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마와 색마-186화 (186/225)

EP.186 18장. 무림맹 - (14)

“그 인간이 여기서 왜 튀어나와?”

“크큭, 궁금한가?”

“…”

씨익 웃는 묵세휘를 보고있자, 괜히 반발심이 올라와 궁금하지 않노라 대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론 그녀가 오랫동안 신세진 무공의 창시자가 궁금하기도 했다.

염라도객 주장.

그와 관련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도 않았고, 알려진 거라곤 당대 천마를 꺾고 당당히 무림의 역사 속에 도객으로서 이름을 남긴 천하제일인.

독고령이 대답없이 고민을 하고있자, 묵세휘가 슬쩍 그녀에게 미끼를 던졌다.

“염라도객 주장에 관한 기록은 거의 안 남아있지만, 본인이 또 그런 야사에 관심이 많아서 말일세. 제갈가주와 함께 과거를 복원하기 위해 조금 애써보았지.”

“… 너는 알고 있다고?”

“궁금한가?”

“아잇, 시발. 궁금하면 따라오라고 할려고 그러지?”

“뭐 그 뿐이겠나? 비익연리를 내어주지.”

“… 뭐?”

“곧 혼례를 치른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맹의 이름으로도 선물을 하나 보내야할 터이니 그 정도는 주지.”

“… 염라도객이 무구를 만드는 재주도 있었나?”

“용천 야금방의 수장이었다네. 몰랐나?”

“뭐?”

절강성의 용천.

그 유명한 명장 구야자가 한 때 일했던 곳이자, 아직까지도 용천의 대장장이들이 구야자를 검의 시조라고 부르며 제사를 지내는 곳이었다.

그 소문에 걸맞게 용천의 대장장이들이 만들어내는 무구들은 하나같이 강호일절이라 칭송받으며 천금을 줘서라도 그 무구를 얻고 싶어하는 자가 수두룩했다.

더군다가나 그 곳의 수장이었다면 그저 그런 명검이 아니라 정말 신병이기라 불릴만한 무구일 게 분명했다.

“탐나지? 명필은 붓을 안 가린다고 하지만 그게 헛소리인 것은 자네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명필일수록 자신의 생업이 달린 일이니 온 신경을 기울여 붓을 고르고 또 고르지.”

“…”

“하다못해 무인이라면? 자신의 생명을 지켜주는 것이 곧 무기이거늘 어찌 탐이 안 나겠는가? 유명한 무인의 무기는 무인과 함께 역사에 남기도 하지.”

묵세휘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며 물었다.

“가지고 싶나?”

“… 한 번 보고…”

“그래, 한 번 본 뒤에도 나쁘지 않지. 더군다나 한 쌍의 무기니 위 공자에게 선물해주면 참으로 좋아하겠군.”

“… 일청이?”

“위 공자가 쓰는 연검을 어디서 만들었겠나? 그 또한 용천 야금방이지. 아… 그러고보니 그 연검을 선물해준 것이 강호사절화였던가?”

“뭐?!”

“이런, 몰랐나?”

독고령이 갑자기 발끈하며 일어서자, 묵세휘가 고개를 더더욱 기울였다.

“이런이런. 하긴, 정인의 과거를 다 알 수는 없을테지.”

“사절화라니? 누구? 은약벽? 검후?”

”침어(沈魚)일세. 그러고보니 보타문에 들르면서 안 만났던가?”

“아무도 만난 적 없는데?”

“흐음… 위 공자가 생각보다 부인을 많이 아끼는 모양이군.”

“다… 당연하지, 새끼야. 그래서 걔가 누군데?”

“절강 상권을 다 잡고 있는 자는 아는가? 만금전장주 황석주.”

“아… 걔는 알지.”

“침어가 그 자의 딸이네.”

“아하…”

아무리 독고령이 강호의 일에 관심이 없다고 한들, 강호에서 제일 돈이 많은 자가 누군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타인을 통해 듣는 위일청의 옛 여인 이야기는 생각보다 불쾌했지만, 짜증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근데 그런 애 빼고 나를 선택한 거니깐 뭐…’

결국 승자는 독고령이였으니깐.

그런 그녀의 표정이 얼굴에 드러났는지, 독고령을 보며 묵세휘가 웃었다.

“참 재밌군, 자네.”

“뭐가, 새끼야?”

“아닐세. 어여 가세나, 남편이 있는 여인을 해가 진 후에 끌고 다니는 것도 예의는 아니니 말일세.”

“…그래.”

맹이 소유하고 있다는 장원으로 가는 동안 묵세휘는 염라도객과 관련된 이야기를 조금씩 풀었다.

“그러니깐… 염라도객의 과거는 여전히 모르네. 허나 말년은 용천에서 지냈더군.”

“원래 야금장이였던건가?”

“모르겠네. 그러리라 추측하는 정도지.”

“야금방에서 일했다니… 의외네.”

“의외일 거 까지야. 옛날엔 자신의 무구를 직접 담금질하던 무인들도 제법 있더군.”

“그래?”

“그렇다네. 그보다 음…”

묵세휘가 슬쩍 독고령의 허리에 묶인 유성도를 살펴보더니 물었다.

“유엽도인가?”

“그렇지.”

“의외군. 좀 더 묵직한 도를 선호할 줄 알았는데 말일세.”

“베는 맛은 아쉬운데 그래도 이 정도면 뭐…”

“비익조는 대도일세. 자네는 원래 참마도를 쓰는 줄 알았는데?”

자연스럽게 대화의 흐름을 따라 그대로 대답하려던 독고령이 한 순간 우뚝 멈춰섰다.

“… 나 아닌데?”

“쉽게 안 넘어오는군. 아무튼 참마도의 묵직함을 충분히 구현해낼 수 있는 무기일세.”

“나 아니다.”

“그래, 아닌 걸로 함세.”

“아잇, 이 새끼가…”

“오, 다 왔군. 저기일세.”

독고령은 조금씩 묵세휘란 인간이 어떤 놈인지 이해가기 시작했다.

그녀가 느끼기를, 묵세휘는 주도권을 뺏기길 지독하게 싫어하는 인간이었다.

이야기를 진행하던 와중, 조금이라도 자신의 뜻대로 이야기가 안 흐를 것 같으면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주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놈이었다.

“하여간 마음에 안 드는 새끼.”

“걱정말게, 나도 아직은 자네가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니. 하지만…”

묵세휘가 우뚝 멈춰서고 장원을 가르켰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나?”

“… 여기라고?”

“그렇다네. 이 곳일세.”

“… 아니, 이건 좀…”

“왜 마음에 안 드는가?”

독고령은 눈에 익숙한 장원을 둘러보며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여기 철혈문이잖아, 새끼야.”

“지금은 빈 집이지.”

“엥?”

“철혈문은 그 날 이후 하루 아침 사이 사라졌다네. 서신을 남기고 말이지.”

바로 엊그제만 하더라도 이 곳에서 자신과 치고 박았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거늘, 하루 아침 사이 사라졌다니.

“… 그게 뭔 소리야?”

“문도와 아내를 이끌고 모용세가로 향했다더군.”

“아, 시발. 찝찝하네…”

“뭐, 여튼. 제법 이름 있는 문파가 하루 아침 사이 사라져 버렸다네. 철혈문주가 아무래도 지레 겁을 먹고 먼저 내빼지 않았겠나?”

“… 그 새끼 좀 나약하긴 하드라. 근데 여기에 니가 말한 그 비익연리가 있다고?”

“잠깐만 기다려보게.”

묵세휘가 주변을 살피더니 갑자기 누군가 담을 넘어왔다.

그 모습을 보고 묵세휘가 웃었다.

“이제 왔군.”

“… 새끼야, 원래 여기 놔뒀다매.”

“검이 여기 있다고 안 말했으면 안 왔을 거 아닌가? 적당히 넘어가주게.”

“…”

묵세휘가 손을 흔들자, 담을 넘은 맹원이 다가와 그에게 고개를 숙이며 물건을 건넸다.

“전해줘서 고맙네. 바로 돌아가나?”

“예. 헌데 오는 길에 맹주님께서 어디로 갖고가는지 물으셔서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상관없다네. 어차피 맹에 놔둬도 썩을 물건인 것을.”

“예! 그럼…”

물건만 전해주고 다시 돌아가는 맹원을 보며 독고령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 피곤하게 산다. 그냥 아까 맹에서 보여줬으면 될 것을.”

“이런 건 또 원래 장소가 중요한 법이라네. 아무튼 장원은 마음에 드는가? 이 정도면 위치도 괜찮을텐데?”

“됐고 칼이나 보여줘 봐. 얼마나 대단한건데 이 지랄인지 모르겠네.”

“그러지. 대신 칼을 받으려면 장원과 함께 받아가게.”

“아잇, 이 큰 곳을 내가 어떻게 관리하냐?!”

독고령이 달라는 듯이 손을 내밀자, 묵세휘가 품에 안고 있던 비익연리를 숨겼다.

“당연히 관리해주는 이를 따로 붙여줄걸세. 약속하게.”

“… 시발.”

어차피 영 마음에 안 들면 안 받으면 되리라 생각하며 독고령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 약속했네?”

“아잇… 뜸들이지 말고 그냥 좀 보여줘라, 새끼야.”

“자, 보시게. ‘비익’과 ‘연리’일세.”

드디어 순순히 묵세휘가 무기를 넘기자, 독고령이 헝겊을 풀었다.

“얼마나 대단하다… 고…”

“크큭, 약속했네?”

“시발…”

헝겊을 풀어헤치는 순간 깨달았다.

이 두 무기는 궤를 달리하는 명검이자, 명도였다.

아마도 무림의 역사에 길이 남을 신병이기로 이름을 남기리라 확신했다.

비익조의 설화에 맞춘 듯 검집에 고급스럽게 양각되어있는 눈을 바라보며 독고령이 손잡이를 쥐는 순간, 마치 오랫동안 써온 무기처럼 착 감기는 느낌에 온 몸이 떨렸다.

‘… 조졌네.’

좋아봤자 얼마나 좋으리라 피식 웃었으나 이제서야 저 묵세휘가 왜 그리 자신만만한지 알아차렸다.

게다가 독고령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비익 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한 쌍인 ‘연리’.

‘연리’는 연검이었다.

하필 위일청이 주로 쓰는 연검.

“…”

낭창낭창하게 휘어지면서도 검의 날이 확실히 살아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감탄이 나오게끔 하는 무구였다.

손 끝으로 날을 튕기고 몇 번 휘둘러보는 순간, 독고령은 이미 ‘연리’에 푹 빠졌다.

그리고 자연스레, 위일청이 떠올랐다.

‘이걸… 위일청한테 주면…’

안 봐도 뻔했다.

분명 그는 날아갈 듯 기뻐하리라 확신했다.

위일청 또한 무인이다.

지금 쓰고 있는 연검들 또한 어디서든 명검이라 불릴만한 물건이었으니 ‘연리’를 보는 순간, 그가 기존에 쓰고 있던 연검따위 당장이라도 버릴 것이라 확신했다.

“어떤가, 탐나지?”

“… 좀 탐나네.”

“생각해보게, 독고 부인. 이걸 위 공자에게 주면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이겠나?”

“아… 으으…”

“그가 이전에 다른 여인에게 받은 연검따위 당장이라도 버리지 않겠나?”

“그… 그렇겠지…”

“이제 곧 부부의 연을 맺을 셈인데 옛 여인의 물건을 가지고 있는 것도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고 무인에게 생명과도 같은 무기를 함부로 버리라 할 수도 없고 허어… 거 참…”

“…”

“근데 이게 무슨 일인가?! 때마침! 때마침 위 공자가 주로 쓰는 연검이 여기 떡~ 하니 있구만!”

노골적인 말투였으나 독고령은 이미 묵세휘의 말에 넘어간 상태였다.

아니, 그보다 ‘비익’과 ‘연리’라는 무기가 탐이 났다.

묵세휘가 뭘 믿고 저런 시건방을 떠나 의구심마저 들었으나 이제서야 확신했다.

함정이었다.

‘비익연리’는 어떤 무인이 보더라도 탐날 무구였고, 하필 떡하니 도와 검의 조합이었다.

노골적인 함정에 빠진 것을 알았으나, 헤어나올 방법이 없었다.

“… 장원이랑 같이 받으면 된다고?”

“그렇다네. ‘비익연리’를 가지고 싶다면 장원과 함께 가지게.”

“쓰읍…”

“뭘 망설이는가? 허어… 이보게, 독고 부인. 무구가 훌륭하기도 하거니와 그 이름 또한 완벽하다네. ‘연리’라니. 검의 이름을 듣는 순간, 위 공자가 얼마나 감격할 지 눈에 훤히 보이는군.”

“아잇, 좀 닥쳐…”

“참으로 훌륭한 내조가 아니겠는가? 상공을 위해 이리 훌륭한 무구를 구해올 부인이 강호에 어디있겠는가?

“으… 으으…”

“안 가져갈텐가?”

“…”

손에 들린 ‘비익연리’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결국 독고령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진짜 장원이랑 이것만 가져가면…”

“그렇다네. 그 둘만 있으면 되네.”

“… 맹에 소속될 필요까진…”

“없네. 없다네. 혹여나 이번 일로 환심을 사서 이름만 올려둔다면 참으로 기쁘겠다만, 그럴 생각은 있나?”

“없어!”

“아쉽군. 아무튼 뭐… 빨리 선택하게. 슬슬 해가 지는구려.”

“…”

“안 받을건가?”

“… ‘연리’만 받아가면…”

“불가하네.”

“왜?!”

“직접 보는 게 낫겠군.”

“… 응?”

“하나만 줘보시게.”

“… 자.”

독고령이 ‘비익’을 건네자, 그를 받은 묵세휘가 웃으며 도를 들고 조금씩 멀어졌다.

“거기 가만히 서있게나. 이제 그럼…”

묵세휘가 어느 정도 멀어지자…

우웅우웅!

“… 어?”

검이 울기 시작했다.

문자 그대로, 검명(劍鳴)이 울려퍼지며 품 안에 들고 있는 검이 떨리자 독고령이 당황했다.

“… 야, 이거 뭐야?”

“말했잖나, 둘이 한 쌍이라고. 서로 떨어뜨려 놓으면 이렇게 울더군.”

“… 정말 신병이기네.”

“동시에 ‘요검(妖劍)’이지. 무기의 소유자가 서로 떨어지면 광증에 시달리기도 한다네.”

“저주 받은 거 아니야?”

“부부가 서로 떨어질 일이 있나?”

“그… 렇네…”

오히려 이 저주를 언급하며 위일청과 더 오래 붙어지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독고령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 수작질이라도 부렸으면 반드시 죽인다.”

“천지신명께 맹세코 그런 것은 없다네.”

“…받을게.”

“크큭, 잘 생각했네.”

다시 ‘비익’을 건네주며, 묵세휘가 그녀에게 포권을 취했다.

“본인이 위치한 자리가 자리인지라 아무런 속내가 없다고는 못 하겠네만, 그래도 이건 어디까지나 무림의 흉적을 처리해 준 것에 대한 감사와 또 내 지음의 딸 아이를 구해준 감사함의 표시기도 하네.”

“… 됐어. 이 정도면 충분해.”

“만약 위 공자가 받고 기뻐한다면 말일세…”

묵세휘가 슬쩍 고개를 들며 미소지었다.

“본인에 대한 인상도 조금 나아지겠나?”

“… 그래도 싫을 거 같은데?”

독고령이 웃으며 대답하자, 묵세휘 또한 마주 웃었다.

“아쉽군, 크큭.”

“술이나 더 줘. 소흥주 맛있더라.”

“그리하지. 가세나. 기왕 마시는 거 맹주도 불러도 되겠나?”

“마음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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