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91 19장. 건곤일척 - (4)
독고령이 맹에서 머물게 된 건 고작 3일이었다.
3일째 되는 아침, 묵세휘는 독고령을 찾아와 갑작스러운 얘기를 꺼냈다.
“나가주시게, 독고 부인.”
“엥?”
“… 제발 꺼져달란 말이네.”
갑작스레 자신이 머무는 특실에 찾아온 묵세휘의 말을 듣고 독고령은 인상을 구겼다.
“새끼가 갑자기 뭘 잘못 쳐먹었나…”
“부군에게 이미 허락을 받았으니 어서 나가시게.”
“… 가가가?”
“그래.”
“아니, 갑자기 왜?”
“하아…”
묵세휘가 피곤한 듯 얼굴을 감싸며 마른 세수를 몇 번 했다.
“… 부인.”
“아 왜 자꾸 불러, 새끼야.”
“부인께서 맹에 지낸 3일 동안 무엇을 하셨소?”
“네가 데리고 오는 귀찮은 새끼들을 만나줬잖아 ,십새끼야.”
“그리고 그 귀찮은 작자들을 잘근잘근 다져놓았지.”
“그 새끼들이 건방졌잖아.”
“그 건방지다 말하는 작자들이 맹의 장로들이였고.”
“조져달라고 불렀잖아?”
독고령은 자신에게 징징대는 묵세휘가 퍽 불쾌했다.
같이 술을 마신 이후, 생각보다 친하게 지내게 된 둘은 제법 훌륭한 거래상대가 되었다.
묵세휘가 적당히 장로들을 달래 독고령에게 장로를 보내면, 독고령이 적당히 장로를 갈궈 묵세휘가 이득을 보려했다.
그 과정 중 묵세휘는 ‘내가 독고령과 친하고 그녀는 곧 맹에 들어올 것이다.’를 이용하여 장로들에게 보이지 않는 권력을 얻고,
독고령은 차근차근 빈 장원에 혼수 물품을 채워넣고는 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묵세휘의 예상과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면 독고령은 ‘적당히’를 모르는 여인이었다.
“… 전에 분명 ‘적당히’ 겁주기로 했지 않았나?”
“그 새끼들 저지른 게 있는데 팔 부러진 거 가지고 징징댔어?”
“독고 부인.”
“왜?”
“팔이 부서지는 게 적당히라고 치세. 점창파 장로의 눈깔은 왜 뽑으려고 했나? 그것도 적당히인가?”
“아… 그 새끼는 그 소현 언니랑 은원이 좀 있어서…”
“아하… 그렇군. 청성파 장로의 수염은 왜 불태우려고 했나?”
“그 새끼가 계속 수염을 만지면서 꺼드럭대니깐…”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어. 그렇다면 유성문은?”
“유성문…? 듣도보도 못한 새낀데?”
“사천에서 왔다고 한 유성문 말이네.”
“… 사천에서 왔잖아?”
“아하… 사천에서 왔군. 그렇지, 사천에서 온 건 문제군. 문제야…”
묵세휘가 고개를 끄덕거리길래 자신의 억울함을 다 해명했다 생각한 독고령이 등의양양하게 웃었다.
“새끼야, 봐. 내가 다 합리적으로 행동을…”
“합리?!!”
“깜짝이야… 왜 소리를 지르고…”
“아주 그냥 맹을 박살 내지 그랬나! 어?!”
“…”
“그냥 죄다 사이좋게 모가지를 뽑아서 차라리 그 문파로 보내지 그랬어! 받을 건 다 받고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건 얘기가 다르지 않나?!”
묵세휘가 계속 연달아 큰 목소리를 내지르자, 독고령의 표정이 금세 썩어들어갔다.
처음에는 뭐 일이 고달파서 그러려니 넘어가려고 했거늘, 점점 도를 넘는 거 같아 조금씩 짜증이 난 독고령은 결국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아 이 새끼가 내가 적당히…”
“제 말이 맞지 않습니까, 검후님?!”
하지만 묵세휘도 이제 독고령에 대해 충분히 이해한 상태였다.
독고령은 정말 확실하고, 단순한 여인이었다.
자신의 부군인 위일청과 자기 사람 앞에선 한없이 약하고, 그 중에서 유독 약한 사람이 하나 있었으니 묵세휘는 빠르게 그 사람에게 붙었다.
바로 검후였다.
“… 령 아야.”
“아잇, 할매는 또 왜 왔어요?! 한가하세요?”
“네 년 덕에 바쁘다, 이 년아!”
쐐액!
그녀의 손이 매섭게 움직이자, 독고령이 기겁하며 검후의 손을 피했다.
“왜… 왜요?!”
“이 망종아! 세휘, 이 아이가 맹을 고쳐보겠다 불철주야 애쓰는 게 안타까워 도와주러 왔거늘 네 년이 일을 다 망치고 있어!!”
“… 그냥 보타문으로 가시…”
“네 년이 정신 차리기 전까진 못 가겠구나!”
“…”
검후에게 한 마디 들은 독고령이 불만인듯 입이 툭 튀어나오자, 그 모습을 보고 검후가 혀를 찼다.
“에잉, 끌끌… 이런 년이 결혼이라니. 위일청이 아깝구나, 이 년아.”
“아잇, 가가 얘기 좀 그만하세요!”
“아내가 곧 남편의 얼굴이 되거늘 어찌 부군의 앞 길을 막아서고 그래!!”
“… 자기는 결혼도 안 했으면서.”
“뭬야?”
검후가 기어코 검에 손을 올리자, 그제서야 독고령이 고개를 푹 숙였다.
“아잇… 안 할게요. 죄송해요, 진짜로…”
“어휴… 이 망종아.”
“… 맨날 나 보고만 뭐라고 해… 묵세휘가 등신 같아서 일처리를 못 한 걸…”
“네 잘못은 없다는 게야?”
“…”
독고령이 입을 꾹 다물고 있자, 검후가 숨을 크게 들이쉬곤 내공을 담아 사자후를 내질렀다.
“일청아!! 일청아!!”
“아악! 죄송해요, 진짜로!! 진짜아!!!”
“일청!!!!”
“예, 스승님. 무슨 일… 로?”
위일청은 방문을 들고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익숙한 광경에 바로 고개를 숙였다.
“하아… 령이 또 무슨 잘못이라도…”
“가가! 나 진짜…”
“일청아.”
“… 예, 스승님.”
“맹에서 머무르지 말고 내일부터는 신혼집에서 만나자꾸나.”
“… 예?”
“자세한 이야기는 묵 군사에게 듣거라.”
“… 예, 알겠습니다. 군사님?”
“하아, 위 대협. 또 이런 일로 만나뵙게 되어 아쉬우나…”
말은 안타깝다고 하고 있었으나 웃음을 참느라 괴상한 얼굴이 된 묵세휘를 보고 독고령은 이를 갈았다.
‘저 새끼 대가리를 깼어야했는데…!’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 가가.”
“네, 령.”
“… 화났어요?”
“…”
결국 묵세휘와 이야기를 나눈 위일청은 맹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의 결정을 따라 맹을 나서 묵세휘에게 받은 장원으로 가는 길, 독고령은 위일청의 눈치를 살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화났을 거라 생각했나요, 령?”
“… 네.”
“왜요?”
“그야… 또 분란을 일으켜서…”
“잘 알고 있네요, 령.”
“…”
독고령이 침울해져서 고개를 숙이자, 위일청이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껴안아 자신의 품으로 당겼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고요.”
“네?”
“령은 그 정도면 충분히 했어요. 애초에 다른 이와 사귀는 게 서툴기도 했고, 장로들을 별로 안 좋아하잖아요?”
“가가…”
“무엇보다 점창파의 장로는 저도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령과 소현이 친한 것을 이용해 오히려 거들먹거렸다면서요?”
“그러니깐요! 그 새끼는 진짜 혀를 뽑는 것만으로 못 참을 거 같아서 눈도 같이 뽑으려고 했는데…”
독고령이 막 점창파의 장로에 관한 험담을 쏟아내려던 순간, 위일청이 말을 끊었다.
“그리고 사람이 많으니 만날 시간도 없는게 제일 컸고요.”
“녯?!”
“음? 령은 안 그랬나요? 밤마다 분명 다른 방에서 찼는데 아침마다 제 이불 속에…”
“아… 아닛! 그건 그냥…”
“그건 그냥?”
“… 가가 품이 좋아서요.”
“크큭. 이리 와요, 령.”
“녜헷…”
위일청이 다리를 벌리자, 자연스레 그의 두 다리 사이로 독고령이 들어갔다.
그러자…
“… 위 오빠.”
“네, 관영.”
“나도 위 오빠 품이 좋은데요오?”
“그럼 이리로…”
“크르르…”
“…”
갑작스레 자신의 품에서 들리는 짐승소리에 위일청이 독고령의 뒤통수를 쳐다보았다.
“… 령.”
“네, 가가.”
“혼자서 다 차지하려고 하지 말랬죠?”
“그래도…! 요즘 맨날 관영이나 소현 언니랑만 하고…!”
“… 령이 바빴잖아요.”
“묵세휘 개새끼…”
“너무 안달내지마요, 령.”
위일청이 독고령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오늘 짐 정리만 끝내고 장원의 이불이 얼마나 푹신한지 알아볼까요?”
“… 좋아요, 가가.”
위일청의 속뜻을 알아차린 독고령이 허벅지를 비비적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제 슬슬 관영이랑 소현과도 함께 해야죠?”
“으으…”
“아직도 싫어요, 독고 소저?”
“아니… 으으… 아직 마음의 준비가…”
“히힛, 오늘 드디어 독고 소저랑 같이 하겠네요오.”
“그러게, 후훗.”
은관영이 실실 웃으며 독고령을 바라보았다.
“기대할게요, 독고 소저?”
“아… 아니… 왜 네가 기대를…”
“히힛.”
“…”
독고령은 말없이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숙인 채 조용해졌다.
장원은 고작 4명이 지내기엔 넓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는 100명이 넘는 문도들을 가지고 있던 문파의 장원이였으니 당연히 넓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넓은 장원을 모두 쓰기보다는 그냥 가장 좋은 곳이 문주가 있는 방을 위주로 짐을 정리해 넣었다.
“여긴 아예 침실로 쓸까요? 마침 묵 군사님이 침대도 큰 걸로 넣어주셨네요?”
“… 묵세휘 이 새끼가…”
“왜 화 내고 그래, 령 매?”
“아잇…! 침대가 너무 크잖아! 가가는 이제 더 여자 안 늘릴건데…”
“후훗, 령 매도 참 귀여워.”
“으… 응?”
가장 좋은 방인 문주실을 침실로 꾸미고, 그 근처 일대 각자 개인의 방을 하나씩 정했다.
이전부터 묵세휘에게 야금야금 받은 혼수물품들은 대부분 침실로 들어갔고 관리인을 붙여준다고 했던 말이 사실이었는지 오후 쯤 되자 청소를 도맡아줄 다른 인부들이 찾아왔다.
그렇게 그 날은 하루 종일 장원을 정리하며 시간을 보냈다.
해가 떨어질 즈음, 정리할 것도 다 끝내자 네 명은 모여서 근처 객잔에서 시킨 음식을 나눠먹었다.
“… 그보다 앞으로 요리는 어쩌지? 령 매 요리 할 줄 알아?”
“… 배울게.”
“내가 잘 가르쳐줄게, 히힛.”
“… 응.”
“그러고보니 독고 소저, 태극삼검은 슬슬 무당으로 돌아간다던데 내일 한 번 얼굴이나 비추세요오.”
“걔네도 가냐?”
“그럼 가죠. 할 일도 딱히 없는데요, 뭘.”
“… 그렇긴 하네. 내일 소소 불러와도 돼요, 가가?”
“령의 집이기도 하니깐 상관은 없지만, 괜찮겠어요?”
“네?”
독고령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위일청이 그녀의 뺨에 묻은 밥알을 떼 손가락을 핥으며 말했다.
“오늘 하고 나면… 내일 소소 아가씨가 올 때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아… 으으…”
그 말을 듣고 독고령이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자, 위일청이 피식 웃었다.
“여기 욕탕이 넓더라고요. 같이 씻을까요?”
“저는 좋아요오!”
“응, 나도 그게 좋아. 령 매는?”
“가가가 좋다면…”
“열녀네요, 독고 소저.”
“후훗, 그러게. 말했잖아, 령 매는 좋은 부인이 될 거 같더라니깐.”
“아잇… 좀…”
독고령이 평소처럼 짜증을 부렸으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있지 않아서 그런지 되려 귀엽게 보이기만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며 위일청이 일어났다.
“다 먹었는데 슬슬 치우고 씻으러갈까요?”
그의 눈이 독고령에게 향했다.
“령이 좋아하는 야한 일 하러?”
“녜… 녜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