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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재림-41화 (41/468)

제 16장. 투자는 확실하게. -02

반호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다 알면서 이렇게 말하는 게 웃겨서였다.

“미리 침 발라 놓으려는 속셈인 건 아는데, 그래서 더 부담스러워요.”

“이게 맞지.”

“뭐 어때? 주겠다는데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냐. 그렇다고 금 공자가 무리한 것도 아니잖아? 파산하면서까지 그런다면 문제가 있겠지만 이번 일로 금 공자가 얻을 걸 생각하면 너희가 받은 건 정말 얼마 안 돼.”

반호진이 생각하기에 선우방과 서조운은 충분히 이 정도 받을 만한 자격이 있었다.

일단 사람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목숨을 걸었고, 금호연을 믿었다.

금호연은 그 믿음에 물질적인 것으로 보답한 것이었다.

물론 두 사람이 순수하게 금호연 때문에 간 것은 아니지만 어찌 됐든 중요한 건 결과였다.

“듣고 보니 그러네요.”

“이번에 얻은 게 정말 많긴 하지. 유형의 것도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이 특히.”

“둘 다 받은 돈은 어디에 쓸 거야?”

반호진의 말에 두 사람이 상반된 표정을 지었다.

담담하게 고민하는 선우방과 달리 서조운은 들뜬 표정으로 눈을 반짝였다.

“나는 일단 가지고 있으려고. 경비도 그렇고 나중에 필요한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저는 제가 쓸 거 빼고는 전부 집에 보내려고요.”

“전부?”

반호진은 물론이고 선우방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태호채를 털면서 분배받은 금액이 적지 않았다.

근데 대부분의 금액을 서가장으로 보낸다고 하자 반호진이 반문했다.

“네. 안 그래도 자금 사정이 썩 안 좋기도 했고요. 저 때문에 돈을 많이 썼으니 당연히 갚아야죠.”

“그것도 그러네.”

똑똑똑.

대견하다는 눈빛으로 서조운을 바라보는데 손님이 찾아왔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반호진은 물론이고 두 사람의 시선도 출입구 쪽으로 움직였다.

“접니다, 반 대협.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예. 들어오시죠.”

한층 더 정중해진 금호연의 목소리에 반호진이 내심 웃었다. 왜 저러는지 모를 수가 없어서였다.

“두 분도 여기 계셨군요.”

“예. 아무래도 아는 사람이라고는 저희밖에는 없으니까요.”

“저도 있지 않습니까?”

금호연이 짐짓 서운하다는 표정으로 선우방을 쳐다봤다.

어떻게 보면 그 역시 전우라고 할 수 있는데 자신만 쏙 빼놓는 것 같아서였다.

“지금 한창 바쁘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찌 사사롭게 만남을 청하겠습니까?”

“세 분이 찾아오시면 시간이 없더라도 만들어 내야지요.”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선우방이 빙긋 웃었다.

빈말이 아니란 걸 알기에 그는 은근히 기분이 좋아졌다.

“숙소는 마음에 드시는지요?”

“너무 호사스러운 것 빼고는 괜찮습니다.”

“그것 때문에 이곳으로 모신 건데요.”

서조운과 선우방을 지나 반호진을 바라보며 금호연이 물었다.

금가장에서 가장 좋은 별채를 배정했지만 사실 그는 이것도 모자라다고 생각했다.

이번 일로 그가 얻은 것들을 생각하면 말이다.

그런데 반호진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저도 적응이 안 됩니다.”

“살짝 부담스럽다고 할까요.”

거기에 선우방과 서조운이 말을 보탰다.

두 사람 다 명문가 출신이지만 이런 호화로움은 처음이었다.

호사를 넘어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둘 다 어색하게 웃었다.

“세 분께서는 충분히 누릴 자격이 있으십니다. 그러니 부담 갖지 마시고 편히 푹 쉬시면 됩니다.”

“상황은 어떻습니까?”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아직 확실하게 결판이 난 건 아닙니다. 비등하거나 제가 살짝 앞서 있는 상태랄까요.”

반호진의 말에 금호연이 진지한 얼굴로 변했다.

그러고는 지극히 객관적으로 현 상황에 대해 얘기했다.

“이번 사태를 해결했는데도 압도하지 못한다는 말씀이군요.”

“워낙에 지지 기반이 탄탄했던지라. 그래도 이번 일로 제 입지가 확연히 변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제가 유리해질 겁니다. 일단 금가표국은 저에게 반 이상 넘어온 상태이고요.”

“잘하실 거라 믿습니다.”

“이 모든 게 다 반 대협 덕분입니다, 하하하.”

금호연이 환하게 웃었다.

뒤처리를 하느라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편하고 행복했다.

“저 혼자만 이룬 건 아니죠. 모두 함께 만들어 낸 결과죠.”

“하지만 화룡점정은 반 대협이시죠. 그래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또한 금 공자님의 능력입니다. 안목이 있다는 뜻이니까요.”

“맞습니다. 그래서 이번 일로 확신이 들었습니다. 금가장주가 되어서도 잘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요. 아, 그러고 보니 여쭐 게 있었는데 그걸 여태 깜빡하고 있었네요. 소문을 어떻게 할까요? 완벽하게 막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최대한 늦추는 건 가능합니다.”

“괜찮습니다. 굳이 통제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알려진다 하더라도 믿을 사람은 믿고, 믿지 않을 사람은 안 믿을 테니까요.”

조심스러운 금호연과 달리 반호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차피 완벽하게 통제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가 녹림대군을 잡는 걸 본 이가 너무 많았다.

그리고 잘못한 것도 아닌데 굳이 알려지는 걸 막을 이유도 없었다.

“그래도 많이 불편해지실 겁니다. 사실 반 대협과 자리를 만들어 달라는 청탁이 어마어마하게 들어옵니다. 하지만 제 선에서 모두 정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쉴 때는 제대로 쉬어야 하니까요. 저야 사람 만나는 게 일이지만 세 분은 아니잖습니까.”

“은근히 즐기는 것 같습니다만.”

“하하하, 티가 나나요? 사실 이렇게 장내에서 큰 관심을 받아 보는 게 처음인지라. 후계 다툼을 벌이는 중이기는 하지만 사실 대부분이 일 공자가 이길 거라 생각하거든요. 근데 그게 처음으로 뒤집어져서 그런지 반응이 아주 화끈합니다. 혼담도 몇 배는 늘었고요.”

자랑이라기보다는 감격한 어조로 금호연이 말했다.

처음으로 금상룡보다 우위에 섰기에 금호연은 기쁨과 동시에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 기세를 그대로 이어서 확실하게 후계자 자리를 차지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반호진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할 필요가 있었다.

‘절대 놓쳐서는 안 돼.’

얼마 전까지는 오직 그만 알고 있는 고수가 반호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함께 전투를 치른 이들을 중심으로 반호진의 무명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번지고 있었다.

그의 휘하뿐만 아니라 금상룡의 부하들을 통해서도 말이다.

때문에 금호연은 행복감에 빠져 허우적거릴 틈이 없었다.

순간의 방심으로 다른 이가 반호진을 낚아채 갈 수 있기에 금호연은 오히려 정신을 바짝 차렸다.

‘제일 좋은 건 혈연관계가 되는 것이지만 진짜 내 동생이라고 할 수 있는 녀석이 없으니.’

금호연이 속으로 입맛을 다셨다.

여동생들은 제법 있었지만 죄다 이복동생들이었다.

즉 남 좋은 일만 해 줄 수 있었기에 금호연은 아쉬운 마음으로 혈연에 관한 걸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러고 보니 아직 혼자이시군요.”

“정신없이 달려오다 보니 나이만 먹었습니다. 아직도 생각 없고요. 혼인은 소장주가 되면 올릴 생각입니다. 그때가 되면 또 지금과 다를 테니까요.”

“그렇겠네요.”

반호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금도 거론되는 여인들의 조건이 나쁘지 않겠지만 소장주가 되어 금가장의 확실한 후계자가 되면 더 좋은 조건을 갖춘 이들에게서 혼담이 들어올 게 분명했다.

냉정하게 말해 지금은 여자에 신경 쓸 때가 아니기도 했고 말이다.

경쟁에서 앞서 있다고 하나 후계 다툼이 끝난 건 아니었다.

“은근슬쩍 반 대협께 발을 걸치려는 이들도 많습니다. 아무래도 속가제자이시다 보니까요.”

“어림도 없죠.”

“예?”

갑자기 끼어드는 서조운의 말에 금호연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데 선우방 역시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내 일에는 신경 끄고.”

“저는 최소 삼봉 정도는 되어야 고민해 볼 생각입니다.”

“뭐, 꿈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거니까.”

당당하게 자신의 소견을 밝히는 서조운의 말에 반호진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를 떠나 꿈은 누구나 꿀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리고 서조운의 잠재력을 생각하면 꼭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았다.

강호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결국 본신의 능력이니까.

“반 대협.”

“말씀하시죠.”

“혹시 언제까지 머무실 예정인지 제가 알 수 있을까요?”

“바로는 안 떠날 생각입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이 가장 위험한 시기이기도 하고, 두 사람 다 이번 전투에서 얻은 걸 정리할 시간도 필요해서요.”

“그렇군요.”

금호연이 반색한 표정을 지었다.

내심 볼일을 다 봤기에 떠난다고 할 줄 알았는데 자신을 위해 조금 더 머물러 준다고 하자 금호연은 살짝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불편하시다면 최대한 빨리 떠나겠습니다.”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래 머물러 주시면 저는 좋습니다!”

반호진의 농담에 금호연이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오히려 그는 반호진이 아예 이곳에 터를 잡아 주었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 마음도 은근히 담아 대답했다.

“날짜가 정해지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예. 혹시라도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라도 기탄없이 말씀해 주세요.”

“아! 한 가지 있습니다.”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금호연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눈을 빛냈다.

반호진이 먼저 요구를 한 건 지금이 처음이어서였다.

“어떤 것입니까?”

“본사의 속가제자들 중에 장필상이라는 일대제자가 있습니다. 그자에 대해서 알아봐 주셨으면 합니다.”

“샅샅이 조사하겠습니다. 그런데 급한 것입니까?”

“아뇨. 급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확실하게 알아봐 주셨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금호연은 더 묻지 않았다.

도움을 청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래서 그는 장필상이라는 이름을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정리되는 대로 제가 직접 가져오겠습니다.”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만.”

“아닙니다. 당연히 제가 챙겨야 되는 일인걸요. 두 분께서도 혹 제 도움이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언제라도 말씀해 주세요.”

선우방과 서조운과도 한 번씩 눈을 마주한 금호연이 방을 나섰다.

세 사람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고 정말 용건만 보고 나간 것이었다.

그러면서 금호연은 장필상이라는 이름을 다시 한번 곱씹었다.

***

콰아앙!

흑단목으로 특별 제작한 비싼 책상을 금상룡이 주먹으로 거칠게 내려쳤다.

분기를 참지 못하고 책상을 연거푸 찍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가슴속에서 솟구치는 울화는 전혀 가라앉지 않았다.

부르르르!

오히려 더욱더 끓어올랐다.

그러나 더 열 받는 건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고, 고정하십시오!”

“고정? 지금 내가 고정하게 생겼어?”

“…….”

금상룡의 호출을 받은 수하들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목소리에 서린 짙은 노기에 섣불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 하나같이 서로를 힐끔거렸다.

“금가표국의 상황은?”

“……이 공자에게 많이 기운 상태입니다.”

“그럴 테지. 눈앞에서 녹림대군이 쓰러지는 걸 봤으니까. 누가 뭐래도 이번 일을 해결한 건 그 새끼니. 장원 내의 분위기는?”

“많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후우!”

금상룡이 깊은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굳이 묻지 않아도 그 역시 눈이 있었고, 귀가 있었다.

그럼에도 묻은 것은 구경만 하지 말고 대책을 생각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많은데 정작 쓸모 있는 이는 없었다.

‘그 말도 안 되는 도박이 통할 줄이야. 대체 그런 자를 어떻게 안 것이지?’

으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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