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18화 (18/468)

제 8장. 운명을 바꾸는 자. -01

“남궁세가의 소가주라면 사룡삼봉 중 한 명인 천룡을 말하는 거지?”

“맞습니다. 후기지수들이 소림사를 방문했다가 반 대협과 만났고, 천룡이 먼저 대련을 신청했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남궁세가의 소가주는 반 대협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듯합니다.”

“결과는 물어보지 않아도 뻔하겠지.”

“예. 반 대협의 압승이었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놀라지 않았다.

비록 낭왕들의 위상이 천하십대고수에 비해 손색이 있다고 하나 그래도 엄연히 왕의 칭호를 받은 이들이었다.

짧게는 이십 년, 길게는 삼십 년 가까이 칼밥을 먹으며 살아남은 이들이 낭왕이었다.

그 세 명 중 한 명을 잡았는데 남궁세가의 소가주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당연한 결과네.”

“사실 그것만으로도 후기지수들은 물론이고 명문세가들의 충격이 상당했다고 합니다. 구대문파들도 마찬가지고요.”

“아예 격 자체가 다르니까. 그나저나 속가제자면 굳이 소림사에 머물 필요는 없잖아? 혹시 아예 하산을 한 건가?”

“거기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됐어. 만난 지 반나절도 되지 않았는데 이 정도면 많이 알아낸 거지. 방장의 무기명제자에 달마삼검을 익힌 최강의 후기지수라. 나이도 이제 겨우 약관이란 말이지.”

금호연이 눈을 반짝이며 턱을 쓰다듬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너무나 갖고 싶었다.

나이도 어린데 실력도 뛰어나고 거기다 신분도 출중했다.

게다가 철왕으로 인해서 죽을 뻔했었기에 금호연은 다시 한번 뛰어난 실력을 가진 호위무사의 필요성을 느꼈다.

‘대주의 실력도 부족한 건 아냐. 하지만 앞으로 닥칠 일들을 생각하면 실력자가 반드시 필요해.’

금호연이 어릴 때부터 함께한 호위대주는 최절정고수의 실력자였다.

그러나 철왕에 비하면 아무래도 많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금호연은 그걸 이번에 처절하게 느꼈다.

금가장의 후계자, 나아가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실력을 갖춘 고수가 필요하다는 걸 말이다.

‘지금 당장뿐만 아니라 미래를 위해서라도 절대고수는 필요해.’

금호연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반호진이 탐이 났다.

지금도 대단한 실력자지만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인재가 반호진이었다.

약관의 나이에 철왕을 가볍게 쓰러뜨릴 정도면 십 년 후에는 천하십대고수 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천하십대고수가 내 호위무사라면……!’

부르르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금호연은 전율이 일었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할 것 같아서였다.

당장 부친인 금가장주의 호위무사만 하더라도 천하백대고수에도 이름을 못 올리고 있었다.

한데 천하십대고수가 금가장주가 된 그와 함께한다면 천하 어디를 가더라도 두렵지 않을 터였다.

‘위기와 기회는 함께 온다더니.’

금호연의 두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죽을 뻔했으나 중요한 건 그가 아직 살아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위기를 이겨 내면 기회가 온다는 말처럼 금호연은 반호진과의 만남을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하늘이 그를 도와주기 위해 반호진을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해!’

몇 번을 생각해도 답은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기회를 놓치는 건 병신들이나 하는 짓이었기에 금호연은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면서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하면 반호진을 포섭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말이다.

“시킬 일이 있다.”

“하명하십시오.”

“저녁 식사 전까지 반 대협에 관한 걸 전부 다 알아 와. 사소한 것에서부터 가족들에 대한 것까지. 단, 일 공자나 삼 공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은밀하게.”

“삼 공자에 관한 건 어떡할까요?”

앞서 시킨 일이 있기에 호위대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는 수족이지 생각하는 자가 아니었기에 금호연의 의중을 물은 것이었다.

“저녁 식사 전까지는 반 대협에 대해서. 식사를 시작하면 셋째에 집중해.”

“알겠습니다.”

고민하지 않고 곧바로 내리는 지시에 호위대주가 믿음직스럽게 대답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방을 나섰다.

하지만 호위대주가 나갔음에도 금호연의 생각은 쉬지 않고 이어졌다.

***

경비가 부족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넉넉하지도 않았다.

숭산을 내려오면서 경비로 사용하라고 받은 금액이 그리 많지는 않았기에 반호진은 객잔이나 객점을 이용하기보다는 주로 노숙을 했다.

익숙하기도 하고 자급자족이 어느 정도 되었기에 크게 불편한 점은 없었다.

하지만 역시 사람은 문물을 사용하는 게 좋았다.

“이런 호화스러운 방에서의 하룻밤이라. 역시 돈이 좋기는 좋아.”

별채가 없는 대신에 오 층 목조건물의 꼭대기 층에서 머물게 된 반호진은 창가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인근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는데 탁 트인 전경 때문인지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돈, 돈 거리는 건가 보네.”

전생을 합쳐도 반호진의 삶에서 풍요라는 단어는 없었다.

못 먹고, 못 산 건 아니었으나 대체적으로 검소하게 수련만 하며 생활했었다.

천하사패의 침공 이후에는 오직 피 튀기는 전투만 있었고.

그래서인지 지금의 여유가 반호진에게는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

“돈이라.”

그리 큰 금액을 받은 게 아니었기에 가지고 있는 돈이 떨어진다면 산짐승들을 잡아먹거나 맹수들을 잡아 가죽을 팔아야만 했다.

일정 수준까지는 돈이 없어도 자급자족이 가능하지만 그 이상의 생활을 영위하려면 돈은 필수였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금가장의 이 공자를 만나게 되었다.

겸사겸사 전생의 악연도 정리했고.

“보답을 하겠다고 했으니 돈을 좀 주겠지? 그래도 상계를 주름잡는 금가장의 이 공자인데.”

중원상계에 대해서 잘 모르는 반호진도 금가장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숭산에서 무공 수련만 하던 반호진이 알 정도라는 말은 중원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더욱이 중원상계를 주물럭거리는 곳이 금가장이었기에 반호진은 내심 기대했다.

불가의 무공을 익히고 소림사 방장의 무기명제자이지만 그 역시 사람이었다.

“다다익선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지.”

심지어 반호진은 금호연의 목숨을 구해 주었다.

그런 만큼 이 정도 기대는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똑똑똑.

“들어오시죠.”

나름 운치 있는 풍광을 구경하며 여유를 만끽하는데 익숙한 기척이 느껴졌다.

그래서 반호진은 망설이지 않고 입을 열었다.

“하하하. 방은 마음에 드시는지요?”

“예. 이렇게 호화스러운 방은 처음이라 조금 적응이 안 되기는 한데, 그래도 좋습니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금호연은 살짝 당황했지만 이내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고작 이 정도 방을 호화스럽다고 하자 순간 당혹스러웠던 것이다.

하지만 반호진의 기준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평범한 가문에서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소림사에서만 생활했으니 이 정도가 호화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을 터였다.

“오늘 밤은 정말 편하게 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원하신다면 좀 더 머무실 수 있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하루면 됩니다.”

은근슬쩍 본심을 드러냈으나 반호진은 만만치 않았다.

칼같이 끊어 내는 반호진의 대답에 금호연은 내심 아쉬웠다.

그러나 그걸 표정에 드러내지는 않았다.

아직 시간은 많았기에 아쉬워하기는 일렀다.

똑똑.

그때 다시 한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향긋한 음식 냄새가 문틈 사이로 파고들었다.

“음식을 가져왔습니다.”

“들이게.”

“네.”

점소이의 목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리며 온갖 산해진미가 차례대로 안으로 들어왔다.

가장 좋은 방이니만큼 공간이 제법 넓었는데, 그래서인지 점소이들은 아예 네모난 식탁을 가져와 조립하듯 길게 늘어뜨려서는 음식을 올렸다.

“음식이 너무 많은 거 아닙니까?”

순식간에 열 개가 넘는 음식들이 식탁 위에 놓이자 반호진이 눈을 크게 떴다.

종류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많아서였다.

웬만한 대식가도 다 비우지 못할 정도의 양에 반호진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소림사에서 생활한 그에게는 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어서였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남은 음식은 호위무사들이 먹을 겁니다. 잔반 처리가 아니라 다시 데워서 나갈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어떤 음식을 좋아하실지 몰라서 일단 이 객잔에서 제일 자신 있는 음식들로 시켰습니다.”

“뭐부터 먹어야 할지 모르겠는데요.”

반호진이 눈을 느릿하게 껌뻑이며 말했다.

진수성찬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로 돼지고기며 생선, 오리구이까지 있었다.

산과 바다에서 나는 식재료들이 전부 식탁 위에 있자 반호진은 젓가락을 들 수가 없었다.

이렇게 산해진미를 깔아 놓고 먹은 적이 없어 무엇부터 먹어야 할지 막막할 지경이었다.

“드시고 싶은 것부터 드시면 됩니다. 아무리 고급스러워도 음식은 음식일 뿐이니까요.”

“그렇게 말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훌륭한데요.”

담담한 금호연과 달리 반호진의 얼굴에는 감탄이 떠올라 있었다.

지난 생과 이번 생을 통틀어 이렇게나 화려하고 거창한 한 상은 처음이었다.

“마음에 드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엄연히 금호연이 대접하는 것이니만큼 반호진은 망설이지 않고 젓가락을 들었다.

금호연의 나이가 몇인지 정확히는 모르나 서른은 안 넘어 보였고, 전생의 나이까지 합치면 자신의 나이가 더 많을 것이기에 반호진은 거침없이 생선튀김에 손을 뻗었다.

소림사에서는 보기 힘든 음식이었기에 아무래도 가장 궁금했다.

“저도 그럼.”

반호진이 한 입 뜨는 걸 확인한 금호연도 젓가락을 들었다.

하지만 온 신경은 반호진에게 향해 있었다.

이 객잔은 처음이기에 맛을 모르는 건 금호연도 마찬가지였다.

냄새는 나쁘지 않지만 벽촌의 객잔에서 낼 수 있는 맛은 뻔하기에 금호연은 내심 긴장했다.

“……맛있네요. 세상에 이렇게나 색다른 맛이 있다니. 이런 양념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 많이 드시지요.”

마치 신세계를 본 듯한 반호진의 표정에 금호연은 물론이고 등 뒤에 시립해 있던 호위대주도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맛이 기본은 하는 듯해서였다.

꿀꺽!

허겁지겁 음식을 집어 먹는 반호진의 모습을 지켜보며 금호연도 생선구이를 한 점 집어 입에 넣었다.

그러나 이내 그는 미간을 좁혔다.

가격에 신경 쓰지 말고 최상의 식재료로 최고의 맛을 내라고 부탁했음에도 불구하고 음식들은 그가 바란 기준에 턱없이 미달했다.

‘그나마 맛있게 드셔 주셔서 다행인가.’

차라리 노숙이었다면 이해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객잔이었고, 돈을 받고 음식을 파는 곳이었기에 금호연은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맛있게 식사하고 있는 반호진에게 그 기색을 드러낼 수는 없기에 그는 예의상 몇 점 더 집어먹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입맛이 없으신 모양이네요.”

“하하. 아무래도 사선을 넘나들었다 보니 음식이 잘 안 들어갑니다.”

“그럴 만하지요.”

변명이었으나 반호진은 의외로 수긍했다.

죽음이 코앞까지 왔다가 살아났으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더욱이 골육상쟁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머리가 꽤나 복잡할 것이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무슨 일로 이곳을 찾아왔는지 여쭈어봐도 될까요? 만약에 제가 도움을 드릴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아신다고 하더라도 도와주시긴 힘들 거고요. 저 혼자 해야 하는 일이라.”

“아, 그렇습니까. 아쉽네요. 구명지은을 입은 만큼 조금이라도 보답을 하고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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