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마와 색마-163화 (163/225)

EP.163 17장. 애는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 (9)

백리소현을 안아든 위일청은 그녀의 상태를 먼저 확인했다.

“괜찮습니까, 소현?”

“응… 근데… 몸에 힘이 잘 안 들어가…”

축 늘어진 백리소현의 몸을 살피다 그녀의 왼팔에 꽂힌 우모침을 발견한 위일청은 급히 침을 빼낸 뒤, 조심스레 그녀를 바닥에 눕혔다.

“잠시만 쉬고 있으세요, 소현.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응…”

검을 쥔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위일청이 차갑게 식은 목소리로 잘린 오른팔을 부여잡고 괴로워하고 있는 곱추, 조련사에게 물었다.

“해독제는 어디 있지?”

“크… 크큭, 위 공자…! 강시 무리는 어찌하고 예까지 찾아왔습니까?”

“해독제는 어디 있냐고 물었다…!”

“애가 타십니까? 노리개가 죽을까봐 겁이라도 나셨습… 컥!”

위일청이 곱추의 목을 움켜쥐며 으르렁댔다.

“소현은 내 노리개가 아니야! 마지막으로 묻는다. 해독제는?”

“커헉… 끄윽…”

“어디 있어!”

“끄륵… 헤… 헤헤…”

조련사가 씨익 웃으며 입을 오물거렸다.

까득.

그의 입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자 위일청은 그를 바닥으로 집어던졌다.

“퉷!”

조련사가 바닥을 구르면서도 입 안에서 시커먼 무언가를 위일청에게 내뱉었지만, 그가 연검을 휘둘러 막아내며 몸에 닿지 않도록 막아냈다.

“크르륵… 끄윽…”

“… 자결했나…”

입 에서 거무죽죽한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진 조련사의 시체를 바라보며, 위일청은 조심스레 코와 입을 가리고 그의 시체를 뒤적였다.

독을 쓰는 자들은 항상 몸에 해독제를 같이 들고다니는 말 때문에 그의 몸을 뒤졌지만, 나온 것은 해독제가 아닌 전혀 물건이었다.

‘이건…’

열쇠꾸러미였다.

혹시 몰라 열쇠꾸러미를 챙겨두고 다시 그의 몸을 조금 더 뒤적거리자 소매 안에서 침통과 함께 투명한 액체가 든 약병을 두 어개 발견했다.

둘 중 무엇이 독인지, 약인지, 아니면 둘 다 독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기에 위일청은 두 개의 약병 또한 챙긴 뒤 백리소현을 부축했다.

“소현, 일단은 쉬고 있으세요.”

“… 응.”

“몸은 어떤가요? 혹시 감각이 없어진다거나 통증은…”

“… 없어. 그냥 힘이 안 들어가는 것 뿐이야.”

“알겠습니다. 일단 안전한 곳으로 소현을 옮겨두고…”

그 때, 멀리서 현진 도사의 외침이 들렸다.

“위 공자!! 강시 몇 놈이 빠져나갔소!!”

“… 소현, 여기 있으세요.”

“그어어어!!!!”

세 구의 강시가 괴성과 함께 위일청에게 달려들었으나 금세 그의 연검에 의해 목이 사라졌다.

“현진 도사님! 백리 소저가 독에 중독되어 움직이질 못 합니다!!”

“이 쪽도 한계요!”

현진의 대답을 들은 위일청은 이를 악물었다.

‘수색은 못 끝냈고, 소현은 중독되었고, 적은 너무 많다…’

누구라도 도와줬으면 좋겠다 위일청이 바라고 있을 즈음.

“위… 위 오라버니!”

“응?”

담벼락을 넘어 누군가가 날아들었다.

“은 소저?”

“위 오빠!”

반가움을 채 표하기도 전에 은관영을 뒤따라 검은 옷을 입은 세 명의 무인이 그녀를 따라 담을 넘었다.

“이익…!”

은관영의 손에 피딱지가 앉은 것을 보자 이미 추격자를 몇몇 정리한 듯 보였다.

그녀가 자신에게 비도를 날리는 살수의 검을 피하고는 돌아서며 진각을 밟고, 회전을 실어 주먹을 깊숙이 꽂아넣었다.

팡!

경쾌한 파공성과 함께 얼굴을 노리고 휘두른 은관영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추적자가 비어있는 은관영의 배를 노리며 칼을 찔러들어갔지만…

퍽!

“커헉!”

은관영의 무릎이 그보다 빨리 무인의 배에 꽂혔다.

무릎에 얻어맞은 무인이 그대로 튕겨나가며 담벼락에 꽂히자, 은관영이 거친 숨을 내쉬며 위일청에게 말했다.

“하아… 하아… 위 오빠. 저 좀 도와주세요.”

“그러죠. 헌데 도움이 없어도 괜찮은 게…”

“… 그게 아니에요. 쟤네 머리통을 부수는 게 아닌 이상 죽여도 안 죽어요.”

“… 네?”

은관영의 말과 동시에 담벼락에 꽂힌 무인이 벌떡 일어나 몸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내고는 다시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 모습을 보고 위일청이 연검을 고쳐잡았다.

“… 정말이네요.”

“당가위의 수하들이에요. 오빠 쪽은 어때요? 저희 쪽에 소소 아가씨는 없었어요.”

“… 저희 쪽은 아직 수색이 덜 끝났습니다. 현진 도사가 강시 무리들을 막아주고 있긴 한데 소현이 당가의 인물한테 중독돼서 싸울 수가 없어요.”

“큰일이네요.”

“령은 어디 있습니까? 같이 있어주면 큰 힘이 될 텐데…”

“그게…”

은관영의 얼굴이 어두워지자, 위일청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 무슨 일 있습니까?”

“당가위와 함께 온 괴인이 있는데 엄청 강해요. 그 자에게 제압당했어요.”

“네?”

은관영의 말을 듣는 순간, 위일청의 내공이 폭사하듯 뿜어져나왔다.

“… 령은 어디 있습니까?”

“객잔에요.”

“…”

위일청은 뜨거워진 머리를 식히기 위해 애쓰며 고민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내려야 최선의 선택인지 찾기위해 애썼다.

그리고 결심했다.

“… 관영. 일단 추적자를 참하고, 강시 무리들을 모두 없애죠.”

“네?”

“안 되겠습니다. 힘을 아낄 때가 아니군요.”

“알았어요. 혹시 소현 언니를 중독시킨 자의 시체는 뒤져보셨나요?”

“약병 두 개를 찾았습니다. 뭐가 해독제인지 알아볼 수 있나요?”

“주세요. 할 수 있어요.”

“여기 있습니다. 소현을 부탁합니다.”

“… 네.”

위일청은 은관영과 교대하듯 그녀에게 약병을 건네주고는 추적자들과 마주 섰다.

아까까지만 해도 혹시 모를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위일청은 가능한 내공을 아끼면서 싸웠다.

강시의 수도 너무 많았고, 백리소현과 현진 도사를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진은 무사했고 백리소현은 은관영에게 맡겼다.

더는 거리낄 게 없는 상황에서 독고령이 위험에 처했을 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듣자 위일청은 더 이상 내공을 아낄 필요가 없었다.

“음?!”

위일청의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기운이 조금씩 커지며 추격자들을 짓눌렀다.

“으윽…!”

잠시 저항하긴 했지만, 위일청의 내력이 너무나 강했기에 추격자들은 결국 버티지 못 하고 무릎을 꿇었다.

“커헉…! 어… 어떻게 이런 내공을…!”

하지만 위일청은 그들의 의문을 풀어줄 생각이 없었다.

팍!

양 손의 연검을 땅으로 내리꽂으며 그가 중얼거렸다.

“용사비등(龍蛇飛騰)”

그의 연검이 마치 의지를 가진 생물처럼 바닥을 뚫고나와 하늘로 솟아올랐다.

“끄륵…!”

두 연검이 추적자의 목을 궤뚫었다.

“화사첨족(畵蛇添足)”

위일청이 튕기듯 연검을 흔들자, 두 추적자의 목에 박힌 연검이 좌우로 흔들리며 목을 뜯어냈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동료들의 머리를 보며 망연자실한 추적자를 보며 위일청은 다시 손으로 되돌린 검을 휘둘렀다.

촤악!

마지막 남은 추적자의 목까지 바닥에 툭 떨어져 미동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위일청이 고개를 돌렸다.

“관영, 소현을 지켜주세요. 저는 현진 도사님과 함께 강시를 정리하고 객잔으로 가보겠습니다.”

“… 조심하세요, 위 오빠.”

“네, 관영도요.”

위일청이 현진 도사가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현진은 생각보다 훨씬 잘 버티고 있었다.

무당의 무공이 강시들의 공격을 막아내기에 상성이 좋았을 뿐만 아니라 좁은 길목을 버티고 선 현진에게 지형의 유리함도 있었다.

가끔 몇몇 강시가 그 틈을 비집고 나가긴 했지만, 파도처럼 끝없이 밀려드는 강시의 무리를 홀로 상대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는 분명 선방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위일청에게 선방하는 정도로는 부족했다.

‘한 번에… 다 없앤다!’

독고령이 제압당했다는 얘기를 듣고 위일청의 머리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가빠지는 호흡과 빨라지는 심장을 억지로 짓누르고 평정심을 찾기 위해 애쓰며 그는 서서히 내공을 끌어올렸다.

때마침 강시들이 몰려드는 게 파도와 같았기에 위일청은 지금이야말로 큰 한 수를 쓰기 적절한 때라고 생각했다.

검후의 절기, 바다를 잠시라도 반으로 가르는 해랑섬(海浪閃)에 이르지는 못 했지만 그 절기에 도달하기 위해 애쓰며 위일청은 새로운 무공을 창안해냈다.

잠긴 물고기가 물결에서 뛰놀고 있는 것을 보고 지은 이름, 잠어약청파(潛魚躍淸波).

가장 첫 초식은 바다 깊은 곳의 물고기를 한 번에 궤뚫을 수 있는 어관(魚貫).

그 다음 초식은 파도가 칠 때마다 일어나는 거품을 한 번에 지우는 검, 포말몽환(泡沫夢幻).

그리고 지금 그가 펼칠 초식, 바다를 가르는 초식의 바로 앞 단계인 거센 파도와 물결을 잠시 잠재우는 검.

“위 공자…?”

“현진 도사님, 제가 신호를 주면 숙이세요. 절초를 쓸 생각입니다.”

“… 예!”

자신의 등 뒤에서 어마무시한 내공을 끌어올리는 위일청을 느끼며 현진이 이를 악물었다.

온 신경을 집중해 눈 앞에 들이닥치는 강시의 떼를 막아내던 현진 도사의 귀에 위일청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흡!”

몰려드는 강시떼를 무시하고 급하게 엎드린 현진의 귓가에 파도가 치는 소리가 들렸다.

잠어약청파(潛魚躍淸波) 파랑섬(波浪閃).

위일청이 지은 이름대로 보타문에서 본 서해의 넓은 바다의 높고 거센 파도를 잠재울 것만 같은 거대한 검기가 강시 떼를 덮쳤다.

그리고…

“… 원시천존이시여.”

파도가 절벽에 부딪혀 흩어져 사라지는듯한 고요가 찾아왔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장내와 시산혈해를 이룬 풍경을 보고 넋이 나간듯 연신 도호를 외우던 현진이 위일청을 돌아보았다.

“이… 이런 게 있으면 진즉에 쓰셨다면…”

“후우… 보시다시피… 하아… 후폭풍의 여파가 심한 기술이라…”

“…”

온 몸에서 땀을 흘려내며 연신 거친 숨을 내쉬는 위일청을 보고 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지금 위일청의 상태를 보니 절초를 쓰고도 모든 적을 마무리하지 못 했을 때, 역으로 그가 위기에 처할 듯 했다.

그 때, 강시의 잔해 속에서 몇몇 강시들이 일어났다.

“끄어어…!”

“하아… 현진 도사님…”

“알겠소. 남은 잔당들은 내가 처리하겠소. 위 공자는 잠시 쉬고 계시오.”

“후우… 부탁합니다.”

위일청이 털썩 바닥에 주저앉는 것을 보고 현진이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한 순간 가진 내공의 절반 정도를 쏟아부으며 탈력감이 찾아오자 위일청은 바닥에 앉아 숨을 돌렸다.

‘령…’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일어나 그녀를 구하러가고 싶었으나 이 상태로 움직여봐야 되려 짐만 될 뿐이란 생각에 위일청은 이를 악물었다.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령.’

한시라도 빨리 몸을 움직일 수 있길 바라며 위일청은 연신 독고령만 떠올렸다.

*

“… 지루하군.”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던 당가위는 입을 쩍 벌리며 하품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여전히 멈춰서있는 혈라와 독고령을 바라보았다.

‘왜 이리 오래 걸리는 거지?’

혈라가 말했던 한 다경(15분)은 진즉에 다 지나간 듯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눈을 뜰 생각이 없어보이자, 당가위는 일말의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 설마 독고령의 정신력이 교주보다 강한 것인가?’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가 금세 당가위는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혈교주는 혼자가 아니었다.

전대 혈교주의 영혼이 그와 함께 하였으니 무려 10인의 영혼이 독고령과 싸우는 것이다.

게다가 그 10인의 영혼이 단순한 영혼이던가?

하나같이 천하를 호령하던 절대자의 영혼이었다.

독고령이 아무리 드세다한들 이겨낼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혈라의 예상보다 좀 더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였으리라 생각하며 당가위는 자신의 수하를 보낸 객잔 안을 들여보았다.

조용해진 객잔의 내부에서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자, 당가위가 입을 열었다.

“일을 마쳤으면 보고를 해야지 왜 아무 말도 없는 게야?”

“이미 말할 수 없는 상태가 돼서 그렇소, 당가위.”

“음?”

휘잉!

자신의 눈을 향해 날아온 철시(鐵矢)를 붙잡으며 당가위가 인상을 찌푸렸다.

“… 기문진식이라도 깔아놨나보군.”

“그대의 수하는 이미 다 죽었소. 우리는 이 곳을 나갈 생각이 없고.”

“클클클, 노부를 우습게 보는구만.”

우드득.

맨 손으로 철시를 깨부수며 당가위가 서서히 내공을 끌어올렸다.

“노부가 고작 하오문의 기문진식에 겁내리라 생각하더냐?”

당가위가 뒷짐을 지고 여유롭게 발을 들어올리고는.

쿵!!

거세게 진각을 내지르자, 객잔의 바닥에 금이 갔다.

객잔 전체가 흔들리자, 당가위는 웃으며 발을 들어올리고는, 또 한 번 진각을 내질렀다.

“몇 번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쿠궁!!

“노부는 다섯번이면 무너지리라 생각하네.”

쿠구궁!!

“이대로 잔해에 깔려죽게 만들어주지.”

쾅!!

네 번째 진각을 내지르는 순간, 객잔의 기둥이 비명을 내지르듯 쩌적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노부의 생각이 맞았군.”

다시 한 번 발을 들어올려 이대로 객잔을 무너뜨리리라 마음 먹고 진각을 내지르는 순간.

“고약한 아이구나.”

“음?”

어린 소녀가 내리찍는 당가위의 발을 자신의 발로 막아섰다.

순간 혈교주가 대법을 마쳤나 싶어 뒤를 돌아본 당가위는 여전히 혈라가 멈춰있는 것을 보고 다시 고개를 돌려 소녀를 쳐다보았다.

“설마…”

“네 놈이 당가위렸다?”

어린 소녀의 몸이라고 얕보기엔 너무나 거대한 내력이 그의 발을 밀어내 당가위를 넘어뜨렸다.

“아… 아아아…”

“오늘 네 장난은 용서하기 힘들더구나. 본녀가 벌을 내릴 터이니 달게 받거라.”

검후, 서교가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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