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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재림-56화 (56/468)

제 21장. 욕심이 과하시네. -02

두 딸이 의자에 앉자 팽만철은 느릿하게 차호를 들었다.

그러고는 삼매진화의 수법을 이용해 차를 데웠다.

아직 가을이라고 하나 그래도 밤에는 바람이 제법 쌀쌀했기에 팽만철은 따뜻해진 차를 두 딸의 찻잔에 채워 주었다.

“감사합니다.”

딸들의 찻잔에 차를 따라 준 후 팽만철은 자신의 찻잔에도 차를 채웠다.

그러자 방 안에 차향이 순식간에 차올랐다.

“화영이는 내가 왜 불렀는지 아는 표정이로구나.”

“세 분에 대해서 물어보려고 부르신 것 같은데요.”

“맞다. 선우세가의 아이도 그렇지만 서가장의 아이. 재능이 범상치가 않더구나.”

팽만철이 눈을 빛냈다.

장남인 팽추영을 쓰러뜨린 선우방도 놀랍기는 했으나 서조운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더욱이 팽만철이 보기에 서조운은 무공에 입문한 지 얼마 안 된 아이였다.

“구양절맥을 앓았었대요.”

“역시 그랬군. 하긴 그만한 극양지기는 영약으로도 얻기가 쉽지 않지.”

모든 내공에도 그렇지만 극양지기에도 종류가 있었다.

그리고 서조운이 가진 극양지기는 극양지기 중에서도 가장 정순하다는 순양지기였다.

아무리 순수한 영약이라고 할지라도 인간의 체내에 들어온 순간 성질이 변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인간의 기운과 섞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서조운은 달랐다.

그는 태생적으로 정순한 극양지기를 타고났기에 누구보다 순수한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잠깐만. 그렇다는 말은 구양절맥을 치료했다는 거야?”

“응. 반 공자님께서 치료해 주셨다고 했어.”

“어떻게 알고?”

“나도 자세한 사정까지는 몰라. 그렇게만 들어서.”

팽수영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절맥이 괜히 절맥이 아니어서였다.

치료가 쉬웠다면 애초에 절맥이라는 이름이 붙지 않았을 것이었다.

“천운이 닿는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 희귀해서 그렇지 구양절맥이나 구음절맥이 치료된 적이 있기도 하고. 그나저나 추영이에게는 안 된 일이로구나.”

“일 년만 지나도 무섭게 성장해 있을 거예요.”

“그럴 테지. 하늘이 내린 재능이니.”

팽만철이 입맛을 다셨다.

그는 물론이고 아들 역시도 이번에는 천하제일을 논하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서조운도 문제지만 가장 큰 벽은 역시 반호진이었다.

“근데 완치된 구양절맥의 재능으로도 못 넘는 존재가 있더라고요.”

“맞아. 사실 그 녀석 때문에 널 부른 거다.”

“반 공자님 때문에요?”

“그래.”

팽만철의 대답에 팽화영은 물론이고 팽수영도 호기심을 드러냈다.

둘 다 팽만철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던 것이다.

“저도 반 공자님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해요.”

“그래도 그 녀석과 우리 중에서는 가장 오래 같이 있었지 않느냐.”

“그건 그렇죠.”

팽화영은 이내 수긍했다.

부친의 말도 틀리지는 않아서였다.

“덕도 많이 보고.”

“확실히 찾아가길 잘했다는 생각은 하고 있어요.”

“네가 아들로 태어났다면 내가 이렇게 고민하지는 않았을 텐데.”

갑자기 팽만철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에 팽화영은 물론이고 팽수영도 어색하게 웃었다.

부친이 이런 말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였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도 두 여인 다 잘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요. 그리고 큰오빠도 노력하고 있어요.”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결과다.”

“제가 아들이었어도 서 공자나 반 공자님을 넘기는 힘들었을 거예요.”

“그래도 비벼 볼 수는 있었겠지.”

팽만철이 확신하듯 말했다.

아비이기에 그는 진즉부터 팽화영의 재능을 알아봤었다.

나이를 어느 정도 먹자 팽화영이 숨기려고 했으나 팽만철의 눈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힘들었을 것 같아요.”

“지금은 분명 대단하지만 정체기라는 것도 있으니까. 다른 이들보다 조금 일찍 닿은 것뿐일 수도 있고.”

“아빠는 그렇게 생각하세요?”

팽화영이 맑고 깊은 눈동자로 팽만철을 응시했다.

그 시선에 팽만철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 녀석도 사람인데 한 번 정도는 삐걱거릴 수도 있지 않느냐.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

“완벽에 가까운 사람도 있더라고요. 그리고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어릴 때부터 말씀하신 건 아빠였어요.”

“끄응!”

자승자박이란 말이 절로 떠오르는 막내딸의 한마디에 팽만철이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반호진과의 대련을 떠올렸다.

“이제는 본론으로 넘어가도 되지 않을까요?”

“그 녀석, 네 짝으로 어떻게 생각하느냐?”

“네?”

팽화영의 두 눈이 더 이상 커지기 힘들 정도로 커졌다.

그리고 그건 옆에 조용히 앉아서 경청하던 팽수영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기에 둘 다 토끼 눈을 하고서 팽만철을 쳐다봤다.

“내 자식이 넘을 수 없다면, 우리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니까. 더욱이 아직 만나는 여인도 없다고 들었다.”

“어…….”

팽화영이 어버버 댔다.

난데없는 말에 당황한 것이었다.

“싫다는 말이 바로 나오지 않는 걸 보면 고 녀석이 싫지는 않은 모양이구나.”

“아빠!”

“봐. 지금도 그렇잖아.”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갑자기 왜 얘기가 그리로 가요?”

“추영이가 천하제일이 될 수 없다면, 그에 근접할 녀석을 본가의 울타리 안으로 데려오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니까. 데릴사위라는 아주 좋은 방법이 있지 않느냐.”

깜짝 놀란 팽화영과 달리 팽만철의 신색은 담담했다.

반호진을 처음 봤을 때부터 생각하던 것이었기에 그의 말에는 거침이 없었다.

또 얼굴도 모른 채 정략결혼을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죄송하지만 결정권은 저희한테 없어요.”

“알지. 원래 아쉬운 쪽이 을이 될 수밖에 없는 게 세상의 이치니까.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너만 한 반려자감도 없지 않느냐.”

“그렇지는 않죠. 당장 생각해도 삼봉이 있잖아요. 여자는 무재보다는 외모가 더 중요하기도 하고요.”

“네가 어디가 어때서!”

팽만철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금쪽같은 막내딸이 자기비하 하듯 말하자 흥분한 것이었다.

방을 쩌렁쩌렁 울리는 팽만철의 포효에 팽화영과 팽수영이 동시에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그렇다는 거예요. 사실 미모는 삼봉이 훨씬 낫잖아요. 게다가 삼봉을 안 만났다면 모를까 소림사에서 세 명 다 봤다고 들었고요.”

“결혼에 중요한 건 외모가 아니다. 그리고 남녀사이에 외모의 비중이 큰 건 사실이지만 외모를 이기는 게 매력이다!”

“반 공자님은 그렇게 생각 안 할 수도 있죠.”

“흐음!”

팽만철이 콧김을 내뿜었다.

막내딸의 말도 일리가 있어서였다.

그러나 그는 팽화영처럼 아주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았다.

“제가 반 공자님이라면 이런 말을 들으면 껄끄러울 것 같아요. 첫인상도 썩 좋지 않은데 대뜸 혼사에 대해서 얘기하면요.”

“하지만 지금 말고는 기회가 없어. 듣자 하니 내일 바로 떠난다며?”

“모용세가로 간다고 하더라고요.”

“내 말이. 모용세가에는 백연화가 있지 않더냐. 잠깐. 혹시 모용세가에 찾아가는 게?”

팽만철이 숯처럼 검고 짙은 눈썹을 모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

하필이면 모용세가에 간다는 게 말이다.

“가능성은 있겠는데요?”

“네가 생각하기에도 그렇지?”

“예. 소림사에서 굳이 모용세가까지 갈 필요는 없으니까요.”

팽수영도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북성이야 소림사에서 크게 멀지는 않다지만 모용세가는 달랐다.

“혹 따로 들은 게 있더냐?”

“없어요. 사적인 대화는 거의 나누지 않아서요. 의외로 개인적인 내용을 잘 안 꺼내더라고요. 근데 아빠는 반 공자님이 진짜 마음에 드셨나 봐요.”

“그만한 신랑감은 없으니까. 오히려 데릴사위로 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는 남궁세가의 아이보다 낫지. 게다가 배경이 빠지는 것도 아니고.”

팽화영이 어색하게 웃었다.

보아하니 반호진에게 단단히 빠진 것 같아서였다.

“근데 방금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결정권은 반 공자님께 있어요.”

“그러니 잘 구슬려 봐야지. 어쩌면 너에게 마음이 있을 수도 있고. 모든 가능성은 애초에 반반이다. 육 할이니 구 할이니 그런 건 의미가 없어. 그리고 수영아.”

팽화영의 의사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팽만철이 말했다.

그리고 팽화영 역시 그 부분에 불만은 없었다.

애초에 명문세가의 여식에게 정략결혼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게 싫다면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나면 되었다.

팽화영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으나 팽만철은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대신 팽수영을 불렀다.

“네, 아빠.”

“서가장의 아이, 어떻더냐?”

“네?”

팽수영은 물론이고 팽화영도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상상도 못 한 말이 팽만철에게서 흘러나와서였다.

“서조운이라는 녀석 말이다. 네 짝으로 괜찮은 것 같은데. 나이 차이도 그리 크게 나지 않고. 거기다 그 녀석도 셋째니 데릴사위로 들일 수도 있지.”

“어…….”

팽수영은 말을 잇지 못했다.

정말 눈곱만큼도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기에 그녀는 어버버 댔다.

“나는 괜찮은 것 같은데 말이다.”

“너무 갑작스러운 거 아니에요?”

언니를 대신해 팽화영이 입을 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갑작스러웠다.

“괜찮은 인물이 있으면 잡아야지. 너도 말하지 않았더냐. 당장 일 년 후만 하더라도 웬만한 후기지수들은 다 잡아먹을 거라고.”

“언니 입장도 생각해 주셔야죠.”

“내가 지금 당장 혼인하라고 했어? 어떠냐고 물어본 거지.”

“그게 그거잖아요. 그리고 언니는 오늘 서 공자를 처음 봤어요.”

“얼굴 보면 됐지. 나 때는 말이야. 얼굴도 모르고 그냥 식을 올렸어.”

팽만철이 당당하게 말했다.

자신의 세대에 비하면 이 정도면 많이 달라졌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팽화영은 그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빠 때는 그렇지만 지금은 또 달라요.”

“사람 사는 게 다 비슷비슷하지. 지금쯤이면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됐을 것 같은데?”

팽만철의 시선이 팽수영에게로 향했다.

이 정도면 생각을 정리할 시간은 충분히 주었다고 생각해서였다.

“잘 모르겠어요.”

“싫지는 않다는 거지? 사실 외모는 기생오라비처럼 생겨서 좀 마음에 안 들긴 하는데, 재능이 확실하니까. 집안이 너무 좋아도 안 좋아. 적당한 게 오히려 더 낫다.”

팽만철이 히죽 웃었다.

막내와 마찬가지로 곧바로 싫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서였다.

그의 눈에는 차지 않지만 서조운은 여자들이 좋아할 법한 외양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다 능력까지 출중하니 팽수영도 괜찮게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결정권은 서 공자에게 있어요.”

“그래도 호진이 고 녀석보다는 쉽다. 서가장에 내가 직접 혼사에 관해 서신을 보내면 되니까.”

“서 공자 입장에서는 그걸 더 싫어하지 않을까요?”

“성깔이 제법 있어 보이지만 그래도 부모의 의사를 무작정 거부할 수는 없지. 그게 명문세가니까.”

괜히 정략결혼이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거기다 서가장의 입장에서 하북팽가와 사돈을 맺어서 나쁠 건 전혀 없기에 오히려 쉽게 결혼이 성사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팽화영은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서가장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서 공자의 뒤에는 반 공자님이 계셔.’

의형제나 다름없는 게 반호진과 서조운이었다.

게다가 반호진은 서조운을 살려 준 만큼 서가장주 역시 그에게 마음의 빚을 크게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일단 그리 알고 있거라. 내 두 녀석과 얘기를 나눠 볼 테니.”

“네.”

“알겠어요.”

팽화영은 일단 대답했다.

결국 결정하는 건 팽만철이었기에 일단은 지켜볼 생각이었다.

반호진은 편하게 앉아서 내상약을 먹고 운기요상 중인 두 사람을 지켜봤다.

하북팽가의 별채라고는 하나 그래도 혹시 몰랐기에 호법을 서 주는 것이었다.

“역시 오대세가라 그런가. 효과가 좋네.”

“너희 집에도 내상약은 있잖아?”

“본가에서 만든 것보다 더 좋은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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