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장. 또 만났네요. -01
반호진은 서가장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마치 귀빈과도 같은 대우를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서가장의 모든 가솔들이 더 챙겨 주지 못해서 아쉬워했다.
“헉헉!”
살집이 어느 정도 붙은 서조운이 반호진을 따라 체력 단련을 하다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동안 균형 잡힌 식사를 한 덕분에 서조운의 몸은 예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말라깽이처럼 삐쩍 말랐던 몸에는 살과 근육이 붙었고, 키도 단기간에 상당히 커졌다.
불과 이레 전까지만 하더라도 목내이와 비슷한 모습이었는데 말이다.
“힘들면 쉬었다가 해. 지금의 넌 절대 무리하면 안 돼. 아직 몸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극한까지 훈련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 시점을 네가 알아?”
반호진이 피식 웃었다.
분명 서조운은 구양절맥을 타고난 이답게 천재적인 두뇌를 가지고 있었다.
문일지십이라는 말처럼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았다.
그러나 똑똑한 것과 경험이 많은 건 아예 달랐다.
“저는 모르지만 형님은 잘 아시잖아요. 척 보면 다 아시면서.”
“내 시간을 너에게 다 쓰라는 거냐?”
남자 주제에 눈웃음을 치며 말하는 서조운의 모습에 반호진이 코웃음을 쳤다.
살아남기 위해서 수련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서조운에게 많은 시간을 쏟아부을 생각은 없었다.
“에이, 같이 단련할 때 조금씩 조언해 주셨으면 한다는 거죠. 그게 시간을 빼앗는 건 아니잖아요?”
“너는 무림에 나가면 여자가 줄을 서겠다.”
“예?”
주제에서 벗어난 말에 서조운이 눈을 껌뻑였다.
뜬금없는 소리에 당황한 것이었다.
“천부적인 재능에 외모까지 주다니. 역시 하늘은 불공평하다니까.”
“하하! 제가 좀 잘생기긴 했죠. 사실 저도 제 외모가 이럴 줄은 몰랐어요.”
진심으로 부럽다는 듯이 말하는 반호진을 향해 서조운이 넉살 좋게 웃었다.
약간은 민망하다는 듯이 말이다.
근데 이건 사실이었다.
뼈에 살가죽만 붙어 있다시피 했기에 서조운 스스로도 본인의 외모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었다.
“가운뎃다리를 잘 놀려야 할 거야. 그거 잘못 놀려서 패가망신한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야.”
“영웅은 호색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 정도면 삼처사첩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래. 꿈은 클수록 좋지.”
나무라고 싶지만 태어나서 지금껏 고통 속에서 살아왔을 서조운을 생각하면 저런 꿈을 가지는 것도 이상하지만은 않았다.
치료하지 못하면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죽는데 상상이라도 맘껏 하지 못했다면 지금까지 버티지 못했을 터였다.
그리고 능력이 없다면 만용이지만 구양절맥을 완치한 서조운은 비교 대상이 없는 천재였다.
현재 거들먹거리는 사룡도 몇 년 뒤에는 서조운에 감히 비벼 보지도 못할 게 분명했다.
“형님도 가능하시잖아요.”
“난 혼인은 하고 싶지만 삼처사첩을 바라지는 않아.”
“그래도 마다하지는 않으실 거잖아요?”
“나 좋다는데 굳이 밀어낼 필요는 없겠지? 근데 아무 여자나 만날 생각은 없어.”
반호진의 결혼관은 확실했다.
예쁘면 좋지만 그렇다고 외모만 따지지는 않았다.
가장 중요한 건 자신과 잘 맞느냐, 맞지 않느냐였다.
“그건 모두가 똑같죠. 어느 누가 나쁜 여자를 만나고 싶어 하겠어요. 저도 아무나 만날 생각은 없어요.”
“네 나이에는 많이 만나는 게 좋지.”
“형님도 이제 스무 살이시잖아요. 저랑 세 살밖에 차이 안 나는걸요?”
“너랑 나랑은 다르지. 내가 소림사에만 있었어도 여자를 아예 안 만난 건 아냐.”
“으윽!”
서조운이 가슴을 부여잡았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그는 할 말이 없어서였다.
“그리고 넌 여자 생각 하고 있을 때가 아냐. 얼른 몸을 만들어서 무공을 수련해야지.”
“저,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거 있어요.”
“뭔데?”
“삼봉이 그렇게 예뻐요? 형님은 보셨다면서요. 무림삼봉요.”
서조운의 두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나이에 비해 조숙하다고 하나 그래도 서조운은 한창 혈기왕성하고 여자에 대해 궁금증이 많을 나이였다.
더욱이 얼마 전까지 침상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기에 무림에서 가장 아름답다던 삼봉에 대해 궁금해할 수밖에 없었다.
“예쁘긴 하지.”
“그러니까 어느 정도요? 진짜 선녀 같아요? 보는 순간 넋을 잃을 정도인가요?”
“글쎄다. 보면 그냥 예쁘다는 생각밖에는 안 들어. 별호가 세 사람의 모습을 잘 표현하기도 했고.”
“만약에 제가 강호출도를 한다면 마주칠 수도 있겠죠?”
“그렇겠지.”
반호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평범한 무인이나 후기지수라면 마주치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서조운은 달랐다.
본래부터 타고난 천부적인 재능에 축융신공까지 익혔으니 강호에 나간다면 얼마 안 가서 무명을 날릴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삼봉을 만나는 것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았다.
“형님과 함께 있으니까 더더욱 빨리 만날 수 있겠죠?”
“모르지. 인연이라는 게 뜻대로 되지 않는 거니까. 노력으로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으니까.”
“저는 왠지 금방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 직감이 말해 주고 있어요.”
애매모호한 대답이었음에도 서조운의 표정은 여전히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꿈은 꿈을 꾸는 자만이 이룰 수 있다는 말처럼 서조운은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삼봉을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망상은 그만하고, 다시 시작하자.”
“예! 근데 형님.”
“왜?”
“정말 제가 할 수 있을까요?”
반호진과 나란히 연무장을 뛰던 서조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가 전수받은 건 축융신공뿐이었다.
그 외에는 일절 다른 무공을 알려 주지 않았다.
때문에 서조운으로서는 가전무공을 익힐 수밖에 없었는데, 그 점이 그는 불안했다.
“왜 못 한다고 생각하지?”
“상성도 있고…….”
“네 재능이라면 서가장의 무공을 축융신공에 어우러지도록 바꿀 수 있을 거다. 나도 조언을 줄 거고. 아니면 가전무공이 축융신공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것도 조금 있어요. 본가의 무공은 훌륭하지만 축융신공은 열양기공 중에서는 천하에서 한 손에 꼽히는 신공이니까요.”
서조운이 방금 전과는 확연히 다른 어조로 대답했다.
서가장의 무공이 뒤떨어진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냉정하게 따져 봤을 때 축융신공과 비교하면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내 생각은 다른데.”
“예?”
“처음 서가장에 왔을 때 내가 뭘 봤는지 알아?”
“아마, 정문을 먼저 보셨겠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조운이 말했다.
아무래도 서가장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게 정문이었다.
후문도 있지만 대개의 방문객들은 정문으로 찾아왔다.
“맞아. 정확하게는 서가장의 역사와 무공을 봤지.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봤다고 해야 하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서조운이 두 눈을 끔뻑였다.
오늘따라 선문답을 많이 하는 것 같아서였다.
“서가장의 검은 축융신공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아. 제대로 익히고 대성한다면 강호일절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어.”
“예에?!”
서조운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경악한 것이었다.
하지만 반호진은 서조운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려고 한 말이 아니었다.
그저 느낀 걸 가감 없이 말한 것뿐이었다.
“그러니까 이상한 생각 하지 말고 한 가지만 생각해. 무공에 정진하는 것. 그것만 생각해.”
“알겠습니다.”
서조운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그러나 기분이 상하거나 풀이 죽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서조운은 기뻤다.
반호진 정도 되는 무인이 가문의 무공을 인정해 주어서.
‘형님께서 본 본가의 무공이 그 정도란 말이지.’
달리는 와중이었음에도 서조운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세간에서는 신룡이라 불리며 백도무림 후기지수 중 최강자라 인정받지만 서조운은 그조차도 반호진의 일부분만 알려졌다고 생각했다.
극양지기와 싸우면서 반호진의 도움을 받았기에 서조운은 느꼈다.
반호진이 얼마나 과소평가받고 있는지를 말이다.
‘오늘 밤에 다시 읽어 봐야겠어.’
그렇기에 서조운은 반호진의 말을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분명 아버지나 형들이 보지 못한 게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내가 발전시키면 돼. 지금의 나는 할 수 있다.’
서조운은 눈을 빛냈다.
부족한 게 있다면 채우면 될 일이었다.
그에게는 뛰어난 두뇌가 있었고, 이제는 축융신공도 있었다.
게다가 시간 역시 많았기에 가전무공을 발전시키는 건 어렵지 않았다.
‘또 형님도 있으니까.’
이제 겨우 약관의 나이였으나 반호진은 무공에 해박했다.
도저히 스무 살의 나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단순히 무공을 아는 것을 넘어 자기만의 무론과 무도를 쌓았다는 걸 그간의 대화로 알 수 있었기에 서조운의 마음은 가벼웠다.
혼자였다면 온갖 시행착오를 겪었겠지만 반호진이 있기에 서조운은 망설임 없이 시도할 수 있었다.
예상과는 달리 서가장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지만 그게 반호진에게 꼭 나쁘지만은 않았다.
죽기 전의 경지를 가지고 과거로 돌아왔기에 사실 반호진은 내심 자만하고 있었다.
아직 전생의 경지를 완벽히 회복하지는 못했으나 누구에게도 쉽게 지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었다.
또한 또래는 물론이고 무림십왕을 제외하면 자신의 재능에 비견될 만한 이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오만은 서조운을 본격적으로 가르치는 순간 박살났다.
진짜 천재 중의 천재가 어떤 것인지 서조운을 가르치자 알게 되었던 것이다.
“미쳤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서조운의 모습에 반호진은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문일지십이라는 말로도 서조운의 성장세를 표현할 수 없었다.
숙련도는 부족할지 모르나 초식과 투로를 이해하는 것과 펼치는 건 완벽했다.
숙달되지 않았을 뿐 한 치도 어긋나지 않고 보법을 밟고 검로를 그리는 모습에 반호진은 혀를 찼다.
“심지어 내공도 충만하니.”
열일곱 살에 무공에 입문했지만 놀랍게도 서조운의 공력은 천룡이라 불리는 남궁광보다도 많았다.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서조운을 괴롭혔던 극양지기가 이제는 그의 힘이 되어서였다.
거기다 서조운의 극양지기는 정순하기까지 했다.
“이거야말로 불공평한 거지.”
반호진도 늘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서조운은 격이 달랐다.
물론 경험이 일천하기에 실질적인 전투력은 보잘것없으나 중요한 건 성장세였다.
지금과 같은 성장 속도면 1년 만에 웬만한 후기지수들은 다 따라잡을 게 분명했다.
“일도양단 천 번 다 채웠습니다!”
“내가 괴물을 키우고 있는 건가.”
“예? 그게 무슨 말이세요?”
“기본기라도 부족해야 좀 인간미가 있으려나?”
서조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도 알 수 없는 말을 해 대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냐. 잠깐 질투 좀 했어.”
“형님이 저를요?”
“응. 아무리 단명할 운명을 바꿨다지만 네 재능은 진짜 말도 안 되는 수준이니까. 심지어 너는 무재뿐만 아니라 머리도 좋잖아.”
“하지만 형님이 살려 주시지 않았다면 삼 년 안에 죽었겠죠.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제 능력은 형님과 중원을 위해서만 사용할 생각이니까요. 아, 한 가지 더 있어요. 제 가문을 위해서도 사용할 생각이에요.”
서조운이 그리 말하며 눈치를 살폈다.
혹시나 마지막 발언이 반호진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건 당연한 거지. 가족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다고. 다만 네가 힘을 남용하지 않길 바랄 뿐이야.”
“하하하. 오랜만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