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8 16장. 오매불망 - (5)
‘일청…! 위일청…!!’
검후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독고령의 머리는 당문을 까맣게 잊었다.
위일청을 본다.
밤에 한 번 봤지만, 검후의 허락이 떨어졌으니 붙어지낼 수 있을 것이다.
부리나케 위일청이 있는 수련장으로 달려온 독고령은 윗옷을 벗고, 땀을 흘리며 검을 휘두르고 있는 그를 발견했다.
“일청…!”
“…령? 어떻게 이 곳에…”
“보고 싶었어요!!”
독고령이 그의 품에 뛰어들자, 위일청이 당황하면서도 그녀를 받아주었다.
“어… 그… 땀을 흘린 상태인데…”
“괜찮아요. 상관없어요. 보고 싶었어요, 일청!”
“… 저도요, 령. 헌데 허락을 받은 겁니까?”
“네! 이제 만나도 돼요!”
독고령이 기쁜듯이 고개를 들자, 위일청도 마주보며 웃었다.
“저도 보고 싶었습니다, 령.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읍!”
갑자기 독고령이 위일청의 목에 매달려 입을 맞췄다.
“하읍…! 쮸웁…!”
“려… 령… 그으…”
“일청…! 하아… 너무… 보고 싶었어요…! 음…”
“아니… 그으…”
위일청이 계속해서 고개를 떼려고 하자, 독고령은 절대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그의 아랫입술을 물고 늘어졌다.
결국 참지 못한 위일청이 그녀의 두 손을 붙잡고 강제로 떼어내자, 독고령이 아쉬운 듯 혀를 낼름거렸다.
“… 왜 더 안 해요?”
“음탕한 년 같으니라고 쯔쯔… 본녀가 별 꼴을 다 보는구나.”
“흐엑?!”
“… 오셨습니까, 스승님?”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온 검후의 목소리에 독고령이 당황하며 뺨을 붉혔다.
“으이구… 더 하지 그러느냐? 본녀가 다 얼굴이 화끈해지는구나.”
“아… 아니… 있으면 있다고 말하셔야죳!!”
“낭군님 입술 빨아재끼느라 몰라본 지 탓은 안 하고 본녀 탓만 하는구나.”
“아… 으아아…”
“일청아.”
“… 예, 스승님. 불민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느니라. 네 정인이 음탕한 것을 어쩌겠느냐?”
“크큭, 그러게 말입니다.”
“아… 일청!!”
독고령이 부끄러움에 빼액 소리를 지르자, 검후가 피식 웃었다.
“보아하니 저 아이가 아무 말도 안 했겠구나.”
“… 예. 갑자기 무슨 일인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저 아이에게 천천히 듣거라. 배가 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너무 즐기지는 말고, 빠르게 짐부터 챙기거라. 본녀 또한 미리 다른 제자들에게 전할 말이 있으니.”
“예, 스승님.”
검후가 뒤돌아 떠나자, 위일청이 웃으며 독고령을 껴안았다.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령. 해후는 조금 이따 풀고, 무슨 일입니까?”
“아… 그 실은요…”
“네.”
“…”
“령?”
독고령이 갑자기 입을 꾹 닫길래, 위일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 무슨 말인지 얘기 안 해줄겁니까?”
“… 아까 하던 것만 마저하면 할래요.”
“예? 아... 크큭.”
위일청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곤, 독고령의 허리를 잡아당겨 자신의 품으로 확 끌어들였다.
“령은 여전하네요.”
“… 네?”
“여전히 귀엽고,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음탕하네요.”
“… 몰라요.”
약간은 토라진 듯,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있는 독고령을 보고 위일청이 속삭였다.
“그렇게 고개를 돌리고 있으면 입을 못 맞추는데요?”
“…”
그러자 슬며시 고개를 앞으로 돌리고는 눈만 피하고 있는 독고령을 보며 위일청이 물었다.
“저 안 볼 건가요?”
“… 지금 말고요.”
“왜요? 저는 령이 더 보고 싶은데?”
“… 시간 없다면서요.”
“네?”
독고령의 머리가 스멀스멀 분홍빛으로 변하는 것을 보고 위일청은 또 다시 웃음이 터져나올 것만 같았다.
“… 지금 일청 보면 못 참을 거 같아서요.”
“정말…”
위일청은 결국 웃음을 참지 못 하고, 독고령과 이마를 맞댔다.
그제서야 슬쩍 눈을 돌려 위일청과 눈을 마주친 독고령이 말했다.
“… 봐요. 못 참을 거 같아요, 벌써.”
“조금만 참아요, 령. 이따 밤에…”
“… 네.”
쪽.
입술과 입술이 가볍게 맞닿고 난 뒤, 독고령이 촉촉히 젖은 눈으로 위일청을 보며 다시 한 번 말했다.
“이따 밤에…”
“네, 령.”
둘의 얼굴이 다시 가까워졌다.
*
합비까지 향하는 인원들이 배를 타고 절강성으로 향하는 도중 은관영의 설명을 듣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번에 … 합비성으로 가게 되는 길을… 함께 해서 참… 기쁘네요오…”
“캬아아악!!!”
“어허, 주하야. 얌전히 있거라.”
“령 매인줄 알았어, 크큭.”
“캬아아악!!”
“방금 되게 서 소저와 닮았네요, 누님!”
“…”
“닥치거라, 청운.”
“하아, 령… 조금만 얌전히…”
“아… 알았어요. 얌전히 지낼게요. 그러니깐 거… 거긴… 흣…!”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자, 은관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 검후님.”
“말해보거라, 아가.”
“… 서 소저는 왜…”
“놔두면 문도들을 죄다 습격하고 다녀서 보타문 전체가 여색에 빠지게 될 터인데 본녀가 어찌 놓고 가겠느냐?”
“…”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 은관영은 그 옆에서 핏발선 눈으로 이를 드러내는 주하를 쳐다보았다.
“캬아아악!!!”
“… 아는 분이랑 참 닮았네요.”
“수혈을 짚어 재워두마. 계속 설명하거라.”
“… 네.”
은관영이 다시 자세를 바로하고, 태극삼검을 쳐다보았다.
“세 분은 이번 일에 끼어들어도 정말 괜찮으신가요?”
“… 장문인께서 저희가 강호를 나설 때, 불의를 보고 참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
“저희 또한 무위는 다른 분들에 비해 약하지만, 할 일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돕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은관영이 목을 가다듬고, 설명을 시작했다.
“이번에 무림맹에 파견되어 있던 당가의 장로이자 2인자, 당가위 대협이 무림맹주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미심쩍은 일이 한둘이 아니고, 그렇기에 여러분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얘기할 게 뭐 있냐? 당문이 개수작을 부렸으니…”
“령.”
“흐윽… 뎨송해요옷…”
“계속하시죠, 관영.”
“… 네.”
위일청의 손에 의해 독고령이 잠잠해지자, 은관영은 다시 설명을 이어나갔다.
“검선께서 갑자기 무림맹주의 자리에서 내려온 점, 그리고 그 소문이 퍼짐과 거의 동시에 당가위 대협이 차기 맹주의 자리에 추대된 걸로 의심이 시작됐어요.”
“질문 있습니다, 은 소저.”
“하세요, 현상 도사님.”
“맹주직이 바뀌고 그 자리에 다른 이가 들어가는 게 그리도 이상한 일입니까?”
“아…”
현상의 질문은 강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이에겐 타당한 의문이었다.
은관영은 현상의 의문을 금세 해결해주었다.
“지난 번 맹주직은 뽑는데 1년 걸렸어요오. 근데 이번엔 하루 만에 뽑혔고요.”
“아…”
“전에는 맹주직 오르겠다는 사람들 모아두고 맹 내부의 일도 잘 처리하나 시켜보고, 개인의 무력과 성과에 따라서 뽑았어요오. 그렇게 해서 뽑힌 게 결국 검선이셨구요. 그 과정에서 끝까지 경쟁한 도선 어르신과의 이야기는 유명해요오.”
“… 죄송합니다. 저희가 강호사에는 영 무지하여…”
“아니에요오.”
현상이 이해를 한 듯 고개를 끄덕이자, 은관영이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게다가 작금의 당문은 수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에요. 얼마 전에는 전대 방장이신 공여 대사님도 사천에 찾아가 당문을 방문하고는 행방이 묘연해졌고요.”
“…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건…”
“아마 당문이 죽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요.”
“…”
장내가 기분나쁜 침묵으로 조용해졌다.
“이번 일련의 사건이 모기를 보고 검을 뽑는… 그런 사소한 오해면 좋겠지만…”
“그럴 리가 없지.”
독고령이 으르렁댔다.
“나는 당문을 잘 알아. 그러니깐 확신한다. 당문이 검선을 중독시켰든지, 아니면 가솔을 붙잡아 인질…로…”
갑자기 독고령이 입을 쩍 벌리고 말을 멈추자, 옆에 있던 백리소현이 물었다.
“… 령 매?”
“아니지…?”
“응?”
독고령이 은관영을 보고 동의를 구하듯 물었다.
“… 아니지?”
“… 이럴 때만 눈치가 빠르시네요오.”
“…”
은관영이 분한 듯 입술을 깨물자, 백리소현이 답답한 듯 되물었다.
“뭔데? 왜 둘만 알고 그래?”
“이건… 아직 확정은 아닌 이야기라 안 하려고 했는데…”
은관영이 그늘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 창천오검과 남궁소소 아가씨가 아직까지 행방이 묘연해요. 아마…”
“아…”
콰직!
독고령이 주먹으로 갑판을 내려쳤다.
“이 버러지 새끼들이…!!”
그녀의 분노 섞인 중얼거림에… 아무도 입을 열지 못 했다.
“시발…”
“도… 독고 소저, 먼저 가면…!”
“안 가! 어딘지도 몰라.”
“…”
쾅!
독고령은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시발…”
갑판의 난간에 기댄 독고령은 머리를 감싸쥐었다.
‘내 탓이다.’
괜히 합비에 가기 싫다는 이유로 도중에 헤어지자고 말했다.
별 거 아닌 일인데, 그냥 소소를 남궁세가의 본가까지 데려다줬어야 했다.
검신이 굳이 자신에게 부탁했음에도 이 정도면 충분히 가까워졌다 생각하며 위일청과 놀 생각에 한 눈을 팔았던 과거의 자신을 죽여버리고 싶었다.
‘멍청한 년, 등신같은 새끼야…!’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배에서 뛰쳐나가 합비까지 내달려 모조리 다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 뒤엔?
미래를 상상하는 법을 알게된 이후로 독고령은 멋대로 날뛰기 무서웠다.
당장이라도 맹을 향해 달려나가 그 늙은 너구리 새끼의 목을 따면 기분은 좋을 것이다.
하지만 소소는?
당문의 그 음습한 일처리 방식을 생각하면 소소는 이미 중독되었으리라 독고령은 확신했다.
당문을 죽이면 해독제는 어쩌지?
‘약속했는데… 약속 지켜야하는데…!’
독고령은 답답함에 몇 번이고 난간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 작고, 말랑말랑하고, 따스한 남궁소소를 어떻게 구해낼 수 있을까?
가서 죽이는 일은 자신있었지만, 누군가를 구해내고, 살리는 일은 자신없었다.
‘도대체 내가 뭘 어떻게해야…!’
어찌할 방도가 떠오르지 않아 타들어가는 가슴의 응어리가 모여 광증이 될 즈음.
“… 령.”
“일청…”
어느새 그녀를 따라나온 위일청이 독고령을 안아주었다.
“…”
“…”
위일청은 그저 독고령을 껴안고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답답하진 않았지만, 궁금했다.
“… 왜 아무 말도 안 해요, 일청?”
“지금 제가 어떤 말을 해도 명쾌한 해결책이 되지는 못 할테니깐요.”
“…”
“대신… 령과 같이 화내고, 슬퍼하는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령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는 있겠죠.”
“이야기를 들어준다고요?”
“답답함은 남에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어느정도 풀릴 때가 있죠.”
“…”
“무엇 때문에 화가 났나요, 령?”
그 말을 듣고 독고령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위일청의 손을 꼬옥 붙잡았다.
“… 나 때문에 그래요.”
“왜 자신한테 화가 났나요?”
“내가… 내가 소소를 끝까지 데려다줬어야 했어요.”
“소소 아가씨 옆에는 창천오검도 있었잖아요.”
“하지만…!”
독고령이 입술을 깨물었다.
“… 검신 영감님이 나한테 부탁했는데… 소소도 헤어지기 싫다고 그랬는데…”
“령의 탓이 아니에요. 그리고 가서 구하면 되잖아요.”
“… 난 못 해요.”
“왜요? 령은 강하잖아요.”
“… 나는…”
독고령이 위일청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는 그의 옷깃을 꼬옥 붙잡았다.
“… 나는 때려 부수고, 누굴 죽이는 게 다예요. 소소까지 구할 자신은 없어요.”
“그럼 다른 이에게 부탁해보는 건 어떤가요?”
“… 네?”
“령은 령이 잘 하는 일을 하세요. 관영이는 잠행술에 뛰어나니 소소를 구할 수 있겠죠. 검후님은 그래도 무림에서 배분이 높은 분이니 장로들을 다그치며 명분을 확보할 수 있겠죠. 사람은 사람마다 다 잘 하는 일이 있잖아요.”
“…”
그 말을 듣는 순간, 독고령은 자신의 머리를 탁 치고 싶었다.
‘왜 도움 받을 생각을 못 했지?’
평생을 홀로, 그저 복수만 보고 쫓아왔기에 몰랐다.
하지만 되돌아보니… 독고진이었던 시절에도 홀로 강호를 떠돌지는 않았다.
쳐죽일 놈은 은약벽이 찾아주고,
다치면 운영이 고쳐줬다.
가끔씩은 무명과 함께 일을 처리하기도 했었다.
위일청의 말을 듣고, 독고령은 고개를 들고, 그를 쳐다봤다.
‘이젠… 혼자가 아니구나.’
독고령의 얼굴에 답답함이 사라진 듯 보이자, 위일청이 웃었다.
“기분이 나아진 것처럼 보이네요, 령.”
“일청.”
“네, 령.”
“일청은 정말 대단해요.”
“… 제가요?”
“일청이랑 이야기하다보면…”
독고령이 웃으며 말했다.
“…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거 같아요.”
“풉… 그게 무슨 말이에요, 령?”
“그런 게 있어요, 일청.”
독고령이 그의 옷깃을 붙잡아당겨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배시시 웃었다.
“잠시 할 일이 있어서요. 이따 봐요, 일청.”
“네, 령.”
독고령이 선실을 박차고 들어가며 소리를 내질렀다.
“하오문!!! 올빼미 가져와!!! 편지 쓰게!!!”
“이익…! 문은 걷어차는 게 아니라고욧!!”
“빨리!!”
“조용 좀 해라, 이 방정맞은 년아! 주하가 깨겠구나!”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지는 선실의 안을 보며 위일청이 피식 웃다가… 자신의 입술을 매만졌다.
‘령도 똑같아요.’
독고령은 위일청이 자신을 바꾼다 생각했지만, 그건 위일청 또한 같았다.
‘령도 나를 바꿉니다.’
위일청은 잠시 그 변화를 떠올리다, 이내 싱긋 웃고는 선실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은근슬쩍 독고령의 뒤로 다가가…
“조금만 진정합시다, 령.”
“흐엑… 녜… 녜헷…”
*
“음…? 올빼미가 여긴 왜…”
청년은 평소처럼 마당을 쓸고 있다 갑자기 날아든 올빼미를 보고 신기해하며 손을 뻗었다.
“꾸르륵!”
손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손길을 받아들이는 게 사람에 의해 길러진 것만 같았다.
그 때, 다리에 묶여있는 편지를 보고 청년은 올빼미가 이 곳을 찾아온 이유를 깨달았다.
“… 전서를 보내는 올빼미구나.”
올빼미의 다리에 묶인 편지를 풀어 읽고난 뒤, 청년은 미소와 함께 안가의 전서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 막주께서 좋아하시겠네.”
편지의 내용은 간단했다.
[나 독고령인데 동업자 양반, 합비로 와라. 네 도움이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