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마와 색마-222화 (222/225)

EP.222 외전 : 인자검 백리소현 - (19)

한 번 그런 생각한 적이 있었다.

색마, 위 오라버니의 무공인 ‘소녀경’은 천하제일의 방중술임과 동시에 내가기공이다.

강호 전체를 뒤져 봐도 그러한 무공은 없으리라.

오라버니는 그 무공이 가문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무공이라고 했다.

내공의 특성상 가능한 자주 밤일을 가지는 게 선호되는 특성상 이 무공을 익혔을 시아버님 또한 위 오라버니 못지않게 여러 여인과 밤을 보냈겠지.

위 오라버니가 가능한 자기 아버지 이야기를 안 하려고 노력하곤 하는데 실제로 몇 번 가족 얘기를 꺼낼 때마다 아버님의 여성 편력과 그에 따른 가족 간 불화에 대해 툴툴대곤 했다.

또한 령 매를 만나기 전까지 오라버니 또한 상당히 많은 여성과 몸을 섞다 다른 이들의 시기와 질투에 의해 ‘색마’라는 칭호를 얻곤 했다.

그러니깐 내가 위 오라버니가 마차의 창문 너머로 ‘자칭 색마’의 모습을 확인하곤 떨리는 목소리로 ‘형님…?’ 이라고 말했을 때, 나는.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쉬이 납득해 버리고 말았다.

*

“혀… 형님…”

“오랜만이구나, 일청아.”

떨리는 위 오라버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자연스레 오라버니에게 하대하는 자칭 색마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고는 살짝 놀랐다.

“어머…”

얼굴을 보는 순간, 정말 형제인가? 싶을 정도로 묘하게 위 오라버니의가 겹쳐보였다.

하지만 눈매가 다정한 위 오라버니와 달리, 자칭 색마는 그 눈매가 어딘가 오만하고, 거만해 보였다.

“일단 결혼을 축하한다. 조카까지 생겼다니 참으로 기쁘구나.”

“… 서신을 남겨두고도 그딴 말씀이 나옵니까? 몇 년 만에 다시 보는데도 여전히 속을 알 수 없군요, 형님.”

“서신?”

자칭 색마는 능청맞게 인상을 찌푸리며 장난스럽게 이내 유광을 쳐다보았다.

거들먹거리는 꼬락서니가 영 불쾌했다.

“네놈이 남겨두었느냐?”

“크큭, 나는 산적 놈이라 글을 모르는데?”

“허허… 그럼 누구일꼬?”

자칭 색마는 건들거리며 위 오라버니에게 말했다.

“나는 모르겠구나?”

“여전하시군요, 일홍 형님.”

“너는 좀 많이 바뀌었구나? 못 본 사이에 제법 담대해진 게 보기 좋다. 형님~ 형님~ 하면서 따라다니던 코흘리개 모습이 엊그제 같은…”

“그리고 이제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기도 하지요.”

“이젠 말도 끊을 줄 알게 되었구나. 하! 그 울보 일청이가 말이다!”

“언제적 이야기를…!”

그때, 령 매가 손을 슬쩍 들어 올리며 끼어들었다.

“잠깐잠깐. 궁금한 게 있는데 가가, 뭐 좀 물어봐도 돼요?”

“… 네?”

“령… 매?”

“독고 언니 또 뭘 하려고…”

령 매가 위 오라버니를 보며 허락을 구했고, 이내 고개를 끄덕인 걸 확인하자 입을 열곤 물었다.

“그러니깐… 둘이 형제죠?”

“그렇지. 제수씨.”

“그 좀 거슬리는 호칭은 집어치우고. 뒤지기 싫으면. 언제봤다고 친한 척 들이대. 콱 씨…”

“뭐라…?”

“풉.”

령 매는 역시 령 매였다.

하긴 여차하면 시 아버지될 위 오라버니의 아버지도 조지겠다고 말했던 게 령 매였다.

이제 와서 위 오라버니의 형이 나타난다고, 령 매는 절대 바뀔 리 없었다.

“가가의 어릴 적 이야기는 궁금하긴 한데 네가 감히 지하랑 지약이를 언급한 건 내가 도저히 못 참겠거든? 그러니깐 가가…”

령 매는 언제나처럼 참 귀엽게, 마치 당과를 먹어도 되냐고 부모의 허락을 구하는 어린아이처럼 위 오라버니에게 물었다.

“… 제가 조져도 돼요?”

물론 그 내용이 귀여운 외형과는 전혀 다른 말이긴 했다.

“큭… 크큭… 크하핫!!!”

“가가?”

령 매의 질문을 듣고 방금까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위 오라버니의 표정은 금세 풀려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이는 위 오라버니만 그런 게 아니라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령.”

위 오라버니는 한참을 웃다 겨우 진정하곤 령 매를 껴안으며 속삭였다.

“하지만 제가 조질게요. 일홍 형님에게 맺힌 게 많아서요.”

“가가께서 그렇다면야 뭐…”

“그러니깐 령 매는 원래 예정된대로 천룡지호 두 명을 상대해주시겠…”

그때, 섬뜩한 감각이 등을 타고 올라왔다.

“끼리끼리 만났구나…! 듣자듣자 하니 그 시건방짐이 아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는군!!”

스산한 목소리와 함께 위 오라버니의 형제, 위일홍은 무시무시한 내공을 드러냈다.

단순히 내공의 총량만 따진다면 위 오라버니보다도, 그리고 령 매보다도 많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버티기 힘들 정도의 엄청난 내공이었다.

“… 형님. 설마… 여인의 음기가 다 할 때까지 채음보양을 하신 겁니까?”

위 오라버니는 채음보양이란 단어를 싫어했다.

소녀경은 어디까지나 여성의 음기와 남성의 양기를 뒤섞어 서로의 기운을 더 정갈하고, 깊게 만들 뿐 누구 하나의 기운을 뻇는 것은 아니기에 채음보양과 같은 사특한 방법과는 다르다고.

하지만 오라버니의 형제는 달랐나보다.

위 오라버니의 떨리는 목소리를 듣고, 위일홍은 당연하다는 듯이 물었다.

“못 할 이유는 뭐지?”

“예…?”

“되려 감사해야겠지. 보잘것없을 인생, 차기 천하제일인이 될 나의 일부가 된 데다가 최고의 쾌락을 얻어 복상사했으니 여인으로서 행복한 인생을 보낸 것 아닌가?”

“…”

나는 그제야 위 오라버니와 똑 닮은 위일홍의 얼굴을 보고도 왜 오라버니와 전혀 다른 인상을 받았는지 깨달았다.

그는 여인을 사랑으로 대하지 않았고, 그저 내공을 얻는 도구로만 보는 자였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자에게 어찌 좋은 인상을 받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식으로 추악하게 무력을 쌓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이가 여기 하나 더 있었다.

“가가의 형제라고 해서 반만 죽이고 넘어갈까 했는데 완전 미친 새끼 네, 이거.”

철그럭.

도를 뽑아드는 령 매의 목소리엔 분노가 가득했다.

방금까지 혼자 맡겠다고 했던 위 오라버니도 위일홍이 생각보다 훨씬 강한 적수임을 알자 령 매가 발검한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조용히 검을 뽑아 들었다.

“그게 말로만 듣던 비익연리군.”

둘이 한 쌍을 이루는, 이제는 둘을 대표하는 신병이기.

그 둘을 앞에 두고 저렇게 당당할 수 있는 자가 있을까 했는데 지금 여기.

눈앞에 있었다.

“우리 아우님과 강호삼신의 일각, 한 번 실력을 보지.”

거무죽죽한 강환(罡丸)을 양손에 두른 위일홍은 아무렇지 않게 손을 휘두르며 강환을 쏘아냈고, 어느새 일영기를 끌어올린 령 매의 비익과 위 오라버니의 검기를 두른 연리가 그 강환을 맞받아치는 순간.

“윽…!!”

폭음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지워냈고, 강렬한 빛이 세상의 모든 풍경을 지운듯했다.

강렬한 섬광과 정적 뒤엔 그 여파로 엄청난 폭풍이 몰아쳤고 검집 째로 바닥에 꽂아 넣어 겨우 날아가지 않게 버티는 것이 겨우일 정도였다.

눈을 가리던 폭풍우가 한 차례 지나가자, 다시 위 오라버니와 령 매의 모습이 드러났다.

위 오라버니는 잔뜩 굳은 표정이었고, 령 매는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둘 다 강자를 만났을 때의 표정이었다.

위일홍은 생각보다 훨씬 강했고…

“쳐라!!!”

유광의 외침소리와 함께 숨어 있던 산적들이 튀어나오자 수 또한 밀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튀어나온 산적들이 일사분란하게 공격하는 것을 보자 이 모든 것이 처음부터 계획된 함정이었음을 깨달았다.

가장 먼저 약점이 될법한 마차로 향하는 산적들은 대부분 관영이와 청운 도사에게 막히기 시작했지만, 밀려드는 수가 워낙 많았기에 시간 문제가 아닐까.

“…”

하필 우리 중 가장 강한 령 매와 위 오라버니가 위일홍 한 사람에게 묶이자 순식간에 생긴 전력의 차이는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삭풍(朔風)”

쐐애애액!!

허공을 가르며 내 다리 크기 정도 되어 보이는 거대한 철시(鐵矢)가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윽…!”

검을 들어 막아 냈지만, 손아귀가 찢어질 것만 같은 격통이 뒤따라 찾아왔다.

철시는 거대한 크기만큼 무거웠고, 또 동시에 심후한 내공을 담고 있었다.

‘활을 쓰는 무림인이라니…’

멀리서 유유히 전장을 관망하는 담천산룡(曇天山龍) 유열의 모습에 마음이 덜컥 꺾일 것만 같다.

게다가 뒤이어…

“일단 한 명 떨쳐 내고 시작하지!!”

유열과 내 사이를 가리듯, 산중호걸 유광이 몸을 날리며 덮쳐들었다.

그의 솥뚜껑만한주먹이 내 시야를 가치며 덮쳐들자, 재빨리 검을 들어 검 면으로 막았으나 그 여파로 자세가 무너졌고,

“마풍(魔風)”

쐐애애액!!

또다시 섬짓한 파공성이 유광의 등 뒤에서 날아들었다.

‘화살이 휘어져…?’

도대체 어떤 연유로 화살이 마치 살아 있는 뱀처럼 휘어져 날아드는지 알 수 없었지만, 화살과 함께 동시에 내게 날아드는 유광의 주먹을 바라보자,

나는 죽음을 직감했다.

느려진 세상 속에서 시시각각 다가오는 적의 공격을 바라보며 나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상대는 나보다 몇 수 위의 강적, 심지어 둘이나 있었다.

쓰는 무공 또한 미지수에 선공을 빼앗겨 자세까지 무너졌다.

도와줄 령 매도, 위 오라버니도 여의치 않은 이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야 하는 내 머릿속은 이상하게도 령 매가 한 말로 가득 차 있었다.

[언니의 공격이 가장 빠르고, 날카롭거든.]

그래, 령 매가 한 말이니깐.

날아드는 유열의 화살도,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유광의 주먹보다도 내 검이 더 빠르다.

령 매가 보증했다.

한 번의 공격은 허용하리라, 분명 엄청나게 아플테지.

하지만 동귀어진으로 반드시 데려가겠다 생각하며 나는 한없이 느려진 세상 속에서 느릿느릿 몸을 움직였다.

한 발짝 천천히 발을 내디디며 내가 펼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익숙한 초식을 준비했다.

일수초현.

사일검법의 시작.

내가 가장 많이 펼쳐 낸 초식.

발바닥의 용천혈에서부터 내공을 끌어올려 다리 사이에 위치한 회음혈을 지나 기문혈을 거쳐 내관혈로 쏘아낸다.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되뇌이던 내공의 구결을,

앞 발을 내디디며, 허리를 비틀고, 손을 앞으로 내뻗으며, 손목을 가볍게 돌린다.

몇 번이고 육체가 되풀이하던 행동을,

한없이 느려진 세상 속에서 더없이 완벽하게 구사해내며,

생애 최속의 속도로 쏘아냄과 동시에…

“아…!”

세상이 다시 빨라졌고,

“컥…!”

내 검이 유광의 심장을 궤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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