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마와 색마-213화 (213/225)

EP.213 외전 : 하오문주 은관영 - (10)

마차가 덜컹거리자, 자연스레 신음이 새어나왔다.

“읏…!”

“괜찮나요, 관영?”

“… 네, 괜찮아요.”

일청 오빠의 물음을 뒤로하고 나는 욱씬 거리는 엉덩이를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뒤로하는 건 다 좋은데 매번 이렇게 후폭풍이 심해서 문제란 말이지.

“… 어제 일 때문에 그런가요?”

“아니에요오. 갑자기 마차가 덜컹거려서 놀란 거 뿐이에요.”

아프다기보단 묘하게 욱씬거리는 게 뭐라 그럴까.

조금 흥분되는 기이한 기분이었다.

오빠가 어제 야명주를 안 버렸다면 조만간 또 한 번 부탁드려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때.

“… 으음.”

오빠의 품에 안겨있던 독고 언니가 몸을 뒤척거렸다.

혹시 깼나 싶었는데 얼마 안 가 언니는 다시 쌔근거리며 고른 숨을 내뱉었다.

저렇게 자는 모습만 보면 영락없는 선녀인데 날뒤는 모습들이 떠오르자 괴리감에 괜히 웃음이 피식 새어나왔다.

“독고 언니는 참 잘 주무시네요.”

“그러게요. 어제 많이 피곤했나 봅니다.”

“어제… 말이죠?”

어젯밤 일이 떠오르자 입가가 씰룩거렸다.

“어제? 그러고보니 어제 령 매랑 상공이랑 같이 잤지?”

“네.”

“… 나도 불러주지 그랬어.”

“어제는 뒤로 해서요오.”

“아…”

그 말을 듣자 소현 언니가 고운 아미를 찌푸리며 손으로 자신의 엉덩이를 가렸다.

“으… 나는 뒤로는 싫어서…”

“그래서 어젠 안 불렀어요오.”

“꼭 할려고 하면 못 할 건 아닌데 그래도…”

소현 언니가 일청 오빠를 쳐다보며 미안하다는듯이 웃자, 오빠가 괜찮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합니다. 대신 오늘은 같이 자죠. 어제는 령이랑 관영이랑 했으니깐요.”

“응, 좋아.”

소현 언니가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자고 있는 독고 언니를 보며 배시시 웃었다.

“그럼 오늘은 독고 언니랑 소현 언니랑 둘이서 하겠네요. 저는 오늘 하루 쉬려고요오.”

“응? 령 매한테 의견도 안 묻고?”

“달거리 중에도, 임신 중에도 어떻게든 야한 일을 하고 싶어하던 독고 언니가 거절할까요오?”

“하긴, 후훗.”

“밤일을 거부하는 령은 상상하기 힘들죠, 크큭.”

자기 얘기를 나누는 것도 까맣게 모르고 새근새근 자는 독고 언니를 보며 나는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녀가 자고있든, 깨어있든 상관없이 독고 언니에 관해 얘기하는 일은 항상 즐거웠다.

조금 이따 잠에서 깨어나 이 이야기를 들으면 또 ‘캬아아악~’ 그러면서 자기가 자는 동안 놀렸다고 소란을 피우겠지만, 그 모습이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감추기 위함을 알고 있기에.

오히려 그 소란 뒤에 보여주는 귀여운 모습들이 보고 싶어서라도 왠지 모르게 자꾸만 그녀를 놀리고 싶었다.

예전에는 정말 무서웠던 적도, 싫었던 적도 있었지만 아이를 낳은 뒤에 모성에 눈을 떠서일까?

요즘은 많이 유해진 것도 한 몫했다.

‘정말이지… 싫어할 수가 없네요오.’

지금도 그렇다.

출발하기 전, 객잔에 돌았던 호사가들의 소문에 의하면 아마 지난 밤 위 오빠와 둘이서 야명주를 이용해 아주 음탕한 짓을 했던 것 같다.

그것도 밖에서!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상상한 것만으로도 하단전이 욱씬거리는 아찔하고 음탕한 짓이었지만, 또 지금은 위 오빠의 품에 안겨 두 아이를 껴안고 세상 모르는 자는 모습이 같은 여성인 내가 봐도 더 없이 사랑스러웠다.

‘밤에는 음탕하고, 낮에는 사랑스럽고…’

정말이지 욕심쟁이다, 독고 언니는.

무공, 미모, 밤일, 육아까지 모자란 게 없다.

나도 열심히 해야지 생각하며 잠시 미뤄뒀던 문주의 책임을 다 하고자 다시 서책을 펼쳐드는 순간.

드르륵.

“문제가 생겼습니다.”

“네?”

마부석을 향해 나있는 자그마한 문이 열리며 청운 도사님이 말을 걸었다.

“음… 저도 잘 안 믿기는 일이긴 하지만, 이런 일이 제게도 벌어지는군요. 산중호걸이 저희 마차를 멈춰세웠습니다.”

“산중호걸이요오…?”

청운 도사님이 믿기지 않았다고 밝힌 것처럼 말을 듣는 순간, 나도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산적이, 녹림이 이 마차를 멈춰세웠다고?

“어처구니가 없네요오.”

서책을 잠시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업무도 업무지만 잠시 기분 전환을 위해 땀을 좀 흘리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마차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는 순간.

“… 어라?”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광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 녹림이 멈춰세웠다고 했을 때는 ‘그럴 수도 있다.’라고 생각했다.

맹의 일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색마가 나타났다는 사천 지역으로 향하고 있긴 했지만, 맹의 깃발을 마차에 걸어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녹림이 보기엔 단순히 ‘제법 화려해보이는 큰 마차’ 정도로 여겼을 테다.

산적질을 오래한, 경험이 풍부한 녹림도라면 오히려 이런 화려한 마차일수록 조심해야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냥 보내줬겠지만 확인해본 결과, 이 근방에는 산채가 없었다.

그러니깐 아마 새로이 산적질을 시작한 경험이 부족한 산적이라 생각하고 아무 것도 모르고 크게 한탕할 생각에 의욕만 앞 선 새로운 산적이라 여겼다.

그러니 규모도 작고, 무공도 그저 그렇겠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 청운 도사님.”

“예, 하오문주.”

“산중호걸이라고 말하니깐 제가 헷갈렸잖아요오.”

“… 죄송합니다. 정확히 말씀드릴 걸 그랬군요.”

아마 저 눈치없는 청운 도사님은 바람에 흩날리는 거대한 깃발에 용사비등한 필체로 적힌 ’산중호걸(山中豪傑)’ 이란 네 글자만 보고 있는 그대로 말했으리라.

산중호걸이 녹림을 높여부르는 단어기도 하지만 이 경우에는 얘기가 달랐다.

저 네 글자가 새겨진 기를 들고다닐 수 있는 것은 온 중원에 퍼져있는 수없이 많은 녹림채와 그 중에서 가장 거대한 십팔채 중에서도 오직 총채의 주인만이 쓸 수 있으니깐.

“위 오빠. 아무래도 독고 언니를 깨우는 게…”

“녹림의 원수! 혈부귀 조창을 참살한 음란검신은 들으라!!!”

“… 알아서 깨워주네요오.”

거대한 덩치에 걸맞게 온 천지를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녹림의 부채주.

산중호걸, 유광은 선언했다.

“오늘 네 년을 참하여 형제의 넋을 기리리라!!!!”

우리 독고 언니,

업보가 참 많구나.

*

산중호걸 유광.

근자에 마교, 모용, 당가와 내전을 벌인 뒤 그 위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무림맹에 대항하기 위해 사파들이 합세하여 세운 ‘천무맹’의 일각.

녹림이란 오합지졸들을 이끄는 단체의 수장 자리를 맡고 있기에 수하들의 추레한 무공실력에 의해 덩달아 평가절하 당하는 인물이지만, 반대로 녹림이 그나마 그 이름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오롯이 총채주와 부채주의 이름 덕이었다.

부채주 산중호걸(山中豪傑) 유광.

총채주 담천산룡(曇天山龍) 유열.

둘이 합쳐서 ‘천룡지호(天龍地虎)’라 불리는 녹림의 지배자들.

‘… 거물이 나타났네요오.’

유광과 유열은 거의 동급의 실력이라고 했으니 지금 나타난 부채주 유광은 정파로 치면 구파일방의 장문인이나 오대세가의 가주급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런 거물이 나타나 마차를 가로막은 것을 보고 있자 자연스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왜 하필 부채주가 여기 나타났을까요오… 정말 녹림십걸의 넋을 달래기 위해서?’

유광이 밝힌 이유를 가장 먼저 떠올려봤지만, 스스로 생각해봐도 말이 안 되는 헛소리였다.

녹림은 명예에 집착하지 않는다.

사파는 명예에 집착하지 않는다.

탐하는 게 있다면 역시 돈이었다.

사파에 속한 족속들이 으레 그러하듯, 녹림 또한 재물에 환장하는 이들이었다.

무를 쌓는 것은 무명보다는 더 많은 재물을 얻기 쉬우니 쌓는 기이한 천성을 가진 자들이 모인 곳이 사파다.

돈 안 되는 일에는 어지간하면 끼어들지 않는 그들이 굳이 현재 강호에서 가장 강하다고 이름이 나오고 있는 독고언니의 앞을 가로막는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누군가 거금으로 사주를 했나보네요오.’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여러 생각들과 사파의 기본적인 행동원리를 떠올리자 답은 금세 튀어나왔다.

문제는 사주를 한 이가 누구인지 확신할 수 없다 정도였다.

먼저 떠오른 건 역시 새로 생긴 천무맹의 맹주, 그리고 우리가 움직이는 목적인 자칭 색마 정도.

그 외에는…

‘… 언니가 해꼬지한 사람이 한 둘이여야죠오…’

독고 언니한테 앙심을 품은 이들도 참 많고, 그녀의 아버지인 독고진으로 가면 더더욱 많았다.

지금 당장은 주어진 정보가 워낙 없으니 일단은 대화를 통해 좀 더 정보를 모아야했다.

“산중호걸 유광. 명성이 자자한 천룡지호 중 호랑이를 만났네요.”

“나를 아나, 계집?”

하, 계집이라니.

이래서 사파 놈들이랑은 별로 말을 섞고 싶지 않은데 참 예의라곤 하나도 없는 족속들이다.

“저는 계집이 아니라 하오문주 은관영이에요.”

“음.”

유광이 인상을 찌푸리더니 툭 말했다.

“천무맹에서 서신을 보냈지. 왜 참가하지 않았나?”

“… 저희가 굳이요?”

“정파가 내분하게끔 뒤에서 수작질을 벌인 것이 그대의 전대문주니 입장이 곤란했을텐데 생각보다 낯짝이 두껍군.”

“그으런 얘기를 정파분이 해도 얼굴이 화끈거릴텐데 사파의 망나니가 하니깐 기분이 묘하네요오?”

전대 문주님의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가슴 한 구석이 시큰거리게 만들었다.

문주님은 왜 그랬을까?

그녀가 남긴 유언장과 같은 서신을 통해 무슨 연유로 전쟁을 일으키게 되었나는 이해했다.

이해했지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내겐 그저 한없이 좋은 분이셨으니깐.

아무리 큰 문제를 일으키셨더라도 끝까지 곁에서 함께 하길 바랬다.

내겐 낳아주신 어머니와 함께, 또 하나의 어머니 같은 분이셨으니깐.

“여튼 괜히 무림맹에서 눈칫밥 먹지 말고 언제라도 천무맹으로 오게. 하오문은 사파가 어울려.”

“별 시덥잖은 소리를…”

“아, 혹시 또 내전을 일으킬 셈이라 물밑 작업 중이더라도 연락하게. 도와주지.”

“… 네?”

“아무튼 그대와는 나쁜 관계가 되고 싶지 않으니 순순히 음란검신을 내놓으…”

“유광.”

독고 언니를 깨울 필요도 없었다.

그의 비아냥 거리는 소리를 듣고 나는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으니깐.

콰직!

“언니를 만나기 전에 나랑 먼저 얘기하지?”

이래서 사파가 싫다.

못 배워쳐먹은 새끼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