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마와 색마-146화 (146/225)

EP.146 16장. 오매불망 - (3)

처소로 돌아가 다시 잠을 청하려고 누웠던 위일청은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잠을 이루지 못 했다.

“후우…”

답답한 마음에 잠이 오지않아 검이라도 휘두르다 자야겠다는 생각에 위일청은 검을 챙기고 밖으로 나왔다.

검후의 처소 바로 옆에 있는 장원에 선 위일청은 잠시 눈을 감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조금씩 잡념을 떨쳐내기 시작했다.

검후의 절기는 불가의 가르침이 으레 그러하듯, 비움에서 시작되었다.

먼저 잡념을 비우고, 한없이 내공을 퍼뜨리고, 스스로를 비워낸다.

그리고는 자연과 동화된 자신을 깨우친 후에 통제할 수 있는 최소한의 내공을 붙잡아 휘두른다.

“…”

말은 참으로 간단했지만, 위일청은 아직도 그 감각이 쉬이 익숙해지지 않았다.

게다가…

“이… 일청!! 위일청!!”

조금만 스스로를 비워내려고 하면 금세 잡념이 끼어들곤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어디선가 들릴 리 없는 독고령의 목소리가…

“… 령?”

위일청이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

잘못 들은건가 싶긴 했지만, 혹시나 진짜라면…

‘미치겠군요.’

망설일 겨를도 없이 위일청은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몸을 날렸다.

아니라면 그냥 아닌 거였다.

고작 일주일 못 만났다고 정인의 환청을 들을 정도로 그리워하는 것이니 잠시 그리움을 붙잡고 슬퍼하면 그만이었다.

허나 만약 환청이 아니라 진짜 독고령이었다면 사랑하는 정인의 얼굴을 보는 것이다.

움직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지붕 위로 휙 올라온 위일청이 내공을 끌어올려 안력을 높이자, 그의 눈에 얽혀있는 두 명의 인영이 보였다.

하나는 빼빼 마른 여인이었고, 다른 하나는…

‘령…!’

독고령이었다.

“쉬이… 스승님이 깨면 곤란하답니다?”

“읍…! 읍읍…!”

“참 고운 피부네요…”

주하가 황홀한 목소리로 독고령의 뺨을 쓰다듬는 것을 보고, 위일청이 입을 열었다.

“… 서 소저. 창고로 돌아가시지요.”

그의 목소리를 들은 주하가 당황하며 고개를 돌리고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 싫어요.”

“지금이라도 돌아가신다면 용서해드리지요.”

용서?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용서라는 단어가 위일청의 가슴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금세 자신의 가슴을 미친듯이 뛰게 만드는 원인을 알아차렸다.

같은 여인이라 할 지라도 타인에게 겁탈당할 위기에 처한 독고령의 모습을, 위일청은 참을 수 없었다.

“소저께서 누굴 건드리고 있는지 모르나본데…”

“아…”

위일청과 독고령의 눈이 마주쳤다.

“령은 제 여인입니다.”

“글쎄요, 일청 오빠.”

주하의 눈이 황금빛을 띠며, 요기로 번들거렸다.

“저랑 하루라도 보낸 사자매들은 하나같이 저를 못 잊던데… 독고 소저도 그렇지 않을까요?”

“…일청. 진짜 일청인가요?”

“령, 잠시만 기다리세요.”

위일청이 굳은 얼굴로 주하에게 다가섰다.

“령은 제 여인입니다. 건드리지 마세요, 서 소저.”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요? 일단 제가 한 번 맛 본 뒤에 독고 소저가 선택하게끔…”

콱!

위일청이 그녀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한 번도 보지 못한 감정적인 그의 모습에 독고령이 놀랐다.

“한 번만 더 헛소리를 내뱉는다면 입을 찢어버리겠습니다.”

“… 무섭네요.”

“진심입니다.”

“…”

주하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위일청의 손을 풀었다.

“그래도 한 번 몸을 섞은 여인에게 너무 매몰차시네요.”

“제 여인을 건드는 이는 누구라도 가만 둘 생각이 없습니다. 창고로 다시 돌아가시죠.”

“한 명만 더…”

“지금 당장!”

위일청이 으르렁대자, 주하가 몸을 흠칫 떨었다.

“… 스승님한테는 말하지 마세요.”

“말할 겁니다. 당장 꺼지세요.”

“칫…”

“어서!”

주하가 툴툴대며 창고로 향하자 위일청은 바로 독고령을 살폈다.

“… 령, 괜찮습니까? 어디 다친데는…”

“일청. 정말 일청인가요?”

“네, 접니다. 그러게 왜 한밤중에 돌아다녀서…”

“보고 싶었어요.”

“…”

나무라는 위일청을 신경쓰지도 않고, 그의 품에 뛰어들며 독고령이 말했다.

“너무… 너무 보고 싶었어요…”

“하아… 저도요.”

“정말… 너무나도…”

독고령은 자신도 알 수 없게 목이 매였다.

그저 오랜만에 만난 것 뿐인데, 왜 이리 가슴이 떨리는지 모르겠다.

“…”

하지만 그런 알 수 없는 것들에 신경 쓰지않고, 독고령은 그저 위일청의 품에 안겨 그의 체온을 느끼기 바빴다.

근 일주일만에 다시 만나는 위일청의 품은, 여전히 따스했다.

*

“… 조금 진정됐나요?”

“안 울었어요.”

“… 그런 걸로 합시다.”

“정말로요.”

“네, 령.”

“진짠데요.”

“알았습니다.”

“…”

위일청의 품에 안긴 채, 독고령은 가만히 그의 체온을 즐겼다.

‘왜 울어가지고 진짜…’

갑작스레 튀어나온 눈물에 위일청과 독고령 사이에 약간의 어색함이 맴돌았다.

“… 정말 다친 데 없죠, 령?”

“없어요. 그냥… 몸을 못 움직여서…”

그 때, 독고령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일청은 어떻게 움직였어요?!”

“아… 서 소저의 사술은 정종심법을 익힌 사람한테는 통하지 않습니다. 요기가 강해서 여인들만 못 움직이는 것 뿐이지, 알고만 있다면 충분히 대처할 수 있습니다.”

“… 네?”

“… 소녀경도 도가의 심법입니다.”

“…”

그 말을 듣자, 독고령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

“그게 진짜 정종심법이라고요?”

“밤일이 그리 더러운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

“게다가 양기가 많은 이한테도 안 통합니다. 생각보다 허점이 많은 사술이에요.”

“양기…”

그 말을 듣자 독고령은 자연스레 위일청의 다리 사이의 양물이 떠올랐지만, 그 생각을 금세 접었다.

“지금 야한 생각했죠, 령?”

“… 일청이 먼저 말했어요.”

“제가요?”

“몰라요.”

“크큭, 예.”

자신을 더욱 세게 끌어안는 위일청의 팔에 기대며 독고령이 중얼거렸다.

“… 이렇게 나와있어도 괜찮아요?”

“안 괜찮죠.”

“빨리 들어가봐야 하는게…”

“서 소저를 쫓아내느라 어쩔 수 없었다고 하죠, 뭐.”

“…”

“대신 야한 일은 안 할 겁니다. 령을 만난 것도 스승님에게 죄송한데, 음양교합까지 해버리면 스승님을 볼 낯이 없네요.”

“… 검후 할머니가 잘 가르쳐줘요?”

“네. 살면서 스승이 한 번도 없었다보니 새삼스레 과거가 후회됩니다. 실력이 많이 늘었다 자부합니다.”

“그래요?”

독고령은 괜히 위일청을 보내기 싫어, 계속 그의 손을 쓰다듬으며 이런저런 잡다한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하오문이랑 둔치도 요즘 잘 배우고 있나보더라고요.”

“두 분도 실력이 많이 늘었나요?”

“네. 그리고 저도 많이 늘어난 거 같아요.”

“령은 이미 충분히 강하잖아요.”

“… 더 강해지면 좋죠, 뭐.”

“크큭, 그렇네요.”

“…”

“…”

얘기를 한없이 쏟아내고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지자 독고령은 그저 위일청의 손가락만 만지작거렸다.

“… 령, 이제 슬슬…”

“… 네.”

충분히 많은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너무나도 짧았다.

막상 이별의 때가 다가오자, 독고령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도 아쉬움에 붙잡은 위일청의 손가락을 놓지 못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위일청 또한 독고령과 눈을 마주치지 못 하고, 애꿎은 그녀의 손가락만 만지작거렸다.

“… 령.”

“네, 일청…”

“다음엔 밤에 돌아다니지 마세요. 또 서 소저랑 마주치면…”

“… 알았어요.”

“양기는 남아있나요?”

“… 조금요. 태양화리의 내단도 있고요.”

“밤에 안 다니는 게 최고지만, 정 위험하겠다 싶으면 양기를 일으키세요. 서 소저가 무공을 배운 건 없으니깐, 조금의 양기로도 령이라면 충분히 제압할 거예요.”

“… 네.”

“그럼 다음에…”

“이… 일청!”

독고령이 위일청의 손가락을 꼭 붙잡았다.

“가… 가야겠죠…?”

“… 그래야죠. 스승님이 이미 일어나셨을 수도 있겠네요.”

“… 할머니가 뭐라고 하면 저한테 말하세요. 제가 대신 혼날게요.”

“아닙니다. 멋대로 빠져나온 건 저니깐요.”

“저… 저 때문에 빠져나왔으니깐…!”

“령.”

위일청이 독고령의 뺨을 쓰다듬었다.

“다음에. 일주일 후에 만납시다.”

“…”

“대답해주세요, 령.”

“… 알았어요. 대신…”

독고령이 눈을 감고, 까치발을 들었다.

그 모습을 본 위일청은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 지 알았다.

쪽.

가볍게 입만 맞추고 위일청이 고개를 떼자, 독고령은 조금 아쉬운 듯 혀를 낼름거렸지만 꾹 참았다.

“… 다음에 만나면 더 하죠.”

“… 기대할게요…”

“크큭, 예. 어서 들어가세요, 령.”

“일청 먼저 가세요.”

“령이 혹시 서 소저라도 만나면 위험하잖아요. 이 참에 그녀가 창고에 얌전히 들어갔나도 확인해봐야겠네요.”

“아…”

그 말을 듣고 결국 독고령이 먼저 위일청과 맞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 일주일 뒤에.”

“일주일 뒤에.”

위일청이 웃으며 멀어지는 독고령을 한참을 바라보다 뒤도는 순간…

“헙…!”

“밤산책은 즐거웠느냐?”

“스… 스승님…”

그 곳에는 어느새 나타난 검후가 서있었다.

“주하의 요기가 느껴지길래 일어났더니 네가 없더구나.”

“… 죄송합니다.”

“잘못은 아느냐?”

“… 예.”

“그럼 됐다.”

“예?”

검후가 웃으며 위일청을 바라보았다.

“행여나 령아와 으슥한 곳을 찾아갔다면 가만히 있지 않았을게야. 만약 그랬다면 너를 가르치는 것은 거기서 끝났겠지만, 이 정도면 잘 참았다 생각한다.”

“…”

“마지막에 입맞춤이야 뭐… 령아가 잘못한거니 저 아이에게 물으마.”

“제… 제가…!”

“됐다. 변명하지 말거라.”

“…”

검후가 휙 돌아섰다.

“오늘의 일은 본녀가 주하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죄도 있고, 령아가 무당에서 온 아이들을 괴롭혀서 벌어진 일이기도 하다. 네 잘못은 없느니라.”

“허나…”

“그래도 네가 정인의 죄를 짊어지고자 한다면 빨리 본녀의 가르침을 익히거라.”

“… 예?”

“바람이 이상하구나.”

검후가 손을 들어 불어오는 바람을 쓸었다.

“예감이 좋지 않아… 조만간 큰 일이 생길듯 하니 너는 더욱더 수행에 박차를 가하거라.”

“… 예.”

“잠은 충분히 잤으니 지금부터 바로 시작하자꾸나.”

“아…”

“음?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

“…”

위일청은 자신이 한숨도 자지 못 했다고 말하지 못 하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 아닙니다.”

“크큭, 가자.”

“네, 스승님.”

검후의 뒤를 따라가던 위일청은 잠시 고개를 돌려 독고령의 처소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일주일만 있다 만나죠, 령.’

이내 다시 검후를 쫓아갔다.

*

위일청과 독고령이 한 재회의 약속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독고 소저! 독고 소저!! 빨리 일어나보세요!!”

“으… 으으… 왜…”

“저 합비로 가봐야해요오!”

“… 응?”

어젯밤, 위일청과의 밀회 때문에 얼마 자지도 못한 독고령은 잠기운에 멍한 머리를 부여잡고 밍기적대며 일어났다.

“합비는 왜…?”

“검선께서 맹주직을 포기했어요오.”

“… 그럴 수 있지.”

“근데 차기 맹주가 당문이래요오.”

“… 뭐?”

독고령의 잠기운이 확 달아났다.

“… 누구라고?”

“당문의 장로인 당가위 대협이 차기 맹주가 되었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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