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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재림-37화 (37/468)

제 15장. 독보적인. -02

심복의 보고에 사인교(四人轎)에 타고 있던 금상룡이 턱을 쓰다듬었다.

이것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어서였다.

“아니면 돈을 준비했나?”

소림신룡이라 불리는 반호진의 무명이 상당하다고 하나 그뿐이었다.

후기지수들 중에서 손꼽히는 실력자라는 말과 함께 중원 전역에 서서히 퍼지는 중일 뿐 소림신룡은 결코 대단한 고수가 아니었다.

미래가 기대되는 후기지수인 건 사실이나 녹림대군은커녕 참벽도도 상대할 수 없는 무인이 반호진이었다.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짐은 간소하다며?”

“가마나 말은 없습니다. 하나 꼭 현물로만 거래를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전표가 있긴 하지.”

금상룡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녹림대군의 조건을 맞춰 줄 생각이라면 굳이 500명씩이나 되는 인원을 동원할 필요가 없었다.

강탈당한 표물의 양이 상당하다고 하나 쟁자수가 아닌 무인이라면 50명 정도면 충분히 나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간사한 새끼가 두 가지를 노리고 왔다는 뜻인데.”

“그게 가장 가능성이 높지 않겠습니까.”

“남는 게 없어도 일단 내가 실패하고 표물을 되찾으면 그 새끼 입장에서 엄청 손해 보는 건 아니지. 잘하면 나를 치워 버리는 것도 가능하니까. 녹림대군을 이용해서 말이지.”

금상룡이 가마의 손잡이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생각해 보니 가능성은 충분했다.

하지만 이에 따른 해결책은 간단했다.

그가 성공하면 되는 일이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지금 이 공자가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는 것밖에 없는 듯합니다.”

“맞아. 양패구상이든, 내가 죽는 것이든 일단 결판이 나야 그 새끼가 뭐라고 할 수 있어. 그런데 달리 말하면 내가 끝내면 그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뜻이지.”

“그렇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보여 줘야지. 감히 넘볼 수 없는 자리를 자신이 넘보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모두 알게 되겠지. 소장주의 자리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자는, 주인은 처음부터 나였다고 말이지.”

“맞습니다.”

맞장구치는 심복의 모습에 금삼룡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의 시선은 전방의 세 명의 무인에게로 향했다.

강호에서는 핏덩이나 다름없는 후기지수들을 데려온 금호연과 달리 금상룡의 앞에는 하북팽가와 공동파의 장로 두 명, 거기다 낭왕이라 불리는 홍왕이 있었다.

“근데 궁금하군. 분명 셋째가 포섭한 철왕을 죽인 신비고수를 데려오지 않았다는 게.”

“은밀히 따르고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자 혼자서 전황을 뒤집는 건 불가능해. 철왕이 대단하다고 하나 그래 봤자 낭왕일 뿐이지.”

금상룡은 이복동생을 떠올리며 비릿하게 웃었다.

그의 정보력으로도 철왕 사무궁을 죽인 신비고수에 대해 알아내지 못했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았다.

신비고수가 아무리 대단하더라도 그의 눈앞에 있는 세 명보다는 못할 거라는 걸.

‘내 역량을 모두에게 증명하고 이 지겨운 후계 다툼을 끝낸다. 그리고 그 새끼도 쳐낸다.’

길고 긴 후계 다툼이 끝을 보이고 있었다.

금상룡은 그게 너무나 기뻤다.

처음부터 그의 것이었던 걸 손에 넣는 데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린 듯해서였다.

“산채가 보입니다!”

“나도 보여. 핵심들은 다 나와 있군.”

절벽을 통째로 성벽처럼 사용하는 태호채를 응시하며 금상룡이 입을 열었다.

깎아 놓은 듯이 수직으로 솟아 있는 절벽의 높이도 높이지만 곳곳에 뚫려 있는 구멍에 보이는 인원이 적지 않았다.

게다가 이곳은 태호채의 앞마당이니만큼 누가 뭐래도 산적들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택했구나!”

멈춰 서는 금상룡을 발견했는지 참벽도 조양혁이 내공을 담아 소리쳤다.

그러자 그의 목소리가 주변을 쩌렁쩌렁 울렸다.

“요구 조건이 너무 과했잖아.”

“잖아?”

무공을 정식으로 익히지는 않았으나 금상룡이 지닌 공력은 적지 않았다.

건강을 위해 내공심법을 익히기도 했고, 어려서부터 먹은 영약들이 적지 않았기에 무공의 수준은 낮아도 지금처럼 목소리에 내공을 싣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조건이라고 생각하나?”

“크하하하!”

처음부터 반말을 지껄이는 금상룡의 모습에 조양혁이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거만하다는 말은 들었어도 설마하니 자신의 앞에서 이렇게 대놓고 건방을 떨 줄은 몰라서였다.

심지어 지금 그의 옆에는 녹림십팔채의 총채주이자 의형인 녹림대군도 있었다.

“애초에 너도 기대 안 했잖아?”

“당돌한 놈이로구나. 하긴, 그러니까 벌주를 택했겠지.”

“그것부터 잘못됐어. 벌주와 권주를 내리는 건 나다. 네놈이 아니라. 아, 차라리 잘됐네. 이참에 내가 권주를 내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뒤지기 싫으면 가져가서 보관하고 있던 내 표물, 내놔라.”

“크큭! 크하하하!”

이번에는 녹림대군에게서 웃음이 터졌다.

총표파자의 자리에 오른 후 그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는 이는 처음이어서였다.

하지만 미친 듯이 웃는 표정과 달리 녹림대군의 두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저 세 사람을 믿고 있나 보군.”

“이 정도면 충분하지. 숫자야 네놈들이 많겠지만, 고수에게 하수들의 숫자는 무의미하니까.”

금상룡이 담담하게 말했다.

녹림대군이 대단하다고 하나 자신이 데려온 전력이라면 충분히 쓸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만한 무명을 가지고 있었고, 이 건에 쏟아부은 자금도 엄청났다.

그러니 반드시 원하는 결과가 나와야 했다.

“혼원장(混元掌)과 적성도(摘星刀). 그리고 홍왕이라. 짧은 시간에 제법 괜찮은 무인들을 포섭했군. 근데 말이야. 이런 생각은 안 해 봤나? 저 셋으로 쓸어버릴 수 있다면 왜 지금까지 녹림십팔채를 가만 놔두었을까.”

파파파팟!

녹림대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변에 있던 채주들이 몸을 날렸다.

그런데 그중에 참벽도는 없었다.

녹림십팔채의 다른 채주들이 나선 것이었다.

“큭!”

“흐읍!”

그것도 열일곱 명이 아닌 단 여섯 명만 나섰다.

세 사람을 향해 두 명씩 협공했는데 결과는 놀라웠다.

금상룡이 산적 나부랭이라고 치부했던 그들이 세 사람에게 썰리기는커녕 오히려 백중세를 이루었다.

그게 세 사람도 놀라웠는지 하나같이 두 눈을 부릅떴다.

“좀 모자란가. 그럼 더하면 되지.”

스스슥!

녹림대군이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그 말에 조양혁이 손을 들어 올리자 이번에도 여섯 명이 절벽 아래로 몸을 날렸다.

“크으윽!”

“이런 말도 안 되는……!”

적이 세 명으로 늘어나자 두 명의 장로들은 물론이고 유일한 여인인 홍왕의 움직임도 어지러워졌다.

상대하는 세 명의 실력이 하나같이 만만치 않아서였다.

“이 정도에 놀라면 방금 전에 보여 준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반감되잖아. 혹 숨겨둔 패가 있으면 얼른 꺼내 보라고. 그래야 나도 구경하는 재미가 있지 않겠어?”

흠칫!

녹림대군이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금상룡은 웃을 수가 없었다.

그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광경에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허어, 혹시 이게 전부인가? 그럼 실망인데. 금가장의 대공자가 겨우 이 정도만 준비했다고? 나를 너무 병신으로 본 거 아닌가?”

“일단 사지부터 부러뜨린 다음에 물어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형님.”

“그것도 나쁘지 않지.”

“잡아 와.”

조양혁이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금상룡을 쳐다보면서 말이다.

그와 동시에 절벽 곳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녹림십팔채의 최정예들이 일제히 몸을 날렸다.

먹잇감을 사냥하려는 맹수처럼 사납게 달려들었던 것이다.

“우, 우리도 공격해!”

“전부 쓸어버려!”

살기등등하게 달려오는 산적들의 모습에 금가장의 무사들은 살짝 당황했으나 그 시간은 짧았다.

어차피 산적들을 쓸어버리려고 여기까지 온 것이었기에 금가장의 무사들 역시 병장기를 꼬나 쥐고서 달려들었다.

퍼퍼퍼펑!

그런데 그 결과가 놀라웠다.

수적으로는 부족할지 모르나 질적으로는 월등하다고 금상룡뿐만 아니라 금가장의 모든 무사들이 생각했었다.

한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자 결과는 달랐다.

질적으로도 산적들은 크게 밀리지 않았다.

“끄아아악!”

“커헉!”

괜히 녹림십팔채의 최정예가 아니라는 듯이 산적들의 무위는 상당했다.

게다가 이곳은 산적들에게 있어 앞마당이나 마찬가지였다.

산속에서의 전투는 산적들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이게 무슨! 이건 말도 안 돼!”

그 광경에 금상룡이 떨리는 목소리로 포효하듯 소리쳤다.

고르고 고른 수하들이 속절없이 죽어 나가는 광경을 보자 믿을 수가 없어서였다.

특히 믿었던 세 명의 고수가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게 금상룡은 가장 충격적이었다.

“대, 대공자님! 일단은 자리를 피해야…….”

충격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금상룡을 향해 심복이자 호위대주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전장을 보아 하니 뒤집는 건 힘들어 보여서였다.

그렇다면 금상룡이라도 안전하게 빠져나가야 했다.

후일을 도모하는 것도 일단은 살아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기에 호위대주가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피해야 한다고?”

“예! 이대로는 위험합니다! 일단 물러난 다음 다시 준비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다행히 이 공자가 뒤따르고 있지 않습니까? 이 공자 진영을 미끼로 사용하면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그 새끼를 이용하자고?”

멍했던 금상룡의 두 눈에 초점이 잡혔다.

들어 보니 나쁘지 않은 계획 같아서였다.

이왕 도망친다면 금호연도 실패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었다.

“시간이 없습니다!”

“……물러난다.”

하지만 자존심이 상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당연히 이길 거라 생각했기에 충격 역시 컸다.

그러나 일단은 살아남는 게 먼저였기에 금상룡은 이를 악물고서 결정을 내렸다.

“어딜 가려고?”

“오는 건 공자님 마음이지만 가는 건 안 됩니다요.”

“마음 편히 갈 수 있는 곳은 저승밖에 없다!”

“버, 벌써!”

호위대주의 표정이 아연해졌다.

그냥 산적들도 아니고 부채주급으로 보이는 이들이 무려 스무 명 가까이 달려들어서였다.

숫자는 금상룡이 늘 데리고 다니는 호위대보다 적었지만 문제는 한 명 한 명이 뿌려 대는 기파였다.

어느 누구도 만만한 이가 없었기에 호위대주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딱 적당할 때 도착했네.”

“응?”

퍼석.

다 잡은 사냥감을 앞에 둔 맹수처럼 히죽거리던 부채주 중 한 명의 목이 꺾였다.

자신이 왜 죽었는지도 모르는 표정으로 말이다.

“뭐, 뭐야!”

“뭐긴. 적이지.”

“컥!”

금호연과 함께 전장에 모습을 드러낸 반호진은 금상룡을 포위하고 있던 부채주 중 한 명의 목을 비틀었다.

마치 벌레를 잡듯이 가벼운 손짓이었는데 문제는 그 움직임에 반응한 이가 아무도 없다는 점이었다.

그저 그런 산적도 아니고 부채주급이 우르르 모여 있었는데도 누구 하나 반응하지 못했다.

“이, 이 공자가 나타났다!”

“적이다!”

“일단 지켜보고 계시죠.”

반호진의 등장도 충격적이었지만 역시 시선을 끄는 건 조금 뒤에 떨어져 있던 금호연이었다.

이복형제인 금상룡과 달리 그는 선우방, 서조운과 나란히 걷고 있었는데, 반호진의 말에 왼손을 들어 올렸다.

움직이지 말고 대기하라는 수신호를 보낸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가 볼까.”

금상룡이 있는 이곳을 제외한 다른 곳에서는 난전과 혼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누가 나타났는지도 모른 채 그저 살기 위해 싸우고만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는 하북팽가와 공동파의 장로들도 있었다.

“누구냐!”

“알 거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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