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마와 색마-147화 (147/225)

EP.147 16장. 오매불망 - (4)

남궁진이 긴 한숨을 내쉬며, 수하에게 물었다.

“… 소소는?”

“찾지 못 했습니다.”

“후우…”

남궁진이 주먹을 꽉 쥐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 아직도… 찾지 못 했는가? 창천오검은?”

“그들 역시…”

쾅!

남궁진이 책상을 내리치며 으르렁댔다.

“어찌하여 아직도…!!”

“… 죄송합니다, 가주님.”

“하아…”

남궁진의 숨소리가 떨렸다.

“당문이다. 이번 일로 이득을 본 것은 당문 뿐이야. 당문 위주로 조사를 해 보거라.”

“그리 하고 있습니다만… 맹에 감시의 눈이 너무 많습니다.”

“이익…!!”

맹의 8할 이상이 당문과 모용세가에 포섭당했더라도 소림을 기점으로 차근차근 복구해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권신이 사천으로 향하며, 갑작스레 방장의 자리를 아직 어린 제자에게 물려주자 맹에 남아있던 소림의 세력마저 숭산으로 돌아갔다.

금방 돌아오겠다는 약조를 했지만, 그 잠시를 틈타 이리도 빨리 움직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 답답한 상황 속에서 남궁진의 언성이 자연스레 높아지려다… 이내 꾸욱 참아내곤 말을 삼켰다.

“… 나가보거라.”

“… 예, 가주님.”

“작은 단서라도 하나 찾으면 바로 보고하도록.”

“예.”

탁.

홀로 남은 남궁진은 피곤함을 느끼며, 눈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가려진 손 너머로 소소가 아른아른 보였다.

‘소소야…’

소소의 얼굴이 떠오르자, 남궁진이 이를 악물었다.

‘멍청한 놈… 알고 있었거늘…!’

당문과 모용세가가 이상한 건 진즉에 알아차리고 있었다.

하지만 맹주의 자리에 오른 자가 함부로 그런 의문을 꺼내는 순간, 간신히 지키고 있던 백도무림의 균형이 무너진다.

마교가 후계자 분쟁으로 혼란하고, 혈교는 정체를 감춘 데다가, 사파도 시끄러운 지금 이 상황에서 정파만은 힘을 합쳐 언젠가 다가올 위기를 극복해내기 위해 힘을 비축하고 있어야할 시기라고 생각했다.

지금에서야 남궁진은 뒤늦은 후회를 했다.

명백한 그의 오판이었다.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도대체 뭘 했단말인가…!’

묵선이 죽을 때까지도 천비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에,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그 천비개가 사라졌을 때도 개방 내부가 시끄러운 것을 말리기 위해 돌아간다는 편지를 믿고만 있었다.

권신이 사천에 가는 그 순간까지도… 그 분이라면 훌륭히 당문의 가주를 계도하고 모든 게 괜찮아지리라 생각하며 눈을 돌렸다.

안일함의 대가는 결국 딸의 목숨을 인질로 잡은 서신으로 돌아왔다.

“…”

남궁소소의 잘린 머리카락과 남궁진이 그녀에게 선물로 사준 비녀.

그리고 [맹주직을 내려놓고, 검후를 죽이시오. 그렇지 않으면 다음엔 사랑하는 딸 아이의 목을 받게 될 것이오.] 라 적힌 서신을 받는 순간, 남궁진은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 이 꼬락서니를 보고 아버지는 경을 치시겠지.’

힘으로 눌러버리라는 아버지, 남궁원청의 말을 떠올리며 남궁진은 자신의 애검을 꺼내보였다.

스르릉.

검날에 자신의 핏발선 눈이 비치자, 남궁진은 그제서야 굳게 마음을 먹고 다시 검을 집어넣었다.

‘… 소소야, 미안하다.’

소소를 구하기 위해서 뭐든지 다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는, 남궁소소의 아버지 남궁진이기 이전에 무림맹주 남궁진이자,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진이었다.

구할 수 있다면 언제든지 구할테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으드득!

남궁원청이 말했듯이.

힘으로 모조리 눌러버릴 생각이었다.

그 때.

“꾸르륵!”

“… 올빼미?”

갑작스레 자신의 처소로 날아든 올빼미를 보고, 남궁진은 살기를 거둬들였다.

“전서… 효?”

무림에서 올빼미를 전서구 대용으로 사용하는 문파는 단 하나 뿐이다.

올빼미의 다리에 묶인 서신을 펼쳐보는 순간…

“아…!”

남궁진의 얼굴이 밝아졌다.

*

“당문의 장로인 당가위 대협이 차기 맹주가 되었데요.”

“당가위?”

그 이름을 듣자, 독고령이 인상을 확 찌푸렸다.

‘늙은 너구리 새끼잖아?’

사천에서 적당히 깽판을 치다보면 점점 더 윗대가리 놈들이 튀어나온다.

처음에는 이름도 모를 각주놈들.

그 뒤에는 가주의 직계.

직계 놈들마저 목이 따이면 그제서야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일어나는 게 장로놈들이었다.

당가의 장로들을 그리 많이 본 적은 없으나, 당가위는 유독 그 이름이 머리에 남았다.

독고령이 유일하게 못 죽인 장로기도 하거니와, 당문의 2인자였으니.

“… 그 새끼가 맹주가 됐다고? 아니, 시발. 잠깐만…”

독고령이 잠기운을 떨쳐내기 위해 애쓰며 은관영에게 물었다.

“맹주가 그렇게 빨리 뽑히냐?”

“아니요오.”

“검선도 맹주직 되게 오래할 거처럼 얘기하고 다니지 않았냐?”

“… 그렇죠.”

“근데 왜…?”

“그러니깐 제가 독고 소저를 깨웠죠.”

“응?”

“자요.”

은관영이 독고령에게 서책을 넘기자, 그 곳엔 익숙한 필체가 보였다.

“… 은약벽?”

“문주님이 전해드리래요.”

독고령이 서책을 받아들어 읽기 시작했다.

[오랜만이네요, 손님. 잘 지내시나요? 조금 급한 일이지만, 손님이 합비로 가주실 수 있을까요? 무림맹을 참 싫어하시는 것도 알지만, 지금 안 가면 큰일이 날 거 같거든요.]

‘큰일...?’

[아무래도 당문이 검선의 약점을 쥐고 흔드는 거 같은데 그게 뭔지 저희 쪽에서 아직 파악 중이랍니다. 하지만 늦게 움직이면 저희가 불리하니 우선 손님을 앞세워서 저희가 먼저 남궁진 대협에게 빚을 얹어두고 싶답니다.]

거기까지 읽은 독고령은 서책을 내려놓고, 은관영에게 말했다.

“가자, 지금 당장.”

“… 다 읽으시고 출발하셔도 돼요.”

“당문이 뭔가를 꾸미고 있다잖아, 시발. 그럼 내가 가서 조져야지.”

“배가 올 때까지 아직 여유가 있으니 천천히 읽어보세요.”

“… 짐 쌀 시간은…”

“제가 싸둘게요.”

“… 오냐.”

은관영의 대답을 들은 독고령은 다시 서책에 집중했다.

[아무래도 당문이 본격적으로 움직일 거 같네요. 권신께서 사천에 찾아가셨는데 행방이 묘연한 걸로 보아, 저는 꽤 높은 확률로 당문에게 당했다 생각하고 있어요. 당문이 아직까지 이 정보를 틀어막고 있지만, 소림의 귀에 들어가는 순간…]

독고령이 황급히 다음 장으로 넘어가자, 그 곳엔 섬찟한 단어가 있었다.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겠죠. 백도 무림의 내분이 시작되는 거예요.]

전쟁.

그 무거운 단어가 독고령을 짓눌렀다.

[전 무림이 불타없어지는 일이야 제겐 기쁜 일이기도 합니다만,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양민이 죽어나갈지 저는 상상이 안 가네요. 그렇기에 손님께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부디 최악의 사태를 막아주세요. 무림의 일은, 무림에서 끝나게끔.]

은약벽의 편지를 다 읽은 독고령은 서책을 닫고, 잠시 눈을 감았다.

‘전쟁이라…’

꼴 보기도 싫은 놈들끼리 피터지게 싸운다면 독고령의 입장에서야 쌍수들고 환영할 만한 일이었지만, 그 전쟁에서 당문이 승자라도 된다 생각하니 피가 끓었다.

‘어림도 없지, 개새끼들아…!’

독고령은 머릿 속에서 필요한 정보만 정확히 받아들였다.

당문이 수작질을 꾸미고 있고, 은약벽이 그걸 부숴달라 요청했다.

독고령이 눈을 뜨자, 그녀의 눈이 투지로 들끓었다.

“당가위… 이 너구리 새끼. 반드시 죽여주마.”

“… 다 읽으셨나요?”

“가자. 지금 당장.”

“못 간다니깐요? 어차피 배 기다려야해요.”

“갈댓잎 좀 뽑아서 가자. 나 일위도강도 할 수 있어.”

갈대 잎에 몸을 실어 강물을 건너는 경공술의 상승 기예를 언급하자, 은관영이 얼굴을 찌푸렸다.

“… 저는 못 하거든요?”

“업어줄게.”

“그래도 안 돼욧! 그리고 독고 소저 혼자서는 절대 못 가죠!”

“응?”

“… 저 혼자서 독고 소저를 어떻게 말려요?”

“그럼…”

“당연히 위 오빠도 같이 가야하죠.”

“아…!”

그 말을 듣자, 독고령은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하아… 위 오빠가 한참 귀한 가르침을 받는 와중에 이런 부탁드리기 죄송하네요.”

“아…”

“독고 소저가 얌전하기만 했다면 위 오빠는 이대로 검후님에게 가르침을 받고 무공의 상승을 노려볼만 할텐데…”

“…”

은관영의 말을 듣자, 독고령은 쿡쿡 가슴이 찔렸다.

“아… 아니… 나는 그… 맨날 그렇게…”

“위 오빠 없으면 또 위 오빠 보고 싶다고 얼마나 난리칠지 훤히 보이거든요오? 제가 무서워서라도 위 오빠는 필요해요오.”

“그… 그렇긴해도…”

“소현 언니는요? 남아있으실래요? 이번 일이 얼마나 걸릴지 저도 감이 안 와서…”

“음… 아마 나도 같이 가지 않을까? 나야 뭐… 무공 욕심보다는…”

“엑?”

백리소현마저 검후의 가르침을 포기한다고 하자, 독고령은 당황한 듯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 아니… 둔치! 너는 남아서 검후 할매한테 좀 더 배워야지.”

“응? 내가 굳이?”

“너… 너는 무인의 욕심이라든가 그런 것도 없어?”

“있긴 한데… 그래도 령 매나 위 오라버니, 관영이랑 같이 있는 시간이 더 소중한데?”

“아… 으으…”

독고령은 답답했다.

백리소현이 검후의 가르침을 받는다면 아무리 재능이 떨어지는 그녀라 할 지라도, 언젠가는 환골탈태를 이룰 정도의 경지에도 올라설 것이다.

그 천금 같은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분통이 터졌다.

게다가…

[네 낭군님 앞길이나 막지 마라, 이 년아!!]

검후의 일갈이 현실이 되자, 독고령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독고령이 어떻게든 이 상황을 해결해보려고 이런저런 수를 찾아보는 와중, 은관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위 오빠한테도 말하러…”

“내… 내가 갈게!!”

“제가 가서 얘기하는 게…”

“내가 간다고! 너… 너는 여기 있어!”

“… 그래요오. 금방 돌아오실거죠?”

“… 어.”

결국 독고령은 자신이 생각한 최선의 수를 떠올렸다.

*

“… 저랑 같이 가주세요, 검후 할머니.”

“… 뭐?”

“그… 밖에 좀 가려고 하는데… 일청도 계속 배워야하고, 소현이도 배워야하니깐… 검후 님이 좀 같이 가주십사 하고…”

“…”

독고령이 바짝 엎드려 자신과 동행해달라 요청하니, 검후는 당황스럽기 그지 없었다.

“하아… 앞뒤 잘라먹지말고, 하나하나 차근차근 설명해보거라.”

“그러니깐 그게요…”

독고령은 은관영, 은약벽에게 들은 얘기 들을 쭈욱 다 털어놓았다.

남궁진이 당문에 약점을 잡혀서 맹주직을 내려놓았더라.

그 무언가를 하오문이 파악중이라더라.

그걸 조지기 위해 내가 가야한다.

근데 그러면 위일청과 백리소현이 검후의 가르침을 놓친다.

그러니 염치불구하고 나랑 같이 가면서 위일청과 백리소현도 계속 가르쳐 달라.

요지는 그러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검후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 당문은 그래도 정파가 아니였느냐?”

“그 새끼들 강시도 만들고 다니는데요?”

“강시를…?”

“아마 소림의 방장도 죽인 거 같고요.”

“… 확실한게야?”

“확신은 못 하는데… 방장이 사천에서 사라졌다더라고요.”

“공여가 홀로 사천을… 허어… 강시까지…”

검후는 연신 한숨을 푹푹 내쉬며, 여러모로 골똘히 생각에 잠긴 듯 했다.

그러더니 잠시 후…

“… 같이 가자꾸나.”

“어? 진짜요?”

“본녀가 확인할 것도 있으니 아무래도 직접 나서는 게 맞는 거 같구나.”

“그… 그럼… 일청도…!”

“오냐, 같이 가자꾸나. 허나… 흐음…”

“빨리빨리 가요! 저 그럼 위일청 보러가도 되죠?! 이제 되죠?!”

“… 에휴, 보러 가거라. 밤에도 몰래 만나더니…”

“흐엑?! 아… 알았어요?”

“보타문 내의 일을 본녀가 어찌 모르겠느냐?”

“…”

독고령이 풀이 죽었다.

“걱정말거라. 그리 많이 안 혼냈으니.”

독고령의 얼굴이 다시 환해졌다.

“그럼 할머니, 빨리 짐 챙겨서 오세요? 알았죠?!”

“할미 아니래두!!”

“이따 봬요, 할머니!!”

“이 년이?!”

후다닥 밖으로 뛰쳐나가는 독고령을 쳐다보며, 검후는 피식 웃었다.

“저… 저저저… 방정맞은 년 같으니라고.”

그리 좋을까 싶었다.

고작 일주일만에 정인을 다시 만난다고 저렇게까지 신날 줄은 몰랐다.

뛰쳐나가는 독고령의 등을 떠올리며 잠시 웃던 검후는 이내 표정을 굳혔다.

‘사천이라…’

마지막으로 강호에 나갔을 때, 혈교의 본거지는 사천 인근이었다.

‘… 아니겠지. 아닐게야…’

아니길 바랬지만, 혹시나… 이번 일에 또 다시 혈교가 개입되었다면…

‘이번은 안 되지.’

검후는 언제든지 칼을 뽑아들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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