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8 17장. 애는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 (4)
“…”
“괜찮아요, 독고 소저?”
“누님?”
갑자기 독고령이 멈춰서자, 다른 두 일행이 걱정스레 물었다.
“쓰읍… 괜찮겠지?”
“위 오빠 걱정 좀 그만하고 우리 걱정도 해주세요, 독고 소저.”
“걱정은 무슨. 니들은 나랑 붙어있잖아. 내 뒤에만 숨어있으면 다 괜찮아.”
“오… 역시 누님이십니다!”
“새꺄, 내가 이런 사람이야.”
“… 너무 날뛰지만 않으시면 좋겠네요.”
“무슨 소리야?”
독고령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당문 새끼들의 수하니깐 최대한 날뛰어야지. 소소가 있든 없든 미친듯이 날뛰고 다 깨부술건데?”
“하아… 위 오빠랑 같이 갈 걸…”
은관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서? 우리가 가는 곳은?”
“… 중소문파예요. 철혈문이라고 합비에서 나름 뼈가 굵은 문파고요.”
“문파라… 문도수는?”
“자세힌 몰라요. 저희가 추정하기론 100여명 정도인데… “
“100명? 그럼 별 문제 없는 거 아니야?”
“문도보다는 문주가 문제라서요. 아마 독고 소저가 맡아주셔야할 거 같아요.”
“철혈문주? 못 들어본 거 같은데.”
“이렇게 말하면 아시겠죠.”
은관영이 독고령의 허리춤에 매달린 유성도를 보며 말했다.
“도존(刀尊).”
“아… 혹시 그 도선이랑…”
“네.”
“그 새끼가 여기 있구나…”
독고령이 독고진이던 시기, 도선이 한창 쫓아다니면서 자주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네라면 도존의 자리를 뺏을만하네! 합비로 찾아가보게.]
팽가주, 팽유덕이 막 도선의 자리로 올라가자 그 빈 자리를 꿰찬게 바로 철혈문주였다.
팽유덕은 독고진의 실력이 더 뛰어나다 생각해 그를 이기고 독고진이 그 자리를 차지하길 바랬으나, 애석하게도당시의 독고진은 합비 근처에 얼씬할 생각도 없었다.
남궁원청의 심검에 겁을 먹고 안휘성 인근에 위치한 합비에 들릴 생각도 없던데다 도존이라는 칭호에 굳이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다.
어차피 밑에서부터 올라가면서 차근차근 한놈씩 잡아나가면 언젠가 만나지 않을까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이런 곳에서 마주치다니 참 얄궂다 생각하며 독고령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오냐, 그 새끼는 내가 맡으마. 근데 철혈문주 걔는 뭔데 당문이랑 붙었다고 생각하는거냐?”
“… 아내가 모용세가 사람이고, 당가위랑 친해요.”
“확정이네. 소소는 거기 있다.”
“… 가봐야 알죠.”
“촉이 왔어, 아무튼 거기 있을 거 같아.”
“무슨… 다 왔네요. 이제 실없는 얘기는 그만하고 집중하시죠.”
“저기냐?”
“네.”
독고령이 손을 들어 가르키자, 그 곳엔 용사비등한 필체로 철혈문이라 적힌 건물이 하나 있었다.
대문부터 뿜어져나오는 기운이 범상치 않았기에 독고령은 조금씩 짜증이 솟아올랐다.
“힘 깨나 쓴다는 새끼가 당문 새끼들이랑 붙어먹어서 어린애를 납치했다 이거지?”
“도… 독고 소저? 저희는 일단 천천히 주변을 살핀 다음에…”
“그딴 게 어딨어! 내가 101명 다 감당하면 되는거지, 시발.”
“엑?!”
“소소는 니네가 찾아. 내가 화려하게 이목을 끌어주마.”
“도… 독고 소저!”
말리기도 전에 대문을 향해 돌진하는 독고령을 보고 은관영은 머리를 싸맸다.
“으아아…! 이래서 독고 소저랑 같이 오고 싶지 않았는데엑!!!”
“호탕하신 게 역시 누님이십니다! 따르겠습니다!!”
“청운 도사님은 나 따라와욧!!”
“… 예.”
독고령이 달려나아가 그 기세 그대로 정문을 깨부셨다.
콰광!
“뭐… 뭐냐?!”
“누구냐?!”
“습격인가? 여기가 감히 어딘지 알고…!”
갑작스런 침입자에도 불구하고 일사분란하게 칼을 뽑아드는 철혈문도들을 보며 독고령은 내심 감탄했다.
‘제법 단련된 새끼들이구만. 패는 맛이 있겠네.’
독고령이 숨을 크게 들이쉬곤, 외쳤다.
“소소야!!!! 언니 왔다!!!!”
“무슨… 당장 저 년을 붙잡아라!”
“예!”
철혈문도들이 독고령을 둘러싸자, 그녀가 천천히 유성도를 뽑아들었다.
스르릉.
“움직이지 마, 새끼들아.”
서슬퍼런 칼날에 달빛이 비치며 밝게 빛났다.
그저 검을 뽑은 것 뿐인데 순식간에 달라진 독고령의 기세에 철혈문도들이 머뭇거리는 걸 보고 그녀가 나직이 경고했다.
“지금부터 나한테 덤비는 새끼들은 다 죽는다. 운 좋게 살더라도 어디 하나 잘려나가게 될 거라 약속하지.”
“무… 무슨…”
“덤빌거면 한 번에 다 덤비고, 안 덤빌거면 니네 문주 데리고 와.”
“허튼…”
“당장!!”
“으윽…!”
독고령이 내공을 담아 사자후를 내지르자, 문도의 뒤 쪽에서 굵은 목소리가 답했다.
“… 무슨 일로 본좌를 찾는가?”
“본좌는 지랄. 네가 도존이냐? 철혈문주?”
“그래, 본좌가 철혈문주다.”
문도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길을 비키자, 그 사이로 남들보다 머리가 한 개 정도 더 클듯한 거한이 거대한 도를 손에 들고 걸어나왔다.
“남궁소소 어딨어?”
“무슨 말이지?”
“당가위가 맡긴 게 있을텐데?”
“…”
그 말을 듣고 철혈문주가 한숨을 내쉬었다.
“… 당가위가? 내게?”
“새끼. 모르는 척 하는 거 봐라.”
“본좌가 당가위와 친하긴 하나 그에게 뭘 부탁받은 적은 없어. 그리고 아까부터 말이지…”
철혈문주가 살벌한 기운을 끌어올렸다.
“상당히 건방지군. 젊은 처자가 입이 걸해.”
“꼬우면 어쩌려고?”
“선배된 도리로서 세상이 무서움을 가르쳐줘야겠지.”
“가르칠 실력은 되고?”
“직접 확인해보게.”
철혈문주가 검을 고쳐잡고 기수식을 취하자, 독고령 또한 기수식을 취하며 씨익 웃었다.
“그래, 이게 편하지.”
“… 과연 편할지 아닐지는 직접 확인해보게.”
“오냐!!”
독고령이 유성도를 휘두르며 철혈문주에게 뛰어들었다.
철혈문주와 독고령이 벌써부터 싸움을 시작한 것을 보고 담 너머로 몰래 지켜보던 은관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못 살아, 진짜…”
“은 소저, 저희는 어떻게 합니까?”
“어떻게 하긴요. 구경만 할 게 아니잖아요. 독고 소저는 다 때려부숴야 성이 풀리는 성격이니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저는 안 그래요오. 소소 아가씨를 찾아야죠.”
“안 도와줘도 됩니까?”
“도와주긴요. 존급을 상대로요?”
“… 하긴 그렇군요.”
“그리고 생각보다 괜찮아 보이네요.”
“예?”
은관영이 피식 웃었다.
“진짜 재능덩어리라니깐…”
둘의 도가 맞닿으며 첫 한 수를 교환하는 순간, 승패는 정해진 듯 보였다.
독고령은 의기양양하게 웃었고,
철혈문주의 얼굴에는 난처함이 떠올랐다.
아마도 승패가 갈리는 것은 시간문제이리라 생각하며 은관영이 말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죠. 청운 도사, 아까 제가 준 지도 외웠죠?”
“예, 외워뒀습니다.”
“반씩 나눠서 조사하죠. 혹시나 누군가에게 걸린다면 그냥 일단 크게 소리지르세요. 제가 도와주러 갈게요. 소소 아가씨를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니깐요오.”
“알겠습니다. 그럼 좀 이따 뵙죠.”
“네.”
멀리서 독고령이 광소와 함께 검기를 흩날리는 것을 보며 은관영이 담 너머로 몸을 날렸다.
‘이 작전도 나쁘지 않네요…’
독고령은 화려했고, 주변의 철혈문도는 어느새 그녀가 침입자란 것도 까맣게 잊은 채 넋놓고 독고령의 신위를 구경하고 있었다.
덕분에 담을 훌쩍 넘어도 발견하는 이 하나 없었다.
‘그럼… 독고 소저가 다 때려부수기 전에 소소 아가씨를 찾아볼까요오?’
은관영의 신형이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
남궁진은 초조한 마음으로 올빼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오문에서 연락은… 아직 멀었는가…’
검후가 무림맹에 거의 다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음에도 아직까지 남궁소소를 구출했다는 하오문의 연락은 없었다.
물론 어느정도 시간이 걸릴 줄은 알고 있었지만, 가능한 검후가 도착하기 전에 소식을 받고 싶었다.
남궁소소의 안전만 확보된다면 즉시 이 모든 일을 꾸몄으리라 확신하는 당가위를 참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전 맹주님. 검후께서 맹에 들어오셨다 하십니다.”
“… 알았다.”
결국 올빼미는 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 일단 검후님을 만나뵙고 그저 기다릴 수 밖에…’
남궁진이 의복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밖으로 나서려던 순간.
“이제부터 혼나러 가는 어린아이 같소이다, 남궁진.”
“… 당가위.”
“맹주라고 불러주시오. 사사로이 친하지만, 공적인 자리 아니오? 껄껄…”
너스레를 떠는 그를 보고 있자 남궁진은 살의가 치솟았다.
‘벨까? 그냥 죽여버릴까?’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 그의 혀를 잘라버리고 싶은 충동을 꾹 참아내며, 남궁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무슨 일이오?”
“아, 별 건 아니고. 그냥 궁금했소.”
“뭐가 말이오.”
“딸을 잃은 아비의 얼굴 말이오.”
“… 뭐?”
“납치범은 나요. 정확히는 잠시 맡아두었지.”
“당가위…!! 네 놈이 죽여달라고 내게 비는구나!!”
챙!
스스로 당당하게 자신이 딸을 납치했노라 밝히자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남궁진이 검을 뽑아들자, 당가위가 자신은 공격의사가 없음을 밝히듯 두 손을 들어올렸다.
“허어… 어디까지나 우연히 발견했을 뿐이오. 산에서 홀로 울고 있더군.”
“허튼 소리 하지 마라! 당장이라도 죽여주마!!”
“딸을 만나고 싶지 않소?”
“… 뭐?”
“딸 아이가 있는 곳의 위치를 가르쳐드리리다.”
“무슨 속셈이냐?”
“속셈까지야 있겠소. 같이 백도 무림을 위해 힘쓰는 사이에 이제 와서…”
“한 번만 더 허튼 소리를 지껄인다면 그 즉시 혀를 베어주마.”
“농담도 못 하겠군. 참으로 고지식한 성격이오, 검선.”
당가위는 여전히 얼굴에 떠오른 웃음기를 지우지 않고 말했다.
“맹의 지하에 죄수들을 가두는 뇌옥을 기억하시오? 그 곳에 딸 아이를 모셔놨소.”
“이익…!”
습기찬 어둠 밖에 존재하지 않는 곳이 맹의 뇌옥이었다.
그런 곳에 자신의 연약한 딸을 ‘모셔놨다’라고 말하자, 남궁진은 당장이라도 심마에 빠져들 것만 같았다.
그리고 동시에, 이제 와서 이 사실을 밝히는 당가위가 이상했다.
허나 당가위는 의뭉스러운 미소를 띄고 검선을 재촉했다.
“안 가보시오? 딸 아이가 아비를 열심히 찾던데?”
“…”
“늦으면 감기에 걸릴지도 모르오? 뇌옥 안이 상당히 쌀쌀하던데…”
“…결정했다.”
“으음?”
당가위의 조롱을 들은 남궁진은 결심이 섰다.
“지금 이 곳에서 네 놈을 베고 딸 아이의 안위를 확인하마.”
검선의 검이 벼락처럼 당가위의 머리로 떨어졌다.
“이거이거… 무서워서 원…!”
“죽여주마, 당가위!!”
하지만 애석하게도 남궁진의 검은 당가위를 반으로 가르지 못 했다.
독은 가까이서, 암기는 멀리서.
당가가 추구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만들어진 신법은 추구하던 바처럼 거리조절에 능하였다.
한 끗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곡예를 펼치듯 피하는 당가위를 쫓아가며 검을 휘두르는 와중에도 남궁진은 재차 확신했다.
소소는 절대 뇌옥에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 곳엔 자신을 위해 준비해둔 함정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소소야…!’
딸 아이의 위치는 하오문 쪽에서 짚이는 곳이 있다고 했으니 그 쪽이 오히려 가능성이 더 높으리라.
그리고 정 딸의 위치를 확인하고자 한다면 멀리 갈 것도 없었다.
“소소가 있는 곳을 털어놓게 만들어주마!!”
바로 눈 앞에 남궁소소를 납치했으리라 추정되는 흉수가 있다.
“사실을 말해도 믿지 못 하는구려.”
“흡…!”
당가위의 소매에서 보랏빛 독무가 펼쳐지자, 남궁진이 급히 호신강기를 펼쳐 칠공을 보호했다.
“이대로 그대와 같이 노는 것도 좋겠지만, 노부가 또 요즘 허리가 안 좋아서 말이오. 검선의 혈기를 감당키는 어려울 듯 하오.”
쉬익!
그의 말을 끊고 남궁진의 검기가 독무를 가르며 당가위를 베려했으나…
“으음?!”
마치 바위에라도 꽂힌듯, 자신의 검을 붙잡는 누군가가 나타났다.
“그러니 이 분이 그대의 혈기를 막아설 것이오.”
“왜… 여기에…”
낡은 옷, 거뭇거뭇한 피부, 자글자글한 주름, 비루한 몸.
단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눈에 초점이 없을 뿐.
자신의 검을 막아선 이를 보는 순간, 남궁진은 몸이 굳었다.
“묵… 묵선 어르신.”
“클클, 우리도 노리는 게 커서 쓸 수 있는 패는 다 써야하거든. 급하게 공수해왔소.”
“당가위, 이 미친 놈!! 무슨 짓을…”
남궁진의 외침은 묵선이 진각을 밟으며 내지른 일권을 막자 검을 통해 전해지는 막대한 힘을 버티느라 끝까지 이어지지 못 했다.
“크윽…!”
“그럼 나중에 또 봅시다, 검선.”
“당가위!!!!”
독무 사이로 사라지는 당가위를 보고, 검선은 그저 비통하게 외칠 수 밖에 없었다.
“후우… 살벌하구만.”
어느새 등을 축축이 적신 식은 땀을 확인하며 당가위는 한숨 돌렸다.
‘역시 검선, 강하구만. 정면에서 싸우면 승산이 없겠군.’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시간을 끌고, 덤으로 본가를 훼방놓을 요소들을 제거하는 데 있었다.
‘창관에는 조련사가, 병기창고에는 ‘놈’이, 철혈문에는 도존이, 그리고 무림맹엔 묵선까지…’
이 정도면 충분하다 싶을 정도로 과한 대비를 해놨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왜 이렇게 늦었어, 당가위?”
“… 죄송합니다, 교주.”
자신의 처소에 당당히 자리잡고 앉아있는 혈라를 보고 당가위가 고개를 푹 숙였다.
“가주는 같이 안 왔습니까?”
“응. 이번에 권신이랑 싸우면서 강시들이 많이 망가져서 독을 만드느라 바쁘더라고.”
“… 그렇군요.”
“그래서? 검후가 정말 이 곳으로 온 거야?”
“… 예.”
“대어를 낚았네. 빈집털이로 만족할 셈이었는데, 크큭.”
혈라가 훌쩍 자리에서 일어나며 당가위에게 명했다.
“안내해. 검후가 숨겨둔 내 완전한 육신이 있는 곳으로.”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