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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재림-62화 (62/468)

제 23장. 뜻밖의 수확? -01

그러나 세상은 모용척이 생각하는 것처럼 녹록지 않았다.

모용척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을 품고 있었는지 냉혹하게 알려 주었다.

“그런 녀석이 있을 줄이야.”

스스로가 엄청난 재능을 타고났기에 모용척은 첫 합을 나누는 순간 알았다.

눈앞에 있는 서조운 역시 어마어마한 재능을 가지고 있음을 말이다.

하지만 무공에 임하는 자세는 극명하게 달랐다.

최고가 되지 않았음에도 세상이 발아래 있는 것마냥 행동했던 그와 달리 서조운은 그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자만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그 이유는 그자 때문이겠지.”

모용척이 두 눈을 감았다.

그러자 아주 잠깐 반호진이 드러냈던 존재감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고작 그 정도 수준으로 자만하느냐고 묻는 듯한 눈빛에 모용척은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거기다 반호진의 나이는 이제 스무 살이라고 했다.

“나랑 두 살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

심지어 모용척은 오늘 그보다 한 살 어린 서조운에게 개박살이 났다.

그냥 패배한 것도 아니고, 아슬아슬한 차이로 진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완패했다.

논란의 여지도 없는 완벽한 패배였기에 모용척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이제야 자신이 얼마나 오만했는지, 건방을 떨었는지 깨달았기에 모용척은 자기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래도 아직 안 늦었어.”

냉정하게 자기객관화를 끝낸 모용척이 감고 있던 두 눈을 떴다.

그런 그의 눈빛은 아침과는 전혀 달랐다.

독기로 번뜩이는 두 눈에는 결의와 갈망이 가득했다.

현 위치를 깨달았기에 마음가짐 역시 달라진 것이었다.

“지금부터라도 시작하면, 독하게 하면 따라잡을 수 있다.”

모용척은 냉정하게 판단했다.

그가 지금부터 노력한다고 해서 서조운이나 반호진을 당장 따라잡는 건 불가능했다.

두 사람이 그처럼 허송세월을 보낸다면 모르겠으나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기에 모용척이 노력하는 만큼 두 사람도 마찬가지이기에 단기간에 따라잡는 건 힘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못 따라잡을 것도 없어. 추월도 가능해.”

만사에 흥미를 잃어버렸던 모용척이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와 견주어도 모자람이 없는 반호진과 서조운의 등장에 그동안 잠자고 있던 승부욕이 활화산처럼 폭발했다.

“일단 목표는 그 녀석부터.”

모용척은 목표를 정했다.

우선은 서조운부터 넘는 것으로.

그리고 그다음은 역시나 반호진이었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정말 오랜만에 무복을 입은 모용척이 밖으로 나갔다.

지금 당장 수련을 시작할 작정이었다.

허무하게 많은 시간을 날린 만큼 잠시도 허비할 수 없었다.

툭.

배정받은 숙소로 돌아온 팽수영은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앞에 앉은 여동생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너나 나나 그른 것 같지?”

“응.”

“넌 아무렇지도 않아?”

“애초에 성공할 가능성보다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으니까. 기대를 안 했으니 실망도 적을 수밖에.”

팽화영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부친의 마음은 이해가 되었지만 남녀사이라는 게 한쪽의 뜻으로만 맺어지기 힘들었다.

그렇기에 팽화영은 처음부터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다.

“아빠가 노발대발할 텐데.”

“안 그럴걸? 아빠도 알고 있을 거야.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걸. 정으로 만나는 건 오래된 연인뿐이잖아. 처음에 불꽃이 튀지 않으면 관계가 진전되기가 힘들지. 그리고 언니도 서 공자한테 딱히 관심 없잖아?”

“나쁘지 않은 혼처인 건 확실하니까. 잠재력도 충분하고.”

팽수영은 아까 전 모용척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던 서조운을 떠올렸다.

체격은 별로였으나 외모와 실력은 충분히 그녀가 바라는 기준에 부합했다.

그리고 성격도 수더분하니 나쁘지 않았다.

“반대로 말하면 그런 서 공자의 눈에 우리가 찰 리 없잖아.”

“희수 바라볼 때 눈에서 꿀이 아주 뚝뚝 떨어지더라. 완전 첫사랑에 빠진 소년이던데.”

팽수영이 못마땅한 얼굴로 툴툴거렸다.

하북팽가에서부터 여기까지 오면서 함께한 시간이 적지 않았음에도 서조운은 단 한 번도 그녀에게 그런 눈빛을 보내 준 적이 없었다.

그게 팽수영은 살짝 서운했다.

“동갑내기잖아. 거기다 희수의 외모는 호불호가 거의 갈리지 않으니까 남자들이 더더욱 좋아할 수밖에 없지.”

“넌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어?”

“인정할 건 인정하면 돼.”

“여인이 아니라 무인의 관점으로 봐서 그런 건 아니고?”

“그럴 수도 있고.”

팽화영은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사실 그녀는 잘생긴 남자를 봐도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설레는 일이 없었다.

오히려 아까처럼 서조운과 모용척의 비무를 보면 가슴이 미친 듯이 벌렁거렸다.

재능 넘치는 두 사람의 비무를 보자 피가 끓어오르는 느낌이었다.

“하긴. 넌 재능이 있으니까. 솔직히 말해 봐. 큰오빠 이길 자신 있지?”

“글쎄.”

팽화영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팽수영의 눈에는 보였다.

자신만만한 여동생의 미소가.

“그나저나 왜 모용 공자를 찾아왔을까. 솔직히 반 공자 입장에서는 모용 공자가 정신을 차리든 말든 아무 상관 없잖아?”

“나도 그게 궁금하기는 해. 얻을 게 전혀 없으니까. 희수를 보러 온 김에 겸사겸사 어울렸다면 말이 되겠지만 언니도 봤잖아. 아예 무관심으로 일관하던데.”

“나 그런 남자는 처음 봤잖아. 솔직히 그거 보고 가슴이 살짝 두근거리기는 했어. 세상에 어떤 남자가 희수를 눈앞에 두고 그렇게 덤덤할 수 있겠어?”

“조금 특이하시긴 해.”

“특이한 게 아니라 대단한 거지.”

팽수영이 팽화영의 눈앞에서 검지를 좌우로 흔들었다.

단어를 정정해 주기 위해서였다.

그런 모습은 특이한 게 아니라 비범한 것이었다.

만약에 독봉이나 매봉이었다면 조금은 이해가 가능했겠지만 모용희수는 아니었다.

“하긴. 반 공자님의 나이를 생각하면 대단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너 가끔 깜빡하는 거 같은데 반 공자랑 선우 공자랑 동갑이야. 선우 공자도 희수 앞에서는 표정 관리가 잘 안 되더니만.”

“그걸 다 보고 있었어?”

“정 안 되면 꿩 대신 닭이라도 잡아야지. 그래야 집에 돌아가서 아빠한테 할 말이 조금은 있지 않겠어? 근데 지금 보니 그것도 힘들 것 같지만.”

“선우 공자가 꿩 대신 닭이라는 표현을 들을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팽화영이 진지하게 말했다.

분명 타고난 재능은 선우방보다 서조운이 더욱 뛰어났다.

그러나 선우방도 그렇게 엄청나게 차이 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잠재력은 분명 서조운이 더 높다고 생각하지만 팽화영이 생각하기에 선우방이 순순히 따라잡히거나 추월당할 것 같지는 않았다.

“지금은 서 공자보다 선우 공자가 강하지만 글쎄. 난 얼마 안 가서 그게 뒤집힐 거라 생각해.”

“내 생각은 달라. 선우 공자도 만만치 않아. 큰오빠가 진 거 못 봤어? 십 년 넘게 쌓아 올린 기본기는 결코 무시할 수 없어. 거기다 서 공자가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걸 아는데 선우 공자 성격에 가만히 있을까? 난 아니라고 보는데. 기교나 기술은 단기간에 늘 수 있지만 기본기와 체력은 달라.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해. 어찌어찌 따라잡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쉽게 뛰어넘기는 힘들걸.”

“흐음.”

팽수영이 침음을 흘렸다.

무공에 관해서는 아무래도 그녀보다 팽화영이 더 잘 알고 있어서였다.

어쩌면 하북팽가의 후계자인 큰오빠보다도 강할지 모르는 게 바로 눈앞에 있는 팽화영이었다.

“뭐,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야. 사견이니까 너무 신뢰할 필요는 없어.”

“중요한 건 선우 공자도 미래가 탄탄하다는 거 아냐?”

“그렇지. 무시당할 인물은 아냐. 주변에 반 공자님과 서 공자가 있어서 상대적으로 그렇게 느껴지는 거지.”

“근데 중요한 건 그 세 남자들 중 우리한테 관심을 보이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거고.”

팽화영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씁쓸하지만 때로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그래도 다행인 건 변명의 여지가 있잖아. 희수도 저렇게 없는 사람 취급하는데 우리라고 별수 있어?”

“들어 보니 또 그러네?”

“그리고 길게 보자고. 당장 번갯불이 튀면 좋겠지만, 자주 보면서 정이 들 수도 있고. 보니까 모용세가에 오랫동안 머물 것 같지 않던데. 반 공자님도 성격이 은근히 급해서 볼일 다 보면 바로 떠날 거야.”

“본가에 들렀다 가겠지?”

“아닐 가능성이 크지만 중간까지는 같이 가지 않을까 싶은데.”

팽만철이 워낙에 밉상 짓을 했기에 반호진이 하북팽가에 들를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요녕성에서 소림사가 있는 하남성에 가려면 하북성을 관통해서 가야 했기에 북경에 들르지는 않더라도 그 근처까지는 함께 갈 가능성이 높았다.

“나 같아도 아빠는 안 만날 것 같아. 사실 본가에서 출발할 때 얼마나 조마조마했다고. 반 공자도 은근히 성깔이 있어서.”

“화나면 진짜 무서울 성격이기는 하지. 지금도 무게 잡으면 분위기가 장난 아니니까.”

“내 말이. 제대로 화를 안 냈는데 저 정도면 진짜 빡 돌면 얼마나 무섭겠어? 심지어 크게 흥분 안 하고 일단 말로 조목조목 따져서 조진 후에 손찌검을 할 거 같아.”

팽수영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상상만 해도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그런데 팽수영의 단어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인지 팽화영이 미간을 좁혔다.

“아무리 우리끼리 있다지만 단어가 좀.”

“왜? 이것만큼 제대로 된 표현이 어디 있어? 너도 인정하잖아?”

“그래도 조심하자 이거지. 혹시 모르니까. 반호진 공자님 일행이 떠날 때 우리도 같이 출발할 거니까.”

“알았어. 잔소리 좀 그만해. 누가 보면 네가 언니인 줄 알겠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니까 포기하지 말자고. 세 사람 다 좋은 분들이니까.”

솔직히 말해 팽화영은 세 명이 남자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좋은 사람들이라는 건 확실하게 알았다.

서조운은 동생이라서 그런지 아직 애티가 남아 있지만 그럼에도 장래가 유망한 인재였기에 가능성은 열어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어정쩡한 관계지만 나중에는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

‘문제는 모용세가도 가만히 지켜보지는 않을 거라는 거지.’

팽화영은 똑똑히 봤었다.

욕심 가득한 눈빛으로 반호진을 쳐다보는 모용궁의 모습을 말이다.

그리고 서조운이 모용척을 쓰러뜨리자 마찬가지로 뜨거운 눈빛을 그에게 보냈었다.

모용희수라는 강력한 패가 있기에 그걸 십분 활용할 게 분명했다.

‘예상 못 한 건 아니지만, 정말 쉽지 않네.’

팽화영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남자가 미인을 탐하는 것만큼 여자 역시 잘난 남자를 품에 안고자 했다.

그건 어떻게 보면 본능이고 가문을 위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도 뭐라 따질 수도 없었다.

“힘내자, 화영아.”

“응.”

한숨을 쉬는 모습에서 팽화영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린 팽수영이 위로하듯 입을 열었다.

힘들겠지만 그래도 두 사람은 시도하고 도전해야 했다.

그게 하북팽가의 여식으로서 살아온 두 자매의 의무였다.

“저를 받아 주십시오.”

저녁 식사 때는 얼굴도 비치지 않았던 모용척이 대뜸 찾아와서는 허리를 숙이자 반호진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렇다 할 설명도 없이 무작정 받아 달라고 하자 당혹스러웠던 것이다.

반면에 저녁 식사를 끝내고 반호진의 방에 와 있던 서조운은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모용척을 쏘아봤다.

무슨 속셈인지 알 수가 없기에 일단은 경계부터 하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형님 덕분에 제가 얼마나 좁은 세상에서 살고 있었는지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큰 세상에 나가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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