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04 외전 : 광마와 색마 - (1)
무림을 뒤흔들 뻔한, 어쩌면 이미 뒤흔들었을 전쟁은 끝났다.
큰 별이 여럿 지고, 무림의 정세는 조금씩 뒤바뀌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 있는 이들은…
“아, 좀. 지랄하지 마, 진짜.”
“부인, 그래도 백대 고수에 이름을 올려두셔야…”
“아, 됐어. 필요없어. 난 이제 칼 안 잡을거야.”
“… 부군께서도…”
“괜찮습니다, 군사님. 애초에 명예를 얻고자 무공을 익힌 것은 아니니깐요.”
“…”
강호를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
“으음…”
눈을 뜨자, 가장 먼저 위일청의 눈에 들어온 것은 분홍빛의 머리카락이었다.
천하를 통틀어 가장 소중한 사람 중 하나의 머리카락.
자연스레 손을 뻗어 몽롱한 머리로 독고령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넘기는 중,
독고령과 위일청의 사이에서 무언가 꿈틀거렸다.
“우음…”
“일어났니, 지하야?”
“꺄하-“
둘의 아이, 지하였다.
아침부터 뭐가 그리도 좋은지, 꺄르륵 웃는 지하를 보며 위일청이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아들을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아이의 따스하고 보드라운 살결을 쓰다듬으며 위일청은 괜히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정녕 누군가의 부모가 되는 일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고,
이 자그마한 아이가 주는 행복이 얼마나 큰 지도 막상 체감하기 전까진 몰랐다.
아이를 낳는 순간에는 그 괄괄하던 독고령도 약한 모습을 보였기에 덩달아 위일청 또한 긴장하곤 했었다.
그렇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들과 이런저런 장난을 치고 있던 와중,
“으음… 가가…”
“일어났나요, 령?”
“… 네. 지하는요?”
“지하가 령보다 일찍 일어났어요.”
“그래요?”
독고령이 일어났다.
“지하야, 잘 잤어?”
그녀가 깨어난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지하를 자신의 품에 안아들고 젖을 먹이는 일이었다.
본능이란 참으로 신기한 것이라 독고령의 품에 안기는 순간, 지하는 자연스레 그녀의 젖을 빨기 시작했다.
“하암─”
하품을 하면서도 익숙하게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독고령을 위일청이 흐뭇하게 쳐다보고 있자, 그녀와 시선이 마주쳤다.
“응? 가가, 나 뭐 묻었어요?”
“예뻐서요.”
“히힛…”
독고령이 배시시 웃더니 남는 손으로 자신의 젖가슴을 움켜쥐며 위일청에게 말했다.
“가가도 먹을래요?”
“지하가 먹을 것도 있을테니깐 조금만요.”
“네.”
위일청이 가볍게 독고령의 다른 젖가슴을 깨물며,
그렇게 또 하루가 시작되었다.
잠에서 깬 위일청과 독고령은 먼저 가볍게 씻고 큰 방으로 향했다.
오늘은 독고령과 함께 자는 날이라 그녀의 방에서 잠을 잤지만, 매번 식사는 모두가 함께 지내는 방에서 먹는 게 당연한 일과였다.
독고령이 위지하를 안고 큰 방으로 들어서자, 때마침 아침을 준비하고 있던 백리소현이 그녀와 위일청을 맞이해주었다.
“아, 상공. 일어나셨어요?”
“네. 소현도 잘 잤나요?”
“그럼요.”
쪽.
가볍게 입을 맞춘 뒤, 백리소현이 입술을 혀로 쓰윽 한 번 훑고는 피식 웃었다.
“젖 냄새… 또 지하 밥 훔쳐먹었어요?”
“… 령이 먼저 제안했습니다.”
“그래, 어차피 가가도 같이 먹는거지.”
독고령이 옆에서 끼어들자, 백리소현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말은. 잘 잤어, 령 매?”
“응, 언니.”
“지하도 안녕?”
“꺄학!”
“후훗, 예뻐라.”
백리소현이 손을 뻗자, 독고령이 자연스레 지하를 건네주고는 그녀가 준비하고 있던 음식들을 마무리했다.
그 사이 백리소현은 지하를 껴안고 몇 번이고 콧노래를 부르며 웃음을 터뜨렸다.
“오구오구, 이뻐.”
“등 좀 토닥여줘, 소현 언니. 아까 방금 젖 먹었어.”
“그래?”
아이가 한 집에 둘이나 태어난 이후, 백리소현은 자청하여 이런저런 잡일을 도맡아했다.
처음엔 독고령도 조금 마음에 걸렸으나 이내 육아의 피곤함과 백리소현이 워낙 아이를 좋아하는 점이 겹치며 금세 그녀의 도움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관영이는? 아직 안 일어났어?”
“응. 어제 일이 바빴나 봐.”
“그래? 내가 데리고 올까?”
“그래주면 고맙고.”
“그래. 가가, 조금만 기다려요.”
“네, 령.”
쪽.
위일청의 뺨에 입을 맞추고 독고령은 방을 나서 은관영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은약벽이 죽은 이후, 은관영은 하오문주가 되었다.
임신한 여인의 몸, 아직은 스스로도 부족하다 느낀 것도 많았으나 다른 소문주 후보들이 포기하면서 자연스레 남은 이가 은관영 밖에 없었고 당사자 또한 문주가 되길 원했다.
그녀의 방 앞에 서자, 독고령은 조심스레 문을 두드렸다.
똑똑.
“관영아, 나 들어간다?”
“…네, 언니.”
안에서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은관영이 대답하자 독고령은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휴… 좀 쉬면서 해.”
“… 저도 그러고 싶네요오. 흐아암.”
은관영이 피곤에 찌든 얼굴로 위일청과 그녀의 딸, 위지약을 안고 있는 모습을 보자 독고령은 자연스레 그녀에게 지약이를 건네받았다.
“젖은 먹였어?”
“… 먹였는데 모자란가봐요. 계속 가슴을 만지더라고요.”
“잠을 안 자서 그래. 여러번 말했잖아.”
“언니가 젖이 엄청 잘 나오는 거라고 다들 그러던데…”
은관영의 툴툴거림을 무시하고 독고령은 앞섶을 풀어헤치고 지약이에게 젖을 물렸다.
“지약아~ 배고팠어?”
“…”
위지약은 아들인 위지하와 달리 과묵한 아이였다.
하지만 몸은 솔직한지 살짝 아플 정도로 자신의 젖꼭지를 깨무는 아이를 느끼며, 독고령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옳지, 옳지. 많이 배고팠구나?”
“… 지약이도 언니 젖이 더 좋나봐요. 애기들도 가슴 큰 건 아나봐요.”
“크큭, 그러게.”
“오빠도 언니 가슴을 더 좋아하고~ 소현 언니는 가슴도 크고~ 나는 누구를 위한 가슴이려나…”
“실없는 소리말고 밥이나 먹으러 와.”
“네에~”
“밥 먹고 난 뒤에는 좀 자고. 요새 뭐가 그리 바쁘다고 맨날 밤마다 잠을 줄이고 그래.”
“언니도 나중에 문주 같은 거 해봐요오. 엄청 바쁘더라고요.”
“됐어. 그런 거 귀찮아서 안 해. 뭐 도와줄 건 없고?”
“없을 거… 으음…”
“왜, 뭐 있어?”
은관영이 말을 흐리며 신음하자, 독고령이 되물었다.
“왜왜?”
“… 하나 있긴 한데…”
“언니가 도와줄게. 뭐가 문젠데?”
“…”
은관영이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자, 독고령이 답답함에 뭔가 말하려던 차.
“응?”
그녀의 기감에 누군가 장원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관영아. 누가 찾아왔는데?”
“이 시간에요?”
“응. 잠깐 문 앞에 가서 손님 좀 받아줘.”
“네에.”
“끝나면 바로 밥 먹으러 와. 알았지?”
“알았어요. 좀 걸린다 싶으면 먼저 먹으세요.”
“응.”
그렇게 손님을 배웅하러 떠나는 은관영을 보며 독고령은 자신의 품에 안아든 위지약의 자그마한 손을 잡아 그녀의 등에 흔들었다.
“엄마, 다녀오세요~ 해 봐. 응?”
“…”
“너는 관영이랑 다르게 애가 과묵하네.”
“…”
대답없이 젖을 먹는데 열중인 위지약을 보며 독고령은 피식 웃곤 그녀의 통통한 볼을 매만졌다.
“그래도 예뻐.”
독고령이 위지약의 말랑말랑한 볼을 매만지며 다시 큰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위 오빠, 좋은 아침이에요.”
“관영도요. 또 자는게 늦어졌나요?”
“헤헤… 죄송해요오. 식사 먼저 하셔도 되는데…”
“그래도 다 같이 먹는게 좋으니깐요.”
쪽.
가볍게 입맞춤을 맞친 뒤, 은관영까지 자리에 앉자 그제서야 식사가 시작되었다.
전쟁이 끝난 이후, 합비에 있는 장원으로 돌아온 위일청과 세 여인은 어느 때부터 한 가지 규칙을 정했다.
하루에 한 번, 그것도 가능하면 아침의 첫 식사는 다 같이 모여서 하기로.
전쟁이 끝난 뒤, 위일청은 크게 할 일이 없었지만 다른 세 여인은 그렇지 않았다.
백리소현은 수련에 몰두하고 있었고, 독고령은 그녀를 도왔다.
은관영은 갑작스레 비어버린 하오문의 문주직을 이어받으며 매일같이 바쁜 삶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 뿐이면 다행일테지만,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로는 육아도 문제였다.
위일청은 보모를 들이고자 했으나 적어도 젖을 다 떼기 전까지는 자신들이 도맡아 키우고 싶다는 게 세 여인의 바램이었다.
처음엔 힘들기도 했고, 육아의 괴로움은 컸다.
하지만 매일 같이 자라나는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또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아, 맞다. 관영아, 손님은 누구였어?”
“묵 군사님이더라고요. 아침 식사 시간이라고 하니깐 그럼 식사가 끝나고 맹에 와줄 수 있냐고 물으시던데요?”
“그 새ㄲ…”
“령 매.”
백리소현이 엄한 말로 타이르며 식탁 옆의 간이 침대에 있는 위지하와 위지약을 쳐다보자, 독고령이 말을 바꿨다.
“… 걔가 갑자기 왜?”
“그으… 좀 도와줬으면 하는 일이 있다고 해서요.”
“남궁진한테 도와달라고 해.”
“맹주님도 요즘 바쁜 거 알잖아요오.”
“나보다 바빠? 지하랑 지약이 매일 젖 먹이는 것도 바쁘다고 그래.”
“알고 온 거래요.”
“응?”
알고도 찾아왔다는 말을 듣자, 식탁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독고령의 성격을 잘 알고 있을 묵세휘가 그럼에도 찾아왔다는 뜻은 다르게 말하면 그만큼 급박한 일이란 소리였다.
“… 심각해?”
그 속 뜻을 알아차린 독고령이 조금 낮아진 목소리로 되묻자, 은관영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심각한…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는데요오… 위 오빠한테는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생겼더라고요오.”
“저한테요?”
“가가가 왜?”
“상공이?”
갑작스레 위일청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다들 수저를 내려놓고 은관영에게 시선이 쏠렸다.
“그게요…”
은관영은 어딘가 복잡해보이는 표정과 함께 입을 열었다.
“… 자기가 ‘색마’라고 떠들고 다니는 마인이 등장했대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