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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재림-44화 (44/468)

제 17장. 궁한 자가 움직여야지. -02

“우수검에 익숙하기에 좌수검에 약한 게 아니라 좌수검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거지.”

괜히 무인들이 좌수검객에 고전하는 게 아니었다.

익숙하지 않은 궤적과 투로는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또한 반호진 역시 겪어 보기도 했고.

“검을 꼭 쥐고 싸울 필요는 없으니까.”

반호진은 중얼거리며 왼손으로 검을 휘둘렀다.

지금 말한 대로 그가 직접 검을 잡을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좌수검이 그리는 궤적을 알고 느끼기 위해서는 역시 직접 펼쳐 보는 게 가장 좋았다.

“균형이 확실히 오른쪽에 치우쳐 있기는 하네. 주로 사용하는 근육도 다르고. 근데 이걸 예전에는 몰랐단 말이지.”

반호진은 아예 일어나서 검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워낙에 방이 넓어서 검무를 춰도 무리가 없을 정도였기에 반호진은 마음 놓고 움직였다.

“보법도 엉망이고.”

느릿하게 달마삼검을 펼치던 반호진은 시간이 갈수록 실소가 나왔다.

엉망도 이런 엉망이 없었다.

아니, 말 그대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런데 그게 반호진은 재미있었다.

“오른손으로 검을 휘두르다가 왼손으로 옮겨서 공격하면 진짜 당황하겠는데?”

반호진은 말만 중얼거리지 않았다.

실제로 왼손과 오른손을 번갈아 가면서 달마삼검을 펼쳤다.

단순히 검을 던지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오른손과 왼손을 교차하면서 검이 이동하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역시나 어색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익숙해졌다.

“호오.”

동시에 우수검과 좌수검의 차이를 몸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수많은 검로들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 결과 막혀 있던 무언가가 뚫리기 시작했다.

“나만의 검.”

달마삼검은 절대검공이라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는 검법이었다.

괜히 소림사 역사상 입문한 이조차 드문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반호진의 검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소림사의 검이었기에 반호진은 최근 들어 자신만의 검을 고민하고 있었다.

“내공심법도 마찬가지고.”

반호진의 꿈은 지난 생보다 더 커졌다.

아니, 솔직히 말해 전생의 반호진은 꿈이 없었다.

그저 시키는 대로 수련했고, 달마삼검을 익혔다.

하나 지금은 달랐다.

반호진은 천하사패와의 전쟁 이후를 생각했다.

평화가 다시 찾아온 중원에서의 미래를 말이다.

똑똑똑.

“반 대협,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어느새 무아지경에 빠져 검을 휘두르던 반호진이 우뚝 멈춰 섰다.

갑자기 들려온 하인의 목소리에 집중이 깨진 것이었다.

그러나 무아지경이 깨졌음에도 반호진은 크게 아쉬워하지 않았다.

고작 이 정도 일에 일희일비할 정도로 반호진의 심력이 낮지 않지 않아서였다.

“손님요?”

“예. 일 공자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일 공자라.”

애검을 납검하던 반호진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손님이어서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기도 했다.

똥줄이 타면 뭐든지 하게 되는 법이었으니까.

“어떻게 할까요?”

현재 반호진이 머무는 거처를 관리하는 하인은 금호연의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금상룡이 찾아왔다고 해서 무작정 안내하지 않았다.

게다가 금상룡이 마음대로 날뛰기에는 반호진의 위상이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안내하세요.”

“알겠습니다.”

난데없는 방문이었으나 반호진은 당황하지 않았다.

무슨 의도로 찾아왔는지 알기에 당혹스러울 것도 없었다.

게다가 지금쯤 이곳의 소식이 금호연에게도 전달되었을 터였다.

끼이익.

잠시 후 문이 열리며 비대한 체구를 가진 금상룡이 모습을 드러냈다.

좋게 말하면 풍채가 있다고 표현할 수 있겠지만 무인의 입장에서는 그냥 뚱뚱한 체격이었다.

그러나 잘 먹어서 그런지 얼굴이 반질반질했다.

“이렇게 인사하는 건 처음이지요?”

“그렇습니다.”

“금가장의 대공자 금상룡이라고 합니다.”

금상룡이 그답지 않게 정중하게 포권을 했다.

대공자라는 세 글자를 강조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절대 거만한 티를 내지는 않았다.

나이는 어려도 홀로 녹림십팔채를 박살 내 버린 무인이 반호진이었기에 금상룡은 예의를 차렸다.

“소림사의 반호진입니다.”

“저번에는 경황이 없어 인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해합니다. 앉으시죠.”

“예.”

그저 그런 무인이었다면 마음대로 행동했겠지만 반호진 앞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더욱이 금상룡은 원하는 것이 있었기에 최대한 언행을 조심했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하하하, 바로 본론입니까?”

차를 따르기 무섭게 곧바로 용건을 묻는 반호진의 말에 금상룡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돌적이어도 너무 저돌적이어서였다.

“서로 바쁘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담소를 나눌 정도로 우리가 가까운 사이도 아니고.”

“앞으로 친해지면 되지 않겠습니까? 너무 처음부터 선을 그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금상룡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의 두 눈은 빠르게 반호진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눈빛과 표정, 손짓 등 모든 행동들을 예의 주시했다.

“죄송하지만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이 공자가 제시한 조건에 두 배를 드리겠습니다. 저에게 오시죠.”

“지금 배를 갈아타라는 것입니까?”

“그런 뜻이 아니라 좀 더 나은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금상룡이 여유롭게 웃었다.

얼마를 받았든, 받기로 약속했든 그는 자신 있었다.

금호연보다 더 많이 제시할 수 있다고 말이다.

“제가 얼마를 받는 줄 알고 하는 말입니까?”

“모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제가 감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이 공자에게 거의 따라잡혔지만 금가장의 대공자이자 유일한 적자는 접니다. 결국 마지막에 소장주에 오르는 건 말이지요.”

“아직 정해진 건 없다고 들었습니다만.”

“곧 정해질 겁니다. 반 대협께서 저에게 와 주신다면 시간이 더욱 단축될 테고요.”

바로 거절하지 않는 반호진의 모습에 금상룡이 속으로 히죽 웃었다.

무인이라고 해도 사람이었다.

더욱이 반호진은 승려가 아닌 속가제자였기에 물욕이 없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저와 함께하시지요. 이 공자의 한계는 여기까지입니다. 이 공자는 절대 소장주가 될 수 없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꼭 정실부인의 자식만이 금가장주가 되는 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만.”

“실적이 가장 중요합니다. 현재는 제가 주춤한 게 사실이지만 곧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겁니다.”

“…….”

금상룡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의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반호진은 넘어올 것 같은 표정이 아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속내를 읽을 수가 없었다.

무위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제 약관에 불과한데 속이 보이지 않자 금상룡은 내심 당황했다.

“좋습니다. 세 배를 드리겠습니다. 지금 이 공자에게서 받는 조건의 세 배를 약속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소장주가 되면 네 배를 드리겠습니다.”

꿀꺽!

금상룡의 말에 뒤에 시립해 있던 심복이 마른침을 삼켰다.

두 배도 엄청날 텐데 단숨에 네 배로 올려 버리자 금액이 어느 정도일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동시에 금상룡의 배포를 느낄 수 있었다.

얼마든 그 이상을 주겠다는 말에 중년인은 진심으로 부러운 표정을 하고서 반호진을 쳐다봤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죄송하지만 제 뜻은 변하지 않습니다. 신의를 파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아닙니다.”

“그럼 얼마를 원하십니까?”

금상룡이 눈을 빛냈다.

그가 살아오면서 사지 못한 건 없었다.

돈에 무너지지 않은 이를 보지 못했기에 금상룡은 자신 있었다.

결국에는 반호진도 마음을 돌릴 거라고 말이다.

“저는 분명히 말했습니다만.”

“힘든 결정이라는 거, 저도 압니다. 절대 쉬운 결정이 아니라는 것을요. 그래서 지금 말씀드리는 겁니다. 반 대협의 신의와 명예까지 다 사겠다고요.”

예상했던 것보다 더한 지출을 하게 되었지만 이미 기호지세였다.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돌아갈 수는 없기에 금상룡은 계속 직진했다.

그리고 반호진의 나이와 미래 가치를 감안하면 오히려 싸게 사는 것일 수도 있었다.

어중간한 무인도 아니고 녹림대군을 단독으로 쓰러뜨린 무인이 반호진이었기에 금상룡은 고민하지 않았다.

“제 대답은 같습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

일말의 고민도 없는 반호진의 모습에 금상룡의 얼굴에 다급함이 서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금호연이 오고 있을 게 분명해서였다.

그래서인지 금상룡의 목소리에도 초조함이 서려 가고 있었다.

파바밧!

하인의 전갈을 받은 금호연은 거의 뛰듯이 걸어갔다.

그런 그의 얼굴에는 짙은 노기가 서려 있었다.

금상룡이 왜 반호진을 찾아갔는지 모를 수가 없기에, 금호연은 만약 앞에 있다면 씹어 먹을 기세로 눈을 번뜩였다.

“일 공자가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도 상도의라는 게 있는데.”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뜻이겠지.”

“……괜찮을까요?”

금호연과 속도를 맞추며 이동하던 호위대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인간관계라는 게 절대적인 건 없어서였다.

더욱이 지금처럼 몰려 있는 상황이라면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들이밀 수도 있었다.

“쉽게 넘어가지는 않을 거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콰앙!

순식간에 반호진의 처소에 도착한 금호연은 기다리고 있던 하인에게 고마움을 담아 눈인사를 하고는 그대로 문을 열었다.

거칠게 문을 열어젖혔던 것이다.

그러자 방 안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금호연에게 집중되었다.

“너는……!”

“이런 식으로 추잡하게 나올 줄은 몰랐는데.”

“추잡이라니!”

“이게 추잡한 짓이 아니면 뭐지? 치졸한 짓인가?”

“닥쳐라!”

분명 같은 아버지를 두었음에도 두 사람의 모습은 완전히 달랐다.

금상룡이 비대한 몸을 가졌다면 금호연은 상대적으로 마른 체격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목청도 달랐는데 차분하게 말을 잇는 금호연과 달리 금상룡은 얼굴이 시뻘게질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재수 없는 면상을 보자 화도 나지만, 아직 결정된 게 아무것도 없었기에 금상룡의 얼굴에는 곤혹스러움이 반 정도 서려 있었다.

“그 말은 내가 해야 할 것 같은데. 내 손님을 무작정 찾아오는 것도 경우가 없는데 포섭을 하려고 해?”

금호연의 눈빛이 더없이 싸늘해졌다.

그러나 그 저변에는 안도가 서려 있었다.

금상룡이 왜 흥분하는지 그는 알고 있어서였다.

“흥! 거래자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법이지!”

“맞아. 거래는 얼마든지 엎어질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보아하니 얘기는 끝난 거 같은데?”

으득!

금상룡이 이를 악물었다.

그러고는 금호연을 씹어 먹을 듯한 눈빛으로 노려봤다.

금호연의 말이 틀리지 않았기에 할 말이 없어서였다.

하지만 쉽게 물러나지는 않았다.

“생각이 바뀌시면 언제라도 저를 찾아오십시오.”

“조심히 가시길. 이 공자님이 오셔서 멀리는 안 나가겠습니다.”

“……그럼.”

금상룡이 여전히 붉어진 얼굴로 방을 나섰다.

처음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기에 금상룡의 눈빛은 살벌했다.

그러나 포기하지는 않았다.

지금 실패했다고 앞으로도 실패한 건 아니었다.

‘일보전진을 위한 이보후퇴일 뿐이다.’

금상룡은 이를 갈면서 밖으로 나갔다.

마지막에 금호연을 한 차례 노려보는 걸 잊지 않고서 말이다.

그런데 그 살기 가득한 눈빛에도 금호연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마치 해 볼 테면 해 보라는 듯이 말이다.

“많이 몰리긴 한 모양이네요. 저 엉덩이 무거운 작자가 여기까지 직접 찾아온 걸 보면. 본래 성격이었으면 반 대협을 불렀을 텐데.”

“불러 봤자 달라질 게 없다는 걸 아는 것이겠죠.”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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