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27화 (27/468)

제 11장. 나한테는 안 통해. -03

“아, 정확하게는 하오문의 소문주입니다. 저는 난 소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해서요.”

“그렇게 말하니 더 궁금해지네요. 어째서 저를 만나고 싶어 하셨는지를요.”

난희주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를 똑바로 주시하면서 말이다.

“강호에서 친구가 많으면 좋지 않겠습니까.”

“친구요?”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말에 난희주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설마하니 반호진의 입에서 친구라는 말이 저렇게 자연스럽게 나올 줄은 몰라서였다.

반호진은 백도무림의 태산북두라 불리는 소림사의 제자였고, 난희주는 정사중간인 하오문의 소문주였다.

근데 친구가 될 수도 있다는 듯이 말하자 난희주는 믿기지 않았다.

“진짜 궁금해서 묻는데, 하오문은 친구를 가려서 사귑니까?”

“그럴 리가요. 저희는 그렇지 않아요. 사실 따지고 보면 온갖 군상이 다 모여 있는 문파가 저희 하오문이니까요.”

“당장 친구가 되자는 게 아닙니다. 서로 알아가자는 것이지요. 편견 없이.”

“편견 없이라.”

난희주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소림사 방장의 제자에게서 이런 말을 들을 줄은 몰라서였다.

물론 진산제자가 아닌 속가제자라고 하나 소림사는 명문대파 중의 명문대파였다.

그렇기에 난희주는 지금의 상황이 더더욱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목적은 아니야.’

난희주는 알 수 있었다.

지금의 발언이 결코 자신의 호감을 얻기 위해 한 말이 아님을 말이다.

반호진은 그녀를 여자가 아닌 하오문의 소문주로서만 보고, 대하고 있었다.

근데 그게 이상하게 자존심 상하거나 기분 나쁘지 않았다.

‘……괜찮은데?’

오히려 난희주에게는 좋은 인상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이상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달랐다.

그렇다고 호감이 생긴 건 절대 아니었다.

그저 인간으로서 마음에 들었다.

‘이런 인물이라면 괜찮아.’

난희주의 두 눈이 반짝였다.

지금까지 그녀가 보아 온 백도무림의 후기지수들은 하나같이 교만했다.

하오문을 업신여기고 얕잡아 봤다.

마치 자신들은 고귀한 존재라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진짜로 품위 있는 이들은 없었다.

앞에서는 깨끗한 척 해 대지만 뒤에서는 지저분하고 추잡했다.

그래서인지 난희주에게는 반호진이 더더욱 크게 다가왔다.

“중원무림에는 백도만 있는 게 아닙니다. 또한 백도라고 해서 모두가 깨끗한 것은 아니죠. 그러니 하오문과도 얼마든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소림사와 하오문은 힘들 수도 있습니다. 제 생각과 사부님의 생각은 다를 수 있으니까요.”

“충분히 이해해요.”

개인과 문파의 생각은 충분히 다를 수 있었다.

또한 반호진은 방장의 제자이지만 그렇다고 소림사를 대표하는 신분은 아니었다.

그걸 말하고 있었기에 난희주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떻게 보면 그녀도 반호진과 같은 상황이었다.

“그러니 앞으로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저야말로요. 찾아갈지 말지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오길 잘한 것 같아요.”

난희주가 환하게 웃었다.

최상의 결과를 얻지는 못했으나 이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난희주는 몰랐다.

반호진의 그녀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음을 말이다.

‘운이 좋네.’

난희주가 나름 머리를 굴렸으나 반호진은 그녀의 머리 위에 있었다.

자신을 찾아온 목적, 면사를 벗은 이유 전부 다 반호진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설사 모르더라도 미인계에 넘어가는 일은 없었을 터였다.

‘금가장과 하오문이라.’

금호연과 난희주 모두 크게 보면 같은 목적을 가지고 반호진을 찾아왔다.

둘 다 반호진이라는 인재를 얻기 위해 서가장을 찾은 것이다.

그런데 그게 반호진에게는 이득이었다.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반호진이 금가장과 하오문을 이용할 수도 있었으니까.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연락을 주고받지 않거나, 관계가 깊지는 않아.’

한 번의 만남만으로 하오문의 사정에 대해 파악하는 건 불가능했다.

심지어 반호진은 친해지고 싶다고 했지 하오문에 대해서는 일절 묻지 않았다.

그러나 난희주의 행동에서 알아낼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만약 현재 천하사패와 손을 잡았다면 하오문의 소문주인 난희주가 모를 리 없었고, 반호진을 찾아올 일은 더더욱 없었다.

‘양쪽에 다 줄을 대려는 것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건 아직 확실하게 손을 잡지 않았다는 거지.’

이걸 알아낸 것만으로도 반호진은 이득이었다.

아직은 미래를 바꿀 기회가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리고 솔직히 반호진은 하오문의 미래를 알기에 조금 안쓰러운 마음도 있었다.

무인으로서 힘을 갈망하는 건 절대 이상한 게 아니었다.

“저야말로 먼저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반 공자님께서 제 청을 받아 주시지 않았다면 애초에 이렇게 만날 수도 없었으니까요.”

“그럼 서로에게 고마운 걸로 하지요.”

“이 주제는 이쯤에서 마무리 짓는 걸로 해요, 그럼. 아, 근데 반 공자님께서는 나중에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반호진이 자신에게 음심이 전혀 없다는 걸 알아서 그런지 난희주는 이 자리가 편해졌다.

전형적인 남자의 모습을 보이는 서조운이 함께 있기는 했으나 저 정도는 그녀에게 있어 애교 수준이었다.

더욱이 서조운에 대해서 알아낸 수하들이 전음으로 알려 주었기에 오히려 귀여웠다.

“나중이라. 질문이 너무 광범위한데요?”

“소림사에 계속 머무실 생각이신가요?”

난희주의 시선이 자연스레 서조운에게로 향했다.

구양절맥을 앓고 있던 서조운을 치료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다.

물론 생명의 존귀함을 알기에 치료해 준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난희주가 본 반호진은 그렇게 너그럽고 인정 많은 성격이 아니었다.

“예전에는 그러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지금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세상에 나올 수도 있지요.”

반호진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뒷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굳이 지금, 이 자리에서 꺼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역시 그러시군요.”

“그때도 저는 형님 곁에 있을 거예요.”

난희주가 눈을 반짝였다.

원하는 대답을 들어서였다.

그런데 서조운이 눈치 없이 끼어들었다.

“넌 서가장으로 가야지.”

“전 막내아들이잖아요. 서가장은 큰형이 물려받을 거예요.”

“그래도 네 집은 여기잖아.”

“에이, 가끔 찾아오기는 하겠지만 저도 저만의 가문을 꾸려야죠. 사나이로 태어났는데 야망을 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 그래.”

반호진은 건성으로 대답했다.

능력도 출중한데 머리까지 똑똑하니 제 앞길은 알아서 잘할 게 분명했다.

그러니 서조운에게 이러쿵저러쿵하는 것도 우스웠다.

“형님께서 가문을 세우시면 제가 첫 번째 가신이 될게요.”

“그건 너무 먼 얘기다.”

“그러니까 미리미리 준비해야죠.”

“너무 앞서가지는 말고.”

반호진이 고개를 저으며 시선을 옮겼다.

한데 난희주의 눈빛이 부담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훤히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반호진은 실소를 흘렸다.

‘그나저나 내 계획대로 되려면 금 공자를 도와주는 게 맞는데 말이지.’

난희주가 부담스럽게 쳐다보고 있음에도 반호진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금호연과 금가장에 대해서 생각했다.

물고기가 알아서 미끼를 물어 주는데 잡지 않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리고 금호연으로서도 절대 손해는 아니었다.

***

이른 아침부터 서가장이 소란스러웠다.

정확하게는 눈물바다가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을 떠나는 서조운으로 인해 모든 가족들과 가속들이 나와 울고 있어서였다.

특히 서조운의 어머니와 할머니가 서조운의 손을 잡고서 놓아주지를 않았다.

“너무 걱정 마세요. 형님께 많이 배우고 다시 돌아올게요.”

“연락은 꼬박꼬박 해야 한다?”

“어딜 가더라고 끼니는 거르지 말고. 반 공자님 잘 모시고. 알지? 반 공자님이 은인이라는 걸 한시도 잊어서는 안 돼.”

눈시울을 붉히는 형들과 달리 닭똥 같은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는 모친과 조모의 모습에 서조운의 눈가도 촉촉해졌다.

그러나 끝끝내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사내대장부는 절대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리고 약한 모습을 보이면 가족들이 더더욱 걱정할 것이기에 서조운은 최대한 의젓한 모습을 보이려 애썼다.

“명심할게요. 엄마와 할머니도 건강 챙기시고요. 꼭 소림사에만 머물러야 하는 건 아니니까 새해마다 최대한 찾아올게요.”

“정말이지?”

“그럼요. 형님께서도 허락하셨어요.”

“그래. 우리 강아지, 밥 잘 먹고, 잘 자고. 절대 무리하면 안 된다? 건강이 최고야. 건강보다 중요한 건 없어.”

서조운의 할머니가 연신 손등을 쓸어내렸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픈 손자였기에 그녀의 눈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걱정 마세요. 이제는 정말 튼튼하니까요. 앞으로는 더 건강해질 거예요.”

“그래그래.”

좀처럼 손을 놓지 않으시는 할머니로 인해 서조운은 두 형들에게 눈인사를 했다.

형제인 만큼 남사스럽게 손을 잡을 생각이 없었기에 오히려 이런 인사가 더 나은 것 같았다.

“조운이를 잘 부탁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반 공자님.”

“감사 인사는 이미 충분히 들은 것 같은데요?”

“제 입장에서는 몇 번을 해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저나 가족들에게 반 공자님은 은인이십니다.”

“순수한 의도로 도와준 게 아니라서 좀 부담스럽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살려 주신 건 사실이니까요.”

서이경이 빙그레 웃었다.

분명 반호진의 말도 틀리진 않았다.

하지만 서이경에게 중요한 건 막내아들이 더 이상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서이경은 너무나 고마웠다.

“한동안은 만나기 힘들겠지만 혼자 강호를 돌아다녀도 될 정도가 되면 서가장으로도 자주 보내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사내대장부는 각자 할 일이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큰일을 하는데 집안이 방해를 해서는 안 되지요. 저는 연락을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러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조운이 말고도 많은 도움을 받지 않았습니까. 덕분에 새로운 목표가 생겼습니다.”

서이경의 눈빛이 달라졌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하더라도 서이경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꿈을 꾸는 이의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잘되었네요.”

“하지만 제 목표보다도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만약 언제라도 저와 서가장의 도움이 필요하시면 연락해 주십시오. 어디라도 달려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맹세하듯 말하는 서이경의 모습에 반호진은 길게 읍을 하며 대답했다.

차마 거절할 수가 없어서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서이경의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했고.

“큰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그럴 리가요. 지금 말만 들었는데도 든든한걸요. 아참, 나중에 검을 수련하다 막히시면 현판을 한 번 보세요. 도움이 될 겁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현판에 세 글자를 새긴 사람이 초대 장주님이시죠?”

“맞습니다.”

서이경이 신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현판에 대해서 말하는 것도 의아했지만 한눈에 초대 장주가 새긴 걸 알아보자 놀라웠다.

“초대 장주님께서 서가장의 검을 현판에 남기셨습니다. 그러니 장주님께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아!”

“제가 다른 무공을 평가할 자격은 없지만 서가장의 검은 결코 약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열심히 정진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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