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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재림-47화 (47/468)

제 18장. 찾아온 손님. -02

“곧 떠날 거야. 여기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듯하니.”

“아직 결판이 나지 않았는데?”

선우방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생각하기로는 좀 더 머물 줄 알아서였다.

그리고 그게 선우방은 꼭 나쁘다고만은 생각하지 않았다.

의외로 수련하기에 환경이 좋았기에 선우방은 좀 더 머물러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밥을 계속 떠먹여 주면 버릇 나빠져.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혼자 해야지. 그리고 내가 있어서 도움이 되는 건 딱 지금까지야. 이 이상 넘어가면 금 공자에게도 안 좋아.”

“흐음.”

선우방이 턱을 쓰다듬었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어서였다.

그러면서 새삼 반호진의 시야를 느낄 수 있었다.

연륜이라는 말도 떠올랐지만 반호진의 나이를 생각하면 그건 안 어울렸다.

“귀찮게 하는 이도 있고.”

“아, 혹시 그게 저희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반호진에게 쭈뼛쭈뼛 다가오던 호위대의 부대주와 호위대원들이 울상을 지었다.

그 모습에 반호진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빈말이 아니라는 게 느껴져서일까.

부대주와 호위대원들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매일 이렇게 깨지는 거, 힘들지 않습니까?”

“전혀요. 오히려 감사한걸요. 세 분과 대련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기회인지 모두가 잘 알고 있는걸요. 특히 반 대협의 금과옥조와 같은 조언들은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맞습니다!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만큼 발전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기에 오히려 이 시간이 너무 기대됩니다!”

“정말입니다!”

부대주에 이어 호위대원들이 크게 소리쳤다.

진심이 가득 담겨 있는 모습에 반호진은 피식 웃었다.

하지만 도움을 받는 건 서조운과 선우방도 마찬가지였다.

공자가 말하길 아이한테도 배울 게 있다고 했고, 그건 무림에서도 통용되는 격언이었다.

“그렇다니 다행이네요.”

“혹시 오늘도 가능할까요?”

“많은 시간은 못 드리지만, 가능합니다.”

“감사합니다!”

세간에서는 반호진을 평가절하하고 운 좋은 무인으로 깎아내리지만 여기 있는 이들 중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호위대는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반호진과 녹림대군의 싸움을 본 이들이었다.

때문에 헛소문을 들을 때마다 누구보다 앞장서서 역정을 냈다.

진실을 알기에 다들 바로 잡으려 했던 것이다.

“너무 감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를 위한 일이기도 하니까요. 금 공자님이 장주님이 되어야 저도 덕을 보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저희가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리 만들 겁니다!”

패기 가득한 호위대의 대답을 들으며 반호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고는 쉴 새 없이 상대하고 있는 호위대원을 몰아치고 있는 서조운을 주시했다.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반호진의 눈에는 아직 부족한 곳이 너무나 많이 보였다.

***

쏴아아아.

새하얀 포말이 크게 일어났다가 가라앉았다.

그것도 모래사장을 뒤덮는 기다란 파도에 서조운이 입을 쩍 벌렸다.

잔잔한 파도와 함께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이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우와아…….”

처음 보는 바다의 광경에 서조운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저 오만가지 감정이 섞인 감탄사만 내뱉었다.

“동정호와는 또 다르네.”

“바다를 동정호와 비교하면 안 되지. 동정호도 크긴 하지만 바다에 비할 바는 아니지.”

“그런 거 같아.”

난생처음 보는 바다에 경탄하는 서조운과 달리 반호진은 담담했다.

지난 생에서 동정호를 봐서 그런지 서조운처럼 충격이 크지는 않았다.

하지만 바다가 주는 묘한 감흥은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배도 타 볼까? 바다까지 왔는데 뱃놀이는 한번 해 봐야지.”

“남자 셋이서?”

반호진이 헛웃음을 흘렸다.

남자 셋이서 뱃놀이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서였다.

그리고 바다에서 배를 탄 적은 없어도 강에서 탄 적은 있었기에 굳이 뱃놀이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저도 남자 셋이서 뱃놀이는 좀 그런 것 같아요. 삼봉과 함께라면 제 남은 전 재산을 전부 쓰겠지만, 저희끼리 타는 건 좀.”

“벌써부터 여자를 그렇게 밝히면 나중에 어쩌려고 그래?”

“청춘은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러니 누릴 수 있을 때 최대한 누리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선우방의 타박에도 서조운은 당당했다.

흘러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그의 나이에도 알고 있어서였다.

게다가 서조운은 십칠 년 동안 구양절맥을 앓아 아무것도 하지 못했기에 이제는 도의에 어긋나거나 불법적인 것만 아니라면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 보고 싶었다.

“남자는 가운뎃다리를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어르신들이 말이지.”

“에이, 저도 다 알아요. 천지분간을 못 할 나이도 아니고요. 말은 이렇게 해도 다 아시잖아요, 제가 얼마나 수련광인지. 적어도 호진 형님 정도는 되어야 삼봉이 만나자고 먼저 찾아오지 않겠어요?”

“그놈의 삼봉은.”

반호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여자 이야기만 나오면 무조건 삼봉을 꺼내서였다.

그런데 질린 건 반호진만이 아닌 듯 선우방도 혀를 끌끌 찼다.

“저런 녀석은 장가를 빨리 보내야 해. 그래야 세상을 알지. 제대로 확 쥐어 잡혀 살아 봐야 자유가 무엇인지 알 텐데.”

“참고로 제 꿈은 삼처사첩입니다.”

“얼씨구?”

선우방이 기가 찬 웃음을 흘렸다.

들으면 들을수록 가관이어서였다.

그런데 반호진은 익숙하다는 듯 표정 하나 안 변했다.

“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

“맞습니다!”

“근데 결혼하는 건 좋은데 자식의 인생도 한 번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지.”

“아…….”

서조운의 동공이 흔들렸다.

자신과 똑같은 삶을 자식이 살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순간 머릿속에 새하얘졌던 것이다.

만약 반호진이 음기를 가진 영약과 축융신공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 지금쯤 그는 사경을 헤매고 있을 터였다.

그런 삶이 아들에게도 이어질지 모른다고 생각하자 서조운은 이게 단순히 생각할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확실하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또 아니라고 장담할 수도 없는 문제니까.”

“……그렇죠.”

똑똑하기에 서조운은 반호진의 말에 긍정했다.

안 그래도 금가장에 머물 때 서조운은 잠을 줄여 가며 구양절맥에 대해서 조사했었다.

서고가 무공서고만 있는 게 아니었기에 절맥과 관련된 책을 따로 찾아서 알아봤다.

자신의 삶도 중요하지만 미래에 태어날 자식의 인생 역시 그 못지않게 중요해서였다.

“대비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맞습니다. 혼인을 하게 되면 우선 음기를 품고 있는 영물이나 영초부터 찾아야겠네요. 다행히 양강지공은 있으니.”

“그 말은 돈을 엄청 벌어야 한다는 뜻이지.”

“……녹림십팔채를 털까요?”

이번에 번 금액이 적지 않아서인지 서조운은 당연하다는 듯이 산적들을 거론했다.

산채를 털면 나오는 금액이 쏠쏠하다는 걸 알게 되어서였다.

더욱이 반호진이 녹림대군의 무공을 팔아서 큰돈을 벌었다는 걸 알았기에 서조운은 눈을 반짝였다.

“한탕주의는 좋지 않아. 그리고 돈은 원래 주인에게 되돌려줄 수 있으면 가장 좋아. 금 공자가 다른 표국들의 마음을 어떻게 얻었는지 봤잖아?”

“그래도 절반은 가질 수 있잖아요. 일종의 수고비로요. 찾아 주려고 해도 이미 죽은 분들이 있을 수도 있고.”

“절반도 적은 금액은 아니지.”

반호진은 고개를 저었다.

이번 경우는 특별한 경우였다.

일단 참벽도가 금가표국의 표물을 강탈했다는 명분이 있었다.

하지만 무작정 산채들을 털고 다니면 녹림십팔채가 규합할 가능성이 컸다.

“그럼 이번에는 수적들을 털어 볼까요? 일단 수로채는 세 개로 나뉘어져 있고, 얘네들은 잘 안 뭉치는 것 같던데.”

“참나. 그건 또 어디서 들었대?”

“금가장의 사람들에게서요. 진짜 재미있는 얘기 많던데요? 신기한 이야기도 많고. 특히 새외에 주기적으로 나가는 사람들에게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았어요.”

서조운이 은근슬쩍 새외무림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그런 얕은 수에 넘어갈 반호진이 아니었다.

“서역 쪽에 신기한 물건들이 많기는 하지.”

“형님도 보셨어요?”

“금가장에 나도 있었다.”

“하긴. 손님들이 머무는 숙소 중에서 가장 좋은 곳에서 머문 게 형님이시니.”

서조운은 이내 수긍했다.

정보의 양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아서였다.

“그보다 방아.”

“응.”

“슬슬 본가로 돌아가야 하지 않아? 여기서 남경은 금방인데.”

반호진이 슬쩍 물었다.

태호채를 시작으로 선우세가를 떠난 지 시간이 꽤 지나서였다.

금가장에서 머문 시간도 적지 않았기에 반호진은 살짝 염려하는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안 그래도 너한테 말하려고 했는데 잘됐다. 앞으로도 함께 다니고 싶은데, 괜찮을까?”

“함께 다닌다고?”

“응.”

“내가 어디로 갈 줄 알고?”

옆에 있던 서조운이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었다.

이왕이면 둘보다는 셋이 좋아서였다.

선우방이 불편했으면 싫었겠지만 개인적으로 서조운은 함께 다니는 것에 찬성이었다.

“보니까 곧장 소림사로 갈 것 같지는 않던데? 지금까지 네 행적을 보면.”

“은근히 여우라니까.”

“난 곰이라고 한 적 없는데.”

“가주님께 허락은 받은 거야?”

“너를 따라간다고 했을 때부터 내 결정에 맡긴다고 하셨어.”

반호진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선우세가의 단 한 명뿐인 후계자가 선우방이었다.

즉 형제 없이 외아들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도 선뜻 태호채에 가는 걸 허락해 준 것에 이어 앞으로의 일정도 스스로에게 맡긴다고 하자 반호진은 살짝 놀랐다.

‘통찰력이 있는 건가, 아니면 단순히 의리 때문인가?’

반호진이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느 쪽인지 확신이 들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이내 그는 그 생각을 털어 냈다.

반호진에게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서였다.

“저도 형의 생각과 같아요. 지금은 폐관수련보다는 견문을 넓힐 때죠. 사실 우리가 겪은 게 쉽게 경험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지.”

“언제 녹림십팔채의 최정예와 붙어 보겠어요. 처음에는 죽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기연인 것 같아요.”

“맞아.”

선우방이 서조운의 말에 동의했다.

그 역시 처음 마음가짐은 죽음을 각오했었다.

산적들이 무림인들에게 천대당한다고 하나 녹림십팔채쯤 되면 말이 달라졌다.

심지어 산적들의 우두머리인 녹림대군도 만날 가능성이 컸기에 목숨을 걸었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결과는 정반대였다.

“아마 앞으로도 그렇겠죠?”

“그러다가 죽을 수도 있고.”

“에이, 이제 저는 알아요. 형님이 절대 요절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요. 삶에 대한 애착이 되게 강하시잖아요. 하고 싶으신 것도 많고.”

“의외로 파악하는 게 빠른데.”

“눈치는 막내로서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는 능력이죠.”

서조운이 짐짓 거들먹거리듯이 콧대를 세웠다.

그러나 반호진은 아예 반응하지 않았다.

잔소리할 가치도 없어서였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하루는 이곳에서 머물자고. 바다가 보이는 객잔에서. 낚시도 좀 하고. 바다까지 왔는데 낚시는 한 번 해 봐야 하지 않겠어?”

“맞습니다! 사내라면 응당 풍류를 즐길 줄 알아야죠!”

“혹시 알아? 백년자패를 건질지. 산보다는 바다에 영물이 많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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