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마와 색마-149화 (149/225)

EP.149 16장. 오매불망 - (6)

무명에게 편지를 보낸 뒤, 독고령은 그저 때를 기다릴 뿐이었다.

배가 절강성에 도착하자마자, 은관영이 미리 준비라도 해둔 마차를 타고 합비로 향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문제는 있었으니…

“아, 왜! 위일청이랑 같이 타겠다고!!”

“… 령 매. 균형이 안 맞잖아.”

“아니, 뭐가!!”

태극삼검, 은관영, 백리소현, 독고령, 위일청, 서주하, 검후까지 총 9명.

그 중에서 마차를 몰 줄 아는 것은 은관영과 위일청 뿐이었다.

게다가…

“나는 무조건 주하와 함께 있어야 하노라. 그리고 내가 타는 마차에 여성은 가능한 없었으면 좋겠구나.”

“… 서 소저의 그 이상한…”

“그래. 불상사를 만들지 않으려면 본녀가 옆에 붙어 있어야겠지.”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검후와 주하는 무조건 함께 해야했고, 은관영 또한 요기에 대응할 방법이 없기에 위일청이 검후가 탄 마차의 마부가 되었다.

그 사이에 독고령이 끼고 싶었으나 주하의 요기 때문에 위일청의 마차에 올라타지 못 했다.

결국 태극삼검 중 현상과 현진이 검후와 함께 마차를 타게 되었고, 남은 청운이 독고령과 한 마차에 올라탔다.

“이익…! 그 개같은 요기 진짜…!!”

“누님.”

“뭐, 새끼야?”

“누님은 양기도 다룰 줄 아시는 겁니까?”

“너는 음기 못 다루냐?”

“아니… 약간은 다룰 줄 압니다. 그… 누님처럼 강한 분이 요기 앞에서 꼼짝 못 한다는 게 이해가 안 돼서요.”

“…어떻게 대처하는데?”

“마음을 비우고, 속으로 태극을 그려… 컥!”

독고령이 괜히 짜증이 나서 발을 들었다 내려찍자, 청운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 괜찮냐? 내가 잘못 찼나?

“맨발이 역시 더 좋네요…!”

“… 뭐?”

“아무것도 아닙니다, 누님! 더 차주시면 좋아요!”

“… 이상한 새끼.”

독고령이 헛웃음을 터뜨리고는 턱을 괴고, 다시 고민에 빠져들었다.

위일청이랑 같이 있고 싶은 마음도 분명 있었고, 그를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으니…

‘양기 채워야하는데…’

적어도 합비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아니.

가능한 오늘 밤 이내에 양기를 채워두고 싶었다.

‘근데 주하도 문제고… 아잇, 진짜 그냥 같이 좀 지낼 수 있으면 바로…!’

둘만 있으면 언제든지 양기를 받을 자신마저 생긴 상황.

게다가 일주일이나 떨어져 있기에 독고령 또한 달아오를만큼 달아올라 있었다.

‘… 그냥 가서 새끼손가락 한 번 잡으면…’

그 정도면 분명 위일청도 금세 독고령이 원하는 바를 이해할 것이다.

‘… 그래. 이따 몰래 새끼손가락이라도 잡아야지.’

합비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바빠서 같이 지낼 겨를도 없으니 지금 잔뜩 즐겨둬야지 생각하며, 독고령은 위일청과 어떤 일을 할까 망상에 빠졌다.

분홍빛으로 머리를 물들이기 시작하는 독고령을 보며 백리소현이 숨죽여 웃음을 참았다.

*

마차를 멈추자마자, 은관영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리 얘기라도 해둔 듯, 하오문도를 제외하고 객잔은 텅텅 비어있었다.

“오늘은 여기서 머물 거에요. 하오문이 소유한 객잔 중 하나니깐 자유롭게 써주시고, 저는 내내 바쁠 예정이니깐 필요한 일이 있으면 점주를 통해 물어주세요. 필요한 건 점소이들한테 요구하면 다 가져다 줄 거고요오.”

“… 어.”

“검후님,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객실은 최상층에 가장 넓은…”

“아니, 낮은 층으로 다오.”

“네.”

은관영이 손짓하자, 한 점소이가 달려와 검후의 옆에 안내인처럼 붙었다.

“혹시 따로 필요한 게 있으실까요?”

“… 당장은 없구나. 신경써줘서 고맙구나.”

“아닙니다. 그럼 먼저 자리를 비울게요오.”

“그래, 빨리 가 보거라. 바빠보이는구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검후의 허가가 떨어지자마자 은관영은 문도들 사이로 들어가 재빨리 지시를 내렸다.

“조장급들이 다 모여서 바로 상황 보고 해주시고, 새로 들어온 정보들만 따로 모아주세요오. 합비 근처에 정보망 총괄은 2조장이던가요?”

“네, 접니다.”

“2 조장부터 저랑 보죠.”

은관영이 문도들의 사이로 들어가 그들을 지휘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독고령은 새삼스레 그녀가 하오문의 소문주 후보임을 다시 떠올렸다.

‘… 소문주 맞긴 맞네.’

그녀의 뒷 모습에서 얼핏 은약벽이 아른거리자, 독고령은 피식 웃었다.

은관영이 자리를 비우자, 그 다음으로 자리를 비운 것은 검후였다.

“… 사람들이 많구나. 현상아.”

“예, 검후님.”

“와서 밤동안 주하가 날뛰지 못 하게 진법을 설치하자꾸나. 특히 오늘부터는 각별히 신경써서 해야할 것도 있으니 다른 두 아이도 같이 오너라.”

“네!”

현상이 현진과 청운과 함께 검후쪽에 붙자, 그녀가 점소이에게 물었다.

“객실은 어디로 가면 되겠느냐?”

“이 쪽으로 오시지요.”

“그래.”

이내 검후가 수혈을 짚어두어 축 늘어진 주하를 업어들곤 태극삼검과 함께 점소이의 안내를 받아 뒤따라갔다.

자연스레 백리소현과 독고령, 위일청만이 자리에 남자, 독고령은 슬금슬금 백리소현의 눈치를 봤다.

‘… 얘는 무슨 일 없나?’

백리소현은 독고령이 자신의 눈치를 살피고 있음을 알아차리고는 피식 웃었다.

“나도 어디 가줄까, 령 매?”

“흐엑?!”

속마음을 들키자 당황한 독고령을 보며, 백리소현이 배시시 웃었다.

“나는 관영이 도울 일이라도 없나 확인하러 가볼게~.”

“으… 으응…”

백리소현마저 사라지자, 위일청과 단 둘이 남은 독고령의 심장이 조금씩 빨리 뛰었다.

“어… 그… 이… 일청…”

“저도 검을 휘두르러 가야겠군요.”

“네?!”

당황한 나머지 번뜩 고개를 든 독고령은 위일청의 얼굴에 떠오른 장난스러운 미소를 보고 금세 상황을 알아차렸다.

“아… 지… 진짜아… 놀리지 좀 마요…”

“크큭, 원래는 그러려고 했습니다. 근데 령이 저를 놓아줄 생각이 없어보이네요.”

“…”

위일청이 원래는 그럴 의도였다고 하자, 독고령은 꾸욱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

“… 원래 그러려고 했으면… 검 좀 휘둘러도 돼요.”

“…”

그 말을 듣고 위일청이 놀라 독고령을 쳐다보자,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 왜 그렇게 쳐다봐요?”

“혹시 령도 같이 수련했었습니까?”

“네?”

“… 령이 밤일을 마다하고 검을 휘둘러도 된다고 말하다니…”

“아잇! 내가 무슨 맨날 그 생각만 하는 것도 아니고…”

독고령의 말은 끝으로 갈수록 약해졌다.

“크큭, 여전히 거짓말은 잘 못 하네요, 령.”

“몰라요… 일청이 검 휘두르고 싶다 그랬으니깐 그냥… 조금 더 기다려도 된다고요…”

“…”

독고령이 자신을 배려해줬음을 깨닫자, 위일청은 웃으며 그녀를 안았다.

“지금 바로 말고, 조금만 있다 들어가죠. 아직까지 듣는 귀도, 보는 눈도 많으니깐요.”

“… 네.”

위일청이 손을 내밀자, 자연스레 독고령이 그의 팔에 달라붙어 안겼다.

가슴을 최대한 팔에 꼭꼭 밀어붙이며, 독고령과 위일청은 밖으로 나갔다.

객잔의 밖으로 나오자, 위일청은 문득 독고령의 팔에 감긴 연검을 보고 웃었다.

“그러고보니 검은 몸에 좀 맞나요, 령?”

“나름대로 잘 쓰고 있어요.”

“다행이네요. 요즘 유성도를 퍽 마음에 들어하는 거 같아서 연검은 안 쓰는 줄 알았습니다.”

“…비장의 한 수로 남겨뒀어요.”

“네, 크큭.”

위일청은 독고령이 선물받은 연검을 자주 사용하지 않는 걸 둘러대는 변명이라 생각했지만, 그런 위일청의 속뜻을 알아차린 독고령은 툴툴대며 억울함을 표했다.

“… 진짠데…”

“크큭, 알았습니다.”

“안 믿는거죠?!”

“믿습니다. 령이 하는 말인데 제가 왜 안 믿나요?”

“씨이…”

“그보다 령.”

“… 왜요?”

“비무 한 번 할래요?”

“엑…”

“으음?”

독고령이 난감한 반응을 보이자, 위일청이 고개를 갸웃했다.

“전에 저한테 검 가르쳐준다고 했잖아요.”

“그… 그쵸…”

“아하, 령은 너무 강하니깐 혹시나 제가 상대가 안 될…”

“아… 아니에욧!!”

독고령이 기겁하며 위일청의 말을 끊었다.

“아잇… 오늘 왜 이렇게 괴롭혀욧… 짓궂게 진짜…”

“이따 밤에는 더 괴롭힐 건데요?”

“하으으…”

노골적인 위일청의 말에 독고령이 뺨을 붉혔다.

“괴롭히는 건 여기까지만 할게요, 령. 더 놀렸다간 바로 안아들어서 객실로 들어가고 싶어지네요.”

“… 바로 그래도 되는데…”

“…”

독고령의 중얼거림을 못 들은 체하고 위일청은 검을 뽑아들었다.

“령.”

“… 네, 일청.”

“비무 상대가 되어주실래요?”

“…”

이상한 기분이었다.

위일청이 칼을 뽑아들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자 독고령은 이게 단순한 비무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 내가 진짜 좋아하긴 하는구나…’

그저 검을 들고 있는 모습 뿐인데, 그게 자연스러운 모습일텐데 어색함을 느끼는 지금의 이 상황이 우스웠다.

스르릉.

잡념을 털어내듯 유성도를 뽑아든 독고령은 위일청과 검을 마주하고 섰다.

“… 떨어져있던만큼 얼마나 세졌는지 확인해봐야죠.”

“너무 힘들게 하지는 말고요, 령.”

“노력… 할게요.”

독고령이 자세를 취하자, 위일청 또한 자세를 취했다.

그러고는…

한참을 그렇게 멈춰만 있었다.

“… 일청이 먼저 움직여요.”

“령이 먼저 움직일 생각은 없나요?”

“나… 나는… 나중에요.”

“… 그럼 저도 나중에 움직일게요.”

“…”

“…”

결국 위일청이 한숨을 푹 내쉬며 먼저 검을 집어넣었다.

“… 일청?”

“못 휘두르겠네요. 령도 그렇나요?”

“… 실수로 베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깐…”

고작 비무인데, 그래도 들고있는 검은 진검이라 그런지 둘 다 서로에게 아무 것도 하지 못 했다.

“으으… 미안해요, 일청.”

독고령이 유성도를 집어넣고 사과하자, 위일청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 아닙니다, 령. 저도 나올 때까지는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막상 보고 있으니 못 하겠네요.”

“다… 다음에 다른 방법을 찾아보죠.”

“… 네.”

독고령과 위일청이 둘 사이에 살짝 거리를 두고, 어색하게 멈춰있었다.

‘이제 비무도 끝났으니깐…’

독고령은 위일청이 무얼 망설이나 답답했다.

비무 끝났으니깐, 그냥 자신을 객실로 끌고가면 그만 아닌가.

빨리 가자고 보채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위일청이 타인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 때문에 자신을 배려해서 시간을 좀 보내자고 데리고 나온거라 먼저 말을 꺼내기도 조금 그랬다.

하지만…

‘빨리 말해줘요, 일청. 객실로 들어가자고, 손이라도 잡아줘요. 하고싶어하고싶어하고싶어하고싶어하고싶어…”

“… 네?”

“엑?!”

머릿속으로만 중얼거리던 말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뱉고 있단 걸 깨닫자, 독고령이 당황하여 얼굴을 붉혔다.

“아… 으… 아니… 그으…”

“…”

“으으…”

독고령은 결국 머뭇거리다가 먼저 위일청에게 다가갔다.

그의 옷깃을 붙잡고, 어느새 거칠어진 숨을 내쉬며 독고령이 말했다.

“이… 일청… 그러니깐요 그…”

“네, 령.”

“비무… 끝났죠?”

“… 끝났죠.”

독고령이 옷깃을 잡은 손에 더 힘을 주자, 위일청이 그녀의 손을 포개잡았다.

“그럼 이제…”

“가죠.”

“… 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