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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재림-19화 (19/468)

제 8장. 운명을 바꾸는 자. -02

금호연이 진심으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말한 대로 구명지은에 대한 보답도 하고 싶지만 다른 의도도 있었기에 그는 마음속으로 입맛을 다셨다.

“음식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럴 수는 없지요. 다른 도움도 아니고 제 목숨을 구해 주셨는데요. 그 값은 이런 음식으로 갚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저는 상인이지만 그렇다고 은혜를 모르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말인데, 이걸 받아 주시지요.”

탁.

금호연이 품속에서 작은 금패 하나를 꺼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동그란 모양의 금패였는데 거기에는 금호연의 이름이 중앙에 음각되어 있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제 은인이라는 걸 증명하는 일종의 신분패입니다. 진짜 금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건 제가 선택한 사람에게만 주는 것이라, 금가전장에 이 금패를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은자 오십 냥은 아무 대가 없이 융통할 수 있습니다.”

“이건 받을 수 없습니다.”

반호진은 고개를 저었다.

금가장의 이 공자인 금호연에게 은자 오십 냥은 얼마 안 되는 금액이겠지만 반호진에게는 큰돈이었다.

또한 이걸 목적으로 금호연을 구해 준 것도 아니었고.

물론 내심 어느 정도는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나 그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받아 주십시오. 제 목숨값에 비하면 정말 얼마 안 되는 금액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이보다 더 큰 금액을 드리고 싶지만 느낌상 반 대협께서 받지 않으실 것 같아 이걸 드리는 겁니다.”

“흐음.”

목숨값이라는 단어에 반호진이 움찔거렸다.

확실히 금호연의 목숨에 비하면 은자 오십 냥은 절대 큰돈이 아니었다.

더욱이 반호진이 구해 준 이는 금호연만이 아니었다.

단순하게 철왕의 청부금만 하더라도 은자 오십 냥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제발 받아 주십시오. 그래야 나중에 혹시라도 제 도움이 필요하실 때 유용하게 쓸 수 있습니다. 저에게 구명지은을 갚을 기회를 주시지요.”

“저도 부탁드리겠습니다.”

금호연은 물론이고 뒤에 조용히 시립해 있던 호위대주도 허리를 깊게 숙였다.

비록 지금은 금가장에서 호위무사를 하고 있지만 그 역시 과거에는 무림에 뜻을 두었던 무인이었다.

하지만 역시 이러한 행동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목숨을 구해 주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호위대주는 허리를 숙이는 것이 눈곱만큼도 부끄럽지 않았다.

“저를 난감하게 만드시는군요.”

“편하게 생각해 주십시오. 은혜를 주었다면 받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이런 기본 상식도 지키지 않는 몰상식한 이들이 많지만, 전 아닙니다. 이십오 년 동안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누구를 속이거나, 비방하지 않았습니다. 이윤을 남기려 누구보다 노력하긴 했지만 적어도 사기를 치고 신의를 배반한 적은 없습니다.”

금호연이 당당하게 말했다.

이것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너무 거절하는 것도 좋지 않으니 일단 받아는 두겠습니다. 받았다고 해서 꼭 써야 하는 건 아니지요?”

“그렇습니다. 언제 쓰실지는 반 대협께서 결정하시면 됩니다. 저는 그것도 좋습니다. 오랫동안 반 대협과 인연이 이어져 있는 것이니까요.”

“하하하.”

자연스럽게 교분을 이어 나가겠다는 말에 반호진이 실소를 흘렸다.

그러나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일단 태도가 전혀 거슬리지 않았고, 금호연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또 반호진에게도 나쁘지 않은 일이기도 했고.

“그래서 말인데 아예 소림사에서 하산하신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개인적인 볼일이 있어 잠시 나온 겁니다.”

“그럼 앞으로도 계속 소림사에 머무실 생각이십니까?”

금호연이 내심 기대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소림사 방장의 제자이지만 반호진은 무기명제자였다.

승적에 이름이 올라가 있지 않은, 말 그대로 속가제자이기에 얼마든지 다른 곳에 정착할 수 있었다.

그래서 금호연은 은근슬쩍 의중을 떠봤다.

“글쎄요. 지금 당장은 생각이 없지만, 나중에는 달라질 수도 있지요.”

“하하. 그럼 후보에 저도 슬쩍 올려 주십시오.”

“농담 같은 진담이군요.”

“그렇습니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나중에는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르지 않습니까.”

금호연은 솔직하게 나갔다.

이런 대화에서 빼는 듯한 모습은 보기 좋지 않았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보겠다는 행동은 상대방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었기에 금호연은 아예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지금껏 살펴본 바에 의하면 떠보는 걸 싫어하는 성격인 듯싶기도 했고.

“그렇죠.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르죠. 갑자기 새외무림이 침공해서 중원무림이 풍비박산 날 수도 있고.”

“허황된 이야기는 아니지요. 새외의 침공은 과거에 몇 번이고 있었던 일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백도무림에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도천하, 사도천하보다는 지금이 상인으로서 장사하기는 훨씬 나으니까요.”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다른 곳에 몸을 의탁하거나 정착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저도 부담을 드리려고 한 게 아니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장사꾼이라서 그런지 치고 빠지는 눈치가 상당했다.

또한 솔직하면서도 넉살이 있었다.

금가장의 이 공자라면 거만할 법도 한데 금호연은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자존심은 얼마든지 굽힐 수 있다는 듯이 행동하는 모습에 반호진은 평가를 상향조정했다.

‘전생에서는 죽었기에 내가 알지 못했던 건가.’

운명을 바꾸었지만 적어도 그게 후회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묘한 흥분도 일었다.

과거로 돌아와 제대로 운명을 바꾸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언제라도 제 도움이 필요하다면 고민하지 말고 연락해 주십시오. 정말 급한 일이 아니라면 어디라도 달려가겠습니다.”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저는 진심입니다. 제 목숨값이 그 정도는 되니까요.”

“그럼 똑똑히 기억해 두겠습니다.”

“네.”

금호연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반호진을 꼬드기기보다는 친해지고 알아가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오늘이 날이 아니라는 말처럼 금호연은 길게, 멀리 봤다.

이른 아침 반호진은 말한 대로 일찍 객잔을 나섰다.

정확히 하루만 머물고 떠났던 것이다.

그런 반호진의 뒷모습을 금호연은 호위대와 함께 지켜봤다.

“역시 특별한 건 쉽게 얻을 수가 없어.”

“언젠가는 뜻하신 바를 이루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야지. 난 상인이니까. 인간관계 역시 어떻게 보면 거래의 일종이니까. 그리고 나 역시 시간은 많으니까.”

반호진의 뒷모습을 보며 금호연은 아쉬운 마음을 털어 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휘하에 거두고 싶었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늘 뜻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았다.

그리고 귀하고 특별한 것일수록 얻기가 힘들다는 걸 금호연은 그간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맞습니다.”

“앞으로 예의 주시해. 분명 내 도움이 필요할 때가 올 테니까.”

“알겠습니다.”

“물론 그 전에 셋째와 대화부터 해야겠지만.”

반호진이 떠났으니 이제는 삼 공자의 일을 처리할 때였다.

받은 것 이상으로 돌려줄 생각이기에 금호연은 몸을 돌렸다.

그 역시 떠나려는 것이었다.

한데 금호연을 따르는 인원이 어제보다 두 배 이상 많아져 있었다.

“모시겠습니다.”

“최대한 은밀히, 그리고 빠르게 이동한다.”

“예!”

언제 다시 삼 공자가 자객을 보낼지 모르기에 호위대주는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인원을 충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안심하지 않았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철왕급 정도의 무인이 다시 금호연을 노린다면 막을 자신이 없어서였다.

만에 하나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조심하는 게 맞았기에 호위대주는 반호진과 함께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눈빛으로 주변을 샅샅이 살피며 이동했다.

한편 금호연과 헤어진 반호진은 곧장 어제 갔었던 계곡으로 향했다.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겼었기에 그만큼 서두른 것이었다.

“멋지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산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퍼져 있었다.

계곡 근처로는 짙은 물안개가 퍼져 있었는데 그 모습이 꽤나 장관이었다.

숭산과는 전혀 다른 멋이 있다고나 할까.

“신비로워 보이는 게 딱 좋네. 지금 녀석을 만나면 말이지.”

숭산처럼 웅장하거나 영험하다는 느낌은 없으나 이곳만의 매력은 충분히 있었다.

오히려 인적이 드물기에 더더욱 아름다운 느낌이었다.

그러나 반호진은 이내 정신을 차렸다.

주변의 풍광을 구경하는 건 목적을 이룬 다음에 천천히 느껴도 충분했다.

“두꺼비들은 많은데, 하얀 놈은 보이지가 않는구나.”

뒷짐을 지고서 반호진이 빠르게 계곡 주변을 가로질렀다.

아무래도 두꺼비인 만큼 물가 근처에서 서식할 게 분명했다.

영물이기에 다른 두꺼비들보다 활동 영역이 넓기는 하겠으나 그렇다고 물이 없는 곳에서 서식하지는 못할 게 분명했다.

전생에서 듣기로 이 계곡 근처에서 발견되었다고 했고.

“재미있네. 숨바꼭질 같고.”

자욱하게 뒤덮여 있는 안개로 인해 시야가 평소보다 확연히 좁혀져 있었지만 그게 반호진은 재미있게 느껴졌다.

어차피 안개가 없어도 찾기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영물은 괜히 영물이 아니었다.

미물이 오랜 세월을 살아 영성이 트인 존재가 영물이었기에 평범한 짐승으로 생각하면 큰코다쳤다.

“숨으려는 자와 찾으려는 자의 싸움이라.”

영물이 마물이 되어 인간을 공격하고 잡아먹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사람을 발견하면 피했다.

영초야 이동할 수가 없으니 최대한 기운을 숨기지만 영물은 달랐다.

얼마든지 움직이는 게 가능했기에 기운을 숨기고 몸을 감췄다.

그렇기에 반호진으로서는 더더욱 면밀히 주변을 살펴서 녀석을 찾아야 했다.

저벅저벅.

아직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다고 하나 그렇다고 그게 꼭 반호진에게 유리하다는 건 아니었다.

인연이 닿지 않으면 만나기는커녕 마주칠 수도 없는 게 영물과 영초였기에 반호진은 정신을 바짝 차렸다.

여기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기에 반호진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근데 나 너무 열심히 사는 거 같은데.”

주변을 수색하던 반호진은 문득 허탈해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이번 생은 전생과 다르게 살기로 마음을 먹었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었다.

“이게 다 빌어먹을 천하사패 때문이야.”

반호진은 이를 갈았다.

자신이 죽은 것도, 다시 살아난 것도, 그리고 이렇게 갖은 고생을 하는 것도 다 천하사패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만약 천하사패가 중원 정복의 야욕을 품지 않았다면 그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리고 반호진은 조용히 무공 수련을 하며 생을 마감했을 터였다.

“하아.”

그러나 인간의 욕심은 남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애초에 그게 가능했다면 전쟁도, 싸움도, 다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었다.

스윽!

습한 날씨 덕분인지 계곡 근처에는 수십 마리의 두꺼비들과 개구리들이 펄쩍펄쩍 뛰어다녔다.

올챙이들은 물속을 헤엄치고 다녔다.

그런데 반호진이 한숨을 푹푹 쉬고 있을 때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수풀 속에서 꿈틀거렸다.

“어?”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이며 한숨을 쉬다가 그것을 발견한 반호진이 두 눈을 번쩍 떴다.

하지만 방금 전에 보인 건 착시였다는 듯 새하얀 무언가는 모습을 감춘 뒤였다.

근데 그 순간 반호진의 신형이 쏜살같이 이동했다.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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