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마와 색마-157화 (157/225)

EP.157 17장. 애는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 (3)

“… 왔군.”

멀리서 날아오는 하오문의 올빼미를 보고, 무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행동을 시작하라는 뜻이었다.

“움직이자.”

“예, 막주.”

남궁소소가 있으리라 은관영이 예측한 세 곳 중 하나, 북쪽을 담당한 무명은 객잔에서 나오자마자 수하들과 함께 주변 일대를 훑었다.

목표는 합비의 외곽에 떨어진 산장이었다.

얼핏 보면 표국으로 오인할만큼 거대한 산장은 삼엄한 경비와 함께 무언가를 숨기듯 내부를 꽁꽁 가로막고 있었다.

하지만 중원 제일의 살수, 무명의 눈으로 보기엔 빈틈 투성이였다.

“7호에서 10호까지는 미리 얘기해둔데로 주의를 끌어라.”

“존명.”

“4호부터 6호까지는 예측지점 인근을 정리하거라.”

“존명.”

“그리고 1호부터 3호는 아마도 이 산장의 주인으로 보이는 자를 처리하도록.”

“예.”

“흩어져라. 행동 개시는 7호가 불을 지르면 시작이다.”

일사분란하게 수하들이 흩어지자, 무명의 눈이 마치 내부를 궤뚫어 보기라도 하겠다는 듯 산장을 응시했다.

‘필시 지하에 공간이 남는 형태다. 오고 나간 자재에 비해 여전히 규모가 작다.’

이윽고 무명의 신형이 서서히 풍경과 동화되며 사라졌다.

바람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면서도 그는 소리 하나 일으키지 않고 순식간에 방금까지 자신이 노려다보던 산장의 안으로 들어섰다.

천장에 붙은 무명의 눈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산장의 규모에 맞게 인원은 많지만… 알맹이가 없군.’

산장을 지키는 이들은 잘 쳐줘봐야 일류 정도 되는 무사들이었다.

사이사이 고수로 보이는 인물들이 얼핏 섞여있었으나 그와 그의 수하들에게 큰 방해물이 되진 않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무명은 확신했다.

‘… 이 곳은 아니군.’

만약을 대비해 산장을 샅샅이 훑긴 할 테지만, 무명은 자신의 생각에 확신이 있었다.

무림의 세계에서 일류 무인 100명보다 초절정의 고수 하나가 더 위협적인 법.

알맹이가 빠진 채 이렇게 겉만 화려한 곳이라면 큰 의미가 없으리라 생각하며 지하로 내려가는 순간.

‘… 검선의 여식을 발견하진 못 했어도 다른 흥미로운 걸 발견했군.’

지하는 겉보기보다 훨씬 넓었다.

그리고 그 곳에는 무수히 많은 병장기와 갑옷들이 쌓여있었다.

‘마치 전쟁이라도 준비하는… 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무명은 어딘가 위화감을 느꼈다.

이렇게 수없이 많은 병장기와 갑옷이 있는데 정작 이걸 입을 병사들은 어디 있는 걸까?

그리고…

그 많은 병사들을 먹여살릴 식자재는 어디서 구하려고 하는걸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는 순간, 무명은 문득 사천에서 보았던 광경이 떠올랐다.

‘강시! 설마…’

무명은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강시들에게 이 병장기들을 입히고,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생각하면 이치에 맞았다.

강시들의 먹이가 될 시체들은 전쟁이 일어나면 도처에 깔려있을테니깐.

‘검선의 딸이 중요한 게 아니야. 설마…’

그 때.

“크르륵…”

어둠 사이로 무언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짐승…?’

치이익.

몸에서 진물을 흘리며 나타난 괴생명체는 범이었다.

아니, 범처럼 생긴 시체였다.

“… 짐승으로 만든 강시라…”

“크르륵…!”

“범강시라 불러야하겠군. 당문 놈들도 별의별 짓거리를 다 하는군.”

“크헝!!”

범강시가 단번에 수십 장의 거리를 뛰어넘어 무명을 향해 달려들었다.

크게 벌린 아가리가 당장이라도 무명을 삼킬 것처럼 보였지만…

“크륵?!”

“가엾은 짐승이로다. 육신은 썩어나가고, 피 대신 독이 흐르고 있구나.”

무명의 손이 범강시의 아가리를 낚아챘다.

어떻게든 앞발을 휘두르며 그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애썼지만, 무명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와 크게 다를 바가 없구나. 그러니 자비를 베풀어주마.”

쩍! 쩌적!!

무명이 손에 들어간 힘을 주어 그대로 범의 아가리를 찢어버렸다.

머리를 잃어버렸음에도 여전히 허우적대며 자신에게 달려드는 범강시를 보고 무명은 씁쓸하게 웃으며 공력을 일으켰다.

퍼엉!!

마침내 몸의 절반 이상이 날아간 뒤에야 잠잠해진 범강시를 보고 무명이 돌아서려는 순간.

“크르륵…!!”

“더 있군.”

어둠 속에 붉게 빛나는 안광을 몇 개 더 확인한 뒤, 무명은 손목을 돌렸다.

그리고는 어둠을 향해 손짓했다.

“오라, 불쌍한 미물들아.”

“크헝!!”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기다렸다는듯이 범강시들이 달려들었다.

*

한편, 남서쪽으로 향한 위일청, 현진, 백리소현 일행은 조용히 목적지로 향했다.

이제부터 남궁소소가 있을지도 못 하는 곳에 적들을 뚫고 그녀를 구한다는 긴장감도 있었지만, 일행 중 하나가 과묵한 정도를 넘어 말을 아예 하지 않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현진 도사님.”

“…”

“저희도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어느정도 대형을 갖추고 싶은데 혹시 염두해두신 바가 있으십니까?”

“음…”

위일청이 묻자, 그제서야 현진은 그 무거운 입을 열었다.

“크게 생각해둔 바가 없으나 보통 태극삼검끼리는 본 도가 가장 앞서서 적의 공격을 받아내는 진법으로 연습했으니 나를 선두에 세워주시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백리 소저의 사일검법이 기세가 날카로우니 본 도의 등 뒤에서 적을 마무리지으면 좋을 것이고, 위 공자의 검술이 그 범위가 넓다 들었으니 후위에서 나와 백리 소저를 보좌하는 게 제일 좋지 않겠소?”

“… 옳은 말씀입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저희는…”

“알고 있소. 어디까지나 남궁세가의 여식을 구하는 게 우선이란 점. 어디까지나 적과 맞서싸워야할 때는 그렇게 하고 탐색을 할 때는 위 공자가 앞장서주시오.”

“예.”

생각과는 달리 현진은 한 번 입을 열면 말을 할 줄 아는 사내였다.

“묵언수행이라도 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필요할 때가 아니면 굳이 입을 열지 않을 뿐, 그런 건 아니외다.”

“그렇군요. 잘 부탁드립니다.”

“나 또한 잘 부탁하겠소.”

위일청이 향하는 남서쪽은 겉으로 보기엔 그저 그런 장원이었다.

하지만 막상 그 앞에 도착하자 위일청은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 장원이 아니군요.”

“응? 장원처럼 생겼는데?”

“아니요. 담 너머로 보면 안의 건물들이 보이시죠?”

“응.”

위일청의 말대로 담 너머를 살짝 엿보자 황량한 공터 사이에 오고가는 사람들이 몇 있었고, 건물들은 문이 닫혀있었다.

하지만 건물의 처마에 달린 홍등을 보는 순간 백리소현은 눈치챘다.

“… 기루구나.”

“예. 아무래도 객잔과 같이 영업하는 기루가 아닌 고관대작만 따로 받는 곳인듯 합니다.”

“잘 아네?”

“… 굳이 더 이야기하지 말죠.”

백리소현이 입을 다물고 넘어가자, 현진이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지 좋겠소?”

“겉은 장원으로 위장하고, 속은 기루입니다. 기루를 찾은 손님처럼 위장하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그… 백리 소저께서 같이 있는데…”

현진이 머뭇거리며 말하자, 위일청이 웃었다.

“여인들도 기루를 찾기도 합니다. 도사님께서는 이런 걸 잘 모르시겠군요.”

“헤에~ 위 오라버니는 잘 아는구나.”

“… 미안합니다, 소현. 아무튼 제가 앞장서서 손님인 척 들어갈테니 현진 도사께서는 그저 하시던대로 조용히 계셔주면 될 거 같습니다.”

“예. 맡기겠습니다, 위 공자.”

위일청이 앞장서자 그 뒤로 백리소현과 현진이 따라걸었다.

쿵쿵쿵.

장원의 문을 두드리고 위일청이 뒷짐을 진 채 기다리자 잠시 후.

안에서 하인이 나와 고개를 슬쩍 내밀었다.

“누… 누구십니까?”

“분 냄새가 좋아 들렀다. 내가 누군지 알고 있느냐?”

“저희는 예약하신 분이 아니라면…”

“사람들이 나를 일컫어 옥면공자라 부르지만, 오늘은 색마라는 이명이 좀 더 듣기 좋겠구나.”

“새… 색마!”

그 말을 듣는 순간, 장원의 문이 활짝 열렸다.

“아이고… 귀한 분이 오신 줄도 모르고 제가 또…”

“뒤에 있는 자는 그저 술과 음식을 즐기기 위해 찾아온 동행이다. 내게는 괜찮은 아이를 내오거라.”

“ㅇ… 예!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하인이 부리나케 안으로 달려가자, 뒤에 있던 현진 도사가 위일청에게 물었다.

“그… 위 공자, 저 하인이 왜 문을 열어준 겁니까?”

“… 제가 이 쪽으로 제법 유명합니다. 어느 기루를 찾아가던 보통 제가 누군지 밝혀주면 알아서들 나오더군요.”

“허허… 대단하십니다.”

“과찬입니다.”

“령 매가 알면 좋아죽겠네~”

“…”

위일청은 백리소현의 일침을 듣자 입을 꾹 다물고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아무래도 근처에 창고가 있을 겁니다. 현진 도사님께서는 창고를 조심히 살펴보십시오. 혹시 누가 왜 여기있냐 그러면 변소를 찾고 있다 말해주시고 술에 취한 척 하세요.”

“그러리다.”

“백리 소저는 다른 여인들에게 물어 혹시 최근에 들어온 어린아이가 없나 한 번 물어주세요. 창기들은 어린 아이를 잘 돌보니깐요.”

“응.”

“… 그나저나 하인이 늦는군요.”

보통 자신이 찾아왔다 그러면 포주가 허겁지겁 달려나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는 여자들을 준비할텐데 그렇다한들 다른 이도 하나 없는 게 조금 마음에 걸렸다.

그 때.

“저… 위 공자.”

“네, 도사님.”

“아까부터 이상하다 여겼는데 말입니다… 이 곳의 사기(邪氣)가 짙습니다.”

“아무래도 창관이다보니 사기가 짙은 게 아니겠습니까? 창관은 사파가 운영하는 일이 많으니 무림맹의 앞마당에서 운영하는 곳이라면 사파의 간부가 있을 수도 있고요.”

“흐음… 그도 일리가 있군요. 저는 그럼 저 쪽으로 가보겠습니다.”

“예, 현진 도사님. 혹시나 소소 아가씨를 찾으면 먼저 객잔으로 나가주세요. 한 시진(2시간) 이후에도 약속한 장소에서 만나지 못 하면 소소 아가씨를 찾은 걸로 알겠습니다.”

“예.”

현진이 먼저 오른쪽에 창고가 있을법한 곳으로 빠지자, 백리소현도 위일청에게 말했다.

“나는 왼쪽으로 가볼게. 자식 잃은 젊은 여인 행세라도 하면 될까?”

“그것도 좋겠네요. 딸 아이를 찾는다고 말하면 잘 도와줄 겁니다.”

“응. 먼저 가볼게. 이따 봐, 위 오라버니.”

“그… 백리 소저.”

“응?”

떠나려는 백리소현을 붙잡고 위일청이 머뭇거렸다.

“… 령에게는 비밀로 좀…”

“후훗, 오라버니 하는 거 보고. 생각해보니 오라버니 과거 얘기도 할 게 참 많아?”

“전에 안 하시기로 하셨잖습니까?”

“령 매가 듣고 싶다면 뭐… 해 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아무튼 이따 봐.”

“하아… 예.”

떠나는 백리소현의 등을 보며 하인이 언제쯤 나올까 고민하던 위일청은 금세 자신을 찾아 나온 이를 발견했다.

아까 나온 하인과 달리 이번엔 등이 굽은 곱추였다.

곱추는 실실 웃으며 위일청에게 다가왔다.

“위 공자님, 맞으십니까?”

“그렇다.”

“저희 포주께서 잡시 뵙고자 하십니다.”

“그리하지.”

“따라오시지요.”

아무래도 여인들의 준비가 늦는다 생각하며 위일청이 천천히 곱추의 뒤를 따라 걸었다.

따라걷는 와중에도 생각보다 넓은 장원의 내부를 둘러보며 근처에 남궁소소가 있을 법한 장소를 물색하고 있자, 곱추가 갑자기 멈춰섰다.

“저… 위 공자.”

“왜 그러느냐?”

“아무래도 그… 공자님을 사칭하는 이들이 은근히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공자님이 정말 위공자님이란 증거가 필요합니다.”

“증거…?”

“공자님께서는 항상 몸에 낭창낭창하게 휘어지는 신병이기라 불릴만한 연검을 몇 자루 들고다니신다고 들었습니다. 혹여 그걸 보여주신다면 제가 안심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음…”

충분히 이해가는 질문이었다.

몇몇 기루에서는 이미 자신을 사칭하며 돌아다닌 이도 있었기에 이름을 꺼내자마자 된서리를 맞은 적도 있으니.

위일청이 팔을 털어 연검을 꺼내들자, 그 모습을 보고 하인의 입꼬리가 길쭉해졌다.

“맞으시군요. 정녕 위 공자시군요.”

“이제 됐나?”

“예, 됐습니다.”

곱추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하늘높이 들어올렸다.

잠시 후, 어둑한 밤하늘이 밝아지는 것을 보자 위일청은 그게 신호탄임을 깨달았다.

“… 함정이었군.”

“예, 함정입니다. 위 공자가 그 빌어먹을 광마 놈의 여식과 함께 다니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거든요.”

“당문의 사람인가?”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행색이 이런 꼬락서니라 이름은 따로 없고, 조련사라고 불리지요.”

“조련사라…”

위일청은 또 한 자루의 연검을 꺼내들어 언제든지 달려들 준비를 마치고는 물었다.

“무엇을 조련하기에 그런 이름으로 불리는가?”

“보시지요. 저기 제가 조련하는 놈들이 오는군요.”

“음…?”

어둠 속에서 꾸물거리며 찾아오는 형체를 확인한 위일청은 그게 무엇인지 확인하고자 눈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들의 형상을 달빛이 비추는 순간, 연검을 고쳐잡았다.

“강시군. 이게 사기의 정체였어.”

“예, 크큭. 섭섭치않게 많이 준비해놨으니 부디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어둠 속으로 금세 자신의 형체를 감추며 사라진 곱추를 보고 위일청은 백리소현과 현진도사가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그어어!!!”

강시떼가 달려들자 위일청은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쉬익!

채찍처럼 길게 뻗은 그의 연검이 가장 앞에서 달려드는 강시의 목을 날렸다.

“… 이런 대접은 안 좋아하지만, 준비해줬다고 하니 즐기지.”

최대한 빨리 정리하고 일단 백리소현이 향한 곳으로 달려가야겠다 생각하며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동안 성장한 자신의 깨달음을 시험해보겠다 생각하며 위일청은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았다.

“잠어약청파(潛魚躍淸波)”

보타문에 있는 동안, 검후의 절기를 익히다 만들어낸 새로운 초식.

“어관(魚貫)”

파도 사이로 뛰어오르는 물고기를 꿰뚫는 듯, 위일청의 검기가 거세게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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