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61 17장. 애는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 (7)
혈라는 입이 찢어질듯 광소를 터뜨리며 독고령에게 손을 뻗었다.
“네가 내 육체가 되거라.”
“…뭔 개소리야?”
독고령은 눈 앞에 서있는 귀신처럼 생긴 자를 만나자 혼란에 빠졌다.
일영기를 막아낼 정도의 고수, 게다가 당가위보다 윗사람인듯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 혹시 혈교주냐?”
“오, 나를 아는구나?”
“시발.”
혈라가 쉽사리 인정해버리자, 독고령은 도를 고쳐잡았다.
무림에서 무공만으로 가장 많은 두려움을 받는 자가 천마신교의 교주라면 가장 기괴하고 끔찍한 일을 벌이기에 두려움을 받는 자는 혈교의 교주였다.
그 말대로 그는 기괴했다.
남자의 모습을 한 채 여자의 목소리를 따라하듯 말하는 것부터 일단 불쾌했고 기괴하게 자라 붉은 빛을 내뿜는 손톱은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뭐하러 온거지?’
독고령은 혈교주가 내뱉은 말들을 하나씩 다시 떠올렸다.
‘태극을 완성한 이, 새로운 육신…’
그리고 객잔 안에 누가 있는지 떠오르자 독고령의 머릿속에 모든 일들이 하나로 이어졌다.
남궁소소의 납치, 그를 이용해 남궁진에게 검후를 잡으라며 협박, 그리고 지금 나타난 혈교주까지.
‘주하가 목표다!’
아마 원래는 검후의 눈을 돌려놓고 주하를 강탈하러 찾아왔으리라.
하지만 지금 그의 목표가 주하에서 독고령으로 옮겨졌다.
‘육체는 어떻게 뺏는거지? 사술? 그럼 내가 뭘 할 수 있나? 시발, 돌겠네 진짜…’
독고령이 도를 뽑아들고 망설이고 있자 혈교주가 히죽거리며 물었다.
“무슨 생각을 하니?”
“너를 어떻게 쳐죽일까?”
“으캬캭! 재밌는 아이구나! 당가위, 저건 내가 가지 마. 마음에 들었어.”
“이 곳에서 바로 이혼대법을 하려고 하십니까?”
“한 다경(15분)이면 끝나는데 뭘.”
“알겠습니다.”
당가위가 한 걸음 물러서고, 혈라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자 독고령이 칼을 휘둘렀다.
“새끼들이 나 빼고 무슨 개지랄이야!!”
다시 한 번 일영기를 끌어올려 혈교주를 베려했으나…
쿠궁!
또 다시 막힌 일영기를 보고 독고령이 이를 악물었다.
‘이 새끼…!’
아까보다 더 많은 내공을 끌어올려 휘둘렀음에도 막히자, 독고령이 왼손에서 연검을 꺼내들어 혈라의 눈을 향해 검을 쏘아냈다.
“검이랑 도를 같이 쓰네? 신기해라.”
챙!
하지만 혈라는 손톱 사이에 연검을 끼워 손쉽게 막아버리곤 역으로 독고령을 끌어당겼다.
“윽…!”
“어디… 무공만큼 정신력도 강한지 볼까?”
“무슨 개소리를…!”
혈라와 가까워지자 독고령은 그의 코를 머리로 들이받으려고 했다.
하지만.
콰직!
“말괄량이구나. 얌전히 있으렴.”
“이익…!”
혈라의 손에 붙잡히는 순간, 독고령의 세상이 한 순간 어두워졌고…
“흐억!”
다시 눈을 뜨자 풍경이 휙 바뀌었다.
“… 시발, 뭐야?”
혈교주의 손에 붙잡히는 순간, 의식이 훅 날아갔다.
정신을 차린 뒤, 시야에 들어오는 광경은 별세계였다.
“이건 또 무슨 사술이야, 시발…”
바닥에선 타오르는 불이, 하늘에선 차디찬 눈보라가 내리치는 기이한 광경이었다.
현실에 이런 광경이 존재할리 없다고 생각한 독고령은 분명 혈교주가 쓴 사술이라 확신하고 어떻게 깨부숴야할지 주변을 둘러보는 와중…
“… 넌 뭐냐, 시발?”
“넌… 또 뭐야, 시발.”
독고진을 마주쳤다.
‘… 들어가셨군.’
초점이 흐릿해진 독고령과 혈라를 보며 당가위가 둘의 옆에 자리잡았다.
‘산 사람의 혼을 없애버리고, 그대로 그 육체를 차지해버리는 술법이라…’
이혼대법(移魂大法).
글자 그대로, 혼을 다른 육체로 옮기는 혈교의 비전.
옮기는 육체가 음기와 양기를 모두 가지고 있어야하고 음양의 일원화까지 이루어내야하는 까다롭기 그지없는 조건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 조건만 맞춘다면 교주는 영원불멸할 수 있는 무서운 술법.
‘… 그래도 드디어 여자의 육체로 들어가는군.’
이번대의 교주는 본래 여성의 몸에 들어갔어야했는데 검후에게 전이할 육체를 빼앗기며 문제가 생겼었다.
급하게 공수한 남성의 몸에 혼을 옮긴 뒤, 부작용으로 온전한 힘을 발휘하지도 못 하고, 남자의 몸로 여자의 말투를 흉내내는 기괴함이 사라지리라 생각하자 당가위는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본가의 비원이… 음?’
그 때, 당가위는 멀리서 시선을 느꼈다.
“나오시게.”
시선이 느껴진 방향을 향해 입을 열었으나 아무런 대답도 없자, 당가위는 소매에 손을 집어넣어 우모침을 집었다.
“안 나온다면…”
그의 손이 보이지 않는 속도로 움직이며 침을 쏘았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마저 없이 날아간 침이 나무를 궤뚫어 그 뒤에 있는 누군가를 향해 쏘아지자…
“도사님!!”
“네!!”
두 명의 신형이 좌우로 흩어졌다.
“… 같이 온 쥐새끼가 있었군.”
하나는 도사라 불렸으니 도인일테고, 다른 하나는 은발의 양갈래 머리였다.
‘어차피 대법이 완성되면 쥐새끼들은 상관없지만…’
혹시나, 만에 하나의 문제를 대비하기 위해 당가위는 주변에 숨어있던 수하들을 불렀다.
“… 부르셨습니까, 맹주님?”
“쥐새끼 두 마리가 도망쳤다. 쫓아라.”
“존명.”
“아, 그리고 반은 여기 남아서 객잔 안을 정리하도록. 혹시 모르니 교주님의 이전 육신도 찾아두는 게 낫겠군.”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독은 쓰지 말거라, 대법이 진행 중이니.”
“예.”
수하들이 흩어지는 것을 확인한 당가위는 뒷짐을 지며 얼굴에 미소를 띄웠다.
‘모든 게 완벽하군. 하늘마저 본가를 돕고 있구나.’
당가위는 빨리 혈라가, 독고령의 몸에서 깨어나길 기다리며 그녀를 지켜보았다.
‘… 근데 이 년은 누군데 내게 그런 살의를 품은거지?’
특이한 머리색이었다.
선명한 붉은색.
‘… 설마?’
자신에게 강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데다가, 특이한 머리색, 여성, 도객.
하나씩 그가 가진 정보들이 서로 맞춰지자, 당가위는 결국 웃음을 참지 못 했다.
“독고령! 네 년이 독고령이구나!! 으하하핫!!”
그리도 찾던 원수의 딸이 하필이면 혈교주의 육체에 적합하다니.
“광마 그 개자식의 얼굴이 볼만하겠구나!!”
당가위는 빨리 혈교주가 독고령의 육체에서 일어나길 바랬다.
그리고 혈라가 깨어나면 간곡한 부탁을 하나 청할 셈이었다.
그 몸으로, 당문의 원수인 독고진을 참해달라고.
*
사발팔방으로 뻗친 정리 안 된 산발의 머리.
팽팽하게 부풀어올라 당장이라도 터질듯이 붉게 타오르는 근육.
자신의 두 배 정도 되어보이는 덩치.
그리고 그가 어깨에 걸친 익숙한 자신의 옛 애병, 참마도까지.
아무리봐도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것이 독고진이란 것을 깨닫자…
“이 십새끼가 써도 별 좆같은 사술을 다 썼네?”
독고령은 대뜸 유성도를 뽑아들었다.
“사술? 좆까고 나가. 여긴 내가 자리잡았어, 새끼야.”
“뭐래, 시발. 네가 찾아온거지.”
“어린년이 입이 걸… 저건 또 뭐냐, 시발?”
“엉?”
독고진의 시선이 자신의 등 뒤로 향하자, 독고령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 곳에는 열 명의 괴인이 서있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남성부터 방금 마주친 혈라까지.
나이도, 성별도, 외형도 각양각색이었지만 그들은 모두 붉은 눈에, 길게 뻗은 손톱을 가지고 독고령과 독고진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으캬캬캭! 이거네. 보세요, 초대. 저 어린 나이에 어떻게 태극을 합쳤는가 했는데 저게 비밀이네요.”
“… 재밌는 걸 찾았구나.”
초대라고 불린 남성이 기분나쁜 미소와 함께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말 특이한 심상(心象)이야. 한없이 뜨거운 불과 차가운 눈보라가 공존하고, 남자의 자아와 여성의 자아가 함께하는 이라. 이런 자는 처음이야.”
“그러게요, 초대.”
“후후훗, 다음 육신을 구할 때는 이런 식으로 반 강제로 태극을 이뤄놓는 것도 좋겠네요.”
혈교주를 포함한 10인의 괴인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 뒤에 있던 독고진이 독고령을 툭 건드렸다.
“야, 꼬맹이.”
“뭐, 시발? 내가 왜 꼬맹이야?”
“존나 작으니깐 꼬맹이지. 아무튼 저 새끼들. 네가 데리고 온 거냐?”
“나 아니야, 시발.”
“누군지는 아냐?”
“… 한 새끼는 확실히 내가 아는 새끼인데 나머진 다 모르겠네.”
“한 새끼가 누군데?”
“저 끝에 장발머리하고 쪼개는 새끼. 혈교주라더라.”
“허. 혈교주한테 쫓기냐, 너?”
“내가 쫓은거야, 새끼야. 저 새끼가 당문이랑 붙어먹었어.”
“당문?!”
“광증 올라온다, 좀 식혀라.”
“당문 그 개새끼들은 어딨지?”
“저 새끼들한테 물어봐. 나도 몰라, 시발. 당가위 잡으려다가 저 새끼랑 만났어. 아니, 근데 시발 넌 왜 내가 아는 걸 모르냐?”
“뭐라는 거야, 미친 년이.”
“하… 돌겠네, 진짜.”
독고령은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기묘한 일과 눈 앞에 위치한 10명의 괴인, 게다가 이 정신나갈것 같은 주변 풍경에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그 때, 독고진이 외쳤다.
“어이, 십새끼들아!!! 거 시발, 니들끼리만 아는 얘기하면서 쳐웃지 말고 같이 좀 웃자!”
“그래, 시발! 말 잘했다, 나.”
독고령이 독고진의 허벅지를 툭 때리면서 말하자, 독고진이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왜 너냐?”
“넌 나야, 시발놈아.”
“알 수 없는 새끼네, 이거.”
독고진이 툴툴대며 넘어가자, 초대라고 불린 이가 앞으로 걸어나왔다.
“음… 심상의 세계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후대들을 제외하고 참 오랜만이야. 안녕? 나는 초대 혈교주다.”
“야, 꼬맹이.”
“왜?”
“초대 혈교주가…”
“천 년도 전의 사람 아닌가?”
“그렇지? 저 새끼도 약간 광증이 있어보이네.”
“크하핫! 미친 놈.”
독고령과 독고진이 서로 시시덕거리고 있자, 그 모습을 보고 초대가 피식 웃었다.
“그래, 이해할 수 없겠지. 이건 본좌가 만든 지고의 영역에 도달한 술법이야. 타인의 심상에 들어가 영, 혼, 백을 걷어내고 육을 가로채는 주술이지.”
“…”
“…”
독고령과 독고진 둘 다 입을 다물었다.
초대가 두 팔을 벌리고, 눈을 감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영혼은 불멸하고, 윤회는 계속 거듭되는 법이야. 저 소림의 멍청한 중놈들이 번뇌를 없애고 윤회를 하겠다고 난리를 피우는 동안, 나는 부처를 뛰어넘었어.”
“… 저 새끼, 미친 놈같지?”
“미친 놈 맞네. 내가 봐도 미쳐보이거든.”
“어이, 미친 놈!”
독고령이 초대에게 외쳤다.
“본좌를 부른거냐?”
“그래, 미친 놈아. 너 존나 미친 놈처럼 보여.”
“… 본좌에게 이런 폭언을 하는 년은 처음 만나는구나.”
“내가 예의를 배워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건 넘어가고. 그럼 니네 전부 혈교주냐?”
“… 그래.”
“손톱 좀 깎고 살아라, 새끼들아. 진짜 존나 기괴하네.”
“무례함이 도를 넘는구나.”
초대라 불린 이가 손을 휘둘렀다.
“윽…!”
갑작스레 날라온 거대한 기운이 독고령을 덮쳐드는 순간.
쾅!
독고진이 참마도를 휘둘렀다.
“어이, 꼬맹이.”
“아이, 시발. 꼬맹이 아니라고. 내가 너라니깐?”
“난 남자야, 미친 년아.”
“시발, 돌겠네.”
“아무튼 저 새끼들이 당문이랑 붙어먹었고, 저 개새끼들 족치면 당가위도 조질 수 있는거지?”
“그렇지, 시발.”
“그럼 조져야겠네. 나서지 마라.”
“뭐래, 시발.”
챙!
독고령이 유성도를 뽑아들었다.
“저 새끼는 애초에 내가 조질려고 했거든?”
“당문 모가지는 내가 딴다.”
“내가 딸 거야, 새끼야!”
“뒤질라고.”
“뭐? 서열 정리 한 번 해볼까?”
“… 재밌구나.”
초대가 스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본좌를 앞에 두고 망발을 하는 것도 그저 정신 나간 놈들이라 생각했거늘, 혼의 일원화도 못 이뤄 자아끼리 다투는 놈이 본좌를 무시하는 꼬락서니라니.”
“… 저 새끼 화났나본데?”
“그러게. 새끼 좀 무섭네.”
“… 아직도 정신 차리지 못 했구나. 됐다. 이제 곧 사라질 놈들이거늘.”
초대가 선혈빛 내공을 끌어올려 심상의 세계를 조금씩 핏빛으로 물들였다.
그리고는 손을 들어올리고, 뒤에 서있던 9명의 괴인들에게 명령했다.
“둘 다 죽여라.”
“으캬캬캭!!”
9명의 괴인이 동시에 독고령과 독고진을 향해 뛰어들었다.
“누가 누굴 죽여?!”
“꼬맹이, 뒤로 빠…”
“너나 빠져, 새끼야!”
“이 미친 년이!”
독고령과 독고진이 서로를 다투며 앞으로 튀어나가 9명의 괴인과 맞부딪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