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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재림-16화 (16/468)

제 7장. 사람은 달라지지 않는다. -01

아는 사람이거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사람이 얻어야 할 영물이라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겠지만, 이곳에서 서식하는 그 녀석을 잡는 건 사도의 인물이었다.

그것도 천하사패가 침공하기 무섭게 꼬리를 흔들며 굴복했기에 반호진은 더더욱 영물을 넘길 수 없었다.

그깟 놈이 먹어서 천하를 어지럽히게 놔둘 바에는 차라리 그가 챙기는 게 나았다.

“문제는 어디에 있냐는 건데.”

영초나 영물은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인연이 닿지 않는다면 코앞에 있음에도 발견하지 못하는 게 영물과 영초였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영초와 영물은 자신의 기운을 숨길 줄 알았다.

어떻게 보면 숨바꼭질처럼 찾으려는 자와 숨는 자의 대결이었기에 반호진은 중얼거리며 주변을 일단 크게 훑었다.

“일단 생각해 둔 방법으로 움직여 볼 수밖에.”

반호진은 결코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찾아온 게 아니었다.

나름 최선의 방법을 생각해 두었다.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시간이 여유롭다는 것이었다.

급한 일도 없고, 지난 생에서 그 녀석을 발견했을 때가 일 년 후였기에 아직은 시간이 있었다.

“찾기 전에는 절대 떠나지 않는다.”

반호진이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영초가 아니기에 난이도는 상당한 편이었다.

한곳에 머무르고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기에 어쩔 수 없이 계속 탐색을 해야 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체력훈련과 경신술 훈련을 동시에 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도 이왕이면 빨리 나타나 주었으면 좋겠는데.”

없던 인연을 강제로 이으려고 찾아온 만큼 반호진도 쉽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콰아앙!

한데 그때 고요한 숲속을 한줄기 폭발음이 갈랐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진기와 진기가 충돌하는 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뭐지?”

그 소리에 반호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금속음이 아니라 상당한 공력을 머금은 폭음이었기에 반호진은 눈을 껌뻑거렸다.

그가 알기로 산적도 없는 야산이 이곳이었다.

때문에 반호진의 두 눈에 의문이 서렸다.

스스슥!

하지만 이내 그의 신형은 허공을 갈랐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만약 그가 노리는 영물을 먼저 발견해서 자기들끼리 싸우는 건 아닐까 하고.

이윽고 반호진의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빌어먹을 새끼!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구나!”

“물론이지. 설마 내가 노리는 것도 없이 순순히 네 제안을 받아들였겠어?”

“크윽!”

화려한 무늬의 장포를 걸친 귀공자가 이를 갈았다.

하지만 살벌한 귀공자의 눈빛에도 야수와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중년인은 여유로웠다.

귀공자가 아무리 살벌한 기세를 뿌려 대도 자신에게는 아무런 피해도 끼치지 못한다는 걸 잘 알아서였다.

그는 혼자고 귀공자에게는 열 명이 넘는 호위무사가 남아 있었으나 중요한 건 숫자가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네 재산을 넘긴다면, 약속하지. 고통 없이 깨끗하게 죽여 주겠다고.”

“내가 순순히 넘길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역시 그렇게 나오시겠다? 쯧!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택하겠다니. 금가장의 둘째가 똑똑하다고 들었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군.”

“이 자리에서 네가 가져갈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거다!”

이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귀공자가 으르렁거리듯 소리쳤다.

살의가 가득 담겨 있는 음성이었으나 중년인은 태연했다.

약자의 협박은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아서였다.

“도망치려고? 과연 어디까지 도망칠 수 있을까? 시간벌이용으로 쓸 수 있는 인원도 얼마 없는데.”

으드득!

중년인의 비아냥거림에 귀공자가 이를 갈았다.

그런 그의 시선은 중년인의 발아래 깔려 있는 시체들에게로 향했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살아 있던 그의 수족들이 지금은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다.

어리석은 그의 실책으로 인해서 말이다.

“낭왕이라 불리는 자가 이런 치졸한 짓이라니! 부끄럽지도 않은가!”

“나를 배신자로 몰고 싶은 모양인데, 난 처음부터 삼 공자와 계약을 맺었을 뿐이야. 당신네들은 그걸 몰랐을 뿐이고. 그러니 애초에 배신이라는 게 성립이 안 된다는 말이지. 게다가 나는 당신이 말한 대로 낭인일 뿐이고. 난 고용주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뿐이라고.”

“어디서 그런 억지를!”

“맞아, 억지일 지도 모르지. 근데 중요한 건 힘 있는 자의 억지는 진실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야. 그리고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고.”

흠칫!

중년인이 히죽 웃었다.

그런데 그 미소에 호위무사들이 바짝 얼어붙었다.

웃고 있으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기세는 결코 부드럽지 않아서였다.

보이지 않는 칼날이 금방이라도 전신을 난자할 것 같은 느낌에 호위무사들이 하나같이 마른침을 삼켰다.

“흐으!”

그리고 그건 중원상계의 거물인 금가장의 이 공자, 금호연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더욱 섬뜩하게 다가왔다.

무공을 익히긴 했으나 수준이 일행들 중 가장 낮았기에 엄습해 오는 두려움은 더욱 컸다.

하지만 그럼에도 금호연은 몸을 떨지언정 겁을 먹지는 않았다.

“그러니 우리 좋게 좋게 가자고. 모두가 고통스럽게 갈 필요는 없잖아? 저승에 돈을 가져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노잣돈은 내 충분히 입안에 넣어 줄 테니 우리 서로 좋게 마무리하자고. 응?”

중년인이 어르고 달래듯이 말했다.

금가장의 삼 공자가 주기로 한 돈이 적지 않았으나 다다익선이라는 말처럼 많아서 나쁠 건 없었다.

더욱이 금호연은 이 공자인 만큼 가지고 있는 재산 역시 상당할 게 분명했다.

“네놈에게는 단 한 푼도 줄 수 없다. 여기서 죽을 생각도…….”

푹!

금호연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언제 날린 건지 중년인이 뿌린 한줄기 지풍에 가장 어린 호위무사의 머리에 구멍이 뚫렸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즉사한 호위무사가 힘없이 바닥에 쓰러지자 금호연의 동공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지금 뭘 잘못 생각하는 거 같은데, 나는 언제라도 이 공자를 죽일 수 있어. 즉 그 말은 이 공자의 사지 어디라도 노릴 수 있다는 뜻이지.”

스스슥!

중년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호위무사들이 금호연의 앞을 가로막았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를 지키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 모습에도 중년인은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었다.

저렇게 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어서였다.

“여전히 쓰레기 같은 짓을 하는구나. 아니, 원래 쓰레기여서 그런 건가?”

“누구냐!”

갑자기 들려오는 낯선 음성에 중년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러면서 빠르게 사방을 훑었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찾을 필요가 없었다.

목소리의 주인이 알아서 나타나서였다.

“철왕(鐵王) 사무궁.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는데.”

“어린놈이 예의를 모르는구나.”

가볍게 바닥에 착지한 반호진을 노려보며 사무궁이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사나운 기세와 달리 사무궁의 마음속은 당혹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반호진이 여기까지 오는데 전혀 기척을 느끼지 못해서였다.

“예의를 모르는 녀석이 예의 운운하니 어이가 없는데.”

“네 건방짐이 죽음을 자초한 것이니, 억울해하지는 마라!”

왠지 모를 불길함에 사무궁은 손을 뻗었다.

철왕이라는 별호답게 수많은 상처와 굳은살로 가득한 오른손이 반호진의 머리를 노렸다.

단숨에 움켜잡아 머리통을 터트리겠다는 속셈이었다.

“왕이라고 해서 다 같은 왕이 아니지. 넌 아직 무림십왕(武林十王)의 수준이 아냐.”

서걱.

사무궁의 우수가 벼락같이 파고들었으나 안타깝게도 반호진의 검이 조금 더 빨랐다.

후발선제란 이런 것이라고 말해 주는 것처럼 반호진의 일검은 정확히 사무궁의 오른팔을 절단했다.

“끄아아악!”

파공음도 없이 뻗어 나간 일검은 사무궁의 오른팔을 어깻죽지에서부터 잘라 버렸다.

그와 동시에 끔찍한 고통이 사무궁을 엄습했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고통이 그를 덮쳤던 것이다.

“……!”

하지만 충격을 받은 건 금호연도 마찬가지였다.

사무궁이 누구이던가.

철왕이 어떤 존재이던가.

비록 천하십대고수라 불리는 무림십왕에 비하면 손색이 있다고 하나 그래도 낭인들의 정점에 선 존재가 낭왕들이었다.

괜히 왕의 칭호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그 세 명 중 한 명인 철왕이 오른팔을 잃고 울부짖자 금호연은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이 육시랄 새끼가……! 감히!”

얼마나 예리하게 베어졌는지 피도 흘러나오지 않는 오른쪽 어깨를 움켜잡고서 사무궁이 달려들었다.

고통 때문인지 아니면 분노 때문인지 얼굴을 악귀처럼 일그러뜨리고서 반호진을 향해 달려들었던 것이다.

그런 사무궁의 전신에서는 무시무시한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온몸에서 강기를 줄기줄기 뿌려 대며 반호진을 향해 하나만 남은 왼손을 뻗었다.

쌔애애액!

탁한 은빛의 기운이 사무궁의 좌수에 서렸다.

그러더니 불꽃처럼 일렁였다.

단순히 수강을 넘어 무지막지한 기운이 왼손에서 솟구치는 것이었다.

닿는 것은 뭐든지 뭉개 버리겠다는 기세로 사무궁의 좌수가 다시 한번 반호진의 목을 노렸다.

“소용없다니까.”

활짝 펼쳐진 왼손이 우악스럽게 뻗어 왔지만 반호진은 눈곱만큼도 긴장하지 않았다.

금호연은 처음 만나는 거지만 사무궁은 달랐다.

지난 생에서 만났던 적이 있기에 사무궁이 펼치는 무공에 대해서는 빠삭했다.

더욱이 사무궁은 오른팔이 잘렸음에도 여전히 반호진을 얕잡아보고 있었다.

스극.

중원의 수많은 무인들 중 가장 단단한 몸을 가지지 않았을까 평가받는 사무궁의 육신이 재차 갈라졌다.

이번에도 반호진이 단칼에 사무궁의 왼손을 팔뚝까지 갈라 버렸던 것이다.

분명 신체의 단련도나 공력은 사무진이 훨씬 더 뛰어나고 심후했다.

하지만 경지는 반호진이 위였다.

“어, 어떻게……!”

거의 팔꿈치까지 갈라진 자신의 왼팔과 반호진을 번갈아 쳐다보며 사무궁이 중얼거렸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더듬으면서 말이다.

그러나 경악한 사무궁과 달리 반호진은 담담했다.

공력은 부족하나 그렇다고 그가 이룩한 경지를 펼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어떻게긴. 보는 그대로지.”

“믿을 수 없다!”

양쪽 팔을 잃은 사무궁이 이내 현실부정을 하듯 중얼거리고서는 다시 달려들었다.

비록 손은 쓸 수 없지만 그에게는 두 다리가 남아 있었다.

어차피 눈앞에 있는 반호진을 쓰러뜨리지 못한다면 죽음밖에 없기에 사무궁은 낭왕다운 투쟁심을 보이며 짓쳐들었다.

통나무 같은 넓적다리를 크게 휘두르면서 말이다.

쌔애액!

양손을 잃은 상태인데도 사무궁의 발차기는 깔끔했다.

괜히 낭왕이라 불리는 게 아니라는 듯이 간결하면서도 강맹한 일격을 날렸던 것이다.

거기다 진기 역시 가득 실려 있었다.

뒤는 없다는 듯이 모든 진기를 사무궁은 발차기에 쏟아부었다.

푸핫!

그로 인해 절단된 어깻죽지에서 피가 크게 솟구쳤다.

과도한 진기의 사용으로 출혈이 일어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무궁은 이를 악물고서 반호진의 옆구리를 노렸다.

쩌어어엉!

그러나 아쉽게도 사무궁의 발차기는 반호진의 검에 막혔다.

검면을 이용해 정확히 받아 냈던 것이다.

“차합!”

그런데 사무궁의 공격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마치 막힐 걸 예상했다는 듯이 오른발차기가 막히자마자 몸을 띄우며 왼쪽 무릎을 들어 올렸다.

가까운 거리를 이용해 슬격(膝擊)을 날린 것이었다.

그야말로 산전수전 다 겪은 이만이 펼칠 수 있는 노련한 수였으나 문제는 반호진이 사무궁을 상대해본 경험이 있다는 점이었다.

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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