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80 18장. 무림맹 - (8)
“하아… 하아… 일청…”
“후우… 네, 령.”
“… 왜 안 오죠?”
독고령이 거친 숨을 내쉬며 묻자, 위일청이 그녀의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소소 아가씨요? 역시 들키고 싶었나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나간다고 해놓고 너무 오랫동안 안 돌아오니깐 걱정돼서…”
“아마 배려 아닐까요?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고요.”
“… 그럼 다행이고요.”
독고령이 위일청의 품에 안기며 잠시 그의 몸을 만지작거리다가 물었다.
“… 근데 여기 어디서 씻어요?”
“그러게요. 제가 나가서 알아보고 올게요. 잠시 여기 있어요, 령.”
“네.”
위일청이 몸을 일으켜 옷을 걸치자, 독고령의 눈이 그의 하반신으로 향했다.
“… 청소… 해줄까요?”
독고령이 혀를 낼름거리며 묻자, 그 모습을 보고 위일청이 웃었다.
“평소라면 거절하지 않았을텐데… 지금은 안 되겠네요.”
“… 네?”
“한 번 더 할 거 같기도 하고… 밖에 누군가 왔군요.”
“흐엑?!”
당황하며 기감을 끌어올리자, 독고령은 문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짐을 깨닫고 이불로 몸을 가렸다.
“어… 어쩌죠, 일청?!”
“제가 나가서 누군지 보고 올게요. 소현이나 관영이라면 뭐… 별 문제 없지 않을까요?”
“으아아…”
위일청이 주섬주섬 바지를 주워입고는 문으로 다가갔다.
그는 별 문제 없으리라 말했지만, 독고령에겐 그 또한 문제였다.
“오… 옷이라도…”
“안에 들어가도 되겠나?”
하지만 돌아온 목소리는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당황한 독고령이 조용히 위일청에게 물어봤다.
“아… 아는 사람이에요?”
“… 아니요. 처음 듣는 목소리군요. 아무래도 맹의 사람이 아닐까요?”
“깜짝이야…”
“… 오히려 덜 당황하네요, 령.”
“내가 나갈까요?”
이불을 끌어안고 몸을 일으키는 독고령을 보며, 위일청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나갈게요. 령은 구석에서 들키지 않게 있으세요.”
“… 네.”
독고령이 다시 이불을 끌어안은 채 침대에 자리잡고 앉자, 위일청이 문 앞에 섰다.
“문 엽니다?”
“네. 욕실이 어딨는지도 같이 물어봐주세요, 일청.”
“그러죠.”
문을 열자, 기다리고 있는 이를 보고 위일청은 잠시 몸이 우뚝 굳었다.
아까 찾아왔던 맹원이리라 예상했지만, 예상과 전혀 다른 인물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눈에 봐도 제법 화려한 복장에 가지런히 정돈된 수염이 그를 증명했고, 제법 나이가 있어보이는 인물이 위일청을 기다리고 있었다.
“… 누구십니까?”
“크흠, 크흠… 그 앞을 좀 가리면 좋겠네만…”
“…죄송합니다. 흉한 꼴을 보여드렸군요.”
위일청이 당황하며 드러난 상체를 가리자, 기다리고 있던 이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흉한 꼴만 봤으면 다행이겠다만, 흉한 소리도 들어서 말일세. 거… 혈기가 왕성한 친구구만.”
“… 죄송합니다. 그보다… 누구십니까?”
“위씨 세가의 일청, 맞나?”
“예, 접니다.”
“인사가 늦었네. 나는… 음… 젠장. 소개할 방법이 없군.”
밖에서 기다리던 이, 묵세휘가 가볍게 포권을 취하며 위일청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무림맹의 전 군사이자, 현재는 맹주의 부탁으로 찾아온 묵 가의 세휘라고 하네.”
“… 맹의 군사님을 뵙습니다!”
“이젠 군사가 아니니 그냥 편하게 말하게.”
“… 네. 혹시 무슨 연유로 찾아오셨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할 말은 많았네만…”
묵세휘가 턱을 긁적거리다 난처한 표정과 함께 말했다.
“일단 씻은 뒤에 다시 만나지. 한중왕께서도 제갈무후를 영입하기 위해 세 번 찾아갔다더니 우리의 인연이 그보다 더 깊어질 모양이구만.”
“… 예?”
“아무 것도 아닐세. 혹시 욕실이 어딨는지는 아는가?”
“아직 이 곳의 지리에 익숙지 않습니다.”
“안내해줄 맹원을 보내지. 그 뒤에 이 곳에서 기다리고 있다면 내가 사람을 보내겠네. 좀 이따 다시 만나지.”
“예, 그럼…”
묵세휘가 인사를 하고 떠나려다 잠시 돌아서며 말을 덧붙였다.
“아… 가능한 혼자 와주게. 광마의 여식과 함께 말고, 홀로 말일세.”
“혼자요?”
“그래. 둘이서 나눌 얘기가 있어서 말일세.”
“… 네, 알겠습니다.”
묵세휘가 돌아가자 위일청은 어딘가 멍한 표정과 함께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왔다.
“… 일청?”
“네, 령.”
“표정이 왜 그래요?”
“아뇨. 그… 맹의 전 군사가 굳이 저를 왜 찾으시나 싶어서요.”
“방금 찾아온 게 군사였어요?”
“예.”
“근데 왜요? 고작해야 군사잖아요?”
“… 고작이라니요, 령.”
위일청이 어처구니 없다는듯 독고령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묵 군사께서 얼마나 대단한지 온 천하가 다 알고 있습니다. 마교의 준동 당시에 군사께서 있으셨다면 무당이 망할 일도 없었을거란 얘기도 많았죠.”
독고령은 자신이 알고 있던 무림맹의 군사와 너무나도 다른 설명이 튀어나오자 당황스러웠다.
“엑? 걔가요?”
“음…? 군사와 아는 사이십니까?”
“아… 아니요…”
말실수를 덮기 위해 입을 꾸욱 다물자, 위일청은 잠시 이상하게 그녀를 쳐다보다가 그냥 넘어갔다.
“뭐 여튼… 군사께서 둘이서 보자고 하시니 조금 당황스럽네요.”
“당황스러울게 뭐 있어요? 맹주가 한 얘기랑 비슷한 말을 하지 않을까요?”
“맹에 들어와달란 부탁이요?”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맹에 있는 사람들은 뭐 맨날 볼 때마다 맹에 들어와주시게~ 이러잖아요.”
“… 그렇지만 군사께서 직접 찾아오진 않으시죠.”
“맹주가 이미 부탁도 했는데요 뭘.
“하긴…”
그 때 특실의 앞에 도착한 맹원이 자신이 왔음을 알렸다.
“군사님의 명을 받고 온 맹원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예, 들어오시죠.”
들어온 맹원은 아까 만났던 이였다.
“다시 뵙게 되네요, 위 공자님. 독고 소저. 욕실을 찾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예, 맞습니다.”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독고 소저는 따로 다른 분이 안내하러 올 것입니다.”
“네.”
“그리고 그…”
맹원이 살짝 얼굴을 붉혔다.
“… 군사님께서 맹의 욕실은 남녀가 구분되어있으니 같이 들어가는 일은 자제해달라고 하셨습니다.”
“…”
그 말을 듣고 위일청이 독고령을 쳐다보자, 그녀가 당황하며 버럭했다.
“나… 나 왜 보는데요?!”
“… 아닙니다.”
“…그래요.”
“위 공자께서는 저를 따라오시지요. 독고 소저께서는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잘 다녀와요, 일청.”
“령도요. 이따 다시 봐요.”
위일청이 맹원을 따라 나가자 홀로 남은 독고령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걔가 그렇게 대단했다고?’
실제로 만나본 적이 없지만 내내 자신을 귀찮게 했던 놈이라 얼굴이 궁금하긴 했다.
무림 백대고수를 아래에서부터 조지기 시작할 때는 코빼기도 안 비치던 맹의 놈들이 어느순간부터 자신을 찾아오기 시작했는데 그럴 때마다 은약벽이 매번 웃으며 말하곤 했다.
[묵 군사가 속이 타들어가겠는데요?]
여전히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할 수 없었으나 아무튼 드디어, 독고령은 맹에 오고 즐거운 일이 생겼다.
‘어떻게 생겨먹은 놈인지 구경이나 해봐야지.’
*
“… 군사님, 위 공자를 모셔왔습니다.”
“들라하게.”
맹원이 위일청과 함께 안으로 들어오자, 묵세휘는 씁쓸하게 웃으며 맹원을 꾸짖었다.
“그리고 군사라고 부르지 마시게. 아직 맹에 돌아올지 말지는 정하지 않았으니.”
“… 죄송합니다.”
맹원이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가고 둘만 남자 묵세휘가 웃으며 위일청에게 물었다.
“위 공자. 어서 오시게. 이렇게 헌양한 모습을 보니 훨씬 낫구만.”
“…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드려 죄송할 뿐입니다.”
“죄송할 거 까지야. 앉게.”
“예.”
위일청이 자리에 앉자, 묵세휘가 슬며시 그에게 차를 한 잔 내주었다.
“용주차일세. 좋아할지 모르겠군.”
“감사합니다.”
묵세휘가 건네준 차를 받아마시고 위일청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 차 맛이 신기하군요. 마셔본 차 중에 최고입니다.”
“금칠을 해주니 고맙군. 음… 인사치레는 이 정도면 충분할듯 하네.”
탁.
묵세휘가 차를 내려놓고 두 손을 깍지끼며 몸을 앞으로 숙였다.
“왜 불렀는지 궁금할테지.”
“… 대충은 짐작하고 있습니다.”
“맹에 들어와달라고 청하리라 생각했나?”
“예.”
“맹주께 이미 들었나 보군.”
“… 그렇습니다.”
“흐음…”
묵세휘가 깊게 숨을 들이키더니 위일청과 눈을 마주쳤다.
“조금 다르네. 솔직하게 말해서본인은 그대를 굳이 맹에 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네.”
“… 그럼 무슨 이유로…”
“허나 한 번 청해보는 게 친우의 부탁을 받은 자의 도리라 그러하네. 그대가 굳이 맹에 들어올 뜻이 없다면 억지로 끌어들이기보다 적당한 친분을 나누는 게 더 나을듯 해서 불렀지.”
묵세휘가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이고 위일청에게 물었다.
“그대는 맹에 들어올 생각이 있는가?”
“… 솔직하게 말씀드려 크게 없습니다. 어디에 얽매이는 성격이 아니라서요.”
“그럴 것 같았네. 그럼 이야기는 이걸로 정리하세나.”
“… 예?”
갑작스레 이야기를 정리하자고 하자 묵세휘가 다시 고개를 바로하며 대답했다.
“이 정도면 맹주놈에게 변명할 거리는 생겼겠지. 본인은 최선을 다해 위 공자에게 의사를 물어보았으나 그의 의지가 워낙 대단하여 실패하였도다. 뭐 이런식으로 말일세.”
“하… 하하…”
“뜻이 맞지 않는 자를 모아두고 엉망이 된 꼴을 한 번 보고도 여전히 정신을 못 차렸더군. 끌끌… 아, 이건 못 들은 걸로 해주게.”
“예, 크큭.”
위일청은 묵세휘의 말투가 퍽 마음에 들었다.
그가 이뤄낸 업적들이 워낙 대단해서 짐짓 긴장을 하고 왔으나 막상 묵세휘가 보여주는 모습은 털털하기 그지 없었다.
“그래도 기분이 상하진 않은듯 하여 다행이군. 실은 자네를 부른 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렇다네.”
“하문하시지요.”
“독고 소저에 대해 묻고 싶네.”
“… 독고 소저에 대해서요?”
위일청이 조금은 경계하는 기색을 보이자, 묵세휘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그에게 말했다.
“아니아니. 그녀 또한 맹에 들일 생각은 없다네. 그저 궁금해서 그렇지. 자네도 알다시피 본인은 한 때 맹의 군사였다네.”
“… 그러셨죠.”
“그런 내게 가장 큰 고민이 무엇이였노라 생각하는가? 언제고 다시 그 마수를 펼칠지 모르는 마교도 있고, 매번 관과 부딪혀 문제거리를 만드는 사파도 있었지만, 흉악하기로는 혈교를 따라올 자가 없었지.”
“그렇지요. 저도 혈교의 흉악함은 많이 들어보았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두려운 점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점이였지. 뭐… 이런 부분은 넘어가고, 여튼 한 때 본인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를 처리해주었으니 당연히 궁금하지 않겠나?”
“아하…”
묵세휘가 자신에게 다른 뜻은 없었노라 열심히 설득하자, 위일청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독고 소저가 어떻게 혈교주를 쓰러뜨렸나 듣고 싶으신 거군요.”
“그렇다네. 나는 뭐든지 그 일을 직접 보고 겪은 이의 말이 아니라면 잘 듣지 않거든. 그래서 굳이 그대를 불렀다네. 부디 가르쳐주게.”
묵세휘가 몸을 바짝 앞으로 기울여 흥미로운 눈빛과 함께 위일청에게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독고 소저는 혈교주를 쓰러뜨렸나?”
“…”
“대답하기 싫다면 그렇다고 얘기해주게.”
“아니… 그…”
위일청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다가 이내 손을 들어 자신의 이마를 감싸쥐었다.
“… 말씀드리기 조금 곤란하네요. 아무튼 마무리는 독고 소저가 절기로 혈교주의 윤회를 끊어냈습니다.”
“어떤 절기인가?”
“검신 어르신께 우연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전대 맹주신 남궁원청 어르신을 칭하는 게 맞나?”
“예.”
“허어…”
묵세휘가 의자에 몸을 푹 파묻고는 턱에 손을 올리고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는 잠시 후…
“일단 고맙네. 혹시 괜찮다면 독고 소저와도 둘이서 대화를 나눠도 되겠나? 그대의 정인이니 아무래도 그런 쪽으로 신경쓸 듯하여 미리 양해를 구하려고 하네.”
“어… 음… 대화는 상관없는데… 둘이서요?”
“가능한 둘이서 대화하는 걸 선호하네만, 그대가 신경쓰인다면 합석해도 상관없다네.”
“… 합석하겠습니다. 그… 제가 신경쓰는 건 아니지만…”
“음?”
위일청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 독고 소저가 조금 성정이 사나워서…”
“그거라면 걱정하지 말게. 크게 개의치 않네.”
“…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위일청이 진지하게 묻자, 묵세휘가 다시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위 공자.”
“예.”
“본인이 맹의 군사가 된 이후로 만나본 이들은 대부분 명문세가의 가주들이나 구파일방과 같은 거대문파의 장문인들이었네. 그 뿐이겠는가? 황제폐하를 만나뵙기 위해 궁에 들어간 적도 있고, 사파의 거두 흑사방주와 만나보기도 했다네.”
이름만 들어도 정신이 아득해지는 이들의 이름을 말하며 묵세휘가 물었다.
“그럼에도 본인이 걱정되는가?”
“… 직접 만나보시지요.”
“그러지.”
묵세휘가 다시 고개를 바로하며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그리고는 속으로 홀로 되뇌였다.
‘나도 참 만나보고 싶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