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마와 색마-198화 (198/225)

EP.198 19장. 건곤일척 - (11)

위일청과 같이 가리라 마음을 먹고, 독고령은 그의 손을 꼬옥 붙잡았다.

“위 오빠… 독고 언니.”

“관영아.”

안 그래도 은관영과 백리소현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자 그녀에게 향하고 있던 차에 은관영이 먼저 독고령을 찾아왔다.

“편지가 왔어요.”

“편지?”

“… 문주님한테 온 편지예요.”

“!!”

그 말을 듣는 순간, 독고령이 은관영의 손에 들린 서신을 낚아챘다.

편지의 내용은 언제나와 같이 안부를 묻는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잘 지내고 있나요? 얼마 전에 관영이를 통해 혼례를 올릴 예정이라 들었습니다.

인사가 늦었네요, 축하드려요.

하필 이런 시기에 서신을 보내게 되어 안타깝네요.

하지만 또 이런 시기기에 가장 적절했다는 생각도 들고요.

자리를 마련해두었습니다.

손님이 가장 원하는, 가장 죽이고 싶은 자들을 한 곳에 모아뒀어요.

지금부터 빨리 오셔야 늦지 않을텐데 말이죠.

기다리고 있을게요.

이번이 마지막이랍니다?]

편지를 다 읽은 독고령은 이를 악물었다.

은약벽이 벌인 전쟁이리라 은관영을 통해 들어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당사자가 직접 자신이 벌인 일이라 밝히자 독고령은 마음이 착잡했다.

‘… 결국에…’

독고령의 심상치 않은 표정을 보고 은관영이 물었다.

“독고 언니…”

“… 가가랑 요녕으로 갈거야.”

“언니!”

“너랑 소현 언니는… 그냥 여기 있어줘.”

“진심이에요?”

“나 몰라?”

독고령이 최대한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은관영에게 말했다.

“나 독고령이야. 전쟁은 무슨… 그냥 마실 다녀오는거지.”

“아이는…!”

“관영아.”

독고령은 어떤 말로도 은관영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기에 그저 묵묵히 그녀를 껴안았다.

“… 다녀올게.”

“…”

“응? 집 잘 지키고 있…”

“나도 갈래요.”

“뭐?”

갑작스런 은관영의 말에 독고령이 당황했다.

“나도… 나도 갈게요. 가가랑 언니 둘만 보내고 불안해서 어떻게 지내요?”

“위험한… 하아…”

독고령은 은관영을 제지하려다가 어떤 말을 해도 자신에게 해당되는 것을 깨닫고는 포기했다.

“진짜 갈 거야?”

“… 네에.”

“…”

독고령은 혹시 할 말 없냐는듯 위일청을 쳐다보았고, 그 또한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남아서 기다리는 자의 마음이 얼마나 힘든지는 잘 알고 있기에 저도 말릴 방법이 없네요.”

“하아… 이렇게 되면…”

“당연히 나도 갈 거야, 령 매.”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그 곳엔 검후와 백리소현이 서있었다.

“… 소현 언니에 검후 할머니까지…”

“검후님께 얘기는 다 들었어. 혹시나 령 매가 허튼 짓 못 하게 막아달라고 부탁받았는데…”

“소현 아가와 본녀가 늦었구나.”

검후가 다가오더니 위일청과 독고령을 번갈아 쳐다보다 물었다.

“… 꼭 가야겠더냐?”

“예, 스승님.”

“… 네, 할머니.”

“하아…”

둘의 대답을 들은 검후는 마음이 복잡했다.

든든한 아군이 생겼기에 기뻤고,

이제 막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여 행복한 생활을 영위해야할 그녀를 전쟁터로 부를 수 밖에 없는 현실이 가슴 아팠다.

“… 절대 앞장서지 말거라. 령아야.”

“하지만…”

“본녀가 길을 열어주마. 그러니 몸을 아끼거라.”

“…”

독고령이 어딘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꾹 다물자, 옆에 있던 위일청이 그녀의 손을 꼭 붙잡으며 말했다.

“… 령, 스승님의 말대로 절대 앞으로 나서지 마세요.”

“그래도…!”

“부탁입니다.”

“으으…”

“내가 못 미덥나요, 령?”

“그건 아닌데…”

“그럼 부디 제게 맡겨줘요, 령. 약속했잖아요, 같이 가기로.”

“… 알았어요.”

독고령이 결국 고개를 끄덕이자, 위일청 또한 안심하며 검후에게 물었다.

“그럼 나갈 채비만 하고 바로 떠나면 될까요?”

“그래. 오늘 밤에 바로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도착할 예정이니 그 때 같이 가자꾸나.”

“그럼…”

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남궁진이 그 아이와 맹의 무인들도 함께 갈 예정이니라.”

“…”

“은원, 과거, 전쟁, 문파의 명예 등등… 다른 이들은 이리저리 신경 쓸 일이 참으로 많을테지. 본녀는 많은 걸 바라지 않노라.”

검후가 다가와 독고령을 꼭 껴안았다.

“본녀의 손에 잡히는 몇 명, 그 몇 명만 살아주면 돼. 그러니 부탁하마, 령 아야. 부디 네 몸을 가장 우선으로 보중하거라.”

“… 네, 할머니.”

독고령이 검후를 껴안으며 중얼거리자, 그녀가 피식 웃었다.

“할머니 소리는 네 년한테 듣고 싶지 않구나.”

“할머니 맞으면서…”

“시끄럽다, 이 년아.”

검후가 슬쩍 안고 있던 독고령과 떨어지며 한 마디 덧붙였다.

“네 아이가 부르는 건 용서해주마.”

“…”

“어서 떠날 채비나 하거라. 본녀는 맹에 가보마.”

“… 네!”

멀어지는 검후의 등을 보며 독고령 또한 피식 웃었다.

이제부터 자신이 발 디딜 곳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는 채로.

*

개전(開戰) 이후.

그 시작은 소란스럽기 그지 없었으나, 싸움은 갈수록 조용하고, 또 고요해졌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전장의 중심부.

“…”

“…”

검을 맞대고 서로를 마주하고 있는 두 명의 무위가 모든 이의 이목을 사로잡았기에.

두 명 중 하나, 남궁원청은 그야말로 거목이었다.

나무가 뿌리잡은 듯 그저 제자리에 멈춰서서 고요히 상대방을 응시하고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흩뿌리고 있었을 뿐이었으나 그 크기가 너무나 컸다.

그를 상대하는 상대, 모용벽 또한 만만치 않았다.

전투가 시작한 이후 과연 그를 사람으로 불러야할지, 아니면 마귀라 불러야할지 혼란스러울 정도로 소름끼치는 마기를 내뿜어댔다.

남궁원청의 내공은 그저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거대한 존재감을 흩뿌렸다면,

모용벽의 내공은 ‘내가 이 자리에 있노라’ 당당히 외치듯 사방팔방으로 뿜어져나가 다른 무인들의 뇌수를 파고들곤 했다.

다른 이들의 뇌수를 침범한 마기는 곧 광증으로 번져 전쟁터를 더 큰 혼란으로 몰고갔으니, 결국 보다못한 남궁원청이 그의 마기를 온 몸으로 받아내며 사람들을 진정시키곤 지금의 상황이 되었다.

여전히 자신의 앞에서 소름끼치는 마기를 뽑아내는 모용벽을 보며, 남궁원청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찌하여 패도를 걷느냐?”

“어찌하여 무를 갈고 닦으셨소?”

“농지거리라도 하잔게야?”

“농지거리는 검신께서 하고 있으시구려.”

모용벽의 검이 남궁원청의 검을 툭 건드리는 순간,

“흐읍!”

둘의 검이 바람보다 빨리 움직였다.

채 한 호흡이 끝나기도 전에 11번의 공방을 주고 받은 뒤, 둘은 다시 처음의 상태로 돌아왔다.

검면과 검면을 마주하고, 서로의 영역에 들어선 상태.

손을 뻗는 순간, 상대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거리.

하지만 구태여 그 거리 안에서 서로의 검과 검을 맞대게 만드는 것은 자존심이었다.

거목을 끊어내고 새로운 시대를 주도하겠다는 야심이자,

이를 드러내며 자신을 밀어내고자 하는 젊은 들개를 쳐내는 늙은 사자의 명예였다.

“이렇게 서로 검을 마주하고 있는 사이에 무슨 말이 필요하오?”

“둘만 흘려도 되는 피를 구태여 늘리는 데는 말이 필요하지 않겠나?”

“패도를 걷는 이 앞에 천한 것들의 피로 길을 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잖소?”

“패도를 논하니 노부에게 꺾여도 불만이 없겠구만.”

“당연하지 않겠소?”

모용벽이 검을 떼는 순간, 이번엔 남궁원청의 검이 더 빠르게 움직였다.

퉁!

모용벽의 검면을 때림과 동시에 그의 목을 향해 검을 쏘아냈다.

‘얕군…!’

검 끝이 모용벽의 목 끝을 살짝 긁어냈음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보다 더 깊이는 파고들지 못 했기에 다가올 그의 반격을 대비해 남궁원청은 검을 끌어당겼다.

모용벽의 두터운 호신강기는 남궁원청이 생전 처음 보는 형태의 기이한 무공이었다.

마치 온 몸을 마기의 갑옷으로 두른듯한 기이한 마공.

겪어본 적 없는 미증유의 무공을 앞두고 남궁원청은 진심을 다한 일격보다 가벼운 공격으로 끊임없이 그를 가늠했다.

또 다시 수차례의 공방을 주고 받은 뒤, 검과 검을 맞대자 모용벽이 이죽거렸다.

“늙어서 겁이 많아지신거요?”

“노부에게 남은 게 시간 뿐이거늘 뭐가 문제인가?”

“기왕 무림 제일이 되고자 하는데 그래도 제대로 이겨야 나도 체면이 살지 않겠소?”

“클클, 참으로 재밌구나.”

“무엇이 말이오?”

“말은 패도가 어쩌니, 천한 것이 어쩌니 하면서 정작 본색을 드러낼 때는 천박함을 감출 수가 없구나.”

남궁원청이 비웃음을 흘렸다.

“서출이라 근본은 숨기지 못 하는…”

“늙은이가 혀가 길구나!!”

순간 모용벽의 마기가 흔들리자, 남궁원청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독고령에게 전해준 비기이자, 과거 천마를 베었던 남궁원청의 일검.

‘끝이다!’

모용벽을 죽일 수 있으리라 확신하며 그의 급소를 찔러들어가는 그 순간.

챙!

“아버지도 세 치 혀로 꺾으셨나요?”

천유하가 남궁원청의 검을 막아들며 끼어들었다.

그리고는 천유하가 모용벽과 합세하여 남궁원청을 공격하려 들자, 그의 등에서 거대한 도가 불쑥 튀어나왔다.

“어린 마귀년이 감히 어르신의 승부를 방해하는가?!”

“하북의 버러지가 감히…!”

팽유선과 천유하의 도가 맞부딪히자, 주변에서 멍하니 남궁원청과 모용벽의 대결을 지켜보던 이들도 다시 전투에 가세했고,

금세 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 젠장!”

“… 가주님.”

“물! 물을 가져와!!”

“여기…”

모용세가의 무인에게 물이 든 가죽주머니를 받아들자마자 모용벽은 그대로 자신의 몸에 물을 들이부었다.

촤아악!

물과 함께 자신의 몸에 묻은 피가 씻겨져내려가자 모용벽은 축축한 발걸음을 이끌고 천유하게 향했다.

“천마!”

“모용 가주.”

“왜 방해했지?”

모용벽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묻자, 천유하의 고운 아미가 일그러졌다.

“… 그럼 아군이랍시고 받아들인 인간을 죽게 놔둘까요?”

“내가 죽을 거라 생각했나?”

“고작 그깟 격장지계 하나에도 마음이 휘둘리는 소인배라면 그렇겠죠.”

“감히…!”

천유하의 말에 정곡을 찔린 모용벽이 슬그머니 내공을 끌어올리자, 천유하의 옆에 서있던 대호법이 눈을 부릅뜨며 그 사이로 끼어들었다.

“건방지군, 모용 가주.”

“비켜.”

“하늘이시여, 명만 하면 언제든 이 자의 수급을 취하여 저녁상으로 올리겠습니다.”

“하아…”

하루 종일 싸운 것도 모자랐는지 이제는 손을 잡은 이들끼리 다시 또 싸움이 벌어지는구나 싶어 천유하가 슬그머니 칼에 손을 올리는 순간.

“가주님.”

노순평이 찾아와 모용벽에게 말했다.

“…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누구?”

“…”

노순평이 천유하 무리를 쳐다보고 잠시 눈치를 살피더니 전음을 보냈다.

[당문의 가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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