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마와 색마-205화 (205/225)

EP.205 외전 : 광마와 색마 - (2)

“… 색마?”

“네, 색마.”

독고령의 눈이 슬쩍 위일청에게 향했다.

“… 색마는 여깄는데?”

“그러니깐 위 오빠 말고요.”

“어떤 새끼가 우리 가가의 별호를…!”

“음란검 부인, 그만하시지요.”

“캬아아악!!”

독고령이 발작하며 위일청을 쳐다보자 옆에 있던 백리소현이 검지를 세워 입에 갖다댔다.

“령 매, 쉬잇! 쉬잇! 애들 깬다.”

“…”

독고령의 눈이 잠시 지하와 지약이에게 향했다가 다시 위일청에게 향했다.

“가가…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깐요…”

“크큭, 그래도 가끔 령이 이러는 걸 보고 싶은걸요.”

“씨이…”

독고령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툴툴거렸다.

“가가는 자기 별호 마음에 든다는 식으로 얘기도 했잖아요. 난 싫다고요.”

“그러니깐 전에 무림 백대고수에 이름을 올리지 그랬어요?”

“아잇, 그거 싫단 말이에요. 이제 뭐 칼 휘두를 일도 없는데.”

전쟁이 끝나고 독고령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귀찮아질 일을 다 없애버린 것이다.

그 중에선 묵세휘를 활용해서 점창파를 사실상 구대문파는 커녕 그저그런 중소문파에 가깝게 찢어놓은 것이 그 일환이었다.

더 이상 독고령과 위일청, 백리소현을 귀찮게 만들 일은 하나도 없으리라 생각했건만 이제와서 색마라니.

“… 골 때리긴 하네.”

독고령은 갑갑함에 머리를 긁적였다.

세상 모르고 날뛰던 시기는 지나가고 독고령 또한 이제 생각이란 걸 할 수 있게 되었다.

“… 가가의 별호랑 겹치니깐 나중에 가가한테 귀찮은 일이 생길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좀 곤란하군요.”

“그래도 상공은 다른 사람들이 색마라고 붙여준건데 그 마인은 자기가 색마라고 자청하고 다니니깐 조금 다르지 않아?”

“아니에요, 소현 언니.”

은관영이 한숨을 푹 내쉬며 식탁에 엎드렸다.

“… 사람들은 그냥 ‘색마’라는 별호만 기억할거예요. 그렇다보면 위 오빠한테 피해가 올 수도 있겠죠.”

“으음…”

“그래서 고민인 거예요. 그냥 무림 백대고수에 이름 올리고 새로운 별호 받는 건 어때요, 오빠? 어차피 묵 군사가 우리를 그렇게 피곤하게 만들거 같진 않은…”

“절대 아닐 걸.”

독고령이 은관영의 말을 끊었다.

“그 새끼 처음에는 뭐 10년에 한 번 부탁하겠다고 해놓고 반 년에 한 번 꼴로 찾아오잖아. 전에 뭐 사파끼리 뭉쳐서 사흑련? 그거 세웠다고 하니깐 또 찾아왔잖아.”

“… 그건 큰 일 맞잖아요.”

“아, 몰라. 내 알 바 아니야. 나는 그냥 지하랑 놀고 싶다고.”

독고령이 귀찮다는 듯이 말하자, 위일청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역시 맹에는 한 번 찾아가봐야겠네요. 하오문이 약해진 지금에서야 그 자와 제가 다르다고 소문을 바꾸기도 힘들테니깐요.”

“으으… 묵세휘, 결국엔 우리가 찾아갈 줄 알고 우리 부른 거 같은데…”

“생각을 바꿔봅시다, 령.”

“네?”

“지하와 지약이를 낳고 우리 모두 강호에 나들이를 나간 적이 한 번도 없지 않습니까?”

위일청이 웃으며 독고령에게 말했다.

“이 참에 지하와 지약이를 데리고 한 번 유람이라도 떠난다 생각하죠.”

“…”

독고령은 여전히 뾰로통한듯 입술을 내밀고 있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 뭐, 가가가 원한다면야.”

*

전쟁이 끝난 이후, 강호에서 제일 강성한 세가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열에 열은 남궁세가라 답했고, 강호에서 제일 강성한 세력이 어디냐 묻는다면 누구나 무림맹이라고 답했다.

마교, 혈교, 그리고 정파의 내분까지 뒤섞인 강호 역사상 가장 큰 전쟁의 최종 승자라 할 수 있는 곳이 결국 무림맹이였기에 맹의 이름은 날이 갈수록 드높아졌다.

그와 덩달아 맹의 정문을 지키는 수문장의 역할 또한 중요해졌다.

맹의 정문을 지키는 자는 곧 맹을 처음 찾아오는 이에게는 맹의 얼굴과도 같으니.

무림맹주 남궁진은 맹의 정문을 지키는 경비의 자리에 하나같이 이름 높은 후기지수들과 함께 새로이 공표된 무림 백대고수 중 하나인 권존의 자리에 오른 소림의 나한당주, 원심 대사에게 맡겼다.

전쟁의 일축을 담당한 소림의 드높은 명성과 함께 높아진 무림맹의 명성은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야, 빡빡이. 오랜만이다!”

“… 오랜만이외다, 보살님.”

“꺄하악!”

지금 원심대사의 눈 앞에 있는 저 분홍빛의 여인, 독고령의 가족만 빼고.

“지하야, 지하야. 빡빡이 아저씨 머리 만질래?”

“꺄하─”

“… 소승의 머리는 그리 멋대로 만질 수 있는 것이…”

“콱, 씨. 고개 안 숙여? 지하가 만지고 싶다잖아.”

“…”

그래도 어린 아이를 위해서 자신의 머리를 내어주는 것이 뭐가 문제일까 고민하며 마지못해 고개를 숙이려던 차.

“흐읏…!”

“… 령, 제발. 지하가 이상한 버릇이 들겠습니다.”

“뎨… 뎨숑해요옷…”

구세주가 나타났다.

“… 오랜만에 뵙습니다, 처사님.”

“오랜만에 뵙자마자 결례를 범한듯 하여 죄송합니다, 스님. 안사람이 아이를 너무 좋아하여…”

“… 아닙니다. 애기 처사님의 미소에 부처님이 깃든듯 보기 좋습니다.”

“지하는 머리 안 밀꺼야, 빡빡아. 콱 씨…”

“령.”

“… 안 할게요.”

“하아…”

위일청이 슬그머니 독고령의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다른 여인이 그녀를 꾸짖었다.

“으이구, 령 매. 신나서 앞서나갈 때부터 이럴 줄 알았다.”

“… 지하가 빡빡이 머리 좋아한단말야.”

“지하가 확실히 독고 언니 아들이긴 한 가봐요. 애가 벌써부터 활기차네요.”

“지약이는 너 닮아서 얌전하냐?”

“오빠 닮아서 얌전한가보죠, 히힛.”

등 뒤에서 들려오는 백리소현, 독고령, 은관영의 잡담을 뒤로한 채, 위일청이 원심 대사에게 자신이 온 이유를 밝혔다.

“스님, 혹시 묵 군사 안에 계십니까?”

“예. 요 며칠 근심거리가 있으신지 내내 맹에서만 머무르십니다.”

“그렇군요. 안에 들어가봐도 되겠습니까?”

“언제나 환영입니다.”

원심 대사가 웃으며 맹의 문을 활짝 열어주자, 위일청 또한 마주 웃으며 맹의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뒤를 따라 세 아내가 따라 걷다, 한 명이 우뚝 멈춰섰다.

“…”

“…”

“안 숙일거야?”

“…”

원심 대사가 고개를 숙이자, 독고령의 품에 안겨있던 위지하가 웃으며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꺄르륵 웃음을 터뜨리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제서야 만족한 독고령은 씨익 웃으며 원심 대사에게 인사를 건넸다.

“우리 지하가 만져줬으니 복 받을거다. 수고해~”

“…아미타불, 아미타불…”

원심 대사는 나직이 불호만 되뇌였다.

위일청과 그의 세 아내가 맹으로 들어서자 자연스레 주변의 이목이 쏠렸다.

그도 그럴 것이 알 사람들은 모두 그들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해파랑(海波浪) 위 대협이군.”

“하오문주도 있군.”

“옆에 저 분이 인자검 백리 여협일 터.”

“… 그렇다면 제일 앞의 저 여인이…”

거기까지 듣는 순간, 독고령이 슬그머니 내공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그보다 빠르게 눈치없는 이 하나가 다가와 포권을 하며 인사를 건넸다.

“음란검신, 맞소? 본인은 최근 강호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 소현 언니, 지하 좀 잠시 맡아줘.”

“하아…”

백리소현이 아무 말 없이 지하를 받아들었다.

위일청 또한 말릴 생각이 없었는지 눈을 질끈 감으며 독고령에게 말했다.

“… 령, 제발 크게 다치지 않을 정도로만…”

“캬아아악!!”

콰득!

호쾌함을 넘어 살짝은 섬찟한 소리가 울려퍼진 뒤, 독고령이 손을 툭툭 털었다.

“하아… 남궁진! 남궁진, 어딨어?!! 이 새끼가 진짜…”

전쟁을 경험한 이들은 누가 흐름을 뒤바꿨나 알고 있었다.

맹주 남궁진, 검후 서교, 그리고 전장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를 일으킨 당문의 가주, 당정을 죽인 이.

음란검 독고령.

기존의 삼신이 모두 죽거나 사라진 이후, 자연스레 빈 자리를 채울 세 명의 무인이 등장했으니 호사가들은 멋대로 그들을 새로운 삼신으로 묶어 별호를 지었다.

남궁검신 남궁진,

서해검신 서교,

그리고 음란검신 독고령.

독고령은 도객이였음에도 이미 별호가 음란검으로 알려져있기에 모두가 그녀를 검객으로 알아 생긴 대참사였다.

“남궁진!!! 캬아아아악!!!”

독고령의 짜증 섞인 외침을 혹여나 아기들이 들을까봐 백리소현과 은관영이 아기들의 귀를 틀어막고 있을 즈음.

“어, 누님 오셨습니까?”

익숙한 목소리가 독고령을 불렀다.

“… 청운 도사님, 오랜만입니다.”

“하핫, 반 년만이군요.”

청운이 도복을 휘적거리며 다가와 시원스레 인사를 건넸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왔더니 역시 누님이셨네요.”

“너는 왜 여기 있냐?”

“… 섭섭합니다. 지난 번에 장원에 찾아가 따로 인사드리지 않았습니까? 무당에서는 제가 맹에 파견을 나오기로 했다고요.”

“아… 그랬나?”

“아무튼 도련님이랑 아가씨도 오랜만에 뵙네요. 정말 하루가 다르게 크네요.”

“그치? 우리 지하 이제 좀만 더 있으면 걸어다닐걸?”

아들부터 자랑하는 독고령의 말을 듣고 문득 청운의 눈이 커졌다가, 이내 미소로 바뀌었다.

“… 뭐야, 그 표정은?”

“아뇨, 크큭. 그냥 신기해서요. 많이 변하셨네요, 누님.”

“내가?”

“아닙니다. 그보다 맹까지 오신 걸 보면 혹시 군사님을 만나러 오신 건가요?”

“어. 묵세휘, 이 새끼 어딨어? 내가 그 놈의 개 같은 별호 좀 바꿔달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하아…”

“그러게요. 누님은 도객인데 매번 검신이라고 불리시네요.”

“그게 문제냐, 새끼야?”

“때리시려구요?”

청운이 갑자기 눈을 빛내자, 독고령이 인상을 찡그렸다.

“… 묵세휘는?”

“아쉽네요. 따라오시죠. 마침 맹주님과 같이 있으십니다.”

“오.”

독고령이 맹에서 가장 대가리를 깨부수고 싶은 두 명이 한 곳에 모여있다고 하자, 이를 드러내며 기쁘게 웃었다.

“빨리 가자. 앞장 서.”

“네, 누님. 가실까요?”

“응, 빨리…”

그 때, 신이 나 발걸음을 옮기는 독고령의 엉덩이를 누군가 움켜쥐었다.

“흐앙?!”

“령. 사고 치면 안 됩니다.”

“녜… 녜헷, 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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