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마와 색마-156화 (156/225)

EP.156 17장. 애는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 (2)

무명은 검후와 다른 이들에게 포권을 취하며 인사했다.

“이름을 가질 자격이 없는 자라 무명이라 불리오. 잘 부탁하오.”

“만나서 반갑구나, 아이야. 검후라고 하니라.”

“만나뵙게 되어 영광이오.”

무명은 검후의 외형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당문 뿐이었기에.

게다가 검후의 자그마한 몸 안에 자리잡은 무시무시한 내공은 그녀가 확실히 검후라 불리는 자가 맞다는 확신을 무명에게 심어주었다.

무명은 고개를 돌려 옆에 서있는 은관영에게도 인사했다.

“그대가 하오문의 책임자요?”

“하오문의 소문주 후보, 은관영이라 합니다. 명성이 자자한 살막의 수장을 이리 만나뵙게 되어 영광이네요.”

“허명이거나 악명 뿐이오.”

“아… 하하…”

무명의 대답을 들은 은관영은 난처하게 웃었다.

“그… 정말 도움을 주시려고 하나요?”

“독고…진 대협에게 빚이 있소. 그리고 나 또한 개인적으로 당문에게 큰 원한을 품고 있기에 거들고 싶소.”

“저희야말로 기쁩니다. 혹시 혼자 오셨나요?”

“내 밑의 수하 열 명을 같이 데리고 왔소. 이야기는 대충 들었소. 아이를 구출하는 일이라지?”

“네.”

“세 곳 중 가장 사람이 많으리라 추정되는 곳을 내게 넘겨주시오.”

“… 네?”

은관영이 당황하자, 무명이 설명했다.

“살수들은 은잠술에 뛰어나고, 그대들은 손이 부족하다 들었소. 그렇다면 가장 사람이 많으리라 추정되는 곳에 우리가 들어가 검선의 여식이 있는지 확인하는 게 가장 최선의 수 아니겠소?”

“… 맞는 말이네요. 다만…”

“나를 믿지 못 하는군.”

“…”

은관영은 침묵으로 긍정했다.

독고령이 보장했다고 한들, 은관영은 쉽게 무명을 믿을 생각이 없었다.

살막의 수장, 전대 권선인 소림의 백팔나한의 수장을 살해했던 조직.

그 악명을 생각하면 쉽게 믿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 때.

“아이야.”

“네, 검후님.”

“믿고 맡기거라. 저 자를 믿지 못 하겠다면, 본녀를 믿거라.”

“… 네?”

검후가 다가가 손을 뻗자, 무명이 몸을 숙여주었다.

그러자 검후가 안타깝다는 듯, 그의 뺨을 쓰다듬었다.

“상처가 많은 아이구나. 눈이 동굴처럼 텅 비어있으나 그 공동의 안에 활활 타오르는 불이 하나 보이는구나. 복수심이더냐?”

“… 둘 밖에 없는 삶의 이유기도 하오.”

“다른 하나는 무엇이더냐?”

“은혜를 입었소. 너무나도 큰 은혜라 아직까지 좀 더 살아가야할 듯 싶소.”

“네 속에 담긴 복수가 얼마나 깊은지 본녀가 헤아릴 수가 없으나 한낱 이문을 쫓아 사람을 죽일 정도로 막나가는 아이는 아닌듯 하구나.”

“그리 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오.”

무명에게서 손을 뗀 검후는 포근한 미소와 함께 은관영을 쳐다보며 물었다.

“관영아. 혹여나 일이 잘못될 시 내가 책임질 터이니 이 자를 한 번 믿어보지 않겠느냐?”

“… 알겠습니다, 검후님.”

“고맙구나.”

은관영이 무명에게 재차 확인했다.

“… 가장 위험한 곳으로 보내달라 하셨죠?”

“그렇소.”

“이 곳으로 가주세요.”

은관영이 건넨 지도에는 한 장소가 표시되어 있었다.

“가능한 동시에 치는 게 좋으니깐, 결행은 해가 저문 뒤에 시작할 거예요.”

“이 곳이 가장 사람이 많소?”

“네. 오고나간 자재가 가장 많은 곳이니 아마 이 곳에 가장 많은 병력이 대기중일거라 생각해요.”

“알겠소. 내가 맡으리다. 혹여 이 곳에 검선의 여식이 있으면 바로 이리로 돌아오면 되겠소?”

“네.”

“그럼 바로 떠나리다.”

“… 네?”

“미리 수하들을 보내 주변의 지형을 살펴야겠소. 혹시 이 거처의 설계도 같은 것은 따로 구해둔 게 있소?”

“아… 대략적인 겨냥도 정도는 있어요.”

“그것도 받을 수 있겠소? 미리 침입경로를 살펴야겠소.”

“네, 여기요.”

은관영에게 지도를 건네받은 무명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객잔을 떠났다.

떠나기 전 그는 잠시 위일청을 쳐다보고, 독고령을 쳐다보았다.

“… 뭐, 새끼야?”

“위 공자.”

“예, 막주.”

“잠시…”

전음으로 무언가를 위일청에게 말하자, 위일청이 피식 웃었다.

그 모습을 보고 무명도 피식 웃는 것을 보고 독고령은 속이 탔다.

“뭐… 뭐 말한거야, 새끼야?”

“나중에 위 공자에게 들으시오, 크큭. 먼저 가보겠소. 일이 다 끝난 뒤, 다시 봅시다.”

“야… 야! 어디가, 새끼야!!”

무명은 언제나처럼 갑자기 사라졌다.

그 신묘한 경신술을 보고 독고령은 그를 쫓을 생각을 포기하고,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위일청을 쳐다보았다.

혹시나 무명이 위일청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힌걸까?

불안감과 함께 용기를 짜내 독고령은 조심스레 위일청에게 물어봤다.

“무… 무명이 뭐라고 했어요?”

“… 그냥 웃으라고 하더군요. 이러면 령이 애가 탈 거라고요.”

“이익…!”

또 다시 놀림당한 걸 알아차린 독고령은 조금 이따 모든 게 끝나고 무명을 다시 만나면 꼭 한 대 쥐어박으리라 다짐했다.

“캬아아악!!”

행동을 나설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일행들은 조금씩 초조해졌다.

“… 아직 안 움직여?”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어차피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려야해요.”

“그래, 좀 기다리거라. 일단 본녀가 먼저 나서기로 했거늘 어찌 그리 초조해하느냐?”

“…”

독고령은 팔짱을 끼고 앉아 연신 다리를 떨어댔다.

“쓰읍… 그… 빨리빨리 안 되나?”

“독고 소저!”

“… 가만히 있을게.”

이번 작전은 낚시와 같이 일단 추를 놓는데서 시작되었다.

검후라는 이름의 거대한 미끼를 던져놓고, 물고기들이 모여들게 만든 뒤, 물고기가 숨겨놓은 곳을 털어야하는 작전.

그러려면 일단 검후가 밖으로 나서야한다.

“… 불편한 곳은 없으세요?”

“없구나. 다만 옷이 너무 화려한 게 조금 걸리는구나.”

“옷이 화려할수록 이목을 더 끌테니깐요. 검후님께서 많은 이목을 집중시킬수록, 납치범의 움직임이 불편해질거예요.”

“으음… 알겠노라.”

검후는 화려한 의상을 차려입고 무림맹으로 찾아갈 예정이었다.

남궁선과 가능한 이목이 많은 곳에서 만나고, 납치범의 말대로 비무까지 벌여줄 예정이었다.

가능한 생사결처럼, 가능한 위태롭게.

결국 납치범이 원하는 바와 똑같으니 결과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손을 쓰는 게 늦어지리라.

그렇게 바라며 은관영은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검후의 의상을 확인한 뒤 심호흡을 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검후님. 검선 측에는 저희 쪽에서 따로 연락을 넣어뒀으니 가능한 화려하고, 위태로운 척 해주세요. 적당히 꾸짖으시다보면 검선께서 들고 일어날테고, 그럼 그 때 비무를 하시면 될 거예요.”

“오냐, 알았다.”

“검후님께서 화려하게 일을 벌여주실수록, 저희에게 좋습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그래그래.”

검후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은관영을 안아주었다.

“다 잘 될거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였으나 너의 영특함을 내 직접 보았노라. 약벽 그 아이도 자신의 후계로 정한 아이를 허투루 뽑지는 않았을터이니 본녀가 너를 믿노라.”

“… 네.”

검후가 밖으로 나가며 하나하나 다시 돌아보았다.

“현상아.”

“예, 검후님.”

“주하를 잘 부탁하마. 아무래도 밤이 되면 저 아이가 날뛸텐데 봉해놓았다고 한들 한 줄기 불안함이 남는구나. 네 어깨가 무거움을 자각하거라.”

“명심하겠습니다.”

“현진이와 청운, 두 아이는 조심히 움직이거라. 적의 수가 확실치 않으니 얼마나 강할지 모른다. 다치지 않고 본산으로 돌아가는 것이 무진 그 아이도 바라는 바일게야.”

“… 예.”

“네, 검후님.”

만난 이후 한 번도 입을 여는 걸 본 적이 없는 현진이 소리내어 대답하자, 독고령은 조금 놀랐다.

‘오… 벙어리가 아니였네?’

이어서 검후는 백리소현과 잠깐 서로를 껴안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일청아.”

“예, 스승님.”

“아직 절기를 다 전수해주지 못 하였으니 불완전한 절기로 승부를 보려 들지말거라. 큰 기술이라 할 지라도 익숙하지 못 하기에 더욱 위험하노라.”

“명심하겠습니다.”

“허나… 만약 적의 수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이며, 누군가 너를 지켜줄 이가 있다면 절기를 쓰고 도망치거라.”

“… 예.”

“소현 아가는 가능한 일청이 뒤에 숨어 그를 보조해주는 쪽으로 힘쓰거라.”

“네.”

마지막으로 검후는 독고령을 보고 마주섰다.

“… 아이야.”

“저한테도 할 말이 있으신가요?”

“죽이는 것보다 살리는 데 힘쓰거라.”

“… 네?”

“이번 일이 복수를 행함이 아니라 누군가의 목숨을 살리고자 하는 것을 기억해다오.”

“… 또 영문 모를 소리를 하시네요.”

“그저 네가 바뀌길 바라는 것 뿐이노라.”

“…”

독고령이 아무 대답도 없자, 검후는 그저 그녀를 포고 피식 웃고는 객잔 밖으로 나섰다.

객잔의 앞에는 미리 하오문 측에서 구해둔 것인지 풍채가 좋은 두 명의 거한이 큰 깃발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외쳤다.

“대 보타문의 14대 문주!! 검후 서교님께서 맹으로 향하니 모두 양해바라오!!!”

검후가 무림맹으로 향하는 길을 나섰다.

*

검후가 객잔을 나서고, 드디어 작전이 시행되자 객잔 안은 조용해졌다.

때때로 몇 명의 사람들이 은관영을 찾아와 무언가 속삭이자 그녀가 잠시 자리를 비울 뿐, 남은 이들 중 주하의 관리를 맡은 현상을 제외하고는 모두 탁상에 모여앉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 답답하네. 언제쯤 출발하면 돼?”

“조금만 더 있어요, 독고 소저. 이목이 좀 더 모여야해요.”

“… 그래.”

“기다리시는 동안 마지막으로 인원 분배부터 확인하죠.”

은관영이 손짓하자, 하오문도 중 하나가 다가와 탁상에 거대한 지도를 펼쳐들었다.

지도의 중심엔 무림맹이 있었다.

“저희가 노리는 곳은 총 세 곳이에요. 그 중 북쪽은 막주가 맡아주셨으니, 남은 것은 남서쪽과 남동쪽 뿐이고요.”

은관영이 북쪽에 표시된 장소에 줄을 긋고 남서쪽에 표시된 장소에 붓을 가져갔다.

“이 곳은 사람의 수가 가장 적어요. 아마도 아닐 확률이 가장 높다고 생각하는 곳이고요.”

“그럼…”

“위 오빠. 남서쪽을 오빠가 맡아주세요.”

“… 알겠습니다.”

위일청은 당연한 선택이라며 납득했다.

현재 모인 일행 중 가장 강한 것은 독고령이었으니 당연히 그녀를 좀 더 위험한 곳으로 보내는 게 맞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

“관영, 령한테 조금이라도 인원을 더 붙여주는게…”

“괜찮아요, 일청.”

독고령은 자신이 가야할 곳인 남동쪽을 바라보며 으르렁댔다.

“혼자 가는 것도 아니고, 관영이도 좀 치고, 청운이 놈도 나름 쓸만하니깐요.”

“표현이 그게 뭐에요, 독고 소저…”

“저는 좋습니다, 누님! 쓸만하다 여겨주시니 감사합니다!”

남서쪽으로 향하는 일행은 위일청, 백리소현, 그리고 현진.

남동쪽으로 향하는 일행은 독고령, 은관영, 청운.

두 일행 모두 하오문의 지원을 받긴 할테지만, 수가 너무 적은 게 마음에 걸렸다.

“… 부디 모두 조심하세요. 다치지 말고, 혹시나 무리겠다 싶으면 바로 돌아오시고요.”

“관영, 령을 잘 부탁합니다.”

“… 노력해볼게요. 독고 소저, 진짜 막 나가시면 안 돼요?”

“야이씨… 내가 무슨 맨날 사고만 치는 줄 아냐?”

“아니던가요오?”

“캬아아악!!”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대화가 오고가자, 장내의 분위기가 조금은 풀렸다.

그 때.

“소문주 후보.”

“네, 말하세요.”

“슬슬 시작하면 될 거 같습니다. 검후님께서 맹에 도착하셨습니다.”

“… 알았어요.”

드디어 때가 되자, 독고령은 당장이라도 밖으로 뛰쳐 나갈 기세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지러 가자!”

“하아… 령, 제발.”

“나갈까요오?”

“응, 관영아.”

“…”

“사형, 좀 이따 뵙겠습니다.”

객잔의 밖으로 나와 서로 갈라지기 직전, 마지막 인사를 나누던 와중.

독고령은 문득 위일청을 쳐다보았다.

‘안 다치겠지…? 조심하라고 한 마디라도 할까…?’

전력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갈라져야만 했지만, 막상 때가 다가오자 내심 위일청이 걱정되었다.

혹시나 독에 중독되기라도 한다면 어쩌지?

적이 너무 강하면 그냥 도망치라고 말할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그냥 위일청이랑 같이 갈까?

그 때, 위일청이 돌아보며 독고령과 눈이 마주치자 웃으며 다가왔다.

“령.”

“ㄴ… 네, 일청!”

“제가 걱정되나요?”

“… 조금요.”

“저도 령이 걱정됩니다.”

“…”

“다치지 말고, 소소 아가씨만 구하면 바로 빠져나오세요. 알았죠?”

“… ㄴ, 흐읍…!”

갑작스레 위일청이 독고령의 허리를 감싸안고, 입을 맞추었다.

“이… 일청!”

“약속입니다. 소소 아가씨만 찾으면 바로 돌아온 뒤, 나머진 이 곳에서 다시 만나서 합시다.”

“하으으…”

“가죠, 소현.”

“관영이나 나한테는 안 해줘?”

“저는 괜찮아요오. 아무리 그래도 사람 많은데서는 낯부끄러워서 좀…”

“후훗. 나도 그렇긴 한데 질투나네, 령 매~.”

“아… 으으… 좀!”

“이따 봐~”

그렇게 먼저 떠나는 위일청 조를 확인한 뒤, 독고령은 뺨을 붉히며 돌아봤다.

“역시 누님의 정인이시군요. 화끈하십니다!”

“닥쳐!”

“… 네, 누님.”

“우리도… 가자.”

“네에. 놀리는 건 다녀와서 할게요오.”

“캬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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