한 말투에 정현을 비롯한 이대제자들이 바닥에 엎드렸다.

하늘같은 사백님을 향해 고함을 지른 건 큰 잘못이었기에 넙죽 엎드린 것이었다.

그런데 그 모습조차도 반호진에게는 귀엽게 보였다.

난희주와 하오문주도 마찬가지인지 둘 다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고 있었다.

“그만 일어나.”

“넵!”

“다시는 실수하지 않겠습니다!”

“그럼 봐주는 대가로 물구나무 스무 바퀴.”

스리슬쩍 몸을 일으키던 이대제자들이 동시에 입을 떡 벌렸다.

생각지도 못한 벌에 다들 놀란 것이었다.

하지만 지은 죄가 있기에 질린 표정을 짓긴 해도 이내 다들 물구나무를 한 채로 앞마당을 돌기 시작했다.

“괜찮을까요?”

“저것도 다 훈련입니다. 평소에 안 쓰는 근육을 단련하는 거예요.”

“아. 그럼 저도 해 볼까요?”

“지금 복장으로는 힘들 텐데요.”

난희주가 슬그머니 다가왔으나 반호진은 시선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런데 난희주도 그걸 알았으나 아쉬워하지 않았다.

“옷이야 갈아입으면 되죠.”

“아이들을 따라 하기에는 좀 벅찰 겁니다. 나이는 어려도 제가 단련을 제대로 시켰거든요.”

“제가 보기에도 그래 보여요. 다들 근육이.”

난희주가 살짝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십 대 초반으로 보였는데 전신에 알찬 근육이 가득했다.

대충대충 만든 몸이 아니라 진짜 제대로 단련해서 만든 근육이었다.

압축되고 압축된 근육이라고나 할까.

“아직 완성된 건 아닙니다. 다들 성장기라. 남자에게 있어 키는 중요하니까요. 뭐, 스님은 남자가 아니긴 합니다만 권장지각을 익히는 무승이 팔다리가 길어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

“그렇긴 하죠. 짧은 것보다는 이왕이면 긴 게 좋죠.”

수준은 낮을지 몰라도 난희주 역시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간단한 금나수도 익히고 있었기에 반호진의 말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반호진이 새삼 존경스러웠다.

반호진 정도나 되는 무인이 사질들에게 이렇게 관심을 쏟기가 쉽지 않다는 걸 잘 알아서였다.

“역시 키를 보시는군요?”

“키를 본다기보다는, 비율이겠죠?”

“하긴. 이왕이면 다홍치마니까요. 조운이 녀석이 밤에 잠을 일찍 자겠네요.”

“호호호.”

난희주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굳이 반호진이 서조운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그녀 역시 알고 있었다.

서조운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난희주의 관심은 다른 이에게 향해 있었다.

‘사부님께서도 은근히 바라시는 듯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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