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마와 색마-209화 (209/225)

EP.209 외전 : 광마와 색마 - (6)

“지하야~, 지약아~ 엄마 왔다~”

문을 열자마자 아이들부터 찾는 독고령을 보며 백리소현이 웃었다.

그녀는 침대에 엎드린 채 잠을 자고 있던 지하와 지약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이다 고개를 들어 그녀를 맞이해주었다.

“왔어?”

“응. 근데 가가랑 관영이는 어디 가고?”

“잠깐 밖에 나갔어. 그래서 내가 애들 보고 있었고.”

“그래?”

자연스레 위지하의 옆에 앉은 독고령은 자고 있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피식 웃었다.

“잘 자고 있네.”

“이따 일어나서 또 젖 달라고 울지 않을까?”

“그거야 뭐 어쩔 수 없고.”

배시시 웃는 독고령을 바라보며 백리소현 또한 마음 한 켠이 푸근해졌다.

그리고 또 한편으론 궁금증을 참지 못 했다.

“… 어때?”

“응? 뭐가?”

“아이를 낳은 뒤에 어땠는지 궁금해서. 령 매는 많이 바뀌었으니깐.”

조금은 씁쓸해보이는 백리소현을 보며 독고령은 가슴이 아팠다.

위일청의 세 아내 중 다른 두 여인이 아이를 낳고, 한 명은 낳을 수 없었으니 백리소현은 분명 소외감을 느끼고 있으리라.

“… 그 때 그 개자식도 조졌어야…”

“으으응. 령 매, 그런 뜻이 아니야.”

“응?”

독고령이 분노를 담아 중얼거리자, 백리소현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녀를 말려세웠다.

그리곤 한 쪽 손을 자신의 아랫배에 올리곤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아직은 아니지만, 언젠가 나도 아이를 낳을거니깐. 먼저 낳은 령 매의 의견이 궁금해서.”

“아…”

“후훗. 령 매가 오해했네.”

“… 오해할 수 밖에 없었잖아.”

독고령이 민망함에 고개를 돌리자, 백리소현이 슬그머니 다가와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걱정해줘서 고마워, 령 매. 근데 정말 괜찮아. 령 매가 검후님께 부탁해준 것도 있고, 계속 무공도 열심히 수련하고 있으니깐.”

그렇게 말하며 토닥이는 백리소현의 손은 여인의 손이라 불리기엔 거칠었다.

아이를 낳은 뒤에 1년이나 검을 놓은 독고령과 달리 백리소현은 꾸준히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무를 쌓다보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이 성취이며, 그 성취 끝에 환골탈태라는 포상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지만 백리소현은 아니었다.

그녀에게 있어 무는 어디까지나 수단의 일환이였고, 처음부터 환골탈태를 노리고 수련을 계속하는 중이었다.

목적은 다르지만, 목적지는 같았고, 열의도 가득했다.

그 증거가 바로 백리소현의 손이었음을 알기에 독고령은 그녀의 손을 꼬옥 붙잡으며 질문에 대답했다.

“좋아. 엄청 행복해.”

“그래?”

“응. 지하가 웃으면 그 눈매에서 가가가 보이고, 지하가 얼굴을 찌푸리면 가가는 그 모습이 묘하게 나랑 닮았다고 말하더라고. 그게 너무 좋았어.”

“아… 하긴. 지하는 령 매보다 상공이랑 더 닮았드라.”

“그치? 또 밤마다 젖 달라고 나를 깨우면 참 피곤하긴 한데, 내 품에 안겨서 젖을 먹고 있는 지하를 보면 가슴이 따스해져. 그냥 엄청 좋아, 엄청 행복해.”

독고령이 고개를 들어 백리소현과 눈을 마주쳤다.

“그러니깐… 소현 언니도 조금만 더 힘내.”

“응.”

“보고있으면 깜짝 놀랄만큼 성장하고 있으니깐, 금방 좋은 결과가 찾아올거야.”

“그렇겠지?”

“응. 정 안 되면 내가 묵세휘나 남궁진한테 지랄지랄해서라도 영약 좀 뜯어올게.”

“크큭… 가끔씩 가져오던 게 맹에서 뺏어온거야?”

“…”

독고령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때, 잘 자고 있던 위지하가 일어나 버둥거리자 독고령은 그를 안아들었다.

“오구오구… 지하야, 일어났어?”

자다 깨서 그런지 졸린 눈으로 독고령의 가슴께를 꼬옥 붙잡자, 그녀가 웃으며 옷을 젖혔다.

이내 지하에게 젖을 먹이는데 집중하던 독고령은 자신의 가슴께에 느껴지는 강렬한 시선에 옆을 쳐다보며 떨떠름하게 물었다.

“… 왜?”

“령 매, 령 매.”

“… 안 줄거야.”

“으으응. 그거 말고.”

“그럼 뭔데?”

“젖꼭지 좀 커진거 같지 않아?”

“엑?!”

당황하며 독고령이 자신의 가슴을 내려보았다.

“아… 안 바뀐거 같은데…”

“지하가 그렇게 열심히 빠는데 조금 커진 거 같기도 하고…”

“그… 그러면 안 되는데…”

당황하며 자신의 젖꼭지를 만지작거리는 독고령을 보며 백리소현이 피식 웃었다.

“왜, 상공이 싫어할까봐?”

“… 응.”

“아까 강가에 내렸을 때도 한 번 하고 온 거 아니야? 그럼 괜찮지 않을까?”

“아… 알고 있었어??”

“냄새가 다르거든.”

백리소현이 피식 웃으며 독고령을 뒤에서 껴안았다.

“아무튼 참 귀여워, 우리 령 매.”

“나… 나 진짜 커진 거 아니지…? 그치? 내 젖꼭지가 여전히 가가가 좋아하겠지…?”

“이따 한 번 슬쩍 물어봐. 아니면 방 하나 더 빌려놓을까? 지하랑 지약이는 돌아가면서 보고 상공이랑 같이 다른 방에서 하다가 잠은 여기서 자고.”

백리소현의 제안을 들은 독고령은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격하게 동의했다.

“응응.”

“후훗, 그래. 다녀올게.”

“응, 다녀와 언니.”

방을 나가는 백리소현을 바라보며 독고령은 신이 나서 품에 안은 지하를 어화둥둥 흔들었다.

“히힛, 지하야. 지금 많이 먹어야 해~”

‘이따가 부족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라는 뒷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

한편 독고령이 위일청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히죽거리고 있을 즈음, 위일청은 은관영과 객잔을 나와 밤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오빠, 그럼 좀 이따 다시 봬요.”

“네, 관영. 주변을 좀 돌다 오겠습니다.”

은관영이 하오문주로서 잠시 문도들을 직접 만나겠다 했기에 따라나온 것이었다.

“문주님, 오셨습니까?”

“네. 오랜만이에요.”

“…”

허름한 객잔으로 들어가는 은관영을 보며 위일청은 등을 돌려 이제는 홀로 밤거리를 거닐었다.

괜히 은관영의 일을 옆에서 구경하며 그녀의 위신을 깎고 싶지도 않았거니와 그녀가 혼자 있게 해달라 청했기에 위일청은 남은 시간을 어떻게 때울까 고민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야시장이 제법 크군.’

형형색색의 등불로 밝혀진 밤거리를 보며 적어도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겠다 생각하곤 주변을 둘러보던 와중, 위일청의 눈에 기이한 노점이 하나 들어왔다.

‘저건…’

본능을 따라 자연스레 좌판 앞에선 위일청을 보며 상인이 히죽거렸다.

“어서오십쇼. 밤일이 시원찮으신 모양이구려.”

“시원찮다기보단 차고 넘치는 쪽에 속합니다. 오히려 새로운 자극이 필요해서 그렇지요.”

좌판 위에 널부러진 물건들은 위일청의 눈에 익숙했다.

그도 그럴 것이 노점상이 팔던 물건들은 주로 부부의 관계를 좀 더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밤일을 돕는 도구들이었기에.

“아하… 그 쪽이셨구려. 오해가 있었군.”

“그리 개의치 않으니 신경쓰지 마십시오.”

위일청의 눈이 흥미로운 듯 좌판 위를 응시하자, 노점상이 실실 웃으며 물건 하나를 집어들었다.

“이건 어떻습니까, 손님?”

“… 남근처럼 생겼군요.”

“하지만 조금 다르지요.”

남근처럼 생긴 외형의 목제 남근이었으나 자세히 보자 표면이 조금은 오돌토돌했다.

“물소의 뿔로 만든 고급 남근이오. 내 친지 중 하나가 용천방에서 야금장이 일을 하는데 그 놈이 조금 손 봐줘서 이렇게 만들었지.”

“흐음…”

용천방의 야금장이가 도대체 물소의 뿔을 가공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위일청은 알 수 없었으나 아마 거짓말이라 생각하곤 웃으며 돌려주었다.

“재밌군요. 하지만 제 아내는 이것보다 제 물건을 더 좋아할 듯 합니다.”

“크큭, 젊은 양반이 호기롭구만.”

노점상은 아마 위일청이 남자 특유의 자존심이라도 부리는 듯 오해를 한 모양이었지만, 실제로 그가 내보인 물건은 위일청의 물건보다 작았다.

무엇보다 위일청의 물건을 맛 본 아내들이 ‘고작’ 저런 물건에 만족할 리가 없었다.

‘… 별 거 없군.’

흥미가 동하여 잠시 구경했지만, 구미에 당기는 물건이 없었기에 돌아서려던 순간.

“잠깐 기다려보시오, 젊은 양반.”

“으음?”

“특이한 걸 찾는다고 하셨지요?”

노점상이 좌판의 아래를 뒤적거리더니 위일청을 손짓으로 불렀다.

“… 어서 이리 오시오. 이거 정말 귀한 물건이오.”

“뭐길래 도대체…”

위일청은 큰 기대없이 노점상의 부름에 응했고, 좌판의 아래를 보는 순간.

“헙…!”

“클클클, 어떠시오?”

“…”

자신이 본 광경이 무엇인가 곰곰히 다시 생각해보며 마음을 진정시켜야했다.

“… 어떤 미치광이가 이걸 만들었습니까? 정말 대단한 물건이군요.”

“아까 말하지 않았소? 용천의 야금방에 내 친지가 산다고.”

“사실이었군요.”

“내가 또 거짓말을 한 적이 없는 사내요.”

위일청은 의외로 자신이 만난 노점상이 생각보다 대단한 자가 아닐까 생각하며 숨을 삼켰다.

그만큼 좌판 아래 숨겨져있던 물건은 대단한 물건이었다.

옥면공자 위일청이 아닌, 오랜만에 색마 위일청의 가슴을 뛰게 하는 물건을 확인한 그는 노점상에게 물었다.

“분명 비싸겠지요?”

“쓰인 재료가 재료니 비싸지요.”

“설마 다른 이가 쓴 물건은…”

“천지신명께 맹세코 신품이오. 만져보시면 알지 않겠소?”

“하긴…”

저 물건을 되파는 자가 있다면 이미 이전 소유자가 그를 가만두지 않았으리라.

위일청은 잠시 고민하다 저 물건을 자신의 아내들이 좋아하리란 생각에 결국 노점상에게 물었다.

“… 얼마입니까?”

“잘 생각하셨소.”

잠시 후, 위일청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건을 챙기곤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니, 독고 언니.”

“으응?”

은관영이 자신을 깨우는 소리를 듣자, 입가에서 주륵 흐르는 침을 닦아내며 독고령이 고개를 들었다.

분명 위일청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잠시 잠에 들었나보다.

“잠깐 위 층으로 가보세요. 오빠가 기다려요.”

“아… 가가랑 잘 다녀왔어?”

“네에…♡”

은관영의 목소리가 묘하게 끈적이자, 독고령이 물어보았다.

“… 뭐 했어?”

“가보면 알아요. 엄청… 좋았어요.”

“무슨 일이래, 같이 안 하고?”

“오늘은 음… 따로 하는 게 더 좋을 거예요. 히힛… 아무튼 빨리 가봐요.”

“응. 지하랑 지약이 좀 잘 봐 줘.”

독고령이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자 밖으로 나서자 살짝 쌀쌀한 공기가 그녀를 맞이했다.

그리고 동시에, 하단전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기이한 열기가 그녀를 지배했다.

‘뭘 했길래 관영이가 저러지…’

분명 위일청과 야한 일을 했을텐데 어딘지 모르게 들 뜬 모습을 보여 괜히 잠에서 깨자마자 독고령도 기대와 흥분감에 몸에 열이 올랐다.

그리고 윗 층으로 올라가 문을 열자…

“… 가가?”

어둠이 그녀를 기다렸다.

“… 가가?”

혹시 방을 잘못 찾았나 싶어서 독고령이 다시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

“령, 이 쪽이에요.”

“어디에요, 가가?”

“이 쪽이요. 이불 안이에요.”

위일청의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쳐다보자 과연, 이불이 살짝 부풀어 올라있었다.

도대체 뭐 때문에 그러는가 싶어서 독고령이 이불을 살짝 들추자,

“이것 보세요, 령.”

“… 뭐예요, 이게?”

녹색빛이 뿜어져 나왔다.

자세히 들여보자 자그마한 구슬이 실로 이어져 빛을 내뿜고 있었다.

“야명주예요, 령.”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